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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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이상한 메타버스 2016년, 인공지능에게 시인 이상의 ‘건축무한육면각체’를 교재 삼아 그의 문체를 학습시키고, 재개발이 아니라 도시재생이 결정된 익선동에 대한 시를 쓰게 했던 작가 권두영이 이번에는 이상의 문체로 메타버스를 탐색했다. 인공지능은 이제 물리적 공간의 건물, 골목길이 아니라 디지털 세계 안에 구축된 메타버스 속 공간을 거닌다. 2021년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와 카카오브레인이 공동 개발해 탄생한 인공지능 시인 시아는 인터넷 백과사전과 뉴스로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 근현대 시 1만2000여편을 학습하며 시작법을 배운 뒤 올여름 개인 시집도 발표했다지만, 권두영이 함께하는 인공지능은 오로지 ‘이상’의 문체만을 학습한다. 100년 전 사람들에게 낯설 뿐 아니라 불편하기까지 한 시를 선보였던 시인의 기술(이라고 쓰고 정신이라고 받아들이련다)을 이어받은 인공지능은(그는 아직 이름을 부여받지 못했다), 메타버스 ‘스페이셜’에 열려 있는 100여개의 가상공간을 여행하며, 그곳에서 수집한 정보들을 토대로 100편의 시를 썼다. 그는 ‘이상’이 그랬던 것처럼, 인류가 긴 시간 갈고닦아 온 언어체계를 무시할 뿐 아니라 와해시키는 문체를 구사하며 메타버스를 탐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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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우리는 어디론가 가고 있다 하얗게 비어 있는 종이는 그 가능성과 비례하여 시작에 대한 막막함을 던지기 마련이지만 “언제나 백지 앞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있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작가 김정기에게 빈 종이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설렘의 장이다. 밑그림 없이 시작하는 라이브 드로잉인데도 치밀하고 섬세하게 펼쳐지는 그의 그림은 우리의 익숙한 일상을 현실 너머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연결한다. 휴지든, 전단이든, 달력이든 관계없이 그 종이 위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끄적이며 훈련해온 그는 눈앞의 대상을 보고 옮기기보다, 오로지 기억에 의존해 그린다. 그렇게 그릴 수 있기까지 그는 스쳐지나가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림일기를 그리면서 시각적인 기억력을 높였다. 오랜 세월 머릿속에 저장해온 장소, 사람의 이미지와 이야기가 작가의 호흡에 실려 펼쳐지면, 어느 한쪽 시선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시각과 소재를 담고 싶어 선택한 파노라마 화면은 익숙함과 생경함이 뒤섞인 역동적 에너지를 분출한다. 어떤 대상이든 그 대상 특유의 생명력을 이끌어내고 싶어 자유로운 붓질을 추구한 덕분인지, 그의 화면은 흑백인데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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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바이오그래피 “향기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향기만으로 그때의 상황을 다시 생각해 낼 수 있고, 향으로 역사적 인물을 떠올릴 수도 있지요. 공기는 인간뿐 아니라 세상 모두가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기는 미술의 너무나 큰 소재가 될 수 있지요. 향기는 공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도구이며, 하나의 조각입니다.” 세상이 주목하지 않았던 인간·비인간을 다른 감각으로 소환하여 메시지를 전하는 아니카 이는 사회의 한계를 거부하고 도전해 온 인물들을 불러내고, 모든 여성이 유연하게 연결되는 미래를 상상하며 세 여성에 대한 향수를 제작했다. 극좌 성향의 일본 적군파 지도자이자 테러리스트, 혁명가로 언급되는 시게노부 후사코를 모델로 한 ‘시게노부 트와일라잇’, 고대 이집트의 여성 파라오 핫셉수트에 대한 향수 ‘급진적 절망’, 모든 여성의 집단적 역사를 복합적 향으로 담을 수 있는 기계를 상상하여 만든 ‘표피 너머’가 관객을 치열했던 여성들의 삶 속으로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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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움직이는 숲 햇볕도 바람도 좋았던 지난 토요일,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했다. 행진 대열에는 어떤 이념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사람들이 하나의 주제를 고민하며 모였다. 기후재난의 심각성을 공유하는 발언을 듣다 보니,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현재 지구가 보내는 기후위기에 대한 신호는 심상치 않다. 