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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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어떤 형사사법의 실패-최말자씨의 경우 최근 대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인 최말자씨의 사연을 언론 보도에 따라 재구성하면 이렇다. 제사떡을 주려고 최씨(당시 18세) 집에 온 친구들을, 생판 모르는 남자(노모씨, 당시 21세)가 쫓아왔다. 친구들이 “저놈을 보내야 집에 간다”고 하는데, 남자가 길을 알려 달라고 했다. 최씨 혼자서 남자를 큰길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그가 갑자기 최씨를 덮쳐 최씨는 돌에 머리를 부딪혔다. 남자는 도망가는 최씨를 세 번 넘어뜨려 끝내 올라탔고, 최씨가 저항하면서 남자의 혀를 깨물어 그의 혀가 1.5㎝ 정도 잘렸다. 얼마 후 남자는 다른 남자들과 패거리를 지어 최씨 집을 찾아와 칼을 책상에 꽂는 등 행패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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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변호사의 직무과오 사례1) 항소 사건을 수임하여 인지대와 송달료를 건네받고서도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인지대 등을 납부하지 않고 법원의 보정명령에도 응하지 않아 항소장이 각하되었다. 사례2) 손해배상 청구사건을 수임한 후 법원의 감정신청 권고를 받고서도 4개월 후에야 신청서를 제출하고, 의뢰인이 건네주는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지 않고, 재판기일에 두 번이나 출석하지 않고, 의뢰인으로부터 재판 진행상황을 설명하여 달라는 전화와 e메일을 받고서도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고, 화해권고결정을 받고서도 의뢰인에게 통지해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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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정의는 농담이 아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지난달 17일 러시아 대통령 푸틴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러시아로 강제이주시킨 혐의를 받는다. 우크라이나는 그 수를 1만6226명으로 보고 있다. ICC의 호프만스키 소장은 “ICC의 123개 회원국은 이 체포영장을 집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과거 ICC의 회원국이었으나 2016년 탈퇴로 현재 비회원국이고, 우크라이나도 비회원국이다.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는 ICC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ICC의 결정은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ICC의 설립 근거인 로마규정 제12조, 제13조에 따라 범죄발생지국이 ICC의 관할권을 수락하면 범죄발생지국에 의한 회부나 소추관의 단독 회부에 의하여 관할권 행사가 가능하다. 내 지인에게 ICC의 영장 발부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집행 가능성이 없을 거라며 “거의 농담 수준”이라고 답했다.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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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이재명 사건 관전법 개념은 힘이 세다. 어떤 개념이 생성되어 통용되기 시작하면 사물과 현상을 보는 시선을 한쪽으로 끌고 간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성인지 감수성’이란 말의 위력을 보라. 법의 영역에서도 전통적 해석론을 벗어나는 새로운 개념의 창출이나 도입은 새로운 법적 효과를 낳는다. 헌법재판소가 처음 선보인 ‘숨쉴 공간’이란 개념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에서 차용한 것인데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개념은 잘못 수용되어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대법원 판결로 폐기된 ‘반성적 고려’라는 개념은 한시법의 소급적용을 일부 배제하여 처벌을 면하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독일 형법의 해석론에서 유래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엉뚱하게도 법이 바뀌어 처벌할 수 없게 된 행위를 처벌하는 데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법 개정 시의 재판시법주의라는 원칙을 망가뜨린 전력이 있다. 특검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하려고 들고나온 ‘경제공동체’라는 개념은 아직도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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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곽상도 사건의 판결을 보는 법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한 판결이 선고되자 거의 모든 주요 일간지에 검찰이나 재판부를 비판하는 사설이 실렸다. 내용은 대략 두 가지인데, 하나는 검찰의 수사가 미진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재판부의 판단이 비상식적이라는 것이다. 