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택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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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이름도 병이 든다 이름에서 악취가 풍겨온다. 이름이 가벼워 둥둥 떠다닌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그들은 기어이 나타난다. 이어령 선생의 말처럼 “책이 페이스북을 못 이기고 철학이 블로그를 못 이기고 클래식 음악이 트로트를 못 이기는 시대”(<이어령의 마지막 수업>)라서 그럴까. 아님 세태를 감지하는 내 안의 감각이 고장 난 것일까. 이름은 각기 달라도 그 이름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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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풀뿌리민주주의 뿌리가 썩고 있다 동 대표로 뽑혀 1년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지냈다. 새로 생긴 아파트단지라서 민원이 많았다. 마을 코앞에 야적장이 들어선다 하고, 아파트 옆길에는 화물차량들이 질주하고, 중앙차로 시설은 개통을 미룬 채 방치되어 있고…. 현안을 받아드니 무엇 하나 만만한 게 없었다. 사안마다 군상들의 이해가 엉켜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면, 가면 속의 탐욕과 위선이 보였다. 낙담했지만 그래서 세상물정에 눈을 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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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네 죽음을 기억하라 평론가 이어령, 변호사 한승헌, 소설가 이외수. 그들을 향한 추도사가 아직도 허공을 맴도는데 강수연과 김지하의 부음이 들려왔다. 지난 11일 두 사람은 봄의 끝자락에 묻혔다. 그들이 떠났어도 이팝나무는 흰 웃음을 흩날리고 여기저기 꽃불이 옮겨 붙어 대지는 곱다. 저 봄빛은 투명해서 무덤 속까지 비출까. 북망산에도 소쩍새가 울고 있을까. 그들의 치열했던 삶은 죽음을 탄생시키고 그 소임을 마쳤다. 그들은 죽음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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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성공한 대통령이 있었다 2008년 10월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이 대검찰청 국정감사장에서 김대중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다. 100억원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 사본을 흔들며 김대중 비자금의 일부로 추정된다고 수사를 촉구했다. 퇴임 대통령 김대중은 다음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한나라당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 내가 100억원의 CD를 가지고 있다는 설이 있다고. 간교하게도 ‘설’이라 하고 원내 발언으로 법적 처벌을 모면하면서 명예훼손의 목적을 달성코자 하고 있다. 나는 그동안 사상적 극우세력과 지역적 편향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 엄청난 음해를 받아왔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는다. 하느님이 계시고 나를 지지하는 많은 국민이 있다. 그리고 당대에 오해하는 사람들도 내 사후에는 역사 속에서 후회하게 될 것이다.”(2008년 10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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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완패했다, 0.73% 차이로 2017년 5월 ‘장미 대선’에 이어 이번에는 ‘매화 대선’을 치렀다. 꽃 이름을 붙이니 몇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마도 이런 선거판에 무슨 매화타령이냐고 눈을 흘길 것이다. 승패가 나뉜 지 열흘이 지났건만 아직도 선거판을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는 봄밤이 아플 것이다. 갓 피어난 꽃들도 우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쟁취한 대통령 직접선거는 줄곧 겨울에 치러졌다. 그 무도하고 잔인했던 권력다툼을 기억한다. 혹자는 이번 대선이 가장 혼탁했다고 혀를 차지만 지난 겨울선거에 비길 바가 아니다. 선거판에 오물이 가장 많이 묻었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최악은 아니라는 말이다. 양김 대결이 펼쳐진 1992년 대선은 음습하고 참혹했다. 여당 후보 김영삼은 민주화 동지인 김대중을 사상이 불순하다고 몰아세웠다. 언론은 지역감정을 자극해서 전라도를 고립시켰다. 김대중은 다시 빨갱이, 과격분자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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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종교계의 위없는 실세들 종교인들이 대통령선거판을 휘젓고 있다. 세속으로 내려와 특정 진영과 거래를 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교회와 사찰이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도 있겠다. 종교와 권력이 우리네 상식이 설정한 거리 두기를 무시하고 종권(宗權)유착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여당 대선 후보가 며칠 전 서울 봉은사를 찾아가 불교계의 실세로 알려진 자승 스님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권력이 불교계에 쥐여준 것들을 서로가 확인하고 조계종은 반정부 집회를 철회했다. 사찰문화재 관람료를 둘러싼 ‘봉이 김선달 발언’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그 크기는 알 수 없다. 