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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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전직 고위공직자의 로비 사람의 판단력이나 인격, 넓게 보아 세계관은 평소에 잘 알기 어렵다. 문제적 상황에 처해서 하는 행동을 보아야 정확하게 안다. 공직자, 특히 고위공직자라면 공의와 개인적 이익이 충돌하는 상황, 그중에서도 법에서 말하는 이해충돌 상황에서 공익을 사익에 앞세워야 마땅하므로, 공직 취임 전에 이 문제에서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려내야 할 필요성은 클 수밖에 없다. 고위공직자가 퇴임 후 로펌이든 어디든 취업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문제는 그런 전력으로 로비를 하던 사람이 공직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런 복귀는 이른바 ‘회전문 인사’로 여러 폐해를 일으키지만, 그래도 기어이 복귀시키려면 과거의 로비가 법이나 양식에 어긋난 것은 아니었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다음으로 새로운 공직이 과거의 로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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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공직 후보자와 이해충돌 다산 정약용은 성균관 유생 시절이던 1789년에 대과 전시에서 갑과 2등으로 합격했다. 정조 임금이 시관인 채제공에게 내린 장원 뽑기의 기준대로라면 다산이 장원이었으나, 채제공은 그를 2등으로 올렸다. 임금이 시지를 가져다 보고서는 다산이 장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끝내 기록상 다산은 2등으로 남았다. 채제공에게 다산은 사돈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조의 상피제에 따르면 본가, 외가, 처가의 4촌 이내 사람과는 같은 관서에 근무할 수 없었고 그런 관계에 있는 사람의 사건에 대한 판관이나 시험에 대한 시관 노릇을 할 수도 없었지만, 채제공에게 상피제가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공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혹마저 떨치려 했다. 미국 연방대법관 톰 클라크는 1967년 아들인 램지 클라크가 법무장관이 되자 대법관직을 사임했다. 법령으로 강제된 일은 아니었지만 이해충돌의 외관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문명사회에서 이해충돌 상황의 회피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보편적 요청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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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여성할당제와 능력주의 샌드라 데이 오코너는 1981년 여성으로는 미국 최초로 연방대법관이 된 인물이다. 그는 1952년 스탠퍼드 로스쿨을 3등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로펌들이 변호사로는 채용하지 않고 법률비서직만을 제의하자, 공직을 찾아 산마테오 카운티의 검사보로 일해야 했다. 보수도 없고 자기 사무실도 따로 없는 조건이었다. 두 번째로 여성 연방대법관이 된 루스 긴즈버그는 1960년 컬럼비아 로스쿨 공동수석 졸업 후 연방대법관의 연구원직을 지원했지만 직을 맡지 못했다. 여성이라는 이유였다. 독일의 베를린필하모니가 여성 단원을 채용한 것은 창단된 지 100년이 된 1982년에 들어서였다. 지휘자 카라얀이 결단을 내려 그리 되었지만, 이 때문에 그는 단원들과 불화하게 되었고 30여년간의 평화로운 공존관계가 깨지는 일을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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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선관위, 어찌할 것인가 지난 17일 김세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대선에서의 사전투표 부실관리에 책임을 진다면서 사의를 표명하더니, 다시 17개 시·도선관위의 상임위원들이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에 대하여 거취 표명을 요구하는 건의문을 전달했다. 중앙선관위원장에 대한 불신임의 집단적 의사표시는 사상 유례 없는 일이다. ‘소쿠리 투표’라는 말을 듣는 대선 사전투표의 부실 관리는 그 근본적 책임이 투표소 현장의 선관위 직원들에게 있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 4·15 총선은 코로나19라는 비상사태에서도 무사히 치렀는데, 중앙선관위는 여기에 지나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대선의 사전투표 관리를 망쳤다. 코로나19의 확산을 감안했다면 당연히 필요한 프로그램과 매뉴얼을 만든 다음 여러 차례의 시뮬레이션과 예행연습을 거듭해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했어야 한다. 공직선거법의 규정을 따르자면 확진자 등의 투표지를 넣을 투표함을 따로 만들 수는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기표된 투표지를 사무원이 받아 일반 투표함에 전달하라”라는 지침을 내릴 일은 아니었다. 소쿠리 따위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면, 본투표에서처럼 투표시간을 따로 정하면 될 것이었다. 