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최신기사
-
직설 당신은 열심히 살 수 없게 되었다 카풀사업에 진출하려던 카카오의 계획은, 택시업계의 격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를 바라보는 나는 조금은 복잡한 심정인데 카풀서비스를 신청해 두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태우고 목적지까지 같이 가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혼자서 운전하는 일이 대부분인 나는 차량유지비를 절약하기 위해서라도 이 서비스에 꼭 가입하고 싶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멋진 일’이,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로 다가갔다. 택시기사들은 자신들의 노동이 누군가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데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졌다. 모든 개인이 자신의 차를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필연적으로 택시의 수요는 줄어든다. 지금은 택시기사와 카풀기사가(서비스 업체가) 노동의 주체를 두고 갈등을 빚지만, 나중에는 사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운전이라는 노동이 언젠가는 기계가 대리하는 노동으로 자리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
직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작년 12월 경향신문의 같은 지면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겠다고 나선 이유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생애 첫 해외여행을 기대하며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10만8300원에 구매했지만 아이의 병원 일정이 출국 하루 전으로 잡혀 가지 못하게 되었다. 여행사에서는 1만8000원을 환불해 주겠다고 했고 나는 그러느니 차라리 타인에게 양도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다. 1) 대한민국 남성일 것, 2) 그의 이름이 김민섭일 것, 3) 두 사람의 여권에 표기된 영어 이름의 철자가 모두 같을 것, 이었다. ‘섭’이라는 이름이 SEOP, SEOB, SUB, SUP 등 다양하게 쓰이는 것을 염두에 두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평범한 이름으로 태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페이스북의 개인 계정과 경향신문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드립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에 이른다. -
직설 착한 딸, 어진 어머니 나름 지역의 명문여고를 졸업한 아내에게 출신고의 교훈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을 일이 있었다. 그는 졸업한 지 오래되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착한 딸’과 ‘어진 어머니’라는 교훈을 기억해 냈다. ‘참된 일꾼’은 내가 찾아서 보여주자 곧 그것이 맞다고 답했다. 그 교훈이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일이 없는지 물어보니 “아니 별로…”라는 답이 돌아왔다.
-
직설 염치를 아는 대한민국의 대학이 되기를 나는 대학에서 나온 사람이다.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요란하게 대학을 그만둔 사람이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글을 쓰면서 강의하고 연구하던, 내 청춘을 갈아 넣은 그 공간에서 스스로 나왔다. ‘지방시’라는 줄임말로도 알려진 그 책이 나왔을 때, 대한민국에서 젊은 연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특히 시간강사의 처우가 어떠한가, 하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그때 언론은 “맥도날드에서 알바하는 젊은 교수님”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면서 나의 이야기를 다뤘다.
-
직설 당신도 꿈이 없으신가요? 김동식 작가가 <회색인간>이라는 문제적인 소설집을 출간한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원래는 ‘복날은간다’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게시판에 단편소설을 쓰던 작가였다. 1년 반 동안 무려 300편 넘게 썼다. 그의 독자이자 팬이었던 나는 출판사에 그를 소개했고, 요청을 받아 단행본의 기획에도 참여했다. 그래서 요즘에도 나에게 “김동식 작가 강의 요청 좀 드리려고 하는데, 매니저 맞으시죠?” 하는 연락이 종종 온다. 나름대로 즐거운 오해다. 그는 요즘 중·고등학교에서 초대를 많이 받고 있다. 그의 책을 읽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토론을 하고 “다음 책은 어디 있나요?” 하고 교사와 부모에게 묻는다고 한다.
-
직설 북카페가 된 대형서점들 나는 서점에서 책을 살 때면 책의 상태를 잘 살핀다. 그러고는 일부러 적당히 더럽거나 표지가 구겨진 것을 고른다. 특히 내 책을 살 때면 더욱 그렇다. 굳이 내 돈 주고서 그런 하자가 있는 책을 사는 이유는, 그것들이 곧 출판사로 반품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 이름으로 된 몇 권의 책을 내고 그것이 어떻게 유통되는지를 막연하게나마 알게 되고부터는 더 이상 깨끗한 책을 찾지 않는다.
