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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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아내가 제 말을 안 들어요 경기도의 모 평생교육원에서 12주차 글쓰기 강연을 하고 있다. 혼자서 다하는 것은 아니고 강백수라는 시인과 함께, 정확히는 ‘대중문화비평’이라는 이름으로 한다. 이런 건조한 자리에 누가 올까 싶었는데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모인다. 모두 걸어서 10분 거리의 동네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여러 이슈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글을 쓴다. 특히 ‘동네의 현안’에 대한 질문에는 저마다 멋진 제안들이 많아서 좋았다. 지난주에는 우리는 어떠한 글쓰기를 해야 할 것인가, 하고 이야기 나누었다. 그때 가장 활발하게 참여해 온 40대 남성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아내도 결혼하고 10년쯤 지나니까 제 말을 잘 안 들어요.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은데, 새로운 말이 필요할 것 같아요”하는 내용이었다. 난 그가 “아내가 제 말을 잘…”하고 말한 순간부터 “저, 잠시만요”하고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생겼으나 우선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그러는 동안 다른 수강생들이 그 표현에 무언가 불편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고 미안한 심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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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자소서 관리 총력전에 희미해진 배움의 이유 얼마 전 나의 강연을 들었다고 하는 분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나에게 자녀의 대입 자기소개서를 첨삭해 줄 수 있을지를 물었다. 사실 이러한 요청은 이전에도 한 번 받았고 가끔은 이보다 더욱 특별한 일도 일어난다. 나는 그에게 “죄송하지만 제가 요즘 글을 쓸 시간도 부족해서요, 그리고 제가 중등교육의 전문가도 아니니 그런 일을 잘하는 분들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나 그는 대치동이라든가 하는 데서 이미 정보를 많이 얻었고 첨삭도 받았지만, 그러면 너무 ‘관리’를 받은 티가 나니까 나에게 한 번 더 관리를 받고 싶었던 것이라고 했다. 내가 다시 한번 어렵겠다고 하자 그는 대한민국의 엄마로서 살아가는 것이 참 어렵다면서 작가님도 아이가 크면 느끼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이를 대학에 보낼 생각이 별로 없다고, 답하고 말았다. 이것은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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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글과 닮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최근에 큰 규모의 강연을 기획하면서 업체-작가 사이에서 한 달 넘게 서로의 일정과 내용을 조율한 일이 있다. 대학원생 조교 시절에 학회라든가 세미나라든가 하는 것들의 실무를 담당해 보기는 했지만 이러한 사회적 경험은 사실 처음이었다. 업체에서는 이런저런 요청을, 사실은 요구라고 할 만한 것을 계속해 왔다. 섭외한 작가들은 대개는 내가 알고 있거나, 글을 좋아하고 존경하거나, 이것을 핑계로 꼭 연락해 보고 싶었거나 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해 차마 연락을 하지 못하고 어떻게 해 보려다가 상황이 악화되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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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아이들을 볼모로 파업한다는 표현 7월3일부터 5일까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했다. 사실 학교는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정규직, 그중에서도 전문직이 되기를 기대하며 공교육의 현장에 보내지만, 아이들은 비정규직이 지키는 학교 정문을 지나, 그들에게 수업을 듣고, 그들이 만든 밥을 먹고, 다시 4대보험도 보장받지 못하는 보습학원의 강사들을 만나러 간다. 역설적으로 초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다시 대학원으로 올라갈수록 그 비정규직의 형태는 더욱 다양해진다. 아무리 간편한 노동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지만 학교가 그러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고 오히려 앞장서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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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손가락 작가’들이 온다 2017년 겨울에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 <회색인간> 출간에 관여하고서부터, 나를 기획자라고 불러주는 분들이 생겼다. 그렇게 거창하게 기획이라고까지 할 게 없는 일이어서 민망했다. 김동식 작가가 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집 출간 이후 출판사 대표는 나에게 단행본 매출의 2%를 기획인세로 지급하겠다는 계약서를 건네면서 “당신이 작가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요다출판사로 데려와 달라”고 했다. 작가의 인세 10%를 건드리지 않고 온전히 출판사의 이익을 나와 나누는 것이었다. 그렇게 출판사로부터 1년간 받은 기획인세는 내가 3년 동안 글을 써서 번 것보다도 더 많았다. 김동식이라는 작가와 그의 글은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고, 나도 덩달아 새로운 업을 하나 추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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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스승의날을 맞이했을 스승들에게 6살이 된 나의 아이는 유치원에 다닌다. 그는 인생의 봄날을 맞이한 것처럼 아무런 고민 없이 언제나 즐겁다. 그러나 그를 향한 부모의 걱정은 계속 많아져 간다. 5월이 되고서는 5월15일에 무엇을 들려서 보내야 하나, 하는 것이 추가되었다. ‘김영란법’ 때문에, 혹은 그 덕분에, 일정 금액 이하의 범위에서 선물을 골라야 한다고 한다. 나는 어느새 아이의 아빠이면서 그의 스승을 신경 써야 할 자리에 이르렀다. 아마 나의 부모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특히 내가 초등학생이던, 정확히는 국민학생이던 1990년대에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사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거의 모든 반의 칠판마다 ‘선생님 사랑해요’ 하는 글씨와 그림이 색분필로 채워졌고, 교탁에는 그들을 위한 선물이 쌓였다. 반장의 주도로 스승의 은혜가 하늘 같다는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감정이 격해져 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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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세월호가 만들어낸 세대 1983년생인 나는 작년에 나와는 10살 차이인 90년대생, 70년대생 두 사람과 독특한 인연으로 만났다. 그들과 적당히 친해지고서는 언젠가 조금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두 분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이 무엇이었나요?” 하고 물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그것이 ‘2002년 월드컵’이었다고 덧붙였다. 2002년에 나는 스무 살이었다. 