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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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염치를 아는 대한민국의 대학이 되기를 나는 대학에서 나온 사람이다.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요란하게 대학을 그만둔 사람이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글을 쓰면서 강의하고 연구하던, 내 청춘을 갈아 넣은 그 공간에서 스스로 나왔다. ‘지방시’라는 줄임말로도 알려진 그 책이 나왔을 때, 대한민국에서 젊은 연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특히 시간강사의 처우가 어떠한가, 하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그때 언론은 “맥도날드에서 알바하는 젊은 교수님”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면서 나의 이야기를 다뤘다. 나는 실제로 대학에서 6~8학점의 강의를 하면서 지역의 맥도날드 직영점에서 월 60시간의 물류상하차(메인터넌스) 일을 했다. 단순히 용돈을 벌고자 하거나 관심을 받고자 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 서른두 살이었던 나는 대학에서 계속 강의하고 연구하고 싶었다.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는 내가 돌이 갓 지난 아이를 비롯한 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실존적인 방편이었다. 그것으로 나는 대학이 보장해 주지 않는 직장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고, 나의 노동을 사회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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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당신도 꿈이 없으신가요? 김동식 작가가 <회색인간>이라는 문제적인 소설집을 출간한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원래는 ‘복날은간다’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게시판에 단편소설을 쓰던 작가였다. 1년 반 동안 무려 300편 넘게 썼다. 그의 독자이자 팬이었던 나는 출판사에 그를 소개했고, 요청을 받아 단행본의 기획에도 참여했다. 그래서 요즘에도 나에게 “김동식 작가 강의 요청 좀 드리려고 하는데, 매니저 맞으시죠?” 하는 연락이 종종 온다. 나름대로 즐거운 오해다. 그는 요즘 중·고등학교에서 초대를 많이 받고 있다. 그의 책을 읽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토론을 하고 “다음 책은 어디 있나요?” 하고 교사와 부모에게 묻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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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북카페가 된 대형서점들 나는 서점에서 책을 살 때면 책의 상태를 잘 살핀다. 그러고는 일부러 적당히 더럽거나 표지가 구겨진 것을 고른다. 특히 내 책을 살 때면 더욱 그렇다. 굳이 내 돈 주고서 그런 하자가 있는 책을 사는 이유는, 그것들이 곧 출판사로 반품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 이름으로 된 몇 권의 책을 내고 그것이 어떻게 유통되는지를 막연하게나마 알게 되고부터는 더 이상 깨끗한 책을 찾지 않는다. 요즘의 대형서점은 거대한 북카페가 된 듯하다. 음료를 팔고, 테이블과 의자를 곳곳에 두고, 공부를 할 만한 공간까지 제공한다. 사람들은 편안한 의자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구매하지 않은 책을 읽는다. 아이들은 과자를 먹으며 그림책을 넘기고 수험생들은 아예 자리를 잡고 공부를 하기도 한다. 책이라는 물건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중고품이 되고 그 티가 나기 마련이다. 다시 판매할 수 없게 된 책들은 수거되어 모두 출판사로 반품되고, 모두 폐기 처리된다. 그러나 서점은 훼손된 책에 대한 비용을 일절 부담하지 않는다.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책임이 분명히 있을 텐데, 팔 수 없게 된 책을 출판사에 보내고 나면 그만이다. 어느 서점들은 책을 납품받는 즉시 고유의 도장을 찍는다. 판매할 때나 그렇게 하면 되는데 굳이 미리 낙인을 새겨두고는 팔리지 않는다며 반품해 버린다. 그러면 그 책은 찌그러진 차 펴 드립니다, 하는 것처럼 책에 새겨진 도장 지워 드립니다, 하는 업체에 보내진다. 그것을 사포로 갈아내는 미세한 작업을 직접 하는 출판사들도 있다. 그 상처 입은 책을 바라보는 편집자들은 어떤 심정이 될지, 나로서는 잘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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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유미야, 그래도 너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잖아 웹툰 <유미의 세포들>의 주인공 김유미는 작가 지망생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공모전에 당선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기대했던 문학상에서 다시 낙방하고 결국 그는 스스로에게 아픈 말을 꺼내고 만다. “너 재능 없다고, 인정? 어… 인정.” 