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정
전환연구자
최신기사
-
정동칼럼 기후정치와 녹색정의당 5일 4·10 총선 사전투표가 시작된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것이 떨어지는 지점에 따라 4년간 한국 사회의 지형도 달라진다. 정권심판론으로 점철된 이번 선거의 절정은 ‘3년은 너무 길다’라는 원색적 구호만으로 일약 제3당이 예상되는 조국혁신당의 선전이다. 불의하고 무능한 정권을 중단시키거나 무력화하는 것도 중요한 정치적 선택이니 이를 섣불리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 제3당 지위에서 밀려난 녹색정의당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녹색정의당은 지난 2월 초 정의당과 녹색당의 선거연합정당으로 만들어졌다. 선거가 끝나면 사라지는 위성정당과 달리 선거연합정당은 각자 당으로 돌아간다. 이념을 공유하는 소수정당이 거대양당 중심의 국회에 진출하기 위한 유럽식 선거전략으로 21대 국회에서 6석으로 제3당인 정의당이 당명을 임시로 바꿔 플랫폼을 제공한다. 두 당이 잠시라도 합치는 데 잡음도 많았다. 정의당은 비례 1번 류호정 의원의 행로가 보여주듯 하염없이 분열하는 상태였고, 창당 10년이 넘게 원외 정당에 머문 녹색당도 ‘정치공학’에 대한 내부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
정동칼럼 정치권 녹색분칠 주의보 “서울시가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25% 감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14%에 그쳤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2022년 사업달성률은 117%로 집계됐네요. 서울의 이산화탄소 배출원은 주로 건물(66.5%)과 교통(18.1%)이어서 건물의 그린 리모델링이 시급합니다. 서울시는 2050년까지 401개 공공건물의 그린 리모델링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는데 2023년 리모델링 예산을 한 곳만 배정했어요.” 지난 4일 서울시가 마련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2024~2033)이 발표된 자리에서 상현 기후위기대응서울모임 대표가 지적한 내용이다. 서울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2033년 50%, 2040년 70%, 2050년 100% 줄여 탄소중립을 달성할 계획이다. 앞서 2020년 25%를 감축한다는 목표는 물 건너갔지만 다시 계획을 세우면 2033년 절반을 줄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개인들도 스스로 이루지 못할 계획을 세웠다가 실패하고 다시 세우는 과정을 반복하니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건 그렇다 치자.
-
정동칼럼 개, 소, 산천어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Leave the World Behind, 감독 샘 에스마일)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 2023년 11월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인기 영화인데 제목은 “세상을 뒤로하고 떠나라”, 즉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마음껏 휴가를 즐겨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 과연 영화는 중산층 뉴요커 부부(줄리아 로버츠, 에단 호크)가 아들과 딸을 데리고 지친 일상을 뒤로한 채 해변의 고급저택을 빌려 휴가를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번잡한 도시와 평화로운 자연, 쾌적한 승용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면 이어지는 두 세계다.
-
정동칼럼 폐교와 도시의 시골화 합계출산율 0.7명을 밑도는 인구감소는 비단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에서도 학생 수 감소로 폐교가 생기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38만명인 초등학생 수가 2028년이면 28만명으로 감소한다. 중고등학생까지 합치면 같은 기간 80만명에서 68만명으로 줄어든다. 자연히 학급 수와 학급당 학생 수가 적어지는 것을 넘어 폐교가 나온다. 서울시내 학교 수는 1300여개인데 이 중 학교 통폐합으로 인한 폐교가 40여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에는 여전히 과대학교(1200명 이상)와 과밀학급(28명 이상)이 19%이지만 전교생을 합쳐 300명 이하인 과소학교가 13%에 이른다.
