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언론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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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백기완 선생께서 묻고 있다 하늘이 큰일을 맡길 때에는 그 몸을 수고롭게 하거늘 필시 천명(天命)을 받음일 것이다. 붓을 들면 비와 바람이 숨을 죽였지만 길 위에 서야 했다. 길에서는 묘수와 재주가 통하지 않는다. 높고 낮음이 없다. 백기완 선생. 그는 평생을 세상의 가장 아픈 곳에, 서러운 곳에 있었다. 고문을 당해 육신이 으스러졌어도 포효했다. 시위 현장마다 선생의 백발이 깃발처럼 나부꼈다. 우리 시대 아주 익숙한 삽화였다. 많은 이들이 영웅적 서사로 선생의 투쟁을 감싸지만 거리의 투사는 지독하게 고독했을 것이다. 용기만이 공포와 유혹을 떨쳐낼 수 있지만 무작정 저항하는 맨 용기였다면 한시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진정한 용기는 스스로에게 비겁하지 않아야 했다. 날마다 자신의 둥지를 부수고 퇴로를 끊었다. 선생은 스스로를 다스렸기에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았다. 비로소 벼랑 끝에서 손을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불의에 맞서는 ‘장산곶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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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용균이 어머니, 우리는 작은 사람이 아닙니다 국회에서 단식투쟁을 했던 사람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시간이 무심히 흘러 의로운 싸움이 태연히 과거가 되어가고 있음이 무섭다. 문득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의 안부가 궁금하다. 단식의 후유증은 없는지, 마음은 잘 추스르고 있는지. 분노와 슬픔은 다스릴 수 있겠지만 무력감은 참으로 삭이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을 살리자는 중대재해처벌법에 우리 시대 비참한 죽음이 그대로 들어있으니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사람의 벽은 해머로도 깨뜨릴 수 없었다. 결국 정치인들은 가진 자들의 편이었다. 하청 노동자의 죽음은 오로지 개인의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더기 법안은 통과되었고, 현장을 지켜보던 기자들도 노트북을 닫았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나처럼 울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거대 정당에는 정의가 없었고, 의원들에게는 가슴이 없었다. 어머니는 끝내 탄식을 쏟아냈다. “국회가 사람 목숨을 놓고 정치놀음을 하다가 보여주기식 법안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김용균의 하늘을, 정의당은 법안을 처음 발의한 노회찬의 하늘을 차마 쳐다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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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요새로 올라간 문재인 정권 마을 주민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고령의 중환자였다. 확진 판정을 받고도 병실이 없어 집에 머물렀다. 6일 동안 갇혀 있다가 머나먼 대전의 한 병원으로 실려갔다. 구멍 난 방역망에 낙담했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찾아온 구급차가 오래된 약속처럼 따뜻했다. 마을을 짓누르고 있던 공포도 구급차가 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분노가 치솟는다. 역병이 창궐하는데 정치는 무얼 하는가. 온통 ‘윤석열 굿판’이다. 아수라의 정치판이다. 검찰개혁은 우리 시대의 급하고도 간절한 과제이다. 검찰이 우리 현대사, 특히 민주화 여정에 끼친 해악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떠올리면 몸서리가 쳐진다. 그렇기에 개혁에 미온적인 윤석열 검찰총장이 무소불위의 검찰권을 유지하려는 파쇼세력의 수괴처럼 보일 만했다. 여권에서는 추미애 장관이 퇴마사(退魔師)가 되어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추미애도 윤석열을 찍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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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서해 끝에 격렬비열도가 있다 주꾸미를 끌어올리면 고려청자가 딸려 나오는 태안 앞바다, 그곳에서 뱃길로 백리 남짓에 격렬비열도가 있다. 서쪽바다 끝 섬이다. 가거도보다 중국에 더 가깝다. 아득한 옛날에는 중국 산둥반도의 닭 울음소리가 이곳까지 건너왔다고 한다. 격렬하거나 비열한 섬이 아니다. 북, 동, 서쪽의 3개 섬과 이에 딸린 9개의 작은 섬들이 늘어서있는 열도(列島)이다. 