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택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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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김대중·노무현과 멀어지는 민주당 한 해가 저문다. 우리는 마지막 달에 몰려 있다. 어느 해보다 스산하다. 들려오는 소식들은 불길하고, 풍문은 흉측하다. 어둠에 묻을 수 없는 사건들이 무수히 일어났다. 그럼에도 지그시 살아가는 착한 사람들. 언 손을 비비며 푸른 신호등을 기다리는 무명씨들. 다가가 말을 걸고 싶지만 건넬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우리의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아질 것인가. 한반도에는 다시 어둠이 몰려오는데, 지금 한국인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이 절망의 뿌리는 단연 정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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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지휘자 김성진의 ‘경계 허물기’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경계에 서 있는 음악인이 있다. 국악지휘자 김성진이다. 서양음악 전공자로는 최초로 국악관현악단장, 예술감독을 맡았다. 그는 ‘최초’에 늘 부대꼈고, 그의 국악인생은 그 최초를 지우는 것이었다. 나라의 소리를 책임지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에 올랐음에도 뒤로 숨던 그가 책을 펴냈다. 바로 <경계에 서>이다. 제목처럼 서양음악을 전공하고 국악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국악인이 되기까지엔 난관이 많았다. “양악과 국악, 크로스오버의 세계에서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국악의 명인들에게 문외한 이방인이었고, 양악을 하는 이들에게는 소통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저 너머의 괴짜 외계인이었다.”(<경계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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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정권 심판은 이제 시작이다 불통·독선·오만의 정권이 제대로 심판을 받았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예상대로’ 여당의 참패였다. 화난 민심은 무서웠다. 정치권은 이미 승패를 감지했겠지만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결과가 참담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누군가는 알면서도 모른 체했을 것이다). 크게 놀랐을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민심을 판독조차 하지 않았(못했)다. 민심을 내세워 민심을 팽개쳤다. 인사부터 민심과는 동떨어졌다. 이름에 때가 덕지덕지 묻은 인물들을 국회 청문회장에 들이밀었다. 질타와 항변이 뒤엉켜 청문회장은 난장판이었다. 처음이라서, 집권 초기라서 실수려니 했지만 갈수록 가관이다. 한번 낙점하면 청문회장에서 만신창이가 돼도 임명장을 주고 등을 두드렸다. 그러다보니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 도중에 도망치는 상상도 못할 사태까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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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일본 침몰 이 순간에도 일본 후쿠시마에서는 핵 오염수가 바다로 쏟아지고 있다. 일본이라는 섬을 떠받치고 있는 생명의 바다에 방사능을 투척하고 있다. 오염수 위에 떠있는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지구촌 어느 나라도 엄두를 내지 못할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일본 열도는 조용하다. 반생명·반윤리·반문명의 업보를 어찌 견딜 것인가. 세계인의 탄식과 원망의 무게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일본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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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새만금의 여름은 알고 있다 “새만금 도로 옆에 팔각정이 하나 있어. 거기서 보면 잼버리 야영장이 한눈에 보이지. 부안 갈 때면 내려서 살펴보았어. 수만명이 온다니 그런 장관이 어디 있겠는가. 근데 볼 때마다 어딘가 허술하고 썰렁해. 도대체 활기가 없다 이 말이야. 나만 그런 게 아니야.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했지. 이래서 될까, 이래도 괜찮을까. 늦은 봄이 돼서야 건물 한 동을 짓더라고. 하여튼 뭔가 불안했어. 또 이상한 것은 수만명이 온다는 국제행사가 코앞인데 언론들이 조용하더라고. 다른 국제행사는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는가. 시시콜콜 들춰내고 부풀리고. 그런데 새만금은 달랐어. 결국 이 지경이 된 거야. 아무도 챙기지 않았지. 그 누구도 와보지 않은 거야. 동네잔치도 이렇게는 안 해. 다들 마음은 다른 데 있었어. 도대체 이게 뭣인가. 화나고 창피해 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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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당신이 바다를 아는가 ‘우연이 아니다. 오늘, 갚을 거 갚자고 달려들어 사람의 집을 흔드는 저 난행이 어느 때의 계산인가 따질 일이다.// 사람의 일로 저지른 패악의 연보(年譜)만큼/ 들불처럼 일어나는 폭풍해일!’(정희성의 시 ‘태풍3’) 살아 펄떡이는 바다에 기어이 핵 폐수를 쏟아내겠다고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심청이가 빠진 인당수 아래 용궁에도, 인어공주가 사는 궁전에도 흘러들어갈 것이다. 