단지 속세의 셈법에 따른 주고받기식의 타협은 종교의 시간과 영역이 아니다. 비공개 만남을 공개함으로 자승 스님이 조계종 최대 실세임을 만방에 알렸다. 이로써 조계종과 총무원장의 위상이 왜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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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울지 않을게요, 아버지 정동길이 끝나는, 큰길 건너 언덕에 일식집 ‘다미락’이 있었다. 사장은 고씨였다. 경상도 사투리를 원단 그대로 구사했다. 그는 양복을 즐겨 입었고 옷매무새가 야무졌다. 성격도 까칠해서 사투리만 빼면 차가운 도시의 아저씨였다. 점심에는 대구탕, 알탕, 해물뚝배기가 인기 메뉴였다. 국물이 시원해서 속을 풀기에 그만이었다. 자연 단골이 되었고, 나이가 많았지만 그와 술친구, 말동무가 되었다. 고 사장은 취기가 오르면 곧잘 화려한 과거를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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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언론 대통령’을 뽑자, 우리 손으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언론개혁은 물 건너간 것 같다. 언론중재법을 놓고 벌인 기이한 논쟁에 정작 중요한 개혁과제들은 실종되었고 대통령선거판이 벌어지자 정치권은 오히려 언론의 눈치를 보고 있다. 언론개혁에 관한 개인적인 바람이 하나 있었다. 공영방송이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태어나는 것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촛불정권은 방송에서 권력의 그물을 걷어내지 않았다. 권·언 유착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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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위험한 홍준표, 위험한 언론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홍준표 의원이 TV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94년도에 클린턴이 영변에 북폭(北爆)을 하려고 했을 때 YS(김영삼 대통령)가 막았다. 안 막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북핵이 발전됐겠나? 북핵을 만들지 못했겠지. 그만큼 대통령 자리는 순간적 결심이 나라의 미래를 좌우한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다시 김영삼을 소환했다. “클린턴 정부가 영변 핵시설 폭격을 하려고 했을 때 YS는 이를 극력 저지하고 KEDO(북한의 경수로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구성된 국제 컨소시엄)로 돌파하려 했으나 그건 오판이었다. 그때 영변 핵시설 북폭이 있었다면 북한은 핵개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대통령의 결단을 들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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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좋은 정치인은 갑자기 솟아날 수 없다 1990년 새해 3당(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이 출범했다. 여소야대 정국을 일거에 뒤집었다. 299석 중 221석을 차지한 공룡정당은 무엇이든 삼켰다. 여야 합의로 통과된 지방자치법을 무력화시키며 지방선거를 연기하려 했다. 야당 총재 김대중은 평생의 바람인 지방자치제가 폐기될 위기에 처하자 단식투쟁을 벌였다. 여당 대표로 변신한 김영삼이 단식현장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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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저 썩은 강을 다음 정권에 넘기지 마라 캐나다 서부 지역의 기온이 49.5도까지 치솟았다. 마른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졌고, 산불이 수백 건이나 발생했다고 한다. 에어컨이 필요 없었던 마을이 잿더미로 변했다고 한다. 기상지식이 얕아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국지성 폭염이 이글거렸다면 바람에 실려온 열파(熱波)가 아닐 것이다. 게릴라성 폭우처럼 하늘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하늘에서 수만 갈래의 번개가 치고 화염이 주택을 삼키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종말론이 어른거린다. 가본 적이 없지만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작은 마을 리턴은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이는 불벼락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기후 재앙은 신이 내린 벌이 아니라 인간들이 불러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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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백신을 맞았다 인도 바라나시는 죽어서 또는 죽기 위해서 찾아가는 곳이다. 순례자들도 이곳에서는 자신이 끌고 온 삶을 펼쳐들고 기도를 올린다. 4년 전 가을에 찾아간 바라나시는 더럽고 시끄러웠다. 낡은 도시에는 헐벗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골목마다 쓰레기가 넘쳐났고 소나 염소 같은 동물들이 어슬렁거렸다. 그럼에도 영적인 기운이 감돌았다. 갠지스강 때문이었다. 오랜 옛날부터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가 갠지스 강물을 마시고 꽃을 피웠다. 어림 2000년 동안 강물은 사람들 마음속으로 흘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