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
(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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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 고성능 민주주의를 향하여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나누어 각자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삼권분립은 지금도 민주주의 정치를 떠받치는 기둥이요 절대로 건드려서는 아니 될 금과옥조로 여겨진다. 하지만 2020년대의 오늘날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민주주의 정치는 산업사회의 현실을 무시하고 그 발전과 효율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이 삼권분립으로 갈라진 정부 그리고 그 틀을 이용하여 똬리 틀고 앉은 정당정치라는 것에 분노와 공격이 모아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몇 달 앞두고 좌절과 한탄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이제 삼권분립이라는 것이 과연 현대사회 나아가 미래사회에 유지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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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 주 4일제와 정규직 중심주의 일부 대선 주자들이 북유럽 여러 나라에서 검토되고 있는 ‘주 4일제’를 공약으로 언급하고 있다. 노동과 일상의 균형을 회복하여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산업사회의 속도를 늦추어 탄소위기 대응으로도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사회와 경제에서 작업장, 그것도 제대로 규제되고 있는 정규적 작업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를 도외시한 무리한 주장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진보’ 진영에 깊숙이 뿌리박은 정규직 중심주의가 표출된 극적인 예라고 생각된다. 이는 당연히 임금 삭감 없이 노동일만 줄어드는 조치를 뜻할 터이니, 이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는 작업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급격한 실질임금 상승을 얻을 뿐만 아니라 여가 시간의 증가로 인해 ‘워라밸’ 개선 등 화폐로 계산되지 않는 다양한 실질적 소득 상승의 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주 52시간 노동도, 최저임금도, 심지어 작업장 안전조차 일률적으로 감시와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작업장이 허다한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러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그 혜택이 제대로 갈 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각종 불안정 노동자,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등에게는 완전히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삶의 불편과 상대적 박탈감만 늘어나게 될 것이다. 결국 은행, 관공서, 공기업, 대기업, 대학과 학교 등 정규적 작업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엄청난 혜택이 돌아가겠지만,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돌아가는 혜택이 극히 불균등하거나 전혀 없거나 오히려 ‘벼락거지’가 되는 허탈함만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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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 왜 지금 ‘두 번째 의견’이 필요한가 배가 좀 아파 병원에 갔다가 이리저리 검사를 받았더니 6개월 후 죽을 것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송곳니 쪽이 좀 거북하여 치과에 갔다가 입안을 사진과 거울로 몇 번 털리고 났더니 무려 600만원의 견적이 나왔다. 사무실의 가벽을 헐어 공간을 넓히려고 아는 분의 소개로 업체를 불렀더니 예상 액수의 세 배를 부른다. 무시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아니지만 그대로 따르자니 황당하다. 이럴 때 우리는 다른 병원 다른 의사를 찾아 검진을 받으며, 다른 치과에 가서 진료를 받으며, 다른 업체를 불러 견적을 내어 본다. 이를 ‘두 번째 의견’이라고 한다. ‘두 번째 의견’을 찾게 되는 또 다른 경우가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들고 갖은 어려움을 꾹 참아가며 그들이 내놓는 처방을 충실히 실천하였건만 장구한 시간이 지나도록 차도가 없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그러한 기존의 처방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 고리의 하나가 되었을 가능성까지 있다. 따라서 시급하게 ‘두 번째 의견’을 구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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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플랫폼 자본주의’는 권력의 문제 비단 중국만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 어디라 할 것 없이 주요 산업국들에서는 초거대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개입을 국가 정책으로 시행하려 하고 있다. 한때 ‘혁신’과 ‘미래’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심지어는 ‘공유’라는 어림도 없는 명분까지) 둘러쓰고서 사회 전체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듯싶었던 플랫폼 기업들이었다. 그래서 ‘공장식 축산으로 유니콘을 키워내자’가 국가의 산업 정책으로 떡하니 올라오기도 하는 등 바야흐로 자본주의의 미래는 플랫폼 자본주의인 듯 보였다. 그런데 20년도 채 지나기 전에 지금 전 지구적인 분위기의 대반전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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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공정보다 평등이 필요하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의 취임을 계기로, 이른바 ‘공정’에 대한 논쟁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사회가 워낙 팍팍하다 보니 이 논쟁도 아주 격한 목소리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반론을 제기하는 측은 현실의 사회적 조건으로 인해 사람마다 제각각 ‘출발점’이 다르고 그래서 달리기 시합의 규칙만 엄정하게 지킨다고 공정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출발점’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달리기 트랙도 땅을 고르게 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공정이 중요한 가치임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산업사회에서 공정의 문제와 (불)평등의 문제는 다른 것이며, 지금 전 세계적으로 화급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라는 사실이 쉽게 망각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서 잠깐 이 ‘산업사회에서의 (불)평등’의 문제를 가장 오랫동안 집요하게 해결하려 했던 민주적 사회주의 사상사의 곡절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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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국무총리가 허락한 시민운동? 지난 5월12일 국무총리실 주재로 “시민사회 활성화” 토론회가 열렸다. 경악했다. 시민사회가 그럼 지금까지 “비활성화” 상태였나? 그리고 이를 활성화하는 게 행정부의 실제 수장이라 할 국무총리가 맡을 일인가? 