그래서 격렬비열도(格列飛列島)는 이름처럼 ‘새들이 줄지어 날아갈 듯 떠있는 섬’이다. 선박 접안시설이 없어서 바다에 일체의 노기(怒氣)가 없어야만 섬에 갈 수 있다. 다행히 바다가 바람을 재워서 섬을 연모하는 사람들과 함께 북격렬비열도에 오를 수 있었다. 이곳에는 등대가 있다. 가을은 물에 젖지 않고 건너와 11월의 무인도는 군데군데 초록이 지워져 있었다. 그럼에도 청갓과 유채가 지천으로 깔려 있고 우거진 동백, 사철, 산뽕나무가 아직 씩씩했다. “다양한 난대식물, 수백 그루의 동백나무, 무리지어 사는 괭이갈매기, 박새, 매, 가마우지 외에도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식물Ⅱ급인 ‘장수삿갓조개’를 비롯해 희귀종과 한국 미기록종이 다수 서식하고 있다.”(김정섭 <격렬비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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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청와대에 누가 있어 도서정가제를 흔드나 1945년 가을, 33세 정진숙(1912~2008, 을유문화사 창립자)은 출판업을 해보자는 주위의 권유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이때 집안 어른인 정인보 선생(1892~1950)이 조언을 했다. “36년 동안 일본놈들에게 빼앗겼던 우리 조선의 문화유산, 언어, 문자, 이름까지 되찾으려면 36년이 다시 걸리네. 우리말, 우리글, 우리 민족의 혼을 되살리는 유일한 문화적인 사업이 출판인데 왜 망설이고 있는가.” 이후 정진숙은 출판 외길을 걸었다. 해방이 되었지만 우리글로 쓰인 책이 없었다.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하는 작가도 없었다. 어쩌다가 입수한 원고는 문맥이 통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출판사 편집자들은 우리말을 찾아내어 글에 맥(脈)이 흐르도록 바로잡았다. 그들이 갈고닦아 놓은 언어가 존재한 덕분에 저자들은 비로소 집필을 할 수 있었다. 출판은 이렇듯 잃어버린 우리 것을 찾아내는 숭고한 사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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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무명씨, 내 땅의 말로는 부를 수 없는 그대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가을에 모여 있다. 여름은 빗물에 떠다니다가 겨우 넝쿨장미에 수상한 문신 하나 남기고 사라졌다. 올가을은 유별나다. 노을은 차갑고 바람은 우리를 자꾸 외딴곳으로 끌고 간다. 행동반경이 좁아진 만큼 사색의 영역은 넓어졌는가. 가을이 들어찬 밤하늘에서 윤동주의 별을 헤아리다 문득 그의 다른 시를 떠올린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두운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윤동주 ‘또 다른 고향’) 갑자기 하늘에서 죽음이 내려온다. 별 속에서 죽은 자들이 내려와 잠자리를 헤집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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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저주의 굿판’ 뒤에는 누가 있는가 눈을 들어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사는 세상이 이런 곳인 줄 몰랐다. 온통 광기가 번득이고 살기(殺氣)가 자욱하다. 거대한 불길이 지구를 삼키고 있는데도 인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데도 곳곳에서 마스크를 벗자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류가 오랫동안 갈고닦아서 새천년으로 끌고 온 이성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시대의 현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은 공중에 산산이 흩어지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독설은 땅 위에서 펄떡거린다. 나라 안에서도 어이없는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지고 있다. 전광훈이라는 예수 장사꾼이 광화문광장에서 벌인 저주의 굿판은 우리가 얼마나 왜소한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코로나19는 당국이 자랑했던 K방역망을 뚫고 창궐하고 있다. 그럼에도 교단의 목사들은 말이 없다. 세속에 젖어서 안락하게 살고 있는, 잘나가는 목사들은 전광훈을 나무랄 수 없다. 자신을 왕처럼 섬기는 ‘돈 잘 내고, 말 잘 듣는’ 신도들이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죄 많은 가진 자에게는 천국을, 죄 작은 서민에게는 지옥을 배달하면 교회는 부흥하고 찬양은 우렁차다. 우람한 성전과 수많은 신도를 바라보면 이런 왕국을 건설한 스스로가 대견하다. 그러하니 거룩한 예배를 집전하다 간혹 눈물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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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예초기 세상’에 김해영을 보다 예초기(刈草機) 굉음이 들려온다. 