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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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현실은 메타포 지갑을 열어보았다. 신용카드 한 장, 명함 몇 장, 신분증 한 장이 들어 있다. 내 지갑에서 실물 화폐가 사라진 게 언제더라. ‘욕망의 상호일치’를 추구하면서 지난하게 이루어지던 물물교환 시대가 저물고, 교환가치를 화폐로 은유하는 시대를 맞이한 뒤, 합리적 교환을 위한 다양한 약속의 방법들이 팽창해간다. 약속의 구조는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해지고, 셈은 난해해진다. 신용과 정보가 운전하는 돈의 흐름 안에 있으면서도 어쩐지 그로부터 소외되는 기분이다. 한때는 다양한 가치로 뻗어나갔을 욕망들이 ‘돈’ 하나로 수렴되었다. 이 현실에 포섭되기는 싫지만, 벗어날 수도 없으니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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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아침 태양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모닝루틴, 아침 습관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의 아침 습관은 창밖의 전봇대를 바라보는 것이다. 눈을 뜨고 고개를 살짝 창문 방향으로 돌리면 전봇대가 하늘을 가르는 장면이 들어온다. 어떤 날은 사방으로 뻗어나간 시커먼 전깃줄이 그렇게 난폭하고 지저분해 보일 수가 없다. 전깃줄 없는 하늘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동하여, 오늘이야말로 구청 홈페이지에 전깃줄 지중화 사업을 서둘러 달라는 민원을 올려야겠다 중얼거리며 침대를 벗어난다. 또 어떤 날은 그런대로 하늘과 전깃줄이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 하늘을 가르는 전선들을 따라 시선을 멈추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같은 대상을 향해 마음이 달라지는 건 간밤의 꿈 때문인가, 그날의 날씨 때문인가. 매일 깨어나 창밖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 풍경을 향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머릿속 다른 세계를 향하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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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조의 영역 해산물, 특히 김·미역·전복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에 무감하기 어렵다. 거대한 바다에 그깟 방사능 오염수 130만t을 방류한들 무슨 큰일이 나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낙천적인 뇌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바다생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무모한 선택은 인간이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느냐, 어민이 생존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넘어선다. 방류를 추진하고 지지하는 이들은 혹시 이 오염수가 인근 해양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는 걸까. 삼중수소 마사지를 받은 오염수가 해산물의 유전자를 획기적인 방향으로 바꾸면서 더욱 더 살기 좋은 바다 세상을 만들 거라고 믿는 걸까. 이미 바다는 인류의 쓰레기통이 되어가고 있으니, ‘알프스 처리수’라고도 불리는 이 오염수를 조금 더 보태는 건 아무 일도 안 한 것과 같다고 믿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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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비인간의 ‘무엇인가’ 대중이 선망하는 가수 클레르의 별명이 ‘비인간’인 이유는 그의 비현실적인 화려한 외모와 더불어, 인간적인 감정이 메마른 듯한 그의 뾰족한 성격 때문이다. 명성에 구속당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자신을 흠모하는 명망가들을 초대한 만찬 자리에서 ‘무엇인가(quelque chose)’가 붙잡지 않는 한 리사이틀 이후 세계여행을 떠나겠다고 말한다. 권력, 부, 명성을 두루 갖춘 이들이 자신의 남다른 조건을 앞세우며 그들 곁에 클레르를 붙잡고 싶어할 때, 젊은 엔지니어 에이나르는 사랑의 감정을 내세우며 그녀가 떠나면 죽겠다고 말한다. 클레르가 떠나기로 결심하자, 에이나르는 정말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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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사이의 리듬들 “우리 삶의 공간은 연속적이지도, 무한하지도, 동질적이지도, 등방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공간이 어디서 부서지고, 어디서 휘며, 어디서 분리되고, 어디서 다시 모이는지 정확히 알고 있을까? 우리는 균열들, 간격들, 마찰점들을 어렴풋이 지각하며, 때때로 공간이 어딘가에 붙박이거나, 부서지거나, 부딪치는 것을 막연하게 느낀다.”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려들면 습관처럼, 조르주 페렉의 <공간의 종류들>에 실린 작가의 글이 떠오른다. ‘공간’을 의식하면서 짚어보는 질문들이 그의 문장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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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오래된 세계로 한 젊은 남성이 버스정류장의 유리면으로 뛰어들었다. “오 마이 갓”이라는 목소리와 함께 유리는 산산이 부서졌는데, 정작 위험천만한 행동을 벌인 당사자는 태연하게 일어나 사건의 장소를 벗어났다. 그의 동료가 영상으로 기록한 이 장면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퍼져나갔다. 공공의 자산을 파괴한 행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댓글창을 채웠지만, 작가 마크 레키는 그를 비난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와 자신이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에게 너무도 강렬하게 다가온 이 장면을 토대로, 그 젊은 남성의 행동에 공명한 자신의 상태를 어떻게든 묘사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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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 달큼한 과일과 신선한 야채의 향기가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 차오른다. 에드가 칼렐의 작품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 덕분이다. 작가는 광주에서 30여개의 자연석을 수집해 마치 제기(祭器)처럼 사용했다. 돌 위에 술을 따르고, 꽃으로 돌을 어루만지고, 과테말라에서 가져온 향을 흔들어 의식을 시작한다. 돌 위에는 한국의 제사상에서 볼 수 있는 과일들을 비롯한 야채가 놓여 있다. 칼렐은 과테말라 중서부 고원 지역의 선주민인 카치켈 부족의 일원으로, 마야족의 세계관을 계승했다. 