-
직설 유미야, 그래도 너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잖아 웹툰 <유미의 세포들>의 주인공 김유미는 작가 지망생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공모전에 당선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기대했던 문학상에서 다시 낙방하고 결국 그는 스스로에게 아픈 말을 꺼내고 만다. “너 재능 없다고, 인정? 어… 인정.” 그렇게 자신을 규정하고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유미도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는 “아이고 우리 딸 이제 정신차렸구나, 그래 해보고 싶은 거 한 번 해봤으면 됐다. 유미야, 지금 네 나이를 생각해 봐라, 남들은 지금 다 돈 모아서…”하고 문자를 보낸다. 유미는 남자친구에게도 만나면 알려줄 소식이 있다고 전화를 한다. 회사에 복직하겠다는 말일 것이다.
-
직설 살아보니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더라 카페에서 글을 쓰면서 대리운전 애플리케이션을 활성화시켜 둔다. 근처에서 콜이 나오면 대리운전을 하고, 그 지역의 24시간 카페 같은 곳을 찾아 다시 글을 쓴다. 매번 그러는 것은 아니고 마감 때문에 바쁘면 꺼두기도 한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옮겨 다니다 보면 커피값은 나오고 현금을 구경할 일도 생기고 하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써야 할 글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는데 무언가 거부할 수 없을 만한 콜이 나왔다. 출발지가 가깝고 목적지도 번화가이고 무엇보다도 단가가 좋았다. 그래서 노트북을 덮고 일어났다.
-
직설 30대·80년대생·60세 부모를 둔 ‘포스트 386’ 84년생 청년 김정은은 53년생 문재인을 만났고 46년생 트럼프를 만났다. 83년생인 나보다 한 살이 어린 그는, 좋든 싫든 한반도 현대사의 중심에 놓였다. 내가 그라면 많이 두렵고 외롭고, 막막할 것 같다. 그래서 정상회담에 나선 그의 발걸음, 표정, 단어 선택 같은 것을 조마조마한 심정이 되어 지켜보았다. 젊은 그가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역사적 개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냈다. 젊은 사람 치고는 잘하네, 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실정치에 나선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하지 못한 일들을 해내고 있다. 기성세대 정치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수를 놓으며 어떻게든 함께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간다.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분투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
직설 봄날의 동물원에 다녀왔다 누구에게나 추억이 담긴 소중한 공간이 있다. 무언가 아득하지만 일상을 버텨내게 해 주는 곳이 있다. 나에게는 그곳이 ‘동물원’이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의 손을 잡고 몇 번 다녀온 것이 전부이고 이제는 빛바랜 사진 몇 장으로만 남았지만, 그만큼 그때의 설렘이, 한가로운 평안함이, 나의 몸에 남았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지나며 무언가 힘든 시기가 찾아올 때마다 ‘이 일만 끝내면 혼자서라도 동물원에 다녀와야지, 잘 마른 잔디 위에 앉아서 김밥이나 샌드위치 같은 걸 먹으면서 하루 종일 기린을 바라보는 거야, 이 일만 끝내면…’ 하고 버텼다. 연구실에서 밤새 발제 준비를 하고 논문을 쓰면서 나는 어린 시절에 본 기린을 자꾸 상상했다. 그건 아마도 어린 시절의 한가로움을 추억하는 일이었겠다. <슬램덩크>라는 만화책을 보거나 EVE의 노래를 듣는 것도 위안이 되었지만, 동물원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나 논문을 완성하고도 정말로 동물원을 찾지는 않았다. 짧은 여유가 찾아오면 동물원은 연구실과 아프리카의 간극만큼이나 멀어졌고, 갈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 해야 할 일들은 다시 밀려들어왔다.
-
직설 참담한, 자본의 애도 지난 3월28일, 경기도 남양주 이마트 도농(다산)점에서 무빙워크를 수리하던 직원이 기계에 몸이 끼여 사망했다. ‘스물한 살, 협력/하청업체 직원’, 이 프로필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2011년에는 이마트 탄현점에서 냉동기 점검 및 보수 작업을 하던 22세 협력업체 직원이, 2016년에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세 협력업체 직원이 세상을 떠났다.
-
직설 2018년 ‘신소설’이 나타났다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 <회색인간>은 출간 이후부터 계속 화제다. 처음에는 그가 가진 독특한 이력과 단행본이 출간되기까지의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그의 글이 가진 힘에 대해 모두가 이야기한다. 나는 이 책의 기획자로서 여러 서평을 챙겨 보고 있고 작가 역시 그렇다. 그런데 <회색인간>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김동식 작가는 얼마 전 나에게 “중간이 없네요” 하고 말했다. 그만큼 좋다는 사람과 싫다는 사람의 평이 극단적으로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