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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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우울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최근 올해 우울증 환자의 숫자가 이미 7월에 작년 숫자 대비 83%에 육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코로나19 시대 우울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오랜 기간 9월만 되면 이유 모를 우울감에 시달렸다. 명색이 상담학자인데, 난 그저 ‘가을 타는 남자’인가보다 여기면서 버텼다. 그러던 어느 해 9월, 한국을 방문 중인 미국의 저명한 가족치료사에게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상담 중 이런 계절성 우울증에 대해서 다루다가, 나는 질문 몇 마디에 그만 폭풍 같은 눈물을 토해냈다. 9월은 오래전 돌아가신 선친의 기일이 있는 달이다. 60세를 갓 넘긴 나이에 작고한 선친의 삶이 내 무의식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상담 중 나는 선친처럼 65세 이전에 사망할 시 매우 높은 보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내 생명보험을 설계해 놓은 사실을 재고하게 되었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나의 무의식은 짧고 굵게 사는 내 인생을 예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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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유치원에서 배웠던 게임의 법칙 인신 공격성 비방이 난무하는 대선 정국이 열렸다. 상담학자들은 인간의 공격성(aggression)을 그저 부정적인 속성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곤 한다. 공격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관계성’을 기본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과 어떤 관계성을 가지냐에 따라 공격성은 간혹 ‘폭력’으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본시 ‘생동력’으로 발산되는 인간의 기본 속성이란 것이다. 처음 미국 유학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의 백인 룸메이트는 내게 종종 “Be aggressive!”라는 조언을 하곤 했다. 자꾸 공격적이 되라니, 당시 나는 조언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룸메이트와 토론을 하곤 했는데, 그 조언은 수업시간엔 한마디도 없이 지내는 내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라며 던지던 말이었다. 그는 무리 가운데 시체처럼 지내는 내게 생동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나 보다. 수업동료들과 따뜻한 관계가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난 서서히 자기주장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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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겉보다 속’ 살피는 대통령 나왔으면 리더들은 대중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선거철만 되면 후보들은 민생 행보를 보여주는 일에 열을 올린다. 그들의 겉모습만 보고는 속마음까지 알 수는 없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실은 국가도 국가위상을 드러내기 위해 보여주는 일이 참 중요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존재감을 보여준 사건은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이었다. 큰 경기장과 고층빌딩이 생기고, 대형 쇼핑몰과 레저타운도 대거 생겨났다. 올림픽을 위해 외관을 단장하고 정비하는 데 들어간 공식경비만 2조4000억원, 사회간접자본까지 합하면 12조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수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속으로는 피멍이 든 약자들이 생겨났다. 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길거리 노점상과 산동네 철거민들은 생존권이 박탈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한 사회학자는 겉으로는 ‘올림-픽’이지만, 결국 ‘내림-픽’이 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올림픽의 진정한 이념은 평화와 화합이건만, 이런 내면의 아픔은 이내 묻혀버렸다.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개발도상국의 비전은 아무래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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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심리사법, 진정 국민을 위한 법이 되려면 지난 6월16일자 경향신문에 고려대 심리학부 최기홍 교수는 필자가 쓴 칼럼이 심리사법을 왜곡했다고 반박 기고문을 냈다. 한국심리학회가 제출한 연구가 법제화 논의 중이고 구체적 방향이 발표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오해에 근거한 기우라는 것이다. 최근 1600여명에 달하는 국내 상담분야 교수들이 반대 성명서를 냈던 것은 한국심리학회가 제출한 법률안 1안에 의거한 것이다. 여기에는 심리학 전공자만이 심리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명시했고, 자격제도가 아니라 의사나 간호사와 같은 면허제도로 운영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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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한 심리상담사로부터 온 편지 평안하신지요? 지난달 경향신문에 교수님이 쓰신 심리상담사의 자격과 소명에 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외람되지만 이에 관련하여 잠시 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2016년에 저는 평생 심리상담을 하리라고 결심했는데 벌써 5년이 지났네요. 지금까지 여러 내담자들을 만나며 살아왔는데 그들의 삶에 위로와 치유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매일 한답니다. 제가 이렇게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느끼게 된 계기는 미국 유학 중 겪은 일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미국 아이비리그 P대학에서 경제학 학부과정을 밟던 도중 친구 아리야, 웬디, 앨리스, 매디슨, 엘비스, 테오드릭, 아만다, 티모시가 순서대로 한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얼마나 혼자 답답하고 허망하고 괴로우면 자살을 했을까요. 죽는 순간엔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요. 저는 기숙사 방바닥에서 오열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제 9번째 뉴스는 제발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요. 하지만 제가 졸업하고 나서도 대학 캠퍼스 자살은 이어졌고, 심지어 대학 상담센터 소장도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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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심리상담사의 자격, 그리고 소명 “연세대 심리학과 권수영 교수 나오셨습니다.” 