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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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법치(法癡), 법맹(法盲)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손바닥에 ‘王(왕)’자를 그렸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가 전제군주를 꿈꾸던 자였음을 말이다. 그랬으니 헌법적 요건과 절차를 지키지 않은 비상계엄이 비상대권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펴고 있다. 법치국가 헌법에 없는 비상대권이란 낡은 개념을 끄집어내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사법부도 건드릴 수 없단다. 헌법이 보장한 국회 의결권을 봉쇄하고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하려고 시도한 것은 ‘짐이 곧 국가’였던 왕권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젖어 마뜩잖은 의회도 갈아엎으려 했다. 법관이 발부한 영장의 정당한 집행도 거부했다. 이렇게 입법부와 사법부를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까닭은 누구에게라도 칼을 들이댈 수 있었던 검찰권력의 기억이 남아서 그런 것 같다. 공천권 개입쯤이야 짐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는지, 야당이 공천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했다고도 한다. 마치 초헌법적 전제군주처럼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서 나온다고 착각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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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내란 수괴가 ‘사법 마비’라는데 침묵하는 사법부 온 국민에게 생중계된 12·3 내란의 현장. 국회를 무장 군대와 경찰로 유린하는 비극을 목격한 건 충격이었다. 권력을 쥐여 준 국민을 겁박하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극도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괴물 같은 독재자를 영화 속에서 본 적은 있지만, 거의 반세기가 지난 2024년에 다시 보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게 대통령이냐.’ 이게 민주주의 법치국가의 대통령이 벌일 짓인가. 이해 불가 초유의 사태다. 헌법주의자라던 자가 헌법을 유린하고, 의회주의자라는 자가 국회를 ‘범죄자 소굴’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로 여겨 척결 대상으로 삼았다.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은 선행 자백을 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가 ‘야당을 겁주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비상계엄 선포 사유에 해당하지 않음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그는 정치력을 발휘하는 대신 군부독재 시대의 군홧발을 먼저 떠올렸다. 평소 즐겨하던 어퍼컷 세리머니가 국민을 향한 한 방, 주먹질임을 알아채는 데 3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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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검사 때 못 벗은 정치, 정치 물든 검찰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하겠다.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앞만 보고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 있겠다. 4대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비장함이지만, 정치 상황도 변했고 입법지형도 달라졌는데 밀어붙인다고 될 일은 아니다. 개혁에는 늘 저항이 있기 마련인데 임기 반환점을 돌 때까지 국민적 공감을 얻어내고 사회적 타협을 이루려는 노력도 없었고,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을 설득하고 도움을 청하는 시도조차 없었다. 의회주의자를 자임했지만 정작 국회 개원식과 시정연설에 불참하고 법률안거부권도 남발하는 등 국회와 야당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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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위헌 법률’ 누가 심판하고 선언하는가 우리나라에서 누가 법률이 위헌임을 선언하는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나. 사법부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위헌 여부를 심판할 수 있는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니까 개인이 위헌이라고 판단해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국회가 제정한 법률이 위헌이라고 선언할 수 있는 권한은 헌법재판소에 있다. 헌재가 심사하여 위헌으로 결정하기 전까지는 아무리 위헌성이 짙다고 해도 그 법률은 효력이 있고 지켜져야 한다. 법원도 재판 중 해당 사건에 적용할 법률의 위헌 여부가 문제될 때, 재판부가 위헌이라고 판단할 수 없고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할 수 있을 뿐이다. 위헌 심판권을 헌재가 갖고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안다. 