산과 들, 숲과 공원, 둑과 길가에 예초기 칼날이 번득인다. 한순간 풀밭은 사라지고 풀비린내가 진동한다. 태양 아래 빛깔과 자태를 뽐내던 야생초들은 흔적도 없다. 예초기가 돌아가면 햇살이 튕겨나가고 여름마저 피멍이 든다. 멱을 감고 풀밭에 누워 뭉게구름을 보던 시절은 동요에나 남아 있다. 가축이 아닌 공축(공장식 축산)의 시대에 풀은 동물의 유용한 먹이가 아니다. 야생은 위험해졌다. 야생초들은 사나워져서 풀밭에서는 더 이상 이야기와 노래가 흐르지 않는다. 사내들의 섬세한 낫질은 사라졌고 예초기 칼날만이 풀밭을 휘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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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장막을 거둬라, 미국이 보이도록 한국전쟁의 승자는 누구인가. 서로 이겼다고 하지만 정작 모두 패자였다. 이토록 잔인하게 국토와 국민들을 짓이긴 전쟁은 없었다. 한반도 전체가 무덤이었다. 상흔이 너무도 넓고 깊어서 직접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도 가슴에 파편이 박혀 있다. 전쟁이 멈춘 이 땅에는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가 나부꼈다. 모두 돌아갔지만 미군만은 남았다. 나라를 지켜준 미국이 그저 고마웠다. 포화가 멈춘 후 살펴보니 해방 공간에서 활약했던 군웅이 사라졌다. 민족의 내일을 설계했던 고담준론도 불타버렸다. 오로지 전장의 무용담만이 활개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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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김대중 그리고 임동원 김대중은 공직을 떠난 임동원을 주시했다. 임동원은 노태우 정권 때 북방외교의 산물인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의 주역이었다. 김대중이 보기에 임동원은 강직하면서도 섬세했다. 자신이 설립한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아태재단)의 사무총장에 앉히고 싶었다. 1994년이 저물 무렵 비서실장 정동채를 보내 의사를 타진했다. 그러나 임동원은 김대중이 그냥 싫었다. 빨갱이, 과격분자, 거짓말쟁이가 어른거렸다. 김대중은 집요했다. 정동채는 세 번이나 찾아가야 했다. 임동원은 슬쩍 김대중이 어떤 인물인지 알고 싶었다. 1995년 새해 결국 동교동 집에 들어섰다. 두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다. 김대중은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통일 방안, 즉 햇볕정책의 핵심을 설파했다. 임동원은 감동했다. 십수년 동안 남북문제에 매달려왔는데도 이렇듯 고견을 지닌 인물은 없었다. ‘거목이다. 저런 분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더라면….’ 임동원은 즉석에서 사무총장직을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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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그러므로 나는 당신입니다 마스크를 쓴 스님들이 흡사 묵언수행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부처님오신날의 사찰은 고요해서 더 깊었다. 불교 조계종단은 봉축행사를 미루고 ‘코로나19 극복과 치유를 위한 기도’ 정진에 돌입했다. 부처가 계셨다면 바이러스 침공에 어찌 대처하셨을까. 부처는 깨친 사람을 뜻한다. 깨친 사람은 갠지스 강가의 모래만큼이나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석가모니 부처가 오신 날을 특별히 챙겨 기리는 것은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인간이 인류에게 처음으로 깨달음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주려고 오셨습니다.”(성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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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붙박이별, 정의당 분노도 사치다. 이처럼 타락한 선거가 있었는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의석을 삼키려는 거대 양당의 아귀다툼이 가관이다. 이제 막 투표용지를 받아드는 학생들에게 정치권은 무얼 보여주고 있는가. 부끄러울 뿐이다. 지금 여의도 상공에는 위성정당(위성이란 용어가 점잖다. 어떤 이는 괴뢰라 칭한다)이 떠 있다. 위성정당에서 쏟아지는 요설(妖說)이 봄날을 어지럽힌다. 국민들이 코로나19와 싸우는 사이 정당정치는 십리나 후퇴했다. 우리가 쟁취한 민주주의가 왜소해지고 있다. 군소정당과 함께 가겠다던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당명에서 ‘더불어’를 떼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