곽 전 의원에 대한 뇌물 관련 공소사실은 그의 아들이 받은 50억원의 퇴직금을 두고 법률적으로는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그가 국회의원의 직무에 관해 뇌물을 받았다는 수뢰죄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기관 임직원의 직무사항 알선에 관하여 뇌물을 받았다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의 알선수재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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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유죄와 무죄 사이 영국의 형사법정에서는 ‘피고인은 무고(無辜, innocent)하다’라고 변론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다. ‘피고인은 유죄가 아니다(not guilty)’라고 변론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전자와 같이 변론을 하면 판사나 배심이 유죄의 증거가 있는지를 살피는 게 아니라 피고인이 결백하다는 증거가 있는지를 살피는 쪽으로 경도될 수 있는데, 형사사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 원칙에 어긋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판례의 풀이로 무죄 판결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에 이르지 못한 경우’다. 여기에서 ‘합리적 의심’은 유죄일 것 같다는 심증을 흔들 수 있을 만한 다른 사정의 존재, 즉 그게 아닐 수도 있을 가능성을 말한다. 유죄와 무죄를 가르는 경계가 정량적 엄밀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사건을 담당한 판사가 증거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고, 또 사건을 보는 태도에 ‘두려움도 호의도 없다’는 것, 즉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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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법왜곡법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1월15일 중점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발표한 주요 법안 중엔 법왜곡죄 도입법이라는 게 있다. 판사나 검사가 부당한 목적으로 법을 왜곡하여 해석 적용할 때 또는 증거나 사실을 조작할 때 형사처벌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법왜곡법의 입법 논의는 2018년 시작되어 이제 네 번째다. 어느 일간신문의 사설은 이 법안의 “발상 자체가 놀랍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독일, 스페인, 노르웨이 등 여러 유럽 국가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법률이 제정되어 있고 실제 처벌례도 제법 있다. 왜곡이란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그릇되게 함’을 뜻하는데, 독일에서는 아예 대놓고 법률을 무시하여 권한을 유월(逾越)한 판사를 법왜곡죄 혐의로 수사한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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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한동훈식 화법 자기부죄거부특권은 범죄의 혐의를 받거나 기소된 사람이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다. 미국법에는 경찰관 자신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비리와 관련하여 조사를 받으면서 ‘만약 자기부죄거부특권을 행사하면 면직될 것’이라는 압박을 받아 비리에 관해 진술할 경우, 그 진술은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법리가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1967년의 개리티 사건에서 판시한 것이어서 개리티 원칙(Garrity Rule)이라고 부른다. 같은 해 가드너 사건에서 나온 판결은 ‘대배심에서 위의 특권 포기를 거절하면 면직된다’고 규정한 주법을 무효로 보았다. 그런데 1968년의 통합위생직원연합회 사건에서는 위의 특권을 행사하여 진술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면직되면 그 면직은 위헌이라고 했다가, 1970년에는 피조사자들에게 다시 ‘형사사건에서 유죄증거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부여했는데도 진술을 거부하면 면직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개리티 원칙은 공무원이 직위를 지키고 처벌을 받느냐 아니면 실직하고 처벌을 면할 것이냐는 딜레마에서 진술거부권을 보장하려던 것인데, 이처럼 관련 법리는 당초의 개리티 판결에서와는 조금씩 달라져 왔다. 그래서 후속 사건들에서는 이 원칙의 적용 범위와 관련해서 하급심 판결이 엇갈렸고 해석론도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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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헌재와 대법원의 갈등 과거 당사자가 소송에서 헌법을 운위하기 시작하면 판사가 ‘어지간히 할 말이 없나 보다’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헌정사에서 헌법의 규범력이 망가지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던 게 이유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1988년 헌법재판소가 창설되어 의미 있는 결정을 속속 내리면서 달라졌다. 헌재의 주요 결정은 법률조항의 합헌 또는 위헌에 관한 판단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한정합헌결정 또는 한정위헌결정이다. 이것이 무엇이길래 대법원이 그리도 반대하는 것일까. 실례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헌재는 1992년 최초의 한정위헌결정을 내렸다. 과거의 정기간행물의 등록에 관한 법률 제7조 제1항은 정기간행물을 등록하고자 하는 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해당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고 규정했는데, 그 시행령 제6조 제3호는 ‘해당 시설’을 자기 소유의 것으로 한정했다. 