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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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는 방법 학부생 때였다.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친구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데 자전거가 내 뒤쪽으로 넘어지기 시작했다. ‘뒤통수부터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면 큰일인데’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였다. 이어서 파란 하늘이 보이고 엄마, 아빠, 친구에 대한 원망,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조치, 부족한 운동신경에 대한 한탄 등 온갖 생각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제법 극단적인 상상을 포함한 온갖 생각이 들었던 것치고는 민망하게도, 내 뒤통수는 안전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자전거 뒷바퀴 위에 앉아 있었다. 별로 다친 곳도 없어서 툴툴 털고 일어나 수업을 들으러 갔지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그 신기한 경험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왜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어째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30초는 그토록 길고, 재미있게 놀 때면 3시간도 순식간일까?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을 때처럼 위험한 순간에는 왜 시간이 느리게 느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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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과학 프로젝트와 사회의 컬래버레이션 뇌는 많은 사람에게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영역이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기도 하다. 뇌에 대한 기초과학 연구 성과와 뇌과학 연구를 위해 필요한 기술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증진할 뿐만 아니라 산업, 제도, 철학, 윤리 등 여러 측면에서 미래 사회를 바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연합, 중국, 캐나다, 호주, 한국, 일본에서 뇌과학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거나 운영하고 있다. ■ 과학 프로젝트 사례 대규모 뇌과학 프로젝트는 제도, 윤리, 철학, 과학 대중화, 기술,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사회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한다. 유럽의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를 통해 이 상호작용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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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한 사람의 태도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 기원전 440년경 중국에 살았던 양자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귀는 소리의 울림을 원한다. 귀에 소리를 들려주지 않으면 청각의 발달을 억누른다. 눈은 아름다움과 색깔을 보기를 원한다. 눈에 이것들을 보여주지 않으면 시각의 발달을 억누른다. (후략)” 읽고 놀랐다. 뇌과학적으로 완벽하게 타당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멀쩡한 눈과 귀를 가지고 태어나도 유아기에 충분한 시각 자극과 청각 자극을 경험하지 못하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게 된다. 경험을 통해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구조로 뇌 속 신경망이 다듬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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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목표를 이루는 ‘도파민 활용법’ 새해가 시작된 지 한 주가 지났다. 당신의 새해 목표는 안녕하신가? 혹시 ‘내 목표가 뭐였더라’, 가물가물하다면 굳이 목표를 이루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건 그 목표가 당신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뜻일 테니까. 하지만 당신에게 절실한 목표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벌써부터 포기하기엔 2018년이 너무 많이 남았다. ■ 먼 미래가 아닌, 지금을 위한 동기 일상에서 ‘동기’는 “수험생에게 동기를 부여한다”고 말할 때처럼 ‘오래 지속되는 동기’를 뜻한다. 반면 뇌과학에서 ‘동기’는 즉각적인 행동의 유발을 뜻한다. 