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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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무한한 변주 “제게 있어서 예술과 삶과 일은 하나예요.” 루이비통의 아트디렉터였던 마크 제이콥스는 예술가 구사마 야요이에게 말했다. “예술 없는 제 삶은 무의미하죠.” 구사마 야요이가 답한다. “성공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게 성공 아닐까요.” 마크 제이콥스가 말하고, “중심이 없으면 구조도 없어요.” 구사마 야요이가 말한다. 물방울에 혼신을 기울이던 구사마 야요이에게 매료된 마크 제이콥스는 2006년 무렵부터 구사마와의 협업을 계획해 2012년 대대적인 아트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선보이면서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구사마의 폴카닷으로 뒤덮인 제품과 쇼룸은 그 자체가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과 다를 바 없었다. 긴 세월, 폴카닷과 네트처럼 단순한 패턴을 반복하면서 구축한 예술가의 삶이 영민한 자본과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낳았다. 이후 마크 제이콥스는 브랜드를 떠났지만, 10년이 흐른 후 루이비통은 다시 구사마 야요이와의 협업을 추진했다. 그사이 예술가의 명성과 그의 시그니처 아이템들은 미술계뿐 아니라 대중 안으로 충분히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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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해체 가능한 주택 삶의 공간이 아니라 막강한 자산이자 투자수단, 더 나아가 사회적 계층의 표상이 되어버린 집에서 일상의 피로를 푸는 게 가능할까. 세대를 이어가면서 삶의 궤적을 축적한 오래된 주택도 매력 있지만, 지하실 어딘가에 숨겨진 쓰레기 더미가 썩어갈지라도,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가 심각할지라도 역세권에 자리 잡은 아파트의 자산가치를 더 추종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집을 보금자리로 가꿔나갈 수 있을까. 집을 구하려는 자에게는 집값이 뛰어오르는 것이 재앙이고, 집을 산 자에게는 집값이 떨어지는 것이 재앙이다.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 타협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지향 사이 합리적 결정은 휘발되고, 증폭되는 갈등과 쏟아지는 정책 아래 피로감만 가중되는 요즘, 1900년대를 살았던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였던 장 프루베가 제안한 건축물 ‘임시 주택’을 보며 집의 목적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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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감로 드라마에서 흔해진 회귀 설정을 보면서, 남들은 모르는 정보를 주무르고, 현실의 장애물을 슬기롭게 뛰어넘을 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나의 자양분 삼아 몇 발짝 앞서 나가는 삶도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보를 안다고 열매가 저절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누리는 자라고 해도 노력을 하긴 해야 할 거다. 나에게 회귀의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축적한 정보를 품고 과거로 돌아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열정을 불사를 수 있을까. 실패를 반복하면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기량을 획득한 뒤 다음 레벨로 올라가는 게임처럼, 내가 살면서 경험한 것들을 자산 삼아 고쳐 살고 바꿔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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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3분의 행복 197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모홀리나기 예술대학 건축과 교수였던 루비크 에르뇌가 발명한 큐브는 1980년 루빅스 큐브라는 이름으로 처음 판매되기 시작했다. 에르뇌가 처음 이 도구를 고안한 이유는, 전체적인 메커니즘과 형태가 무너지지 않으면서도 각 부분이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도구를 통해 구조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 해결법을 찾고, 3차원 물체에 대한 감각과 이해를 돕는 데 있었다. 건축가 교수다운 목적이었다. 하지만 많은 발명품이 그렇듯 최초의 목적은 ‘퍼즐’이라는 기대하지 않았던 발견을 통해 ‘게임도구’라는 새로운 용도를 획득한다. 현재 3×3 단일 종목 세계 신기록은 3.47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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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무한대를 향한 길 어떤 이유였을까. 