-
세상읽기 지금 영성이 필요한 이유 올해의 수확이라면, ‘영성’이라는 단어와 조금 가까워진 것이다. 불교학자 조성택 선생님, 기독교학자 정경일 선생님의 권유와 도움으로 <영성이란 무엇인가>(원제 Spirituality, 필립 셸드레이크 지음, 불광출판사)라는 짧은 책을 번역한 것이 계기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교양 시리즈(A Very Short Introduction)의 한 권인데 나 역시 영성에 대해 막연히 “어렵다” “나와는 상관없다”라는 생각을 해왔기에 영성이 무엇인지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번역을 맡게 되었다. 종교학자인 저자는 영성에 대해 ‘인간 정신이 최대한의 잠재력을 갖기 위한 전망을 구체화한 생활방식과 수행’이라고 정의하지만, 사실 영성에 대한 서로 다른 스물일곱 가지 정의가 있다는 연구도 있다. 그래서 영성 자체를 정의하기보다 영성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살펴보는 저자의 선택은 영리하다. 역사상 존재했던 다양한 영성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
세상읽기 기후정치란 무엇인가 오로지 윤석열 심판이 되어버린 총선, 어색하면서도 신선한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등장,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정치판의 규칙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준석 달래기,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서울시 김포구’ 구상, 가뜩이나 대안보다 반대만 돋보였는데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허를 찔린 야당…. 언제나 ‘다이내믹’했지만 총선을 5개월 앞둔 정치판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이런 게 정치라면 ‘정알못’으로서 그저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는 점점 자극적이고 속도가 빨라지는 게임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대부분 주권자들의 관심 밖에서 ‘기후정치’라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
세상읽기 이제 막을 내리는 하루키 월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나왔다. 1990년대 초반부터 30년 동안 하루키 소설을 따라 읽어온 터라 이번에도 습관처럼 책을 주문했고, 760쪽 분량이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이틀간 계속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나처럼 오래된 독자들 때문인지 혹은 ‘하루키’라는 이름이 여전히 새로운 독자들을 끌어들이는지, 이 책은 예약판매 단계부터 3쇄라는 기록을 세웠을 뿐 아니라 두 달째 주요 서점의 문학 부문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49년생으로 올해 74세인 하루키는 극렬한 학생운동 세력인 ‘전공투 세대’로서 폭력적 집단주의에 반발해 개인의 내면과 일상에 천착했다. 너무 강한 빛을 보면 사물의 윤곽이 겹쳐 보이는 것처럼 ‘하루키 월드’에는 늘 착시와 환상이 함께했고, 그 속에서 삶을 지탱해주는 건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면서 찬찬하고 정성스럽게 일상을 꾸리는 일이었다. 그의 소설이 주는 위로는 슬프고 부조리한 현실로부터 비켜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곳에서는 비록 상처받고 연약한 존재일지라도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은 끊어질 듯 이어진다.
-
세상읽기 경제위기? 나는 반대일세 지금 윤석열 정부는 시대착오적이다. 독립영웅 홍범도 장군을 끌어내리고 일본 제국주의 하수인 코스프레를 한다. 해방정국의 극우파가 되어 공산전체주의를 비난하더니 6·25전쟁 직후의 일본인 양 우크라이나에 가서 재건사업 참여를 약속받는다. 군부독재 시절 안기부를 대체한 검찰 공포정치를 펴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 때 활동했던 이전 정권 청산의 선수들이 등장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언급하며 선진국 노릇을 한다. 지난 한 세기를 넘나드는 ‘의식의 흐름’에 어지러울 따름이다. 이렇게 극적이지는 않아도 더불어민주당 역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뜬금없고 진정성을 의심받는 단식투쟁을 하는 동안, 지지세력은 과거 민주화를 위해 단식했던 YS, DJ와 자꾸 비교한다. 민주화 투사라는 화려했던 과거로의 귀환을 꿈꾸는 일종의 퇴행이다. 양쪽 모두 전성기의 추억에 의존할 뿐, 지금 시대와 상관없는 매너리즘의 정치를 하고 있다.
