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택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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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남과 북은 다시 ‘괴뢰’가 될 것인가 1979년 늦봄, 3명의 이등병이 철책 너머 북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함께 교육을 받았던 신병들은 흩어지고 셋만 남아 GOP(일반전초)에 떨어졌다. GOP 부대의 주 임무는 휴전선 철책을 지키는 것이었다. 북쪽 산들은 무심하게 푸르렀고, 철책과 철책 사이는 고요했다. 흡사 시간이 멎은 듯했다(어떤 연유인지 몰라도 당시 남과 북은 확성기를 틀지 않았다). 그 고요가 기이하고 날카로웠다. 공포가 전신을 휘감았다. 이등병 셋은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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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알면서도 방관하는 악당들 대기는 신선하고 태양은 명랑하며 달은 살갑다. 성가신 벌레들도 아직은 나타나지 않았다. 유월의 멋진 날들이 펼쳐지고 있다. 한데 밤바람이 수상하다. 한기가 묻어있다. 거의 초가을 바람이다. 숲속의 꽃들을 만지고, 보리밭을 헤집고 나와서 채 열꽃이 가시지 않았을 텐데도 그 숨결이 차갑다. 이맘때의 바람에서는 비린 듯 달착지근한 풀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 바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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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아무도 ‘효’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꽃을 드렸습니다. 불효자의 꽃을 받고도 어머니는 그저 웃습니다. 어머니는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자식은 머리로 이해할 뿐 가슴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시대가 어머니들을 버렸습니다. 아버지들은 먼저 세상을 뜨고, 홀로 남은 어머니들은 쫓겨다닙니다. 시대의 난민들입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지아비 무덤과 고향을 지키다가 결국 새끼들을 따라나서야 합니다. 어머니는 자식 집 작은 방에 갇혀있습니다. 밤마다 생각은 천리 길을 달려갈 것입니다. 평생을 살아온 마을, 앉으나 서나 정겨운 이웃, 손때 묻어 더 번쩍거렸던 장독대, 눈물마저 거름이 됐던 텃밭. 하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되어 달을 보며 눈물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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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중도주의, 정하룡의 마지막 당부 선거판을 지켜보다 비상한 책을 접했다. 동백림 사건의 사형수가 쓴 <정하룡 회고록-나의 20세기>이다. 사적인 회고록이 아니다. 변혁의 시기마다 느꼈던 사색의 산물이며 근현대사에 대한 관조이다. 밑줄을 치면서 다시 읽었다. 통일의 꿈이 멀어지고, 민생이 피폐해지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시점이라 그랬을까. 모진 풍파를 겪었지만 논리가 가지런하고 가식 없는 문장은 고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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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박용진을 위하여 박용진 의원이 끝내 낙천했다. 민주당의 ‘비명횡사’라는 기이한 공천 학살극이 어림 끝났나보다. 김부겸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이를 시인하고 사과했다. “투명성, 공정성, 국민 눈높이라는 공천 원칙이 잘 지켜졌는가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께서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여론의 뭇매에도 ‘공천 혁명’이라 항변했던 이재명 대표와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도 이제 그만 솔직해져야 한다. 유감이라도 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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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어떤 설렘도 없이 총선이 다가온다 여의도 상공에 다시 위성정당이 떠오르고 있다. 거대 양당의 탐욕이 쏘아 올렸다. 그 위성의 불빛을 좇아 정치인들이 몰려들 것이다. 사다리를 내려달라고 발을 구르며 읍소할 것이다. 흡사 휴거를 기다리는 종교집단처럼 한바탕 굿판이 벌어질 것이다. 4년 전에도 그랬다. 총선을 앞둔 봄날 이런 글을 썼다. “분노도 사치다. 이처럼 타락한 선거가 있었는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의석을 삼키려는 거대 양당의 아귀다툼이 가관이다. 이제 막 투표용지를 받아드는 학생들에게 정치권은 무얼 보여주고 있는가.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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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김대중 100년 김대중 대통령의 생가를 둘러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간척지에 있는 생가는 한눈에도 배산임수의 명당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그의 삶이 바다를 메워 길을 낼 만큼 험했을까. 2006년 가을 하의도 생가를 다녀왔다. 