헌재가 설립된 지 30년이 훌쩍 넘었으니 모를 리 없다. 대통령, 법원, 국민은 위헌적 법률이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지언정 그 법률이 위헌이라고 선언할 힘을 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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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다 잡힌다’라는 두려움이 딥페이크 막는다 ‘잡히기만 하면 중하게 처벌될 거라’는 경고와 위협보다는 ‘범죄 뒤에 언제나 처벌이 뒤따르더라’라는 사실과 경험이 범죄예방의 효과를 높인다. 발각되면 무거운 형벌을 받더라도 검거율이 높지 않으면 경고의 효력은 떨어진다. 법 위반자 대부분이 검거되어 죗값을 치르더라는 인식과 경험이 널리 퍼지면 그 위험을 무릅쓰고 범죄로 나아갈 사람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예고된 형벌의 높낮이가 아니라 실제 처벌 여부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범죄의 유혹이 줄어든다. 처벌의 확실성이 처벌의 엄격성보다 범죄예방의 효과가 더 크다는 얘기다. ‘묻지 마 살인’처럼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살인은 다르지만, 살인이 줄어든 이유도 다 발각되고 처벌되기 때문이다. 살인의 죗값으로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도 범죄예방의 효과가 커졌다. 살인죄만큼은 법이 살아 있고 형사사법 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경험 효과와 믿음이 범죄를 억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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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소송당한 ‘콩나물시루’ 교도소 ‘닭장 교도소’, ‘콩나물시루’, 한여름엔 ‘찜통’. 노후화와 과밀수용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이다. 이런 교도소나 구치소에 수용돼 신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던 24명이 지난달 18일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을 맞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소 제기가 처음도 아니다. 이미 2016년 헌법재판소가 1인당 2.58㎡ 기준 결정도 내렸고, 대법원은 2022년 국가 손해배상 책임을 처음 인정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여러 차례 권고했음에도 과밀수용은 개선될 기미가 없다. 헌법재판소가 개선 권고한 5년 또는 7년의 시한은 벌써 지났다. 좁디좁은 과밀 공간에서 선풍기로 더위를 이겨내야 하는 재소자에게 올여름 같은 폭염은 가히 살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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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합법과 불법 사이에 끼어드는 편법 얼마 전 ‘혼인신고 손익계산서’라는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결혼식을 올리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늦게 신고하는 신혼부부가 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절세와 지원금 혜택에 있다는 내용이다. 1인 가구로서 청약, 세금 그리고 대출과 각종 지원금 등 혜택을 누리려고 신고를 늦춘다고 한다. 나중에 신고 의무 위반 과태료를 조금만 내면 되니 손익계산을 해보면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오히려 혼인신고가 불리해서 페널티로 불린다고 한다. 혼인신고 지연은 엄밀히 말하자면 법 위반이지만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 과태료는 형벌이 아니라 행정처분이라서 불법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신고를 안 했으니 남남이고, 1인 가구거나 한부모 가정으로 봐야 하는 법과 제도를 십분 활용한 행위라서 당사자들도 딱히 불법으로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 어디쯤 걸쳐 있는 편법이라면 편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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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정보의 비대칭 틈새 노리는 사기꾼 국가 범죄통계에 의하면 전체 범죄 건수가 줄어들고 있다. 살인과 강도, 강간 같은 강력범죄도 감소하고 재산범죄도 줄어드는데, 유독 사기 범죄만 증가하는 추세다. 10년 전에 비해 절도는 줄었는데 지능범죄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사기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사기죄가 범죄 건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수법도 다양하고 교묘해졌다. 대부분 조직적으로 벌어진다. 피해자나 피해액도 대규모다. 보이스피싱도 그렇고 전세 사기도 마찬가지다. 이에 반해 사기범 검거율은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수사당국은 신종사기 등 민생침해범죄 집중단속을 외치지만 진화하는 사기범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검수완박처럼 사법시스템이 뒷걸음질하는 사이 사기범 천국이 되었다고 진단하는 이도 있다. 