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택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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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폭력을 폭로함은 정의로운 복수이다 권력이 불순하고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면 폭력이 기승을 부린다. 우리 근현대사는 100년도 넘게 폭력이 지배했다. 일제강점기는 ‘헌병국가’였다. 백성들은 거대한 폭력에 무방비로 당했다. 1904년 대한제국을 찾은 스웨덴 기자 아손 그렙스트는 부산항에 내리자마자 일본인에게 두들겨 맞는 한국인들을 목격했다. 난쟁이처럼 작은 일본인이 회초리를 쥐고 한국인들을 쫓아다니며 때렸다. 이 광경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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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백기완 선생께서 묻고 있다 하늘이 큰일을 맡길 때에는 그 몸을 수고롭게 하거늘 필시 천명(天命)을 받음일 것이다. 붓을 들면 비와 바람이 숨을 죽였지만 길 위에 서야 했다. 길에서는 묘수와 재주가 통하지 않는다. 높고 낮음이 없다. 백기완 선생. 그는 평생을 세상의 가장 아픈 곳에, 서러운 곳에 있었다. 고문을 당해 육신이 으스러졌어도 포효했다. 시위 현장마다 선생의 백발이 깃발처럼 나부꼈다. 우리 시대 아주 익숙한 삽화였다. 많은 이들이 영웅적 서사로 선생의 투쟁을 감싸지만 거리의 투사는 지독하게 고독했을 것이다. 용기만이 공포와 유혹을 떨쳐낼 수 있지만 무작정 저항하는 맨 용기였다면 한시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진정한 용기는 스스로에게 비겁하지 않아야 했다. 날마다 자신의 둥지를 부수고 퇴로를 끊었다. 선생은 스스로를 다스렸기에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았다. 비로소 벼랑 끝에서 손을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불의에 맞서는 ‘장산곶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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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용균이 어머니, 우리는 작은 사람이 아닙니다 국회에서 단식투쟁을 했던 사람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시간이 무심히 흘러 의로운 싸움이 태연히 과거가 되어가고 있음이 무섭다. 문득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의 안부가 궁금하다. 단식의 후유증은 없는지, 마음은 잘 추스르고 있는지. 분노와 슬픔은 다스릴 수 있겠지만 무력감은 참으로 삭이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을 살리자는 중대재해처벌법에 우리 시대 비참한 죽음이 그대로 들어있으니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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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요새로 올라간 문재인 정권 마을 주민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고령의 중환자였다. 확진 판정을 받고도 병실이 없어 집에 머물렀다. 6일 동안 갇혀 있다가 머나먼 대전의 한 병원으로 실려갔다. 구멍 난 방역망에 낙담했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찾아온 구급차가 오래된 약속처럼 따뜻했다. 마을을 짓누르고 있던 공포도 구급차가 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분노가 치솟는다. 역병이 창궐하는데 정치는 무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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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서해 끝에 격렬비열도가 있다 주꾸미를 끌어올리면 고려청자가 딸려 나오는 태안 앞바다, 그곳에서 뱃길로 백리 남짓에 격렬비열도가 있다. 서쪽바다 끝 섬이다. 가거도보다 중국에 더 가깝다. 아득한 옛날에는 중국 산둥반도의 닭 울음소리가 이곳까지 건너왔다고 한다. 격렬하거나 비열한 섬이 아니다. 북, 동, 서쪽의 3개 섬과 이에 딸린 9개의 작은 섬들이 늘어서있는 열도(列島)이다. 그래서 격렬비열도(格列飛列島)는 이름처럼 ‘새들이 줄지어 날아갈 듯 떠있는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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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청와대에 누가 있어 도서정가제를 흔드나 1945년 가을, 33세 정진숙(1912~2008, 을유문화사 창립자)은 출판업을 해보자는 주위의 권유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이때 집안 어른인 정인보 선생(1892~1950)이 조언을 했다. “36년 동안 일본놈들에게 빼앗겼던 우리 조선의 문화유산, 언어, 문자, 이름까지 되찾으려면 36년이 다시 걸리네. 