아내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바르샤바의 카페 비스톨에 앉아 시간을 보내던 작가 로만 오팔카는, 1에서 무한대에 이르는 숫자를 그려나가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1965년, 1931년생 작가는 1부터 시작해 매일 약 400개의 숫자를 그리면서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숫자들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196×135㎝의 검은색 캔버스를 선택한 작가는 0호 크기의 세필로, 1부터 이어지는 숫자를 오른쪽으로 차근차근 그렸다. 3년이 지난 1968년부터 그는 캔버스의 바탕색을 회색으로 바꾼다. 그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도 않고, 어떤 상징도 연상시키지 않았던 회색은 감정의 동요 없이, 특별한 의미 없이 무미건조하게 이 작업을 반복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지를 담는다. 숫자가 100만에 도달한 후, 그는 다음 캔버스로 넘어갈 때마다 배경색에 1%의 흰색 물감을 추가해 표면을 밝혔다. 시간이 쌓이면, 어느 순간 흰 캔버스에 흰 물감으로 숫자를 그려나가기 시작할 터였다. 오팔카가 흰색 화면에 흰색 글씨를 쓸 것이라고 예측한 시점은 그 자신이 ‘심오하고 철학적이며 종교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7,777,777이었지만, 그의 숫자는 2011년, 5,607,249에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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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현재의 기억 우리는 결국 모두 죽을 테지만, 마치 그날이 오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죽음의 시기를 상상하는 삶과 외면하는 삶은 개인의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갈까? 지인이 심장마비로, 사고로,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이유로 세상을 떠났을 때, 갑자기 들려오는 죽음에 대한 소식은 주변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살아 있는 자들은 그 죽음 앞에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실감하면서 각자의 삶을 돌아보지만, 오래지 않아 그날의 긴박한 감정은 잊고 죽음이 지워진 일상에 매몰되어 삶의 속도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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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맹인에 대한 편지 여섯 명의 시각장애인이 미국 브루클린 매카렌 공원의 오래된 수영장에 나란히 앉아 있다. 그들 앞으로 거대한 코끼리가 등장한다. 한 사람씩 앞으로 나아가 코끼리를 만진 다음 처음 앉아 있던 벤치로 돌아간다.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 하비에르 텔레스는 인도의 경면왕이 시각장애인들을 모아 코끼리를 만져보게 했다는 ‘군맹무상(群盲撫象)’의 장면을 구현해보았다. 옛글에서 시각장애인들은 각자가 만져본 부분으로부터 ‘무’ ‘키’ ‘돌’ ‘절굿공이’ ‘널빤지’ ‘항아리’ ‘새끼줄’을 떠올린다. 우리는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지만 다들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전하는 이 이야기는, 사물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주관과 편협함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의 한계를 언급할 때 소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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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주름 속의 삶 허구와 악몽을 능가할 만큼 엽기적인 사건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그 상황 안에서 무기력해진다. 멕시코 작가 카를로스 아모랄레스는 일상이 불균형과 불평등으로 뒤덮여 있고 극심한 폭력이 빈번한 나라 멕시코의 현실을 바라보며 애니메이션, 음악, 문학, 공연, 설치로 구성된 작품 ‘주름 속의 삶’을 제작했다. 그는 악의에 찬 세계에 둘러싸인 현대인의 고뇌와 무력감을 독특한 풍자와 유머로 표현하던 작가 앙리 미쇼의 글 ‘주름 속의 삶’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멕시코가 손댈 수 없는 혼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원인과 그 결과를 어떻게 예술언어로 표현할 것인지 고민했던 작가는, 암호화된 알파벳으로 멕시코의 정치문제에 대한 비평적 에세이를 기술하여 전시장에 설치했다. 이 새로운 유형의 문자는 악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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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달링 달링 광주 거리에 물을 절약하자는 현수막이 붙었다. 극심한 가뭄에 제한급수를 해야 하는 위기 상황이라고 한다. 각자의 가정에서 수압을 조절하면 물을 절약할 수 있다고 했다. 손쓸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기 전 함께 대처하자는 내용을 보며 수압 밸브를 찾아본다. 세상에 과연 지속 가능한 구조나 시스템이 있을까. 제도가 규정하는 틀 역시 세월이 흐르면 그 가치와 효용성은 변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필요하다.