이 선명한 신호를 외면하면서도 인간이 지구 위에서 쫓겨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많은 예술가는 기후위기 문제를 고민하며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왔다. 2020년 여름부터 강원도 화천의 문화공간 예술텃밭에서는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레지던시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문화예술계의 예술가, 기획자, 기록자들이 함께 기후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각자의 주제를 탐구하면서 작업을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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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묵죽의 정신 처음 김진우(1883~1950)의 대나무 작품을 봤을 때 받았던 인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의 대나무에는 식물이라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좀 더 견고한 금속성의 결기가 담겨 있었다. 작품 자체에서 뻗어 나오는 기운에 압도되어 몸을 돌리기 어려웠다. 간결한 표현으로 힘 있게 관객을 매료시키는 작품 앞에서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예술의 힘을 실감했다. “그의 묵죽은 대나무가 아니라 예리하고 강인한 금속제의 도검과 창날, 도끼 등 살상용 병장기를 집합시켜 놓은 듯 삼엄하다”는 최완수 선생의 평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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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가까운 미래에서 온 뉴스 태풍이 동반한 폭우가 누군가의 일상을 처참하게 무너뜨리는 장면을 뉴스로 보았다. 현실감 없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재난영화 속 한 장면처럼 건물이, 자동차가 물에 잠기고 사람이 실종되고 사망한다. 처참한 폐허 앞에 망연자실한 사람들의 분노는 방향을 바꿔가며 소용돌이쳤다. 물 빠진 도로 위에 쌓여 있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들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난폭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재난현장에 대한 뉴스를 보며 네덜란드 작가 피오나 탄의 영상 작품 ‘가까운 미래에서 온 뉴스’가 떠올랐다. 지면에 영상 작품을 소개할 때면, 작품이 이끌고 가는 시간의 호흡을 나눌 수 없어 아쉬운데, 이 작품도 그렇다. 9분30초간 이어지는 빛바랜 흑백 질감의 영상과 어딘가로 감정을 몰아가는 사운드에서, 인간이 물과 나누어 온 시간, 기억의 물결 안으로 빨려드는 기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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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알로에틸렌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의 지층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것은 불안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지층을 모색하는 계기도 된다. 코로나로 자가격리 중이던 시기, 지인으로부터 오큘러스 퀘스트를 선물받은 에마 웹스터는, 이 VR 도구 덕분에 물리적 한계에 억눌리지 않고, 입체적인 상상력을 눈앞에 펼쳐볼 수 있었다. 시간의 제약, 재료의 속성, 중력의 무게는 현실에 구현 가능한 형태를 제한한다. 반면, 가상세계 안에 빚어 넣는 입체가 시공간과 관계 맺는 방식은 한없이 유연하다. 현실에는 세울 수 없는 형태의 조형물을 가상의 공간에 배치하는 일은 가볍고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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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가장 바깥쪽 껍질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종종 잊는다. 남이 나처럼 생각하지 않고, 남이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할 리 없으며, 남이 나와 같은 꿈을 꿀 리 없지만, 습관처럼 나를 기준으로 상대방의 생각과 입장을 판단하며 하나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것들, 어쩌면 유행이라고도 할 수 있을 그 변덕스럽고도 압도적인 흐름에 몸을 싣고 움직이다보면, 그와는 다른, 유행과 무관하게 유지되는 세계가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는 것을 자꾸 잊는다. 그 다름의 세계를 외면한 채, 출처가 어디인지도 불분명한 가치의 세계에 부합하도록 나의 모든 것을 정돈하느라 숨 가쁘거나 우울하다. 그렇게 내가 가르고 내버린 세계가 나로부터 떨어져나가기를 반복하다보면 나의 세계는 한없이 좁아질 뿐이다. 