우리말, 우리글, 우리 민족의 혼을 되살리는 유일한 문화적인 사업이 출판인데 왜 망설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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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무명씨, 내 땅의 말로는 부를 수 없는 그대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가을에 모여 있다. 여름은 빗물에 떠다니다가 겨우 넝쿨장미에 수상한 문신 하나 남기고 사라졌다. 올가을은 유별나다. 노을은 차갑고 바람은 우리를 자꾸 외딴곳으로 끌고 간다. 행동반경이 좁아진 만큼 사색의 영역은 넓어졌는가. 가을이 들어찬 밤하늘에서 윤동주의 별을 헤아리다 문득 그의 다른 시를 떠올린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두운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윤동주 ‘또 다른 고향’) 갑자기 하늘에서 죽음이 내려온다. 별 속에서 죽은 자들이 내려와 잠자리를 헤집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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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저주의 굿판’ 뒤에는 누가 있는가 눈을 들어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사는 세상이 이런 곳인 줄 몰랐다. 온통 광기가 번득이고 살기(殺氣)가 자욱하다. 거대한 불길이 지구를 삼키고 있는데도 인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데도 곳곳에서 마스크를 벗자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류가 오랫동안 갈고닦아서 새천년으로 끌고 온 이성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시대의 현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은 공중에 산산이 흩어지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독설은 땅 위에서 펄떡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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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예초기 세상’에 김해영을 보다 예초기(刈草機) 굉음이 들려온다. 산과 들, 숲과 공원, 둑과 길가에 예초기 칼날이 번득인다. 한순간 풀밭은 사라지고 풀비린내가 진동한다. 태양 아래 빛깔과 자태를 뽐내던 야생초들은 흔적도 없다. 예초기가 돌아가면 햇살이 튕겨나가고 여름마저 피멍이 든다. 멱을 감고 풀밭에 누워 뭉게구름을 보던 시절은 동요에나 남아 있다. 가축이 아닌 공축(공장식 축산)의 시대에 풀은 동물의 유용한 먹이가 아니다. 야생은 위험해졌다. 야생초들은 사나워져서 풀밭에서는 더 이상 이야기와 노래가 흐르지 않는다. 사내들의 섬세한 낫질은 사라졌고 예초기 칼날만이 풀밭을 휘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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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장막을 거둬라, 미국이 보이도록 한국전쟁의 승자는 누구인가. 서로 이겼다고 하지만 정작 모두 패자였다. 이토록 잔인하게 국토와 국민들을 짓이긴 전쟁은 없었다. 한반도 전체가 무덤이었다. 상흔이 너무도 넓고 깊어서 직접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도 가슴에 파편이 박혀 있다. 전쟁이 멈춘 이 땅에는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가 나부꼈다. 모두 돌아갔지만 미군만은 남았다. 나라를 지켜준 미국이 그저 고마웠다. 포화가 멈춘 후 살펴보니 해방 공간에서 활약했던 군웅이 사라졌다. 민족의 내일을 설계했던 고담준론도 불타버렸다. 오로지 전장의 무용담만이 활개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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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김대중 그리고 임동원 김대중은 공직을 떠난 임동원을 주시했다. 임동원은 노태우 정권 때 북방외교의 산물인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의 주역이었다. 김대중이 보기에 임동원은 강직하면서도 섬세했다. 자신이 설립한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아태재단)의 사무총장에 앉히고 싶었다. 1994년이 저물 무렵 비서실장 정동채를 보내 의사를 타진했다. 그러나 임동원은 김대중이 그냥 싫었다. 빨갱이, 과격분자, 거짓말쟁이가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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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그러므로 나는 당신입니다 바이러스는 이기적 삶을 겨냥“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자비와 사랑만이인류를 지켜줄 불멸의 백신 마스크를 쓴 스님들이 흡사 묵언수행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부처님오신날의 사찰은 고요해서 더 깊었다. 불교 조계종단은 봉축행사를 미루고 ‘코로나19 극복과 치유를 위한 기도’ 정진에 돌입했다. 부처가 계셨다면 바이러스 침공에 어찌 대처하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