내용을 보았다. 코로나19 등의 위기 상황에서 공익을 추구함에 시민사회의 적극적 노력이 절실해진 상황이니 국가가 나서서 시민사회를 더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조직적, 제도적, 재정적 지원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이러한 지원을 아예 법제화하기 위해 ‘시민사회 3법’(시민사회활성화기본법, 민주시민교육지원법, 기부금품법)을 일괄 통과시켜 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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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87년항쟁은 91년 5월에 끝났다 1991년 4월 끝 무렵 명지대학교 학생 강경대씨가 시위 중 경찰폭력으로 사망하였다. 5월에도 여러 시민이 목숨을 끊으며 완전한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열이 계속되었고, 수십만을 헤아리는 시위대가 서울 한복판을 행진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랬던 민주화운동의 열기는 6월이 되자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1987년 개정 헌법이 만든 6공화국 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021년의 대한민국은 그 6월에 배태되었다. 대중운동으로서의 87년항쟁은 직선제 개헌을 통한 권위주의 정권의 종식을 요구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항쟁을 준비했던 당시의 ‘민족민주운동’ 세력은 이보다 훨씬 더 크고 급진적인 사회변혁을 꿈꾸었다. 전두환 군부독재의 타도나 직선제 개헌을 넘어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지양하여 ‘자주민주통일’이 실현되는 사회를 이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것이 당시 ‘운동권’의 합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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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보궐선거와 사회적 경제 서울시는 여러 지자체 중에서도 지난 10년간 사회적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이번 보궐선거로 시장이 바뀌면서 서울시 사회적 경제의 방향이 기로에 서게 되었다. 일부 야당 후보들은 기존의 서울시 사회적 경제 부양정책에 대해 거의 대부분을 폐지하거나 축소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렇게 되자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특히 관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활동해 오던 이들 중 일부가 그 반대쪽 후보를 지지하는 쪽으로 몰려가고 있다. 사회적 경제와 각급 정부, 이른바 ‘관’과의 관계는 항상 미묘하고 어려운 쟁점이었다. 사회적 경제는 원칙적으로 각급 정부와 긴밀히 협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며, 유무형의 자원을 지원받는 것도 전혀 그릇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독자적 정체성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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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참여소득제’에 주목하자 재난지원금 지급을 거치면서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것이 되었다. 그런데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도 그 정책의 파격적인 상상력에 주춤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무엇보다도 아무 대가 없이 지급한다는 ‘무조건성’이라는 기본소득 원칙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고 보인다. 이런 이들에게 기본소득과 무척 닮아있지만, 이 ‘무조건성’의 원칙 대신 ‘사회적 가치를 갖는 활동’이라는 조건을 내건 참여소득제의 개념에 관심을 갖도록 권하고자 한다. 참여소득제는 기본소득과 대단히 중요한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 아직도 경제학의 금과옥조처럼 돼 있는 ‘완전고용’이라는 것이 사실상 만성적 대량 실업과 극심한 소득 부족으로 대체되어버린 21세기의 현실에서, 사람들의 소득 원천을 노동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장에서 일시적으로 배제된 이들의 소득을 보조하는 기존의 ‘잔여적 복지’를 과감히 넘어서서 노동시장에서 고용되지 않은 이들도 최소한의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사회의 보장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선 두 정책이 지향하는 바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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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고용보장제에 주목하라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미국과 영국의 진보경제학자들이 주장했던 ‘고용보장제’라는 정책이 있다. 장기 실업에 빠진 사람들 중 일을 하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정부의 재정으로 최저임금에 일정한 수당 패키지를 더한 임금으로 고용하여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아이디어이다. ‘자연 실업률’로 대표되는 주류 경제학의 사고방식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이 무슨 황당한 포퓰리즘이냐고 여겨질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노동시장이 곳곳에서 붕괴하고, 다시 활발한 고용이 민간 부문에서 살아나는 날을 기약하기 힘들게 된 지금 이 정책은 많은 이들이 심각하게 고려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기본소득만큼이나 익숙한 이름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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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미래가 온다 코로나19의 습격으로 궁지에 몰렸던 인류는 2020년 말 여러 백신의 개발에 성공하면서 간신히 반격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2021년은 아무쪼록 코로나19를 퇴치 혹은 정복하는 한 해가 되기를 빈다. 하지만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해도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게 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2021년이 시작되는 지금, 우리의 다짐은 이러한 미래의 급격한 도래라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적응과 대응으로 우리 스스로가 변화하면서 그러한 미래의 세상을 열어나가겠다는 담대한 약속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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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개문발차’의 백신 접종 코로나19가 온 지구를 덮친 올해, 미국과 유럽 여러 국가는 국민들 다수의 ‘불신’과 ‘불만’에 직면했다. 한편으로는 국가가 코로나19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질병뿐만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불만에 휩싸여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가 내놓는 정보와 지침 그리고 취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극심한 불신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는 시민들의 각종 불복종 행동이 일상화되어가고 있으며, 미국은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화해할 수 없는 두 개의 집단으로 갈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