디지털·인공지능 시대에 신종사기범이 폭증한 탓인지, 검거율이 떨어져 사기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인지, 수사가 제대로 안 돼서인지, 양형이 무른 탓인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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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22대 국회선 ‘입법 영향 분석 제도’ 도입하자 제21대 국회가 29일 막을 내렸다. 또 한 번의 국회 종료를 앞두고 언론과 시민단체 등은 앞다퉈 입법실적과 의정활동 등수를 매겼다. 하나같이 양적 평가다. 법안 발의 건수, 본회의 통과율, 미처리 건수, 상임위 출석률 등 양적 지표로 성적을 매긴다. 물론 지난 총선 공천 과정에서 의정활동을 공천 기준으로 삼았기에 새삼스러운 성적표는 아니다. 공천 기준도 양적 수치에 초점을 맞추고,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평가도 양적이니까 법안 발의 남발은 고쳐지지 않는다. 악순환이다. 의원입법 발의 건수는 계속해서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제18대 때 1만건을 넘기더니 제21대에서는 무려 2만6000건에 달한다. 역대 최고치다. 물론 사회가 변화하고 과학 기술 발전이 상상을 초월하니 필요한 규범이 늘어나고 개정해야 할 법률 조항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정부의 ‘청부 입법’ 관행이 많아졌고, 법안 발의 건수가 공천을 좌우할 의정활동 평가 항목에 포함되니까 그런 것이다. 하지만 거의 본회의의 문턱을 넘지 못했거나 자동 폐기되었다. 제21대 법안처리율은 40%를 밑돌아 역대 최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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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여소야대 정국, 여당이 살 길 눈 뜨면 보이는 게 숫자로 표시된 날짜고 시각이다. 신문을 펼치거나 TV를 켜면 물가 상승률, 실업률, 증시, 환율, 암 발병률, 교통사고 사망자 수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한 수치들이 넘쳐나고, 그 수치를 실감하기도 한다. 4·10 총선 후 언론에 많이 등장한 것도 수치다. 유권자의 표심을 분석한 결과가 지역구 지도, 도표와 수치로 정리되고 지역, 계층, 세대, 성별 등 요소별로 수치화되어 차이를 보여준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유권자 전체 표심의 합산 수치와 그 결과값이다. 50.5% 대 45.1%와 161석 대 90석. 크게 와닿는 수치다. 미세한 득표율 차이가 불러온 엄청난 결과다. 득표율 5.4%포인트 차이가 71석의 격차를 벌렸다는 분석이, 아무리 지역구 단위 선거지만, 전체 유권자의 표심을 읽을 수 있는 수치여서 도드라져 보인다. 투표한 유권자 거의 절반이 여당을 선택했으나 얻은 지역구 의석수는 절반은커녕 3분의 1을 겨우 넘겼다. 1등만 인정받는 소선거구제에서 접전지역의 석패가 많았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를 분석한 수치는 적은 표 차로 낙선한 후보자의 가슴을 또 한 번 울렸다. 가까스로 당선한 후보자에게 4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러주는 수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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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공정’한가 싸움뿐인 총선, ‘공약’ 경쟁이 사라졌다 민심은 참으로 무섭다. 한번 바람을 타니 파도가 되어 배를 뒤집어엎을 기세다. 기성 정치인과는 다를 것 같은 인물이 등장하면서 오르기 시작한 집권 여당의 기세가 총선을 코앞에 두고 흔들리고 있다. 총선 결과로 이어질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선 그렇다. 불과 몇 개월 전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를 보고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인정했다. 강물 같은 국민의 뜻을 거스르면 배가 가라앉게 된다는 군주민수(君舟民水)의 엄중함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민심에 반하는 인사권 행사로 유리하던 여론 지형에 변동이 생겼다. 채모 상병 사망사건 수사 과정에 당시 국방부 장관의 외압이 있었을 거란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거대 야당이 탄핵을 추진한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한 것이다. 이종섭 사태가 민심 흐름을 바꿔 놓았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인 공정과 상식, 법치와 정의는 어디로 갔느냐는 국민 대다수의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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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의 법과 사회 누굴 위한 공천이며 총선인가 4월 총선을 준비하는 양당을 보면 없는 게 많다. 혁신도 비전도 없다. 공천 기준도 있으나 마나다. 공천 줄 곳을 찾아 기웃거리고 낙천한 예비후보를 이삭줍기하는 정당을 보면 당 정체성도 없는 것 같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야 국민의 대표가 될 터인데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평소 ‘존경하는 국민’을 입에 달고 사는 분들인데 정작 공천 과정은 자기들끼리 자리다툼이다. 시스템 공천을 말하지만, 여전히 ‘친’ ‘찐’ ‘핵관’ 등 4년마다 되풀이되는 감별 접두사만 들려온다. 시스템은 공천 책임자의 기자 질문 답변용 용어로 거론될 뿐이다. 정당의 대표나 실세, 대통령과의 친소관계가 공천 기준으로 작동한 지 오래다. ‘공천 파동’은 공천 시즌만 되면 등장하는 사자성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