여러 해 전 한 라디오 방송에 패널로 출연한 나를 사회자는 이렇게 소개했다. 다른 방송에서도 이런 실수는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내가 신학대학원 소속 상담학 교수라고 정정하면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다. 일반인들은 인간의 마음과 상담에 대한 강의를 하는 교수라면 당연히 심리학 전공자라고 여길 만하다. 하지만 최초로 ‘심리상담’ 서비스를 미국에 소개한 칼 로저스는 심리학 신봉자가 아니었다. 농대에서 과학적 농법을 배워 농장경영자가 되고자 했던 그는 대학 2학년 때 목회자로 소명을 받았다고 확신하고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대학졸업 직후 그는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첫해 여름엔 한 작은 교회의 설교목사로 일했다. 유독 설교하는 일에 큰 부담을 느꼈던 그는 신학생 2학년 때 우연히 근처 컬럼비아대 사범대학에서 임상심리학 과목을 수강하게 된다. 로저스는 신학을 떠나 보다 과학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치료하는 전공으로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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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동성애가 차별받을 죄라면? “우리 마을 모든 교회들에 꽃꽂이를 제가 합니다. 꽃들에게 나 대신 예배 잘 드리라고 부탁하죠.” 토요일 오후 예배당에서 찬송을 흥얼거리던 중년의 눈엔 이내 눈물이 맺혔다. 꽃집 아저씨는 옆집에 사는 동성애자였다. 기독교인이었지만 커밍아웃 이후 한 번도 교회출석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다. “교인들은 우리 같은 사람 싫어하니까요.” 나는 나이 서른 살에 미국 감리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미국 메인주 한 시골 백인교회에 담임목사로 파송받았다. 서투른 내 영어 설교에도 교인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되어서 더 열심히 듣게 된다”며 내 목회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외국인인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조직의 리더 역할을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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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마음건강 정책’ 첫 단추가 중요하다 나는 전국의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입은 국민들을 위해 국립환경과학원이 위탁한 정신건강 모니터링 기관의 센터장을 맡고 있다. 여러 해 전부터 피해자들의 심리지원 사업을 해온 심리상담 분야 전문가들이 이 일을 수행하고 있다. 나는 신학대학원 소속 상담학 교수이고, 공동연구원으로 교육학과 소속 학교상담 교수, 성인 및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함께 센터를 운영한다. 여러 해 전부터 주로 신체의 질병만 호소하던 피해자들의 마음건강을 살피고자 시도하는 다학제 간 협업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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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별주부 신드롬’에 빠진 교육 몇 해 전 나는 한 강연에서 ‘별주부 신드롬’이란 신조어를 소개했다. <별주부전>의 자라는 자신의 간을 집에 두고 왔다는 토끼에게 감쪽같이 속고 만다. 우리도 같은 실수를 자주 범한다. ‘별주부 신드롬’이란 상대가 가슴(감정)은 안 갖고 다닌다고 믿는 현상이다. 누구나 학부모가 되면 별주부 신드롬에 빠지기 쉽다. 아이의 가슴은 멍이 들고 찢겨 너덜거려도 상관없다. 머리만 똑똑해지면 그만이다. 약 15년 전의 일이다. 국내 명문대 재학생들에게 묻는 설문조사 중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놀랍게도 그렇다고 대답한 이들이 70%를 넘었다. 소위 SKY 대학에 입학한 이들은 매일 행복에 겨워 살 것만 같은데 충격적인 결과였다. 그저 대학진학만 바라보고 달려왔건만, 정작 아이들의 가슴은 여전히 돌봄 사각지대다. 코로나19 여파가 휘감고 있는 2021년 대학생들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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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5년 전 원영이를 기억하십니까? 2021년 새해 벽두부터 16개월 입양아 정인이 사건으로 온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지난해 10월 벌어진 사건이었지만, 연초 한 방송을 통해 학대를 의심할 만한 정황을 입양기관과 경찰이 수차례 방치한 일들이 밝혀지면서 온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학대를 하면서도 입양가족의 일상을 담은 방송까지 출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가 난 누리꾼들은 인면수심 입양부모의 면면을 상세히 고발하기도 했다. 나는 5년 전 유사한 아동학대 사건이 데자뷔처럼 떠올라 더욱 가슴이 저몄다. 원영이 사건을 기억하는가? 2016년 2월, 7세 원영이도 부모의 극심한 학대로 사망했다. 살려달라는 외마디를 외면한 채 부모는 족발을 먹고 게임을 즐겼다. 계모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고 원영이를 팬티 바람으로 욕실에 가뒀고 매질하여 갈비뼈까지 부러뜨린 후, 청소용 락스를 들이부어 전신 화상을 입혔다. 심지어 부부는 시신을 열흘간 방치하다가 야산에 암매장하여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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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인간 실존과 불안에 대한 성찰 과거의 섣달그믐과는 전혀 다른 기분으로 우리는 2021년을 맞았다. 나는 지난해 2020년을 해외에서 맞았다. 공무로 미국 출장 중이었다. 출장에서 귀국하자마자 코로나19가 시작되었고, 출장 중 해외 대학들과 함께 논의했던 행사는 죄다 취소해야 했다. 해외여행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2021년도 1월 현재 지구촌 대부분이 외국여행객 입국금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결국 도착지 없이 비행기만 타다가 출발지로 회항하는 여행상품까지 나왔다. 예기치 않은 격리생활이 시작되면서 우리 모두의 행복지수를 떨어뜨리고 있다. 코로나19 심리지원단의 슬로건처럼 몸의 거리가 멀어져도 마음의 거리는 좁힐 수 있는 방법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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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비운의 고3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아들아!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2020년은 너에게 어쩌면 가장 중요한 해일지 모르는데, 역사책은 인류가 멈춰버린 해로 기록하겠구나. 미디어 보도를 통해 너희 세대를 ‘비운의 02년생’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접하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그저 네가 우리 대한민국이 실로 오랜만에 전 국민이 한마음이 되었던 성대한 축제의 해에 태어났다고만 생각했는데, 그해 11월 중국 광둥성에서 ‘사스(SARS)’가 발생했더구나. 2009년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신종플루’ 사태를 겪어야 했고, 중학교 입학연도인 2015년에는 ‘메르스(MERS)’가 또다시 유행하며 전국적인 휴교 사태가 발생했었지. 그러고 보니 너는 전염병 유행과 유난히 인연이 많았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