이 정도의 방안을 강구하지 못했다니, 좀 어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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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선거 후의 날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날 아침, 출근한 직장동료가 내뱉듯이 말했다. “더러워서…. 이제 랭귀지스쿨 등록해야겠네.” 그가 말한 ‘랭귀지’는 전라도 방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엔 이런 말을 들었다. “수상해, 내 주위에 그 사람 찍었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는데 웬일인지.” ‘다수의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증오와 혐오에 싸여 있다 보니 그리 된 것이었을까. 선거 결과의 승복에 관해 내가 들은 말 중 가장 비열한 것은 2016년에 도널드 트럼프의 입에서 나왔다. “나는 선거에서 이긴 경우에만 결과에 승복할 것이다.” 2020년의 선거에서 지자, 그의 지지자들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겠다면서 의사당에 난입했다. 우리나라의 이번 대선에서도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이기면 공명선거, 지면 부정선거라고 할 사람들이 많을 게다. 내로남불의 악성 변종을 보는 기분 아닐까.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지 않는다. 이기거나 배울 뿐이다.” 그의 위대함은 바로 이런 정신에서 나왔을 것이다. “나무는 쓰러졌을 때 가장 잘 알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건 수없이 낙선했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전기를 쓴 칼 샌드버그의 말이다. 패자 측이 선거 패배 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 부족했을까를 성찰하는 것이다. 잘 지지 못하면 또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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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선거보도의 객관성과 편향성 오늘날의 선거는 ‘미디어 선거’다. 기성 언론 외에 새로운 미디어까지 끼어들었다. ‘삼프로TV’라는 유튜브 채널이 대선 후보자 5인을 초청하여 시행한 인터뷰의 조회 수는 합계 1200만회를 넘어선다. 이럴수록 언론 본연의 역할은 정론적인 선거보도에 있지 않을까. 공직선거법은 선거보도의 공정성을 공적 기구가 심의하는 제도를 매체별로 두고 있다. 이런 제도는 외국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중앙선관위에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 방통위에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언론중재위에 선거기사심의위원회가 각각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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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그런 사람들’ 변호하기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변호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서 ‘그런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큰 비난을 받는 범죄자들이다.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미국 변호사들은 가족과 친구는 물론 사회 일반의 지인들로부터 늘 이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하도 그런 일이 잦다 보니 형사 전문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이를 ‘그 질문’이라고 통칭한다. 애비 스미스 등이 편찬한 책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변호할 수 있습니까?>에 나오는 이야기다. 흉악범은 물론이고 죄질이 나쁜 이런저런 범죄의 혐의로 누군가가 수사나 재판을 받는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면 어쩔 수 없이 혐오감이 일어난다. 무죄추정원칙은 그야말로 원칙일 뿐 감정은 다른 문제다. 한편 변호사윤리장전은 “변호사는 의뢰인이나 사건의 내용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것도 규범일 뿐 ‘질 나쁜 의뢰인’을 변호하는 변호사에게는 의심의 눈길이 끊이지 않는다. 저런 인간을 변호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까, 돈이 그렇게 좋고 이름 내기가 그렇게 중할까 하면서. 이런 인식이 확대되면, 과거에 대기업 경영주를 변호하였거나 탄핵심판 절차에서 피청구인을 변호한 전력이 있는 변호사의 공직 취임까지 문제 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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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사과를 망치는 법 불경 중 <금강경>은 조계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 중 하나다. 금강경의 경문에는 아상(我相)을 지우라는 말이 수없이 되풀이된다. 아상은 본래 브라만교의 ‘아트만(atman) 의식’을 한자로 번역한 것이지만, 복잡한 교리 이야기를 빼고 실천적 의미만 보자면 아상을 지운다는 것은 나와 내 것과 내 생각을 중심으로 삼는 세계관을 여의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집과 이기심을 버리는 것쯤 된다. 