그렇게 자신을 규정하고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유미도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는 “아이고 우리 딸 이제 정신차렸구나, 그래 해보고 싶은 거 한 번 해봤으면 됐다. 유미야, 지금 네 나이를 생각해 봐라, 남들은 지금 다 돈 모아서…”하고 문자를 보낸다. 유미는 남자친구에게도 만나면 알려줄 소식이 있다고 전화를 한다. 회사에 복직하겠다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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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살아보니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더라 카페에서 글을 쓰면서 대리운전 애플리케이션을 활성화시켜 둔다. 근처에서 콜이 나오면 대리운전을 하고, 그 지역의 24시간 카페 같은 곳을 찾아 다시 글을 쓴다. 매번 그러는 것은 아니고 마감 때문에 바쁘면 꺼두기도 한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옮겨 다니다 보면 커피값은 나오고 현금을 구경할 일도 생기고 하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써야 할 글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는데 무언가 거부할 수 없을 만한 콜이 나왔다. 출발지가 가깝고 목적지도 번화가이고 무엇보다도 단가가 좋았다. 그래서 노트북을 덮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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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30대·80년대생·60세 부모를 둔 ‘포스트 386’ 84년생 청년 김정은은 53년생 문재인을 만났고 46년생 트럼프를 만났다. 83년생인 나보다 한 살이 어린 그는, 좋든 싫든 한반도 현대사의 중심에 놓였다. 내가 그라면 많이 두렵고 외롭고, 막막할 것 같다. 그래서 정상회담에 나선 그의 발걸음, 표정, 단어 선택 같은 것을 조마조마한 심정이 되어 지켜보았다. 젊은 그가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역사적 개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냈다. 젊은 사람 치고는 잘하네, 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실정치에 나선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하지 못한 일들을 해내고 있다. 기성세대 정치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수를 놓으며 어떻게든 함께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간다.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분투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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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봄날의 동물원에 다녀왔다 누구에게나 추억이 담긴 소중한 공간이 있다. 무언가 아득하지만 일상을 버텨내게 해 주는 곳이 있다. 나에게는 그곳이 ‘동물원’이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손을 잡고 몇 번 다녀온 것이 전부이고 이제는 빛바랜 사진 몇 장으로만 남았지만, 그만큼 그때의 설렘이, 한가로운 평안함이, 나의 몸에 남았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지나며 무언가 힘든 시기가 찾아올 때마다 ‘이 일만 끝내면 혼자서라도 동물원에 다녀와야지, 잘 마른 잔디 위에 앉아서 김밥이나 샌드위치 같은 걸 먹으면서 하루 종일 기린을 바라보는 거야, 이 일만 끝내면…’ 하고 버텼다. 연구실에서 밤새 발제 준비를 하고 논문을 쓰면서 나는 어린 시절에 본 기린을 자꾸 상상했다. 그건 아마도 어린 시절의 한가로움을 추억하는 일이었겠다. <슬램덩크>라는 만화책을 보거나 EVE의 노래를 듣는 것도 위안이 되었지만, 동물원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나 논문을 완성하고도 정말로 동물원을 찾지는 않았다. 짧은 여유가 찾아오면 동물원은 연구실과 아프리카의 간극만큼이나 멀어졌고, 갈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 해야 할 일들은 다시 밀려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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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참담한, 자본의 애도 지난 3월28일, 경기도 남양주 이마트 도농(다산)점에서 무빙워크를 수리하던 직원이 기계에 몸이 끼여 사망했다. ‘스물한 살, 협력/하청업체 직원’, 이 프로필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2011년에는 이마트 탄현점에서 냉동기 점검 및 보수 작업을 하던 22세 협력업체 직원이, 2016년에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세 협력업체 직원이 세상을 떠났다. 젊은 사람의 죽음은 더욱 슬프고 안타깝게 다가온다. 어느 누구의 죽음이 그렇지 않겠느냐만, 아직 제대로 피어보지 못한 꽃의 떨어짐은 모두의 마음을 얼어붙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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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2018년 ‘신소설’이 나타났다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 <회색인간>은 출간 이후부터 계속 화제다. 