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여러 제도, 구조, 약속을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노동에 주목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의 2채널 비디오 작품 ‘달링 달링’은 그 가운데 생태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시선을 다룬다. 작가는 호주 원주민의 조언을 받아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수로인 바르카 달링강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급격한 환경변화에 강은 갈라진 바닥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이 강이 계속 흐를 수 있도록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영상의 한쪽 채널에서는 호주 화가 윌리엄 피그닛이 1890년 그렸던 ‘달링의 범람’의 보존 수복 장면이 다큐멘터리 필름처럼 흐른다. 작품의 작은 흠집까지 복구함으로써 이 작품이 영원히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말라붙은 달링강의 현실과 대비된다. 물관리는 수천 년 동안 토착 원주민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부분이지만, 오늘의 정부에 달링강은 돌보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강이 증발하면서 주변의 생태계도 사라졌다. 작가는 보전할 자연과 방치할 자연이 어떤 기준으로 결정되는지 묻는다. 그 질문은 예술이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주장의 허무함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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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엘리펀트 머리에 무거운 터번을 쓴 이들이 무대의 바닥을 닦고, 향을 흔들었다. 양탄자를 바닥에 펼치자, 무대는 마치 모로코의 가정집, 마을 어귀 같은 삶의 공간이 되어, 오랜 세월 자연스럽게 반복해온 덕분에 능숙해진 퍼포머들의 소리와 움직임을 담는다. ‘엘리펀트’는 모로코 출신 안무가 보슈라 위즈겐이 긴 시간 협업해 온 모로코의 여성 퍼포머들과 함께 작업한 콘서트이자 퍼포먼스다. 그들은 홀로, 둘이, 셋이, 넷이 노래하고 춤춘다. 어떤 치밀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기보다,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장면의 파편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그 안에서 관객을 붙잡는 것은 퍼포머의 목소리와 움직임이다. 각자의 소리와 움직임은, 별다른 장치에 의존하지 않아도 충분히 힘있게 마음에 닿는다. 그것은 연희자의 연륜으로부터 비롯되는 힘일까. 모로코 전통 연희의 ‘명인’들이 쏟아내는 에너지가 무대와 객석을 충분히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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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돌의 기록 돌을 분석해 지구가 겪어 온 과거의 기후와 환경의 변화를 추적하는 지질학자 임재수는 호수 퇴적체를 통해 땅이 기록하고 있는 시간을 추적한다. 환경 변화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호수 바닥의 퇴적층은 좋은 연구대상이다. 빗물이 흐르고 황사가 스친 움직임의 흔적, 꽃가루, 플랑크톤 같은 생명의 흔적을 살피면서 홍수와 가뭄의 연대기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당시 인류의 정주와 이주의 원인까지 찾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연구가 우주와 지구를 향한 인간의 지식과 상상력을 넓히는 데 일조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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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널 사랑하지 않아 문선희 작가가 운전을 하고 가던 길에서 처음 만난 고라니에 대한 기억을 나누어주었다. 도로를 가로지르던 중 잠시 멈춰 선 작은 생명은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눈길로 작가를 바라보았다. 이내 다시 달려가기 시작한 생명 뒤를 어떤 동물이 빠르게 추격했다. 이 생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던 작가는 곧 자료들을 통해 고라니라는 것을 알았다. 고라니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이후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활동을 시작한 문선희는 상처 입은 고라니들을 돌보고,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일에 참여했다. 위축되어 있는 다친 고라니가 보호소에 머무는 동안, 작가는 그들의 초상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지난 10년간 만난 고라니들의 초상사진을 최근 발표했는데, 마치 고라니들의 졸업앨범을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이 카메라를 들고 선 작가와 스스럼없이 눈을 마주칠 수 있기까지는 긴 교감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 마리 한 마리에 대한 기억이 작가에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