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언론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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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우리는 지금 위험하다 불안하고 불길하다. 대통령이 외신과의 회견에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 중국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대만 문제를 언급했다. 당장 러시아와 중국이 벌떡 일어났다. 러시아 외교부는 “무기 제공은 적대행위”라 했고, 중국은 친강 외교부장이 “대만 문제로 불장난하면 불에 타죽을 것”이라는 극언을 뿜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겁박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가 무능하고 굴욕적이라며 흥분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공포가 밀려오고 있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의 동강 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전쟁을 지원한다면 국제사회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 한국이 보유하고 있던 포탄이 우크라이나 전선을 날아다니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 포탄이 날아가 인명을 해친다면 ‘살인’을 수출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머잖아 그런 일들이 벌어질 것 같다. 미 정보기관의 도청 문건에서 보듯이 미국은 한국에 30만발 이상의 155㎜ 포탄 지원을 요구했고, 윤석열 정부는 이에 대해 우회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선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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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예수 장사꾼과 정치 거간꾼 다음은 자신을 목사라 칭하는 전광훈이 묻고 집권당 수석최고위원 김재원이 답한 것이다. “김기현 장로를 밀었는데, 세상에 헌법에 5·18정신을 넣겠다(고 한다). 그렇다고 전라도 표가 나올 줄 아느냐. 전라도는 영원히 10프로(이다).” “그건 불가능하다. 저도 반대다.” “(그렇다면) 전라도에 립서비스하려고 한 것이냐.” “표 얻으려면 조상 묘도 파는 게 정치인 아니냐.” “내가 (국회의원) 200석을 만들어주면 당이 뭐 해줄 거냐.” “최고위에 가서 보고하고 목사님이 원하는 걸 관철시키겠다.” 시간이 지났지만 악취가 가시지 않는다. 분노가 솟구치고 서글픔이 밀려든다. 인간에 대한 아주 작은 예의라도 있다면 저런 말을 뱉을 수 있을 것인가. 종교도 정치도 결국 사람을 사람으로 섬기자는 것일진대 저들은 무엇 때문에 목사가 되고 정치인이 되었는가. 5·18민주화운동과 전라도는 저들에게 무엇인가. 하늘도 노할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 앞에서 박수를 치는 사람들은 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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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무당과 함께 사라질 것인가 고종 연간인 임오년(1882년) 6월1일, 고삐 풀린 말이 창덕궁으로 달려들었다. 궁인들이 놀라 뒤쫓으니 말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마입궁중(馬入宮中). 예부터 말이 입궁하면 나라에 변고가 있다고 했다. 불길했다. 마부는 귀양을 가고 말 주인은 사직소를 올렸다. 하지만 그렇게 끝낼 일은 아니었다. 어전회의를 열어 이궁에 의견을 모았다. 왕이 명했다. “경복궁으로 이어(移御)해야 하니, 날짜는 이달 그믐 이전으로 택하라.”(조선왕조실록) 그리고 28일 이궁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화는 그보다 빨리 닥쳤다. 임오군란이 발발했고, 군병들은 자신들을 천대한 민씨 일파를 찾아내 도륙했다. 6월9일 병사들이 궐 안으로 난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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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어른 김장하’가 있어 우린 우리가 되었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봤다. 설 연휴의 세상은 얼어붙었지만 화면은 따스했다. 남녘에서 올라온 봄바람 같았다. 김장하 선생(79)은 경남 사천과 진주에서 60년 동안 한약방을 운영하여 큰돈을 벌었다. 그 돈을 아낌없이 나누었다. 우선 수없이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고등학교를 세우고 학교가 번듯하게 솟아오르자 국가에 헌납했다. 시민주로 출범한 지역신문을 매달 지원했다. 경상국립대와 여러 문화예술단체를 후원했다. 환경운동연합, 가정법률상담소 등 시민사회단체를 도왔다. 신분 타파와 차별 철폐를 외쳤던 형평운동기념사업회는 직접 회장을 맡았다. 