처음에는 그가 가진 독특한 이력과 단행본이 출간되기까지의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그의 글이 가진 힘에 대해 모두가 이야기한다. 나는 이 책의 기획자로서 여러 서평을 챙겨 보고 있고 작가 역시 그렇다. 그런데 <회색인간>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김동식 작가는 얼마 전 나에게 “중간이 없네요” 하고 말했다. 그만큼 좋다는 사람과 싫다는 사람의 평이 극단적으로 갈린다. 어느 편집자는 그를 두고 “인간계의 신인작가가 아니다”라며 “일상을 일시정지하고 방에 처박혀서 읽고 또 읽다가, 밖으로 뛰쳐나와 ‘호외’를 돌리며 이 책을 사라, 외치고픈 소설이 나왔다”고 했지만, 어느 독자는 “소문이 자자한 책이라 어떤 책일까 궁금했는데 사실 종이가 아까울 정도”라고 했다. 이 두 서평은 온라인 블로그에 올라와 있어서 쉽게 검색해 볼 수 있다. 나는 김동식 작가에게 “작가님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도 극과 극으로 나뉠 거예요. 상처받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하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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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당신에게 소설이란 무엇인가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 <회색인간>이 ‘잘’되면서 그 책을 기획한 나도 기쁘고 뿌듯하다. 얼마 전에는 대형서점의 한국소설 베스트셀러 매대에 책이 진열된 것을 보고 괜히 눈물이 나려 했다. 김동식은 ‘복날은 간다’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게시판에 300편이 넘는 소설을 쓴 작가이고 나는 그의 독자였다. 가볍게 읽히면서도 자기 자신과 우리 사회를 향한 무거운 물음표를 던지는 그의 글에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빠져들었다. 어느 날 아는 출판사 대표에게 단편 몇 개를 보낸 것은, 그의 글을 책꽂이에 둘 수 있으면 참 행복하겠다, 하는 단순한 마음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팬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날 밤에 “아니, 이런 소설가가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습니까?” 하는 전화를 받았다. 세 권의 소설집으로 출간하고 김민섭씨가 그 기획을 맡아 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나는 받아들였다. 그렇게 <회색인간>과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가, 무엇보다도 김동식 작가가 세상으로 나왔다. 무명작가의 글을 소설집 세 권으로 출간한다는 것은 모험이었고 업계에서도 무리수가 아닌가, 하는 걱정과 호기심을 보냈다. 그러나 출판사 대표는 “글이 좋으니까 걱정 안 합니다”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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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이더리움을 샀다 며칠 전 ‘이더리움’이라는 가상화폐를 샀다. <사람은 왜 노동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쓰고 있는 요즘, 그 질문에 도저히 답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학생과 중·고등학생들까지 주로 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일해서 뭐해, 출근하는 것보다 비트코인 사면 돈을 더 버는데” 하는 내용의 글이 매일 올라온다. 해외에서 가상화폐를 사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팔고 15~30%의 이상한 환차익을 보는 원정대도 생겼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노동이 조롱받는, 그 가치에 대해 제대로 답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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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직설 여전한 당신들의 안녕을 바라며 ‘스마트안경점’은 망원우체국 사거리에 있는 적당한 규모의 안경점이다. 1991년부터 자리를 잡은 그곳에서 나뿐 아니라 성산동과 망원동의 아이들이 대부분 첫 안경을 맞췄다. 주인인 30대 남자는 언제나 친절했다. 시력검사를 하고, 테와 렌즈를 고르고, 시간이 걸려 안경이 완성되고 나면 그는 “자, 한 번 볼까” 하면서 손수 안경을 씌워주었다. 그때 볼의 약간 윗부분에 그의 손이 닿았다. 참 따뜻했다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 스무 살이 되어 나는 망원동(성산동)을 떠났다. 그러고는 학교 때문에, 군대 때문에, 직장 때문에, 그 무엇 때문에 계속 멀어져 있었다. 한동안 안경점에 갈 일도 별로 없었다. 이전처럼 안경을 자주 부러뜨리지도 않았고 시력이 크게 변할 일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 직장 근처에는 ‘안경나라’나 ‘다비치’ 같은, 점원을 몇 명씩 두고 영업하는 대형 안경점들이 있어서, 주로 거기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