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기술을 통한 신경과학 발전

송민령 공학박사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 신경기술을 통한 신경과학 발전

필자는 2017년부터 지금까지 경향신문 지면에 칼럼을 써왔다. 시의성이 있거나,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소재(예: 동물 사이의 공감 등)를 연구한 논문 중에서도 ‘네이처’나 ‘사이언스’급 저널에 실린 논문을 주로 소개해왔다. 하필이면 이들 저널에 실린 논문을 고른 데는 이유가 있다. 역사가 깊고 피인용지수가 높은 이 저널들의 엄격한 동료 평가제도와 책임감을 신뢰하고 있기도 하고, 이 저널들에 대한 일반인의 신뢰에 기대는 측면도 있었다. 지금이야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필자는 학위를 마치기도 전에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직위의 원로 연구자도 아닌 데다 드문 여성과학자로서 이야기하자니 공연히 위축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원래 건전한 과학 소통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이런 염려 때문에라도 과학 소통의 원칙을 지키려고 더 애써왔다. 저자 이름의 표기 방식, 전문용어의 영어 병기 등 흔치 않은 요구를 받아준 경향신문에 감사할 따름이다.

송민령 공학박사

송민령 공학박사

그러면서도 늘, 언제고 한번은 내 논문을 소개하고 싶었다. 증거를 겨루는 학문인 과학에 무슨 권위가 있겠냐마는, 그렇더라도 한번쯤은 ‘네이처’나 ‘사이언스’쯤 되는 저널에 논문을 내고 때를 가려 내 논문을 소개해보고 싶었다. 그래야 본인이 본인 연구를 소개하는 데서 생기는 이해충돌도 완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네이처’급 저널에 논문을 내지 못했고, 이번이 마지막 칼럼이다. 내 논문 대신 국내 연구자의 최근 논문을 소개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얼마 전 원종하 등이 빛으로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해 ‘뉴런’에 출간했다. 신경계가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신경세포와 신경교세포 사이에 신호가 잘 전달되어야 한다. 신경전달물질이니 신경조절물질이니 하는 것들이 이처럼 신호전달을 하는 물질이다. 이런 물질들은 대개 막으로 둘러싸인 소낭 안에 있다가 세포 안팎의 전압이 변하면 소낭이 세포막과 결합하고, 그러면서 소낭 안의 물질이 세포 밖으로 분비되는 방식으로 전달된다. 세포 사이의 신호전달이 신경활동에서 중요한 만큼, 신경계를 이해하려면 소낭의 분비를 정교하게 조절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원하는 종류의 세포에서 원하는 시간대에 소낭의 분비를 막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살핌으로써 신경전달물질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세포 안팎의 전압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소낭의 분비를 조절하려 했는데, 전압 조절이 세포에 원치 않은 부작용을 일으키는 탓에 어려움이 많았다. 신경교세포처럼 전압으로 신호하지 않는 세포의 분비를 조절하기에도 부적합했다. 전압 대신 약물을 사용하는 기술도 개발되었으나, 이 기술은 세포가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기까지 24시간 정도 걸려 실험에 제약이 많았다. 이번에 원정하 등이 개발한 기술은 세포 안팎의 전압 변화 없이 수분 만에 소낭의 분비를 억제하고 수십분 내에 세포를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어 다양한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

하필 이 논문을 소개한 데는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이 기초과학 연구 중 일부가 기술 개발에 쓰이고, 개발된 기술 중 일부가 산업화된다는 생각에 익숙하다. 옳은 측면도 있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과학 연구를 하려면 정밀한 측정이 필수적이고, 정밀한 측정 장비를 만들려면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리 연구에 필요한 입자가속기가 그 예다. 뇌과학 연구를 위해서도 신경활동을 정교하게 조절하고, 신경계의 방대한 활동을 기왕이면 많이,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기술(신경기술)이 필요하다. 이런 기술이 있으면 훨씬 더 다양한 뇌과학 실험을 할 수 있고, 이렇게 얻어진 기술과 지식은 뇌·컴퓨터 상호작용, 치료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자연과학 연구를 위한 기술 개발이 항상 산업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유전학과 뇌과학에서는 그런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의 거대 뇌과학 프로젝트는 신경기술을 통해 뇌 연구를 진흥하는 것을 표방하고 있다.

미국에서 개발되는 꿈같은 신경기술들과 특허 분쟁을 보며, 뇌과학자로서는 신났지만 한국인으로서는 배가 아팠다. 기초과학연구원과 카이스트가 이렇게 멋진 기술을 개발하고, 또 이 기술을 경향신문의 마지막 연재로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 지난 4년 반 동안, 4주마다 돌아오는 마감은 무거우면서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함께하신 분들 모두 건강하고 화목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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