의미 있다고 여기는 모임에는 조용히 찾아가 뒷좌석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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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황희찬 어깨에 ‘생명평화’가 피었듯이 세밑이 얼어붙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주머니가 풀린 것일까. 지구가 탈이 난 게 분명하다. 지난 한 해 기후재앙으로 무수한 생명체들이 절멸했다. 종족은 사라지고, 단 한 마리만 남은 새의 마지막 울음을 들어본 적 있는가. 고독과 두려움에 몸서리쳤을, 깃털이 빠진 최후의 둥지를 본 적이 있는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다시 한 해를 흘려보내야 한다. 추억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건만 시간의 강물은 차갑기만 하다. 우리는 어디쯤에 있는 것인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버린 것은 무엇인가. 지난해를 펼쳐보고 이를 다시 뭉치면 작고 남루하다. 그럼에도 초록별에서 함께 새해를 맞는 이웃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저 언 땅에 생명들이 있기에, 하늘 향해 팔 벌린 겨울나무가 있기에 봄은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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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당신들은 왜 정치를 하는가” 12월에 들어섰다. 달력 마지막 장에는 쓸쓸함이 묻어있다. 지난 한 해의 아쉬움이 스며있다. 딱히 잡히는 것은 없고 마음만 바쁘다. 돌아보면 지구촌도, 한국도 다사다난했다. 지구의 숨은 더 가빠지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지금도 전쟁의 포연이 인류의 양심을 뒤덮고 있다. 인간이 그토록 오랫동안 갈고닦았던 이성도 실은 별것이 아니었다. 이 땅에서도 불이 산을, 물이 마을을 삼키고 할퀴었다. 고운 가을밤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연말 모임이 잦다. 역병 창궐 이후 거의 3년 만에 날아온 안내 문구는 사뭇 들떠있다. 마침내, 드디어 얼굴을 보게 되었다며 살아있음을 확인하자고 한다. 동시대에 지상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함께 햇살을 쬐는 사람, 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술잔을 부딪치면 세상이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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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더는 악업을 짓지 말라, 당장 물러가라 일요일 아침, 아내의 비명에 잠이 깼다. “어떡해, 어떡해.” 잠자고 있는 동안 서울 이태원에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 참사가 일어났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자니 숨이 막혔다. 아침을 먹다가 아내가 울었다. 같은 시간에 이 땅의 어머니들이, 젊은이들이, 산천초목이 울었을 것이다. “어떡해, 어떡해….” 걸었다. 바람이 없어도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있었다. 조붓한 산길은 낙엽에 덮여 있었다. 햇살이 붉은 잎에 군색하게 붙어 있었다. 이따금 마주치는 사람도 고개를 숙인 채 지나갔다. 나무도 햇살도 사람도 말이 없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건만 죽은 자들이 나타났다. 그래, 그들은 어제 보았고 내일도 나타나는 우리 젊은이들 얼굴이다. 휴대폰을 꺼내 보니 누군가 전화를 했다. 윤제림 시인이었다. “전화했었네.” “네. 갑자기 형 생각이 나서요. 지난번 칼럼에 용산역 압사 썼잖아요. 형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때랑은 다르겠지만.” 시인의 목소리가 낮고 극히 건조해서 다른 사람 같았다. 대답할 말을 찾다가 엉뚱한 답을 했다. “그냥 걷고 있어.” “다 무너졌어요. 이거 공업이에요. 불교에서 말하는 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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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가리키는 곳 정지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진솔하다. 문체도 담백하다. 가끔 발랄하지만 이내 단정하다. 그래서 비린내도 쉰내도 나지 않는다. 빨치산 출신 아버지가 죽고 딸이 상을 치르는 3일간의 이야기이다. 아버지와 인연을 맺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조문을 왔다. 그들과 얽히고설킨 인연은 무겁고 무섭다. 빨치산 아버지 때문에 집안이 몰락하고, 누구는 죽고 또 누구는 출세 길이 막혔다. 딸은 빨치산이란 족쇄를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작가는 그런 사연들을 하나씩 풀어놓았다. 어떤 것은 발가벗기고 어떤 것은 기웠다. 내상(內傷)이 깊었지만 신음소리를 내지 않는다. 천연덕스럽다. 가슴이 먹먹한데도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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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당신의 지식은 건강하신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용산에 모여 있다. 