남의 시설로는 등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헌재는 ‘해당 시설’을 시행령에 따라 자기 소유여야만 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과잉금지원칙 등에 반하여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법률조항만 보면 그 자체로 위헌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 적용 범위를 좁힌 시행령대로 해석하면 위헌이라는 선언이었다. 법률은 되도록 합헌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법률조항을 전부 제거하는 대신 헌재의 해석으로 그 적용 범위를 정한다는 것, 이게 ‘한정’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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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사법의 정치화라고? 지난 8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받은 가처분 결정을 두고는 여러 가지 해석과 평가가 나와 있다. 본래 판결이나 결정(소송법상 이들을 합쳐 ‘재판’이라고 한다) 중 정치적 사건을 다룬 것에 대해서는 각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해석이나 평가가 다양함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언론이나 학계에서 법이나 소송의 기본원칙과 이론에 대한 이해 없이 재판을 비난하면, 듣는 이나 읽는 이를 오도할 우려가 있다. 이번 가처분 결정에 대해 어느 헌법학자는 “민주적 정당성의 크기를 따지는 그 자체가 법원의 권한을 넘어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정문을 읽어 보면, 이 주장은 법원의 다음 판단을 나무라는 것으로 보인다. 즉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는 데 있어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 사이의 합의가 이루어진 경우’와 이와 달리 ‘당 대표와 최고위원회의 사이 및 최고위원들의 사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를 비교하여 당원의 총의를 추정하고 이에 따라 후자의 경우에는 전자보다 민주적 정당성의 크기가 작다고 설시한 부분이다. 다른 하나는 당 대표와 최고위원의 지위와 권한을 상실시키는 데 있어 전국위원회와 상임전국위원회를 전당대회와 비교하여 전자의 민주적 정당성이 후자의 그것보다 작다고 한 부분이다. 그런데 결정문 전체를 읽어 보면 사건의 쟁점이자 관건은 비대위를 설치할 만한 실체적 법률요건으로서 국민의힘이 비상상황에 처해 있는지 여부였다. 비대위원장 측이 패소한 이유는 법원을 납득시킬 만한 입증을 다하지 못한 데 있다. 법원이 민주적 정당성을 따진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였다. 법원의 이런 판단은 정당 대의기관이 권한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당원의 총의를 반영하여야 한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의 해석론에 비추어볼 때 사건 당사자들 주장 중 어느 것이 옳은지를 가리면서 든 여러 근거 중 하나일 뿐이다. 그 근거들을 세어 보면 모두 10개 항에 이르는데, 이는 결정문 중 네 쪽 정도 분량에 이른다. 이 판단이 왜 법원의 월권행위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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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이것은 법치주의가 아니다 윤 하사는 내무반장으로서 더할 수 없는 권력을 휘둘렀다. 모두들 벌벌 떨었다. 이상할 정도로 다들 무서워하는 그에게 비결을 물었다. “칭찬할 일에도 화를 내고 화를 낼 일에도 칭찬을 해. 한마디로 미친 척해야 날 무서워하지”라고 말하며 그는 씩 웃었다. 이수태의 <어른 되기의 어려움>에 나온다. 약속과 기대의 체계인 규범과 권력의 발생 기제가 가지는 관계를 보여주는 좀 섬뜩한 이야기다. 법치주의는 영미법계에서는 법의 지배 원칙에, 대륙법계에서는 법치국가 이론에 바탕을 두고 발전해 왔다. 어느 것이든 그 기본적 이념은 자의적인 권력 행사의 제한에 있다. 17세기 영국의 대법관 에드워드 코크는 국왕 제임스1세와의 논쟁에서 “왕이라 하더라도 신과 보통법 아래에 있다”라고 말했다. 법의 지배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은 사람에 의한 지배다. 하지만 민주정은 사람을 믿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플라톤이 말한 “가장 좋은 법보다도 훌륭하게 통치할 수 있는 특출한 사람” 따위는 본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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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아첨 아첨은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리는 행위다. 아첨을 칭찬과 구별하기는 쉽지 않지만, “아첨은 감추어진 동기에서 듣기에만 좋으라고 과장되거나 거짓된 말을 하는 것이고, 칭찬은 듣는 이에게 인생의 긍정적 면을 보도록 격려해 주는 말이다”라는 풀이가 근사하다. 감추어진 동기란 무엇인가. 이솝 우화에서 교활한 여우가 멍청한 까마귀에게 노래를 청하는 숨은 이유는 까마귀가 물고 있는 치즈에 있다. 아첨은 본질적으로 속임수다. 아첨에도 급수가 있다. 로마 황제 네로는 무지한 폭군이지만 자칭 시인이고 가수다. 신하들 앞에서 자작시를 낭송하자 다들 감탄하느라 바쁜데, 오직 페트로니우스만 평범하다는 평을 내렸다. 어떤 결점이 있는지 지적해 달라는 네로의 요구에 페트로니우스가 엄숙하게 답한다. “오비디우스나 베르길리우스, 심지어 호머마저도 그들이 이 시를 썼다면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하지만 폐하는 그러실 수 없습니다. 폐하께선 세상이 이제껏 보지 못한 걸작을 창조할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더 노력하셔야 합니다.” 네로가 말한다. “신은 짐에게 뚜렷한 재능을 주시고, 또 진정한 비평가 친구를 내려 주셨도다.” 시엔키에비치 원작인 <쿼바디스>의 영화 시나리오에 나온 이야기인데, 아첨도 이 정도는 돼야 고수다. 아첨인지 칭찬인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이런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