태극기를 들고 신촌 거리를 뛰어다니면서 무척 행복했다. 사실 나에게 그 거리는 전경과 대학생이 아니면 서 있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최루탄 때문에 손수건을 항상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2002년에 아, 이렇게 거리에 함께 모여도 되는구나, 그리고 멋진 일을 만들어낼 수 있구나, 하는 감각을 얻었다. 내가 한 개인이자 청년으로서 대한민국의 몇몇 현대사의 순간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갈 수 있는 용기도 그때 내 몸에 새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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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착한 일이란 무엇인가?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아 항공권을 양도한 ‘김민섭씨 찾기 프로젝트’ 이후, 나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전보다는 조금 더 타인을 의식하면서 살게 됐다. 90%에 가까운 수수료를 지불하고 1만8000원을 환불받느니 차라리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자,라는 이유로 시작한 별것 아닌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학생 김민섭씨의 여행을 후원하겠다고 나섰다. 개인적인 일이 의도치 않게 사회적인 일로 확장되는 것을 보면서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사실 나에게 “환불받고 치킨이나 같이 시켜 먹지 뭐하는 거야”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로 인해 행복한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함께 행복해지고 싶었다. 항공권을 양도받은 누군가가 즐겁게 여행을 다녀온다면 그 과정을 지켜본 나 역시 가성비 좋은 ‘소확행’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여행을 후원한 여러 개인들 역시, 그로 인해 스스로 행복해지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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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한강과 연결된 불광천변을 걷다가, ‘래미안캐슬아파트’ 비슷한 이름을 가진 건물과 만났다. 언제 여기에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섰지, 하고 살펴보니까 아담한 오피스텔이었다. 별로 어울리지 않는 그 이름에 함께 걷던 친구와 잠시 웃었다. 하긴 래미안과 캐슬이 함께 붙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 곁의 빌라와 오피스텔들도 ‘○○거장메카’ ‘△△아트빌’ ‘□□리치하우스’ 등, 오히려 최근의 브랜드 아파트보다 더욱 화려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브랜드 아파트의 보급은 1999년 ‘삼성쉐르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성공을 거두며,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각 건설사가 저마다의 욕망을 가득 담은 각종 브랜드를 내놓았다. 가장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모 건설사의 CF 문구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것이었다. 공간에서 특별함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 특히 자신이 사는 곳의 이름과 자신의 품격을 동일시하는 풍조가 이때부터 널리 퍼져나갔다. 어느 브랜드 아파트에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한 개인과 그가 속한 가정이라는 소집단의 위상을 드러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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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당신은 열심히 살 수 없게 되었다 카풀사업에 진출하려던 카카오의 계획은, 택시업계의 격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를 바라보는 나는 조금은 복잡한 심정인데 카풀서비스를 신청해 두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태우고 목적지까지 같이 가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혼자서 운전하는 일이 대부분인 나는 차량유지비를 절약하기 위해서라도 이 서비스에 꼭 가입하고 싶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멋진 일’이,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로 다가갔다. 택시기사들은 자신들의 노동이 누군가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데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졌다. 모든 개인이 자신의 차를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필연적으로 택시의 수요는 줄어든다. 지금은 택시기사와 카풀기사가(서비스 업체가) 노동의 주체를 두고 갈등을 빚지만, 나중에는 사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운전이라는 노동이 언젠가는 기계가 대리하는 노동으로 자리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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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작년 12월 경향신문의 같은 지면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겠다고 나선 이유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생애 첫 해외여행을 기대하며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10만8300원에 구매했지만 아이의 병원 일정이 출국 하루 전으로 잡혀 가지 못하게 되었다. 여행사에서는 1만8000원을 환불해 주겠다고 했고 나는 그러느니 차라리 타인에게 양도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다. 1) 대한민국 남성일 것, 2) 그의 이름이 김민섭일 것, 3) 두 사람의 여권에 표기된 영어 이름의 철자가 모두 같을 것, 이었다. ‘섭’이라는 이름이 SEOP, SEOB, SUB, SUP 등 다양하게 쓰이는 것을 염두에 두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평범한 이름으로 태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페이스북의 개인 계정과 경향신문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드립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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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 착한 딸, 어진 어머니 나름 지역의 명문여고를 졸업한 아내에게 출신고의 교훈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을 일이 있었다. 그는 졸업한 지 오래되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착한 딸’과 ‘어진 어머니’라는 교훈을 기억해 냈다. ‘참된 일꾼’은 내가 찾아서 보여주자 곧 그것이 맞다고 답했다. 그 교훈이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일이 없는지 물어보니 “아니 별로…”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 아내가 졸업한 W여고의 교훈 3가지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고이든 남고이든 굳이 그 교훈에 ‘○○한 딸·아들’같이 특정 성별을 내세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