신경조절물질인 도파민은 동기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도파민의 분비가 많을수록 신경 네트워크가 움직임을 일으키기 쉬운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파민 신경세포가 괴사하는 질병인 파킨슨병에 걸리면 움직임을 시작하기 어려워지고, 동작도 느려진다. 반면에 도파민이 과잉 분비되면 충동적이고 성급한 행동을 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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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인간만의 영역 우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라는 구분에 익숙하다. 하지만 뇌에서는 구조가 곧 기능이다. 신경세포는 나뭇가지처럼 생긴 구조물(수상돌기와 축색돌기)을 뻗어서 다른 신경세포와 신호를 주고받는데 이 구조물의 모양에 따라 신경세포의 활동 양상이 다르다. 신경세포 내부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가 세포막을 따라 이동하는 전기 신호인데, 신경세포의 모양에 따라 전기 신호가 전파되는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경세포의 종류에 따라 신경세포의 모양이 다르며, 신경세포의 모양이 변하면 신경세포의 활동 양상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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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뜻이 통하는 대화 “비행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적어보자. 연상된 단어는 당신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당신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해외여행, 휴가, 신난다” 등이 먼저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해외 출장이 잦은 사람이라면, “시차, 피곤하다, 울고 싶다” 등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른다. ■ 저마다 다른 뇌 속 사전 이처럼 단어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데 실험을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보트, 호수, 물, 시내”처럼 서로 관련된 단어들의 목록을 피험자에게 보여주고 기억하게 하는 실험을 생각해보자. 잠시 후 목록에 있던 단어와 없던 단어를 섞어서 보여주면서, 목록에 있던 단어만 고르게 한다. 그러면 목록에는 없었지만, 목록에 있었다고 잘못 기억하는 단어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예컨대, “물, 강, 컴퓨터”를 보여주면 목록에 있었던 “물”뿐만 아니라 “강”도 목록에 있었다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사람들에게 “강”은, “강”이 목록에 없었다고 생각한 사람들보다 “보트, 호수, 물, 시내”와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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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내 생각은 얼마나 ‘내’ 생각일까? 간단한 실험을 생각해보자. 무작위로 나눈 A와 B 두 그룹의 피험자들에게 뜻이 통하도록 단어의 순서를 바꾸게 한다. 이때 A그룹의 피험자들에게는 “하루, 날씨가, 추운”처럼 돈과 무관한 중립적인 어구를 주고, B그룹의 피험자들에게는 “일, 연봉이, 높은”처럼 월급에 관련된 어구를 준다. 피험자들이 이 과제를 마치고 나면, 아주 어려운 퍼즐을 주고 풀게 한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라고 하고 방을 나간다. 두 그룹 중 어느 그룹의 피험자들이 더 빨리, 더 많이 도움을 요청했을까? 중립적인 문장을 만들었던 A그룹의 피험자들은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평균 3분이 걸린 반면, ‘월급’에 관련된 문장을 만들었던 B그룹의 피험자들은 평균 5분30초가 걸렸다. ‘월급’에 대한 문장을 만드는 동안 ‘월급’을 떠올린 피험자들이 혼자 해결하려는 경향을 더 많이 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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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충동과 동기 사이 햇볕도 좋고 바람도 좋은 가을이다. 날씨 좋은 주말 오후가 되면 고양이처럼 나른해지기 일쑤다. 하지만 아름다운 가을도 주중의 사무실 안으로는 찾아오지 않는다. 일에 쫓겨서 동분서주하다 보면 나른하던 주말의 고양이는 사라지고 없다. 참 신기하지 않은가? 뇌는 하나뿐인데도 상황에 따라 이토록 다르게 동작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 신경조절물질 뇌과학을 깊이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도파민, 세로토닌, 아세틸콜린 같은 단어를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단어들은 ‘신경조절물질’의 이름이다. 신경조절물질은 신경세포들의 활동 패턴을 조절함으로써, 뇌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도 뇌가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한다. 신경조절물질은 뇌 속의 특정 영역에 있는 신경세포들에서 생성되어, 뇌 속의 여러 곳으로 보내진다. 예컨대 도파민은 중뇌에서 생성되어 전두엽과 변연계의 여러 영역으로 분비된다. 