하태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장·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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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공정’한가 싸움뿐인 총선, ‘공약’ 경쟁이 사라졌다 민심은 참으로 무섭다. 한번 바람을 타니 파도가 되어 배를 뒤집어엎을 기세다. 기성 정치인과는 다를 것 같은 인물이 등장하면서 오르기 시작한 집권 여당의 기세가 총선을 코앞에 두고 흔들리고 있다. 총선 결과로 이어질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선 그렇다. 불과 몇 개월 전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를 보고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인정했다. 강물 같은 국민의 뜻을 거스르면 배가 가라앉게 된다는 군주민수(君舟民水)의 엄중함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민심에 반하는 인사권 행사로 유리하던 여론 지형에 변동이 생겼다. 채모 상병 사망사건 수사 과정에 당시 국방부 장관의 외압이 있었을 거란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거대 야당이 탄핵을 추진한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한 것이다. 이종섭 사태가 민심 흐름을 바꿔 놓았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인 공정과 상식, 법치와 정의는 어디로 갔느냐는 국민 대다수의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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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누굴 위한 공천이며 총선인가 4월 총선을 준비하는 양당을 보면 없는 게 많다. 혁신도 비전도 없다. 공천 기준도 있으나 마나다. 공천 줄 곳을 찾아 기웃거리고 낙천한 예비후보를 이삭줍기하는 정당을 보면 당 정체성도 없는 것 같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야 국민의 대표가 될 터인데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평소 ‘존경하는 국민’을 입에 달고 사는 분들인데 정작 공천 과정은 자기들끼리 자리다툼이다. 시스템 공천을 말하지만, 여전히 ‘친’ ‘찐’ ‘핵관’ 등 4년마다 되풀이되는 감별 접두사만 들려온다. 시스템은 공천 책임자의 기자 질문 답변용 용어로 거론될 뿐이다. 정당의 대표나 실세, 대통령과의 친소관계가 공천 기준으로 작동한 지 오래다. ‘공천 파동’은 공천 시즌만 되면 등장하는 사자성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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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법률가 정치인 세상 법률가는 법 규정에 얽매여 산다. 법전을 뛰어넘을 생각도 하지 않지만, 해서도 안 된다. 법전과 판례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성직자와 신도들이 종교의 가르침이 적힌 경전을 절대시하는 것과 유사하다. 법률가는 법 규정의 문장과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를 밝혀 사안에 적용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그들은 법률이라는 틀 속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데 익숙하다. 검사는 기소 여부나 유무죄를 범인과 협상하거나 타협해서는 안 되고 판사도 마찬가지다. 유죄 아니면 무죄, 원고 승소 아니면 패소 양자택일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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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안전, 민주사회의 핵심 가치 희망차게 시작해야 할 신년 벽두부터 시민은 불안하고 불편하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새해를 여는 덕담이나 화두는 가려지고 공포와 두려움이 앞선 출발이다. 특정 정치인을 겨냥한 공격이라서 일반 시민의 불안감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가뜩이나 지난해 우리를 불안케 한 이상동기 범죄, 일명 묻지마 범죄로 놀란 시민이다. 어디서 흉기가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누군가로부터 칼부림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가 커진 상태다. 전례 없는 팬데믹의 공포에서 벗어나 외부 활동이 많아진 시기라서 더욱 두렵다. 범죄위험은 평화롭고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시민을 불안하게 한다. 범죄에 더해서 자연 재난, 산업재해와 대형사고, 이념 대립과 갈등, 허위 정보 유통 등 날로 증가하는 위험 요소로 불안하기만 하다. 그중에서도 범죄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는 생생한 범죄 보도로 인해 커져만 간다. 살인, 강도, 성폭력 범죄와 같은 강력범죄뿐만 아니라 마약, 민생을 침해하는 전세 사기, 문자 사기 같은 교묘한 속임수에 누구라도 넘어갈 수 있어 방심할 수 없다. 인간을 뛰어넘을 듯 닮아가는 생성형 AI가 등장하여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딥보이스나 딥페이크처럼 AI를 악용한 범죄 수법도 우리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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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과연 정의일까 ‘이제부터 내가 다시 심판한다.’ 시리즈물 <비질란테>의 포스터에 등장하는 문구다. 낮과 밤이 다른 두 얼굴의 다크히어로가 구멍난 법의 허점을 메우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범죄자를 심판해 정의를 세운다는 내용이다. 억울한 개인을 등장시켜 법과 법 집행 현실의 괴리를 드러내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법 시스템을 고발하는 형식이지만, 정작 공론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사적 복수를 정당화하는 대중문화로 소비되고 있다. 이런 식의 사적 제재가 유행이다. 드라마나 영화뿐만이 아니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신상 털기, 서비스나 맛에 불만족한 소비자의 평점 테러, 댓글 공격 등 우리 사회에 대리 응징이 일상화되었다. 유튜버까지 뛰어들어 법적 보호를 못 받는다고 느끼는 억울한 피해자의 복수심을 자극한다. 일단 가해자로 지목되면 법에 어긋나는 절차와 방식으로라도 피해자가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되갚아 주면서 환호하고 공감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시적 복수 감정이 꿈틀거리고, 문명사회에서 사적 복수의 관습이 되살아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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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두 얼굴의 AI 사람의 상상력과 창의적 사고에 한계가 없듯 AI의 세계도 무한하다. 보건 의료, 법률, 군사, 물류 유통, 금융 등 모든 분야에서 AI의 활약상은 대단하다. 최근에는 구글에서 기상청보다 더 정확한 날씨 예측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창작과 예술에서도 인간을 능가한다는 평가다. 