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다 속’ 살피는 대통령 나왔으면

리더들은 대중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선거철만 되면 후보들은 민생 행보를 보여주는 일에 열을 올린다. 그들의 겉모습만 보고는 속마음까지 알 수는 없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실은 국가도 국가위상을 드러내기 위해 보여주는 일이 참 중요했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존재감을 보여준 사건은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이었다. 큰 경기장과 고층빌딩이 생기고, 대형 쇼핑몰과 레저타운도 대거 생겨났다. 올림픽을 위해 외관을 단장하고 정비하는 데 들어간 공식경비만 2조4000억원, 사회간접자본까지 합하면 12조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수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속으로는 피멍이 든 약자들이 생겨났다. 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길거리 노점상과 산동네 철거민들은 생존권이 박탈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한 사회학자는 겉으로는 ‘올림-픽’이지만, 결국 ‘내림-픽’이 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올림픽의 진정한 이념은 평화와 화합이건만, 이런 내면의 아픔은 이내 묻혀버렸다.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개발도상국의 비전은 아무래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대한민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심지어 정부는 한국이 이제 G8 국가라 자랑하건만,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처참해진다. 자살률 세계 1위라는 통계는 이제 모두에게 무감각한 보도가 되어 버렸다. 그뿐인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사회적 유대감’이 가장 떨어지는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공동체의식을 자랑하던 우리가 계층 간 반목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정작 외롭고 힘들 때 의지할 사람이 없는 나라로 전락했다. 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세계 누구보다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능한 우리 국민들은 지금도 자신의 겉모습을 자랑하기 바쁘다. 자신의 모습과 꽤 다른 사진을 오랜 보정 작업 후 올리기도 하고, 맛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먹은 음식사진을 찍어 자랑하는 데 열을 낸다. 아직도 우리는 외관을 참으로 중요하게 여기고, 남에게 보이는 모습으로 자신의 속내를 감추려는 건 아닐까. 국민 10명 중 6~7명은 지인들의 SNS를 통해 사회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댓글 창은 사회적 유대감보다는 서로를 향한 적대감과 분노를 투사하는 장소로 변한 지 오래다.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사회적 유대는 더욱 무너지기 쉬워졌다. 바이러스는 만인에게 평등하다지만,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불평등이 더욱 확산되는 문제에 봉착했다. 몰려다닌다고 대유행의 주범처럼 몰린 2030세대는 억장이 무너진다. 기성세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따뜻하게 공감받으리라는 기대는 딴 나라, 아니 저세상 얘기다.

이제는 외관으로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상처를 보살피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최근 정부는 온 국민 마음건강을 위한 복지기본대책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이제는 국민 속마음을 살피려는 중요한 행보다. 취약계층일수록 질 높은 심리상담 서비스가 필요하건만, 이런 수혜는 꿈도 꿀 수 없다. 국민 삶 속에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보다 촘촘한 마음건강 정책을 꾸려야 한다. 불공정 구조 개선만 외치지 말고 무너져 내린 억장부터 보살피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지역 균형 발전 대책도 필요하고, 주택 공급과 일자리도 늘려야 한다. 하지만 외적으로 사회경제적 개혁을 추진하면서, 국민 마음속은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면 결국 반쪽짜리 리더다. 유세기간에만 보여주는 눈물은 이젠 식상하다. 청년이 희망마저 포기한다는 나라, 자살률 부동의 세계 1위인 나라, 그리고 사회적 유대감마저 최하위권인 나라가 되었다면, 이제 국민의 마음속을 애타는 마음으로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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