이처럼 뇌 속의 여러 곳으로 두루 분비되기 때문에 신경조절물질은 몸 안팎의 상황에 맞춰 뇌의 전반적인 활동 패턴을 조율하기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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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서로를 배우는 뇌과학과 인공지능 해마(hippocampus)는 구체적인 사건을 기억하는 데 중요한 뇌 부위다. 그런데 2007년에 해마가 손상된 환자들에게는 과거 기억의 회상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상상하기도 어렵다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예컨대 해마가 손상된 환자들에게 아름다운 열대 해변에 있다고 상상하고 상황을 묘사해 달라고 요청하면, 이들의 묘사는 빈약하고 일관되지 않았다. 과거 사건의 기억에 관련된 해마와 새로운 경험에 대한 상상을 연결짓다니 정말 참신한 논문이라고 생각했었다. ■ 뇌를 참고하는 인공지능 이 논문의 1저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무려 9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어떤 연구를 해온 사람이면 알파고 같은 걸 만들 수 있는지 찾아보다가 그 2007년 논문을 발견한 것이다. 그 인상 깊었던 뇌과학 논문의 1저자는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의 최고경영자 데미스 하사비스였다. 그뿐 아니라 하사비스는 요즘도 뇌과학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을 만드는 사람이 뇌 연구는 왜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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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성공하는 법보다 중요한 시행착오 요령 뭔가를 간절히 원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면 불안하고 답답해진다. “이럴 때 이렇게만 하면 됩니다”라고 누가 딱 정해주면 안심이 될 텐데, 딱 정해주기가 그렇게 힘든 모양이다. ‘성공하기 위한 ××가지 방법’ ‘인공지능 시대를 위한 자녀 교육’류의 글들이 많지만 글마다 뭘 하라고 하는지가 조금씩 다르고, 행동 지침들끼리 상충하기도 한다. 나에게 적용하기엔 어딘지 아귀가 맞지 않아서 시도하다 포기할 때도 많다. ■ 시킨 대로 했던 과거의 인공지능 인공지능의 발전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수십년 전에 인공지능을 개발하던 사람들은 컴퓨터에 어떨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면 사람의 지능을 흉내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래서 ‘이럴 때는 이렇게 해라, 저럴 때는 저렇게 해라’라고 세세하게 지시했다. 그런데 그 ‘이럴 때’가 애매한 경우가 현실에서는 너무 많았다. 이럴 때 이렇게 하면 안되는 예외들도 일일이 지시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다채로웠다. 결국, 그 시절의 인공지능은 개와 고양이를 구별하는 것처럼 쉬운 일도 좀처럼 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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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감정은 ‘하등’하지 않다 감정은 삶에 색채를 더한다. 즐거운 순간에는 발걸음이 날아갈 듯이 경쾌하고 주변이 반짝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신난다. 괴로울 때면 가슴이 답답하고 침울하다. 그런가 하면 압박감에 시달리는 일터에서는 감정이 거추장스럽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냉철한 이성에 따라 해야 할 일들을 척척 해내고 싶다. 이성에 비해 감정은 사회적으로 온당하지 못한 것, 변덕스럽고 못 미더운 것으로 여겨진다. 좋으나 싫으나 ‘감정’은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흥미진진한 소재다. 이러니 많은 뇌과학자들이 감정의 메커니즘을 알고 싶어 했다. 그런데 연구를 하자면 감정에 대한 기존의 정의가 수정되어야 했다. 일상에서 ‘감정’은 어떤 일에 대해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낌을 뜻하지만 과학은 실험하거나 관측할 수 있는 물리적인 영역만 다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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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불완전한 도덕 서비스나 물건을 사는데 현금을 내면 카드보다 싸게 해주겠다고 한다. 탈세가 의심되는데 우선 현금을 내고 귀찮아도 국세청에 신고할까? 아니면 손해 보더라도 카드를 내? 그냥 눈 딱 감고 현금 내고 말까? 어떤 기업의 악행에 대한 뉴스를 보고 노발대발한 직후였다. 마트에 갔는데 아까 욕하던 회사의 제품이 다른 제품들보다 싸다. 이 회사 제품을 살까, 말까? 도덕적 난관은 일상에서 흔하게 일어난다. 웬만큼 꼿꼿하지 않고서야 이런 작은 일에서조차 도덕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관행과 규정이 다를 때가 많기에 도덕을 지키기란 더욱 어렵다. 규정을 고수하려 하면 융통성 없고 능력 없다는 비난을 듣기 일쑤다. 뜻하지 않게 주변인들에게 손해와 불편을 끼치게 되는, 일견 비도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남들보다 한끝 더 반듯하게 살기도 이렇게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