아상을 지울 마음이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뭐냐고 한다면, “내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며 사과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단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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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대장동의 법률가들 우리나라의 사법연수원에서 1981년에 법조윤리가 정식과목으로 채택된 데에는 미국의 로스쿨에서 법조윤리 교육이 강화된 것이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미국은 상원과 하원을 통틀어 대략 19세기에 80%, 1960년대에 60%, 근래에 40% 정도의 의원이 법률가였다. 이런 나라에서 1976년 지미 카터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왜 자기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미국 시민들에게 설명하면서 맨 앞에 내세운 이유는 두 가지였다. “나는 법률가가 아닙니다. 나는 워싱턴 정가(政街) 출신이 아닙니다.” 법률가가 아니라는 게 왜 강점이었을까. 닉슨 때문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 사회가 떠들썩할 때 법률가 출신 대통령인 닉슨은 백악관에 참모진을 모아 놓고 회의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라고 버텨. 묵비권을 행사하라고. 우리 계획을 탈 없이 지키려면 뭐가 됐든 다 감춰.” 이게 그 유명한 녹음테이프에서 나온 말이다. 법정에서 테이프를 틀자 흘러나온 이 말을 듣고 미국 시민들은 어이없었을 것이고 워싱턴의 정치인들에게 새삼스럽게 염증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카터의 선거 전술도 그럴 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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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판사 임용제도의 앞날 판사를 법조 경력의 초기에 임용하는 제도와 상당 기간 법률직 경력을 쌓은 후에 임용하는 제도 중 좋은 것은 어느 것일까? 판사로 임용돼도 법원 실무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판결 작성이나 심리에 숙달되려면 상당 기간 수련이 필요하고 이는 부장판사의 지도 내지 간여 없이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 그래서 법원이 판사로 임용한 이들은 사법연수원을 갓 수료하여 비교적 젊고 또 졸업성적이 우수한 사람들이었고, 이들이 도제식 과정을 거쳐 법원 실무를 익힌 것이 과거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법원 내에서는 이런 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판사들이 상당수 있었다. 사건의 결론을 내기 위해 하는 숙의를 합의(合議)라고 한다. 그런데 경력이 높은 부장판사와 임관한 지 얼마 안 되는 배석판사들 간의 합의는 결국 부장판사의 의견에 좌우될 테고, 이것이 합의체를 운영하는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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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 그들의 애국심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른다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 가족들의 국민의례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본 감상이다. 하지만 불편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섬뜩했다. 국가주의 때문이다. 건국 후 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국가주의는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을 뒤덮었다. 유신체제에선 폭압으로 흘렀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처럼 애국가가 길 가던 시민들을 부동자세로 묶게 된 것도 그 국가주의의 외설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그 후 최 전 원장의 발언은 반대 방향으로 갔다. “국민의 삶을 국민이 책임져야지 왜 정부가 책임집니까?” 기이하기 짝이 없다. 그는 국민의 삶에 책임지지 않는 정부의 수장이 되려고 대권 주자에 나선 것인가. 논란이 일자 그는 “정부가 모든 국민의 삶을 책임진다는 건 전체주의로 가겠다는 것”이라며 맞섰다. 이번엔 엉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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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성적 수치심과 젠더권력 형법의 체계에서 성적 수치심이라는 개념은 두 가지로 작용한다. 형법 제22장 ‘성풍속에 관한 죄’에서는 음란물이나 음란행위를 처벌하는 데 있어 음란성을 따지는 기준으로 쓰이고, 형법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에서는 추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교과서의 설명을 보면, 성폭력에 관한 죄의 규정은 개인적 법익인 성적 자유 또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럼 성적 수치심의 유무는 일반인과 피해자 본인 중 누구의 감정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까. 대법원은 추행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서 일반인의 감정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