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배웠던 게임의 법칙

인신 공격성 비방이 난무하는 대선 정국이 열렸다. 상담학자들은 인간의 공격성(aggression)을 그저 부정적인 속성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곤 한다. 공격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관계성’을 기본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과 어떤 관계성을 가지냐에 따라 공격성은 간혹 ‘폭력’으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본시 ‘생동력’으로 발산되는 인간의 기본 속성이란 것이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처음 미국 유학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의 백인 룸메이트는 내게 종종 “Be aggressive!”라는 조언을 하곤 했다. 자꾸 공격적이 되라니, 당시 나는 조언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룸메이트와 토론을 하곤 했는데, 그 조언은 수업시간엔 한마디도 없이 지내는 내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라며 던지던 말이었다. 그는 무리 가운데 시체처럼 지내는 내게 생동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나 보다. 수업동료들과 따뜻한 관계가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난 서서히 자기주장을 할 수 있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공격성이 갓난아이의 기본 특성이라고 주장한다. 엄마 품에서 한 몸처럼 지내던 신생아의 관계성은 제로상태이다. 하지만 어느 날 자신과 분리된 엄마를 발견하게 되면, 힘껏 그 첫 번째 대상인 엄마의 유두를 깨문다. 다행히도 엄마는 유아의 공격성에 크게 놀라지 않는다. 대부분 엄마는 유아의 첫 번째 공격성을 배고프다는 유아의 첫 번째 자기주장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엄마와의 관계성 안에서 공격성은 살아 있음 그 자체다.

생동력으로 보이는 인간의 공격성이 자칫 폭력으로 내닫는 경우는 어떤 연유에서일까? 이 또한 관계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린아이가 자신의 공격성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일을 배우는 것은 바로 놀이에서다. 소꿉놀이에서부터 아이가 자기주장만 한다면 놀이는 진행되지 못한다. 누구나 놀이를 통해 친구들과의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익힌다.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게임이나 체육 경기를 통해 팀 구성원과의 관계성까지 익힐 수 있다. 모름지기 좋은 게임이란 끝나고 나면 상호작용이 주는 즐거움의 여운이 남아야 한다. 매일 팀을 다르게 구성해도 늘 재미가 있다. 그렇지만 관계성의 질이 떨어지면 게임은 변질되기 시작한다. 게임이 끝나면 상대편은 다시 친구를 할 수 있는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데, 갑자기 게임의 적이 영원한 적이 되면 낭패다.

여러 해 전 유아교육 분야는 새로운 실험적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소위 장난감 없는 유치원을 만드는 것인데, 이는 놀이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 친구로서의 상호작용이 배제된 장난감 쟁탈전 놀이를 최대한 배제하겠다는 의도였다. 오히려 아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창의적인 놀이를 만들어 가거나, 함께 공동의 장난감을 만들어 내도록 유도하고자 했다. 여기엔 놀이와 게임의 최종 지향점이 무조건 상대를 제압하는 데만 목적을 두거나 관계성의 질을 해치는 방향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2019년 국민인식 조사에서 응답자 58.8%가 정치인이 혐오 표현을 조장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최근 대선 정국에 만연한 편 가르기 문화를 다시금 접하게 된다. 네거티브를 중단하자고 선언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한 당의 경선에 출전하는 주자들만이 ‘원팀’인 것은 아니다. 결국 모든 대선 후보들이 국가발전을 함께 도모할 게임에 출전 중이기 때문이다. 이겨야 할 대상일 수 있지만, 관계성의 법칙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승자에게 ‘엄지 척’을 보여주는 스포츠 선수들에게 배우고, 매일 상대를 바꾸어도 게임이 더욱 즐거워지는 유치원생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국민들은 더 이상 서로를 죽이는 ‘폭력’의 정치가 아니라 공격적으로 보여도 살아 있는 ‘생동력’의 정치를 보고 싶다. 우리가 이미 유치원에서 배웠던 게임의 법칙은 결국 관계성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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