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사법, 진정 국민을 위한 법이 되려면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지난 6월16일자 경향신문에 고려대 심리학부 최기홍 교수는 필자가 쓴 칼럼이 심리사법을 왜곡했다고 반박 기고문을 냈다. 한국심리학회가 제출한 연구가 법제화 논의 중이고 구체적 방향이 발표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오해에 근거한 기우라는 것이다. 최근 1600여명에 달하는 국내 상담분야 교수들이 반대 성명서를 냈던 것은 한국심리학회가 제출한 법률안 1안에 의거한 것이다. 여기에는 심리학 전공자만이 심리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명시했고, 자격제도가 아니라 의사나 간호사와 같은 면허제도로 운영할 것을 제안했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상담분야 교수뿐 아니라 일선 종사자들로부터도 거센 반대기류를 접한 이후에야, 지난 4월28일 보건복지부에 제출된 수정 입법 보고서에서는 기존의 ‘심리학 전공’이란 표기가 ‘심리학 관련 학문’으로 수정되었다. 슬쩍 바꾼 이후 심리학 전공이 아니면 배제된다고 여기는 것이 오해라고 뒤늦게 발뺌하니 헛웃음이 난다. 지금이라도 심리사법(안)이 다른 관련 학문을 포괄한다는 것은 고무적인 변화다.

그런데 핵심은 심리학 ‘관련’ 학문에서 ‘인증된 교육과정 및 심리학 핵심역량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전히 심리학을 중심에 놓고 학제 간 대화의 문은 닫혀 있는 모양새다. 인증된 교육과정이라고 할 때 인증의 주체가 누구인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수정 입법 보고서에는 심리사 자격심의 위원회 위원 위촉과 관련하여 ‘한국심리학회장이 추천하는 심리학 교수’라는 기존의 문구가 삭제되었다. 하지만 애초에 심리학 전공자 중심으로 공인 심리사 모법(母法)을 만들겠다는 입법 취지까지 지우지는 못한 느낌이다.

국내엔 이미 심리사가 존재한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전문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임상심리사들이다. 하지만 심리검사나 평가를 주로 하는 임상심리사와 치유와 성장을 돕는 심리상담사는 기능이 다르다. 임상심리사나 정신건강전문의들은 많지만, 심리상담을 원하는 국민들이 안심하고 찾아갈 전문가를 찾기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에 드디어 정부가 심리상담 법제화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

한국상담학회와 같은 타 학회나 한국심리학회 분과학회인 한국상담심리학회마저 자격을 ‘심리학 혹은 상담학 관련 학문’으로 바꾸자 제안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미 고용노동부가 규정하고 있는 국가직무역량표준(NCS)에 보면 대분류(사회복지 및 종교) 안에 중분류로 ‘상담’이 자리잡고 있고, 소분류와 세분류에도 ‘심리상담’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주로 심리상담 서비스를 맡게 될 심리사를 굳이 ‘심리상담사’가 아닌 ‘심리사’라고 명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구태여 해외 사례를 언급하면서 ‘공인 심리사’를 고집하다보니 자꾸만 상담 관련 학문분야로부터 직역 이기주의라고 눈총을 받고 있는 것이다. 최 교수가 상상하는 것처럼 심리사법이 인본주의 심리학의 대가 칼 로저스가 박수치며 환영할 일이라면, 왜 로저스가 처음으로 주창한 ‘상담’이란 용어를 받아들이는 일에는 그토록 인색한 것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누가 뭐래도 로저스는 임상심리사의 길을 스스로 버리고 평생 상담사로 살았던 인물이다.

최 교수의 지적대로 국민 마음건강을 위한 심리상담사는 더 이상 무자격자나 전문성이 결여된 부적격자들이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는 모두가 전적으로 동의할 일이다. 그런데 최 교수의 글을 보면 국민을 위한 심리사법이 민간 상담 자격자들의 활동을 제한하지 않는다니 당최 앞뒤가 맞지 않아 당혹스럽다. 심리상담과 관련하여 정부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실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국민의 마음건강이 위협받도록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제라도 국내에서 상담전문가를 주도적으로 양성하고 있는 대학원과 주요 학회들이 진지하게 참여하고 치열하게 논의해서 우리 현실에 적합한 심리상담 법제화를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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