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심리상담사로부터 온 편지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평안하신지요? 지난달 경향신문에 교수님이 쓰신 심리상담사의 자격과 소명에 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외람되지만 이에 관련하여 잠시 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2016년에 저는 평생 심리상담을 하리라고 결심했는데 벌써 5년이 지났네요. 지금까지 여러 내담자들을 만나며 살아왔는데 그들의 삶에 위로와 치유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매일 한답니다. 제가 이렇게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느끼게 된 계기는 미국 유학 중 겪은 일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미국 아이비리그 P대학에서 경제학 학부과정을 밟던 도중 친구 아리야, 웬디, 앨리스, 매디슨, 엘비스, 테오드릭, 아만다, 티모시가 순서대로 한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얼마나 혼자 답답하고 허망하고 괴로우면 자살을 했을까요. 죽는 순간엔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요. 저는 기숙사 방바닥에서 오열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제 9번째 뉴스는 제발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요. 하지만 제가 졸업하고 나서도 대학 캠퍼스 자살은 이어졌고, 심지어 대학 상담센터 소장도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제 마음에 아주 강한 움직임을 느꼈죠. 나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용기를 냈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아픈 마음을 돌보는 전문가가 되고자 고국으로 돌아왔지요. 한국에 와서 보니 심리상담 분야 국가자격은 없었고, 고된 수련을 마친 심리상담 전문가들의 소득 수준도 형편없이 낮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결혼을 앞두고 있어 재정적인 불안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법적으로 의뢰인들을 돕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내담자들 내면의 아픔을 피부로 맞이하는 직업이 제게 꼭 맞는 옷이라고 여겨 다시 심리상담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전인격적 회복이 중요하다고 믿었기에 저는 신학대학원에서 상담학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년간 현장에서 다양한 내담자들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심리서비스법’ 1안에서는 합법적으로 심리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심리학’ 전공이 필수라는 내용이 포함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공인된 ‘심리사’ 외에 상담학, 교육학, 아동학, 가족학, 신학 등 타 학과 상담전공 졸업생들은 심리상담을 규제받는다고 하니 너무도 황당합니다. 허탈하여 무기력해지고 눈물까지 납니다. 여러 분야 대학원 과정에서 잘 훈련된 전문 인력들이 그간 만나왔던 내담자들을 만날 수 없고, 저 역시 심리상담 전문가로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구멍이 뚫린 듯 절망이 몰려왔습니다. 오가다 지하철에서도 울고 오늘은 내담자 앞에서도 울고 말았습니다.

국민들의 아프고 상처 난 마음을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심리사’들이 가장 잘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생각일까요? 제가 미국 대학 캠퍼스에서 만났던 심리학 전공생들은 대부분 자신을 생리학자나 뇌과학자처럼 여겼습니다. 미국 심리학 분야 대학원에는 이런 순수 심리학 분야에 매진하는 연구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오히려 미국에서 심리상담 분야는 아주 지엽적인 응용분야 중 하나였습니다.

교수님도 미국 유학생활을 하셨으니 너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미국에서처럼 국가의 관리하에 심리사(psychologist)뿐 아니라 심리상담사(counselor)들이 합법적으로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자격제도가 수립되도록 애써 주세요. 그러면 온 국민이 직접 경험해보고 심리사와 심리상담사 중 자신의 마음을 믿고 맡길 만한 전문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잖아요. 꼭 그렇게 되도록 교수님이 조금만 더 애써주세요. (*발송자의 동의를 얻어 편지의 일부를 여기에 그대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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