나라가 온통 어수선하다. 아침에 내놓은 정책이 해가 저물기 전에 저자에서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사람마다 말이 다르고, 말을 주워 담는 사람마저도 다르다. 해괴한 소문들이 자체의 기이한 생명력으로 떠돌아다닌다.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하게 지나고 있다. 그러자 100일이 안 된 윤석열 정권을 향해 저주와 조롱이 쏟아지고 있다. “하루속히 정리돼야 할 정권” “준비가 시급하다”는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퇴진운동을 선동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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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이름도 병이 든다 이름에서 악취가 풍겨온다. 이름이 가벼워 둥둥 떠다닌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그들은 기어이 나타난다. 이어령 선생의 말처럼 “책이 페이스북을 못 이기고 철학이 블로그를 못 이기고 클래식 음악이 트로트를 못 이기는 시대”(<이어령의 마지막 수업>)라서 그럴까. 아님 세태를 감지하는 내 안의 감각이 고장 난 것일까. 이름은 각기 달라도 그 이름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가 비슷하다. 매체마다 연일 새 소식을 쏟아내지만 우리네 아침은 진부하기만 하다. 집권여당 대표가 당원권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어도, 여권이 혼돈에 빠져들어 정치판이 요동칠 것이라 전망해도 민심은 차분하다. 그저 그런 사람들이 일으키는 먼지가 자욱할 뿐이다. 개혁을 앞세운 야당의 권력다툼도 마찬가지다. 경선이 어디로 흘러가든, 그래서 누가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되든 감동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권력다툼에 직간접으로 등장하는 이름들은 이미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익숙한 이름들이 스스로의 이름에 금칠을 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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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풀뿌리민주주의 뿌리가 썩고 있다 동 대표로 뽑혀 1년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지냈다. 새로 생긴 아파트단지라서 민원이 많았다. 마을 코앞에 야적장이 들어선다 하고, 아파트 옆길에는 화물차량들이 질주하고, 중앙차로 시설은 개통을 미룬 채 방치되어 있고…. 현안을 받아드니 무엇 하나 만만한 게 없었다. 사안마다 군상들의 이해가 엉켜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면, 가면 속의 탐욕과 위선이 보였다. 낙담했지만 그래서 세상물정에 눈을 뜨기도 했다. 크고 작은 일들로 주민들과 관청을 찾아갔다. 공무원들은 민원인을 정중하게 맞았지만 일처리는 도식적이었다. 말투도 메말라 있었다. 민원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공무원의 나라’ 한국에서 공무원들의 ‘민원 굴리기’는 달인 수준이었다. 우리는 차츰 지쳐갔다. 고양시의회를 찾아가도 의원들의 반응은 그저 뜨뜻미지근했다. 무력감이 밀려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분노가 차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건장한 체구의 시의원을 만났다. 놀랍게도 그는 다른 시의원들과는 사뭇 달랐다. 우선 답변이 상투적이지 않았고 체구와 달리 섬세했다. 현안마다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문제점도 짚어냈다. 명쾌하고 진지한 설명에 설복될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이 환해졌고 나중에는 웃음이 나왔다. 바로 박한기 시의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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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네 죽음을 기억하라 평론가 이어령, 변호사 한승헌, 소설가 이외수. 그들을 향한 추도사가 아직도 허공을 맴도는데 강수연과 김지하의 부음이 들려왔다. 지난 11일 두 사람은 봄의 끝자락에 묻혔다. 그들이 떠났어도 이팝나무는 흰 웃음을 흩날리고 여기저기 꽃불이 옮겨 붙어 대지는 곱다. 저 봄빛은 투명해서 무덤 속까지 비출까. 북망산에도 소쩍새가 울고 있을까. 그들의 치열했던 삶은 죽음을 탄생시키고 그 소임을 마쳤다. 그들은 죽음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배우 강수연의 큰 눈에는 도도한 슬픔이 담겨있었다. 눈물이 가냘프지 않았고, 아름다움은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 범접하기 어려웠다. 초봄의 ‘상큼한 도발’과 늦가을의 ‘처연한 순응’이 깃들어 있었다. 강수연은 그런 자신의 이미지를 잘 읽어내는 배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