그 작은 땅을 전부라 믿으며 행복을 느낀다면, 나는 소박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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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탄하무. 춤의 시간들 균사체의 성장사를 축약해본다면, 그들은 “비결정론적으로 성장”해왔다. 긴 세월을 유연하게 타고 넘은 균사체가 “축적했을 지혜는 이 땅에 인류가 등장하기 전부터 주변의 생명과 공생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유기체와 기술의 유기적 관계, 그들이 구축할 수 있는 새로운 연결망의 에너지와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여온 작가 황선정은 균사체의 생존방식, 우드와이드웹의 공생관계에 대한 리서치를 기반으로 지표 아래와 지표 위의 세계를 포괄하는 지구 에코시스템의 확장판을 그린다. 그는 뉴럴렌더링 AI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다양한 형태의 종들이 공존하는 세계를 상상했다. AI는 웹을 떠도는 정보를 연산하여 이미지를 추출하고 조합한다. 있을 법한 형상, 있을 수 없어도 눈앞에 보이는 형상, 낯선 감각을 만든다. 그 세계의 구성자들은 짐작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고 섞여 들어갈 수 있으며 함께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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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협업의 모델 버질 아블로가 지난해 11월 희귀암으로 사망하기 전 아블로의 예술세계 전체를 돌아보는 순회전이 시카고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건축학도로 출발, 음악·디자인·패션계를 넘나들며 세상이 구별해 놓은 경계의 목적과 의미를 무화시켰다. 그의 사망 후, 애틀랜타·보스턴·도하 등의 도시를 순회하고 온 전시를 이어받아야 했던 브루클린 미술관은, 아블로의 과거를 회고하기보다 그가 협업자와 꿈꾸었던 창작의 방식들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쪽으로 기획 방향을 선회한다. 브루클린 미술관의 전시를 담당한 앤트원 사전트는, 아블로가 희망했던 공동체 의식을 은유하는 ‘사회적 조각’ 개념을 전시의 핵심에 배치하고, 작품을 벽이 아니라 테이블에 설치했다. 전시 기간 동안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전시장을 하나의 거대한 대화의 장으로 만든다. 아블로는 파이렉스 비전, 오프화이트, 루이비통 등의 브랜드를 이끌면서, 하이패션과 스트리트패션의 경계를 고집하는 태도를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로 만들어버렸다. 아블로의 도전은 협업자들을 통해 미술관의 전통적인 관행을 벗어난 방식으로 테이블 위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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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달세계 여행 다누리호가 과학장비를 탑재하고 달세계로 출발했다. 고해상도 카메라는 달의 지형정보를 꼼꼼하게 파악하여 2030년 예정하고 있는 한국형 달 탐사선의 착륙 지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섀도 캠은 1년 내내 빛이 들지 않는 영구음영지역을 촬영하면서 물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감마선 분광기는 달 표면의 자원을 분석하여 달 원소 지도를 제작한다. 자기장 측정기는 달의 자기장을 탐색하여 달 자기장 지도를 획득하고 달의 생성 원인을 비롯한 우주환경을 연구한다. 우주 인터넷 검증기는 실시간으로 지구 심우주 통신용 안테나와 교신한다. 광시야 편광 카메라는 달 표면의 입자와 우주선의 영향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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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사탄은 없다 공공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선택과 결단이 공공의 이익에서 비껴가는 일은 무수히 많다. ‘공공’이라는 추상적인 대상을 규정하기 어려운 점도 원인이지만, 결정의 내막에 숨겨진 권력자의 이해관계가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을 기묘하게 비틀어 놓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이란 남부 아바단의 ‘메트로폴 빌딩’이 붕괴하면서 43명이 사망했다. 시민들은 억압의 방식으로 비효율적인 통치를 이어가는 부패한 국가가 부실공사를 무책임하게 방치한 결과, 무고한 시민들이 사망했다는 현실에 분노하며 무능력한 이들의 기소를 요구했다. 결국 사법부는 아바단 전·현직 시장을 비롯하여 20명을 구속기소했지만, 그에 앞서 시위에 참여한 모하마드 라술로프, 무스타파 알레흐마드, 자파르 파나히 등 이란의 대표적인 예술가들을 ‘사회의 안전’을 해친 혐의로 체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