앞으로는 바다에서 건강한 상상력으로 <노인과 바다> 같은 싱싱한 이야기를 건져 올릴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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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민주화 역사의 기생충’이 될 것인가 1987년 6월10일, 운명의 날이었다. 직선제 개헌을 거부한 전두환 정권은 민정당 전당대회 및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를 열었다. 간선제 선거로 ‘체육관 대통령’을 뽑겠다며 대통령 후보로 노태우를 선출했다. 꽃가루가 쏟아지고 1만여명의 함성으로 잠실 실내체육관이 터질 듯했다. 노태우의 애창곡 ‘베사메무초’가 울려 퍼졌다. 같은 시각 대한성공회 대강당에서는 호헌철폐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대회장에 모인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간부들은 소수였다. 국본은 옥외방송을 내보냈다. 비장한 목소리가 하늘로 퍼져나갔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의 이름으로 지금 이 시각 진행되고 있는 민정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이 무효임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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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부처님을 팔지 마라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천재들이 스승으로 모셨던 스님이 있었다. 석전 박한영 스님(1870~1948)이다. 근대화의 문을 열어젖혔던 최남선·이광수·정인보·홍명희·변영만 등이 박한영 앞에서 두 손을 모았다. “도대체 모르는 것이 없을 만큼 박식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물어볼 것이 없는데, 선생에게는 물어볼 것이 있었다.”(최남선) “문장을 지을 때나 선리(禪理)를 펼칠 때에도 걸리거나 막히는 바가 전혀 없었다.”(정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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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우리는 지금 위험하다 불안하고 불길하다. 대통령이 외신과의 회견에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 중국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대만 문제를 언급했다. 당장 러시아와 중국이 벌떡 일어났다. 러시아 외교부는 “무기 제공은 적대행위”라 했고, 중국은 친강 외교부장이 “대만 문제로 불장난하면 불에 타죽을 것”이라는 극언을 뿜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겁박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가 무능하고 굴욕적이라며 흥분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공포가 밀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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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예수 장사꾼과 정치 거간꾼 다음은 자신을 목사라 칭하는 전광훈이 묻고 집권당 수석최고위원 김재원이 답한 것이다. “김기현 장로를 밀었는데, 세상에 헌법에 5·18정신을 넣겠다(고 한다). 그렇다고 전라도 표가 나올 줄 아느냐. 전라도는 영원히 10프로(이다).” “그건 불가능하다. 저도 반대다.” “(그렇다면) 전라도에 립서비스하려고 한 것이냐.” “표 얻으려면 조상 묘도 파는 게 정치인 아니냐.” “내가 (국회의원) 200석을 만들어주면 당이 뭐 해줄 거냐.” “최고위에 가서 보고하고 목사님이 원하는 걸 관철시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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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무당과 함께 사라질 것인가 고종 연간인 임오년(1882년) 6월1일, 고삐 풀린 말이 창덕궁으로 달려들었다. 궁인들이 놀라 뒤쫓으니 말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마입궁중(馬入宮中). 예부터 말이 입궁하면 나라에 변고가 있다고 했다. 불길했다. 마부는 귀양을 가고 말 주인은 사직소를 올렸다. 하지만 그렇게 끝낼 일은 아니었다. 어전회의를 열어 이궁에 의견을 모았다. 왕이 명했다. “경복궁으로 이어(移御)해야 하니, 날짜는 이달 그믐 이전으로 택하라.”(조선왕조실록) 그리고 28일 이궁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화는 그보다 빨리 닥쳤다. 임오군란이 발발했고, 군병들은 자신들을 천대한 민씨 일파를 찾아내 도륙했다. 6월9일 병사들이 궐 안으로 난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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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어른 김장하’가 있어 우린 우리가 되었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봤다. 설 연휴의 세상은 얼어붙었지만 화면은 따스했다. 남녘에서 올라온 봄바람 같았다. 김장하 선생(79)은 경남 사천과 진주에서 60년 동안 한약방을 운영하여 큰돈을 벌었다. 그 돈을 아낌없이 나누었다. 우선 수없이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고등학교를 세우고 학교가 번듯하게 솟아오르자 국가에 헌납했다. 시민주로 출범한 지역신문을 매달 지원했다. 경상국립대와 여러 문화예술단체를 후원했다. 환경운동연합, 가정법률상담소 등 시민사회단체를 도왔다. 신분 타파와 차별 철폐를 외쳤던 형평운동기념사업회는 직접 회장을 맡았다. 의미 있다고 여기는 모임에는 조용히 찾아가 뒷좌석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