김대중은 필자에게 둘러본 소감을 물었다. “대통령께서는 혼자만의 힘으로, 혼신의 노력으로 오늘에 이른 것 같습니다.” 김대중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 미소엔 자부심이 아닌 다른 것이 서려있었다. 자신의 삶을 연민하고 있었다. 파란만장한 삶에 슬픔이 고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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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김대중·노무현과 멀어지는 민주당 한 해가 저문다. 우리는 마지막 달에 몰려 있다. 어느 해보다 스산하다. 들려오는 소식들은 불길하고, 풍문은 흉측하다. 어둠에 묻을 수 없는 사건들이 무수히 일어났다. 그럼에도 지그시 살아가는 착한 사람들. 언 손을 비비며 푸른 신호등을 기다리는 무명씨들. 다가가 말을 걸고 싶지만 건넬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우리의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아질 것인가. 한반도에는 다시 어둠이 몰려오는데, 지금 한국인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이 절망의 뿌리는 단연 정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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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지휘자 김성진의 ‘경계 허물기’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경계에 서 있는 음악인이 있다. 국악지휘자 김성진이다. 서양음악 전공자로는 최초로 국악관현악단장, 예술감독을 맡았다. 그는 ‘최초’에 늘 부대꼈고, 그의 국악인생은 그 최초를 지우는 것이었다. 나라의 소리를 책임지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에 올랐음에도 뒤로 숨던 그가 책을 펴냈다. 바로 <경계에 서>이다. 제목처럼 서양음악을 전공하고 국악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국악인이 되기까지엔 난관이 많았다. “양악과 국악, 크로스오버의 세계에서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국악의 명인들에게 문외한 이방인이었고, 양악을 하는 이들에게는 소통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저 너머의 괴짜 외계인이었다.”(<경계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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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정권 심판은 이제 시작이다 불통·독선·오만의 정권이 제대로 심판을 받았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예상대로’ 여당의 참패였다. 화난 민심은 무서웠다. 정치권은 이미 승패를 감지했겠지만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결과가 참담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누군가는 알면서도 모른 체했을 것이다). 크게 놀랐을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민심을 판독조차 하지 않았(못했)다. 민심을 내세워 민심을 팽개쳤다. 인사부터 민심과는 동떨어졌다. 이름에 때가 덕지덕지 묻은 인물들을 국회 청문회장에 들이밀었다. 질타와 항변이 뒤엉켜 청문회장은 난장판이었다. 처음이라서, 집권 초기라서 실수려니 했지만 갈수록 가관이다. 한번 낙점하면 청문회장에서 만신창이가 돼도 임명장을 주고 등을 두드렸다. 그러다보니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 도중에 도망치는 상상도 못할 사태까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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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일본 침몰 이 순간에도 일본 후쿠시마에서는 핵 오염수가 바다로 쏟아지고 있다. 일본이라는 섬을 떠받치고 있는 생명의 바다에 방사능을 투척하고 있다. 오염수 위에 떠있는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지구촌 어느 나라도 엄두를 내지 못할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일본 열도는 조용하다. 반생명·반윤리·반문명의 업보를 어찌 견딜 것인가. 세계인의 탄식과 원망의 무게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일본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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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새만금의 여름은 알고 있다 “새만금 도로 옆에 팔각정이 하나 있어. 거기서 보면 잼버리 야영장이 한눈에 보이지. 부안 갈 때면 내려서 살펴보았어. 수만명이 온다니 그런 장관이 어디 있겠는가. 근데 볼 때마다 어딘가 허술하고 썰렁해. 도대체 활기가 없다 이 말이야. 나만 그런 게 아니야.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했지. 이래서 될까, 이래도 괜찮을까. 늦은 봄이 돼서야 건물 한 동을 짓더라고. 하여튼 뭔가 불안했어. 또 이상한 것은 수만명이 온다는 국제행사가 코앞인데 언론들이 조용하더라고. 다른 국제행사는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는가. 시시콜콜 들춰내고 부풀리고. 그런데 새만금은 달랐어. 결국 이 지경이 된 거야. 아무도 챙기지 않았지. 그 누구도 와보지 않은 거야. 동네잔치도 이렇게는 안 해. 다들 마음은 다른 데 있었어. 도대체 이게 뭣인가. 화나고 창피해 죽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