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택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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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당신이 바다를 아는가 ‘우연이 아니다. 오늘, 갚을 거 갚자고 달려들어 사람의 집을 흔드는 저 난행이 어느 때의 계산인가 따질 일이다.// 사람의 일로 저지른 패악의 연보(年譜)만큼/ 들불처럼 일어나는 폭풍해일!’(정희성의 시 ‘태풍3’) 살아 펄떡이는 바다에 기어이 핵 폐수를 쏟아내겠다고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심청이가 빠진 인당수 아래 용궁에도, 인어공주가 사는 궁전에도 흘러들어갈 것이다. 앞으로는 바다에서 건강한 상상력으로 <노인과 바다> 같은 싱싱한 이야기를 건져 올릴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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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민주화 역사의 기생충’이 될 것인가 1987년 6월10일, 운명의 날이었다. 직선제 개헌을 거부한 전두환 정권은 민정당 전당대회 및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를 열었다. 간선제 선거로 ‘체육관 대통령’을 뽑겠다며 대통령 후보로 노태우를 선출했다. 꽃가루가 쏟아지고 1만여명의 함성으로 잠실 실내체육관이 터질 듯했다. 노태우의 애창곡 ‘베사메무초’가 울려 퍼졌다. 같은 시각 대한성공회 대강당에서는 호헌철폐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대회장에 모인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간부들은 소수였다. 국본은 옥외방송을 내보냈다. 비장한 목소리가 하늘로 퍼져나갔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의 이름으로 지금 이 시각 진행되고 있는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이 무효임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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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부처님을 팔지 마라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천재들이 스승으로 모셨던 스님이 있었다. 석전 박한영 스님(1870~1948)이다. 근대화의 문을 열어젖혔던 최남선·이광수·정인보·홍명희·변영만 등이 박한영 앞에서 두 손을 모았다. “도대체 모르는 것이 없을 만큼 박식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물어볼 것이 없는데, 선생에게는 물어볼 것이 있었다.”(최남선) “문장을 지을 때나 선리(禪理)를 펼칠 때에도 걸리거나 막히는 바가 전혀 없었다.”(정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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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우리는 지금 위험하다 불안하고 불길하다. 대통령이 외신과의 회견에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 중국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대만 문제를 언급했다. 당장 러시아와 중국이 벌떡 일어났다. 러시아 외교부는 “무기 제공은 적대행위”라 했고, 중국은 친강 외교부장이 “대만 문제로 불장난하면 불에 타죽을 것”이라는 극언을 뿜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겁박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가 무능하고 굴욕적이라며 흥분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공포가 밀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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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예수 장사꾼과 정치 거간꾼 다음은 자신을 목사라 칭하는 전광훈이 묻고 집권당 수석최고위원 김재원이 답한 것이다. “김기현 장로를 밀었는데, 세상에 헌법에 5·18정신을 넣겠다(고 한다). 그렇다고 전라도 표가 나올 줄 아느냐. 전라도는 영원히 10프로(이다).” “그건 불가능하다. 저도 반대다.” “(그렇다면) 전라도에 립서비스하려고 한 것이냐.” “표 얻으려면 조상 묘도 파는 게 정치인 아니냐.” “내가 (국회의원) 200석을 만들어주면 당이 뭐 해줄 거냐.” “최고위에 가서 보고하고 목사님이 원하는 걸 관철시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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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무당과 함께 사라질 것인가 고종 연간인 임오년(1882년) 6월1일, 고삐 풀린 말이 창덕궁으로 달려들었다. 궁인들이 놀라 뒤쫓으니 말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마입궁중(馬入宮中). 예부터 말이 입궁하면 나라에 변고가 있다고 했다. 불길했다. 마부는 귀양을 가고 말 주인은 사직소를 올렸다. 하지만 그렇게 끝낼 일은 아니었다. 어전회의를 열어 이궁에 의견을 모았다. 왕이 명했다. “경복궁으로 이어(移御)해야 하니, 날짜는 이달 그믐 이전으로 택하라.”(조선왕조실록) 그리고 28일 이궁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화는 그보다 빨리 닥쳤다. 임오군란이 발발했고, 군병들은 자신들을 천대한 민씨 일파를 찾아내 도륙했다. 6월9일 병사들이 궐 안으로 난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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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어른 김장하’가 있어 우린 우리가 되었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봤다. 설 연휴의 세상은 얼어붙었지만 화면은 따스했다. 남녘에서 올라온 봄바람 같았다. 