-
세상읽기 한국과 일본, 그 질기고 불평등한 역사 여름이 너무 길고 혹독하다. 에어컨을 틀었다 껐다 하며 실내에서 견디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차라리 자동차를 타고 어딘가 가보자는 마음이 생긴다. 평소에는 거의 다니지 않는 고속도로를 타고 대구와 군산에 다녀오게 된 이유이다. 대구는 ‘대프리카’라는 별명처럼 정말 더웠다. 어렸을 때 외가가 있었지만 철든 다음 대구에 가보기는 처음이다. 뉴스에 많이 나오는 서문시장부터 방문했다. 서울의 대형 재래시장은 고층건물로 재개발된 데 비해 서문시장은 옹기종기 모인 점포들이 끝없이 펼쳐진 모습이 이채로웠다. 근대 이전부터 경상도의 물산이 모이던 곳이라 규모가 상당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다녀간 떡볶이집, 윤석열 대통령이 다녀간 칼국수집은 문전성시였다.
-
세상읽기 ‘독립연구자’ 신승철·정태인을 기리며 많은 죽음이 이어지는 혹독한 여름이다. 산사태에 묻히고 거센 물살에 스러진 분들, 수색 작업 중 젊디젊은 나이에 생을 다한 애달픈 해병대원의 영전에 꽃을 바친다. 그들과는 다른 두 사람의 삶과 죽음, 그들이 남긴 의미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한 사람은 생태철학자 신승철(1971~2023)이다. 평온하던 일요일(7월2일) 오후, 그의 이름으로 온 문자메시지에 본인 부고가 떴다. 폐동맥혈전색전증으로 인한 급성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와는 몇 차례 통화하고 화상회의와 거리에서 마주친 인연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원고지 25장의 글을 청탁했는데 A4용지 25장을 써놓고 너털웃음을 짓던 일, 첫 통화에서도 오랜 지인처럼 편안했던 어조가 기억에 남아 못내 가슴이 아팠다.
-
세상읽기 공교육의 가치를 물어야 할 시간 ‘킬러 문항’이 공개되면 누구나 분노에 치를 떨게 될 것 같다. 며칠 전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이사장이 “변호사도 풀지 못하는 문제”라면서 공개한 내용을 보고 나도 그랬다. “갑 은행이 어느 해 말에 발표한 자기자본 및 위험가중자산은 아래 표와 같다. 갑 은행은 OECD 국가의 국채와 회사채만을 자산으로 보유했으며 바젤Ⅱ협약의 표준 모형에 따라 BIS 비율을 산출하여 공시하였다. 이때 회사채에 반영된 위험 가중치는 50%이다. 그 이외의 자본 및 자산은 모두 무시한다.” 이런 설명과 수치를 제시하고 ‘갑 은행이 보유 중인 회사채의 위험 가중치가 20%였다면 BIS 비율은 공시된 비율보다 높았겠군’ 등의 5개 보기를 주면서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라는 2020년 수능 국어 문제였다.
-
세계 녹색정치 생생한 경험담 들어보실래요? 2023 세계녹색당총회(Global Greens Congress)가 지난 8일(목)부터 11일(일)까지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렸다. 2001년 호주 캔버라 총회를 시작으로 브라질 상파울루(2008), 세네갈 다카(2012), 영국 리버풀(2017)을 잇는 다섯 번째 총회이자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린 행사이다. 세계 100여 개국의 녹색 정당 소속 정치인, 활동가 등 700여 명(해외 350여 명, 국내 350여 명)이 현장 참여했으며 온라인으로 실시간 중계됐다. 녹색당은 유일하게 전 세계 네트워크를 가진 정당으로, 직접·참여·풀뿌리 민주주의, 비폭력 평화, 사회정의, 지속가능성, 다양성 옹호, 생태적 지혜 등 여섯 가지 가치를 공통 강령으로 채택한다. 한국녹색당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 이듬해인 2012년 고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인의 주도로 창당해 올해로 12년째를 맞는다. 세계 최초의 녹색당인 호주 태즈메이니아녹색당이 창당한 1972년보다 40년 늦었다. 공업과 무역 중심의 경제성장을 추구해온 한국에서 녹색 가치, 녹색 정당이 자리 잡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