그는 선조들의 전통을 자신이 경험한 일상의 장면과 연결해 동시대의 예술언어로 엮는다. 작가는 그들이 몸으로 익혀온 우주론이 서양의 인식론, 가치체계와 부딪치며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탐구해왔다. 지역에 토착화된 옛 지식은 새로 유입된 세계와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더 나은 합일점을 추구하며 삶을 윤택하게 이끌기도 한다. 제의의 문화를 계승해 온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의식의 과정은, 여전히 절대적인 영향력을 펼치는 서구적 세계관에 의문을 제기한다. 기존에 그가 보여주었던 라틴아메리카 선주민들이 겪어온 여러 층위의 폭력과 차별에 대한 저항의 입장은 이번 작업 안에도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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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골상학 캐비닛 18세기를 살았던 빈의 의사 프란츠 요제프 갈(1758~1828)과 그의 제자 요한 스푸르츠하임(1776~1832)은 골상학 분야의 선구자였다. 그들은 본능, 감정, 이성을 비롯한 인간의 정신능력과 이해도가 뇌의 특정한 부분에 연결되어 있고, 두개골의 크기와 모양을 통해 개인별 성향과 능력을 판단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에는 전혀 과학적 근거를 인정받지 못하지만, 골상학을 통해 정신의 객관화를 추구한 이들의 연구는 당대와 후대에게 큰 영향을 미쳐 인종차별을 비롯한 여러 차별의 근거로 쓰였다. 새뮤얼 모턴(1799~1851)은 두개골 용적에 따라 인종 구분이 가능하다고 여겼고, 여러 학자들이 골상학에 토대를 둔 안면각 이론, 두개골 비율 등을 활용해 인종 간 우열 관계를 증명하려고 했다. 그 결과 백인은 아름다운 이들이 되었고, 베두인족은 무지성에 살인 본능이 가득한 자로 낙인찍혔다. 이후 골상학은 범죄자를 판단하는 근거로까지 활용되면서 생래적 범죄인의 개념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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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자유낙하 오래전인데도, 처음 스카이다이빙을 했던 날, 내 몸이 경험한 낙하의 순간에 대한 기억은 꽤 생생하게 남아 있다. 전문 강사에게 매달려 비행기에서 뛰어내린 뒤 그가 이끄는 대로 하늘을 날았다. 난다고 말하기에는 떨어지는 중이었겠지만, 착각이라고 해도 잠시나마 맨몸으로 하늘에 떠서 몸을 스치는 바람을 실감하는 시간은 두려움과 두근거림으로 차올랐다. 공포에서 벗어나 하늘을 즐길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무렵 낙하산이 펼쳐졌다. 순식간에 낙하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낙하산에 의지해 세상의 풍경을 만끽하기에는 울렁증이 심했다. 낙하산을 펼치기 전의 시간이 그리워졌다. 거스를 수 없는 중력의 지배를 받는 가운데, 잠시 누릴 수 있었던 비행은 세상의 모든 틀에서 벗어난 것 같은 일종의 해방감과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다시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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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다원성의 선율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페터 바이벨: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이라는 제목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는 가운데 페터 바이벨의 작고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1960년대부터 미디어아티스트이자 시인, 음악가, 큐레이터, 미디어아트 이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미디어아트의 태동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분야의 발전 과정에 중요한 궤적을 남겼다. 함부로 예측하기에는 조심스러운 세상의 변화를 인류가 축적해 온 관습, 규율을 토대로 가늠하고, 예술언어로 상상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문을 열었다. 실험문학, 퍼포먼스, 실험영화, 음악 등을 넘나들면서 예술의 영역을 연결하고 확장시켰던 그에게 예술과 과학 사이의 경계를 비롯한 세상의 촘촘한 경계는 특별한 의미가 없었다. “한 번의 삶은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던 그는 동시에 다양한 우주에서 사는 사람처럼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활동을 펼쳐나갔을 뿐 아니라, 앞을 내다보는 사람처럼 시대를 앞선 실험과 제안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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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두려움 없이 보기 허블보다 뛰어난 기술을 장착한 제임스 웹 망원경이 전하는 우주의 모습은 경이롭다. 빅뱅 직후 탄생한 초기 우주별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우주에서 생명의 징후를 포착한다는 미션을 가지고 우주를 지켜보는 제임스 웹은 별이 태어나는 순간의 에너지가 우주가스, 성간 먼지를 휘저으며 연출하는 드라마틱한 풍경을 기록하고, 수십억년 동안 이동한 빛의 여정을 전한다. 과거의 빛을 보는 제임스 웹이 제공하는 고해상도의 우주풍경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장면, 상상은 해보았을지언정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기 시작한다. 물론 ‘사진’을 통해 봐야 하니까 ‘진짜 우주’와 ‘우주 사진’ 사이 어떤 왜곡이 있을지 모른다는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 두근거린다. 언젠가 제임스 웹이 주어진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나는 지금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겠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폐기하고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설레지만,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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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소환 친밀한 세계 퇴근 후 챗GPT와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다.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이것저것 질문해본다. 챗GPT는 팬데믹 이후 미술전시의 구조가 어떻게 바뀔 것이라고 답할까.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기술의 사용이 증가할 것이고, 전시의 규모나 방향이 축소되는 대신 개별 작품과 더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지 않겠냐는 의견, 건강과 안전 문제가 더 강조되지 않겠냐는 의견, 실내 공간에서 벌어지는 많은 제약 때문에 조각공원 같은 야외 전시가 활성화되고, 티켓 판매율이 떨어질 테니, 스폰서십이나 온라인 세일즈가 활성화되지 않겠냐는 진단 등 상식적이지만 타당한 답변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