김장하 선생(79)은 경남 사천과 진주에서 60년 동안 한약방을 운영하여 큰돈을 벌었다. 그 돈을 아낌없이 나누었다. 우선 수없이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고등학교를 세우고 학교가 번듯하게 솟아오르자 국가에 헌납했다. 시민주로 출범한 지역신문을 매달 지원했다. 경상국립대와 여러 문화예술단체를 후원했다. 환경운동연합, 가정법률상담소 등 시민사회단체를 도왔다. 신분 타파와 차별 철폐를 외쳤던 형평운동기념사업회는 직접 회장을 맡았다. 의미 있다고 여기는 모임에는 조용히 찾아가 뒷좌석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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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황희찬 어깨에 ‘생명평화’가 피었듯이 세밑이 얼어붙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주머니가 풀린 것일까. 지구가 탈이 난 게 분명하다. 지난 한 해 기후재앙으로 무수한 생명체들이 절멸했다. 종족은 사라지고, 단 한 마리만 남은 새의 마지막 울음을 들어본 적 있는가. 고독과 두려움에 몸서리쳤을, 깃털이 빠진 최후의 둥지를 본 적이 있는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다시 한 해를 흘려보내야 한다. 추억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건만 시간의 강물은 차갑기만 하다. 우리는 어디쯤에 있는 것인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버린 것은 무엇인가. 지난해를 펼쳐보고 이를 다시 뭉치면 작고 남루하다. 그럼에도 초록별에서 함께 새해를 맞는 이웃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저 언 땅에 생명들이 있기에, 하늘 향해 팔 벌린 겨울나무가 있기에 봄은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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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당신들은 왜 정치를 하는가” 12월에 들어섰다. 달력 마지막 장에는 쓸쓸함이 묻어있다. 지난 한 해의 아쉬움이 스며있다. 딱히 잡히는 것은 없고 마음만 바쁘다. 돌아보면 지구촌도, 한국도 다사다난했다. 지구의 숨은 더 가빠지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지금도 전쟁의 포연이 인류의 양심을 뒤덮고 있다. 인간이 그토록 오랫동안 갈고닦았던 이성도 실은 별것이 아니었다. 이 땅에서도 불이 산을, 물이 마을을 삼키고 할퀴었다. 고운 가을밤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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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더는 악업을 짓지 말라, 당장 물러가라 일요일 아침, 아내의 비명에 잠이 깼다. “어떡해, 어떡해.” 잠자고 있는 동안 서울 이태원에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 참사가 일어났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자니 숨이 막혔다. 아침을 먹다가 아내가 울었다. 같은 시간에 이 땅의 어머니들이, 젊은이들이, 산천초목이 울었을 것이다. “어떡해, 어떡해….” 걸었다. 바람이 없어도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있었다. 조붓한 산길은 낙엽에 덮여 있었다. 햇살이 붉은 잎에 군색하게 붙어 있었다. 이따금 마주치는 사람도 고개를 숙인 채 지나갔다. 나무도 햇살도 사람도 말이 없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건만 죽은 자들이 나타났다. 그래, 그들은 어제 보았고 내일도 나타나는 우리 젊은이들 얼굴이다. 휴대폰을 꺼내 보니 누군가 전화를 했다. 윤제림 시인이었다. “전화했었네.” “네. 갑자기 형 생각이 나서요. 지난번 칼럼에 용산역 압사 썼잖아요. 형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때랑은 다르겠지만.” 시인의 목소리가 낮고 극히 건조해서 다른 사람 같았다. 대답할 말을 찾다가 엉뚱한 답을 했다. “그냥 걷고 있어.” “다 무너졌어요. 이거 공업이에요. 불교에서 말하는 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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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가리키는 곳 정지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진솔하다. 문체도 담백하다. 가끔 발랄하지만 이내 단정하다. 그래서 비린내도 쉰내도 나지 않는다. 빨치산 출신 아버지가 죽고 딸이 상을 치르는 3일간의 이야기이다. 아버지와 인연을 맺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조문을 왔다. 그들과 얽히고설킨 인연은 무겁고 무섭다. 빨치산 아버지 때문에 집안이 몰락하고, 누구는 죽고 또 누구는 출세 길이 막혔다. 딸은 빨치산이란 족쇄를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작가는 그런 사연들을 하나씩 풀어놓았다. 어떤 것은 발가벗기고 어떤 것은 기웠다. 내상(內傷)이 깊었지만 신음소리를 내지 않는다. 천연덕스럽다. 가슴이 먹먹한데도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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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당신의 지식은 건강하신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용산에 모여 있다. 나라가 온통 어수선하다. 아침에 내놓은 정책이 해가 저물기 전에 저자에서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사람마다 말이 다르고, 말을 주워 담는 사람마저도 다르다. 해괴한 소문들이 자체의 기이한 생명력으로 떠돌아다닌다.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하게 지나고 있다. 그러자 100일이 안 된 윤석열 정권을 향해 저주와 조롱이 쏟아지고 있다. “하루속히 정리돼야 할 정권” “준비가 시급하다”는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퇴진운동을 선동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