인공지능 기반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완전 자율 주행 자동차 상용화도 눈앞에 다가왔다. 이제 일상생활 곳곳에 인공지능 기술이 퍼져 우리의 삶은 편리성, 효율성, 생산성이라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민간 영역을 넘어 정부도 행정 영역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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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판결의 무게 ‘국민의 이름으로’(Im Namen des Volkes). 독일 판결문 상단에 적혀 있는 문구다. 사법권도 국민주권의 원리에 충실함을 상징하는 머리말이다. 권력의 근원인 국민의 수임기관으로서 내리는 판결이니 무게감은 엄청나다. 그래서 그런지 독일 언론에서 판결을 비판적으로 보도하거나 가볍게 취급하는 기사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정치인이 관련 판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언급하는 것도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 시절, 독일 연방법원을 방문해 재판이 언론이나 여론의 영향을 받을 위험성이 있는지 물었을 때, 범죄나 판결에 관한 언론보도가 거의 없으니 그럴 가능성은 없다는 대답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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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ESG 경영과 ‘에코사이드’ 지난 24일은 ‘세계 기후행동의날’이었다.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독일 베를린에서 수천명의 기후활동가와 함께 기후파업 집회에 나섰다. 독일 총선을 앞두고 기후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을 향해 일침을 가하는 압박 행동이다.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홍수와 산사태를 지난여름 목격하고도 독일 정치권이 정신 차리지 못하자 거리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기후행동이 곳곳에서 집회를 열고 1인 시위도 벌이고, 정부 주도의 기후위기 대응판을 전복하기 위한 ‘기후시민의회’ 구성도 제안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더 적극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안타깝게도 널리 퍼지지는 못한 것 같다. 과감한 탄소 감축, 미흡한 탄소중립기본법 당장 폐기 등의 주장은 정치권의 ‘대장동·고발 사주’ 공방으로 묻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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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또 다른 ESG 고위 공직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국가인권위원장, 금융위원장, 대법관이 검증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집권 후반기이고 이미 대선 정국이라 관심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몇몇 검증 이슈가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검증기준은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세금 탈루 등이다. 연구업적이 있는 경우에는 표절 논란도 빠지지 않는다. 인사 검증이 때론 정치 공방으로 변질하기도 하지만 고위 공직 후보자가 지녀야 할 자질을 따져보는 절차이니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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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계산된 행보만으론 흔들릴 지지율 대선의 시간이다. 대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었다. 너도나도 나서면서 여야의 잠룡들은 셀 수 없을 정도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선 절차는 시작되었고 국민의힘은 8월에 경선 버스가 출발할 예정이다. 야권에서는 장외에 있는 후보들이 이 버스에 승차할지가 관심사다. 여당의 경선 일정은 예비경선 후 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되었지만 어쨌든 여야 모두 경선 레이스가 진행 중이다. 야권에서는 민심을 탐방하는 후보도 있고, 입당으로 후보군에 합류한 이도 있다. 어디가 유리할지 저울질하는 후보도 있다. 여당은 후보 간 네거티브 공격이 격화되다 보니 원팀협약식을 연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무엇보다도 임기 말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40%가 넘어서자 ‘문심’ 얻기 경쟁이 뜨겁고 적통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후보들의 행보는 중계방송처럼 들려오고 그들이 던지는 언어는 과거의 것까지 소환되어 보도되고 있다. 간간이 정책도 제안해 보지만 아직은 설익고 단편적이어서 여론 떠보기용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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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연대책임, 문책성 인사가 능사인가 “대통령이 책임져라”, “장관 사퇴하라”, “국민 앞에 사죄하라”. 무슨 일이 터지면 흔히 들리는 목소리다. 야당이 즐겨 쓰는 공격무기다. 언론도 나서고 국민청원도 등장한다. 어떤 잘못에 대한 책임인지도 모르면서 장관이 경질되고, 최고 지휘라인이 사퇴하면 일단 진정된다. 연대책임을 묻고 문책성 인사로 사태를 마무리한다. 그렇다고 재발이 방지되나. 성범죄에 관한 한 전혀 그렇지 않다. 적어도 군대 내 성범죄가 그렇다. 온갖 제도와 장치를 마련하고 예방 교육도 강화했건만 잊을 만하면 또 터진다. 성범죄 피해 여군이 자살하는 비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불과 몇 해 전에는 남성 장교로부터 준강간 당한 여군 장교가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군 성폭력 피해자가 자살로 내몰리지만, 국방부와 군 당국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대책을 발표하고 개선 의지를 천명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효과도 없는 종합대책만 반복하니 육·해·공군을 가리지 않고 군대 인권과 성평등은 뒷걸음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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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가짜로 오염된 소셜미디어 허위정보가 넘치고, 뉴스의 허울을 쓴 가짜뉴스가 판친다. 전통 언론은 팩트체크라는 형식으로 진위를 검증해 보여주지만 이미 퍼져나간 가짜와 허위의 위력을 잠재우지 못한다. 거짓이 진실을 압도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공권력도 가짜와의 싸움을 벌이지만 역부족이다. 최근 한강실종사망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있는 수사기관이 그러하다. 각종 음모론과 추측이 끊이지 않고 방구석 코난과 돈벌이 유튜버들이 쏟아내는 가짜뉴스와 허위정보에 대응하느라 경찰은 힘이 빠진다. 독자적인 수사권을 부여받은 경찰에 대한 불신이 초래한 사태이지만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급기야 허위사실 유포 행위를 수사해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