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윤정
생태문명원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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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광장에서 우는 이들에 보내는 위로 3월에 내린 폭설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장관을 보면서 뜬금없게도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떠올렸다.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2연은 국어교육을 받은 대다수 국민이라면 쉽게 읊조리는 구절이다. 이어서 유장하게 펼쳐지는 전체 11연은 아름다운 모국어의 향연이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4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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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개헌이라는 시금석 시민사회의 개헌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달 31일 헌정회에서 열린 헌법개정 추진 단체 간담회에는 20곳이 참여했다. 비상계엄 상황은 물론 경제·기후환경·안보 등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헌법개정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함께하는 단체들이다. 대통령과 의회의 권한 분산, 지역대표형 상원제를 통한 지방분권, 헌법개정 국민발안제를 주요 의제로 설정하고 탄핵이 인용되면 대선과 동시에,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2026년 6월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하자는 데 동의한 8곳(대한민국헌정회, 대화문화아카데미 등)이 먼저 ‘헌법개정추진 연석회의’를 구성했다. 다른 20여개 시민단체도 오는 24일 ‘국민주도상생개헌본부’를 출범시켜 1000인 선언을 시작으로 개헌운동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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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민주주의와 자연의 역습 모든 동료시민들에게 “안녕하시냐”고 묻고 싶다. 어떻게 해가 바뀌었는지, 새해에는 무슨 계획을 세워야 할지 도무지 가늠하기 힘든 상태로 2025년을 맞이했다. 지난해 12월3일 밤에 시작된 계엄 선포와 헌정질서 파괴에 대한 수습은 43일째인 오늘까지 지지부진한 채, 윤석열 체포라는 중간 고비를 넘었을 뿐이다. 광장에서는 희망과 실망이 오가고 운동 차원에서는 포스트 윤석열 시대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거대 양당은 이를 관망하면서 이해득실을 계산하고 있다. 사태가 진정되기를 지켜보는 게 어느덧 지루하면서도 터질 게 터졌고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한 상태로 가기보다는 한국 민주주의의 전화위복이 될 거라는 기대가 더 높다. 무엇보다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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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다시 시작된 민주주의 실험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윤석열은 이런 명패를 집무실 책상 위에 두고 있다고 자랑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책임하고 가장 위험한 인물이 되었다. 이제 자신의 말처럼 모든 책임을 져야 할 시기가 왔다. 취임 이후 워낙 독선적인 태도로 비정상적인 일을 계속 벌여왔지만 그의 최후가 이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김건희, 명태균과 얽힌 일로 말미암아 특검 수사를 받고 탄핵당할 거라는 평범한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도 일주일 넘게 현직 대통령으로 남아있는 그가 어떤 일을 도모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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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드릴, 베이비, 드릴’ 그리고 ‘먹사니즘’ 트럼프가 취임 첫날 가장 먼저 서명할 행정명령 패키지에 파리기후협약 탈퇴가 포함된다고 한다. 오바마가 파리기후협약(2021년 발효)에 가입했다가 트럼프가 탈퇴한 뒤 바이든이 다시 가입했는데 돌아온 트럼프가 다시 탈퇴하는 것이다.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선진국에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했던 교토의정서(2005년 발효) 역시 아버지 부시는 가입을 거부했다가 클린턴이 가입했으나 아들 부시가 탈퇴했다. 아버지 부시는 말했다. “어떤 경우라도 미국인의 생활방식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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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한강과 한국문학이라는 저수지 한강 작가가 올해 121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한국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 역대 일곱 번째 젊은 작가 등 다양한 기록을 세웠다. 지난 일주일 사이 엄청난 반응이 이어졌다. 발표 몇 시간 만에 대부분 작품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더니 엿새 만에 100만권을 돌파했다. 그가 좋아했던 노래, 부친 한승원 작가의 책까지 판매가 급증하는 등 수상으로 인한 경제효과가 10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장흥, 광주, 종로구, 연세대 등 곳곳에 플래카드가 날리고 잔치가 벌어지고 문학관 건립, 석좌교수와 명예박사 제안까지 나왔다. 한국인에게 노벨 문학상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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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기후국회라는 새로운 기회 낮 기온이 30도가 넘고 열대야가 계속되는 특별한 추석 연휴를 경험했다. 이파리가 여려서 강한 햇볕에 녹아버린 시금치는 한 단에 만원이 된 지 이미 오래고 차례상에 올려야 하는 고사리와 도라지도 한 줌에 만원씩이다. 물가는 둘째치고 건강 문제가 심각하다. 오랜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올여름이 앞으로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말은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이렇듯 불길한 더위 앞에서 우리 사회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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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핏자국은 지워지고 혀는 계속 남아 윤석열 정부 이후 광복절은 ‘빛을 되찾은 날’이 아니라 국민이 갈라지고 역사해석에 대한 공통기반이 흔들리는 날이 되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재작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제강점기에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며 국내외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하신 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고 벅차오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이제 함께 힘을 합쳐 나가야 하는 이웃”이라고도 했다. 작년 경축사에서는 일본에 대한 언급을 줄이는 대신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고 한 뒤, 바로 소련공산당 참여 이력을 들어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했다. -
정동칼럼 새로운 세계의 전시장, 파리 올림픽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부자든 가난하든, 평화롭든 전시든 전 세계 206개국이 한자리에 모여 ‘더 나은 세계의 실현’이란 정신에 따라 승부를 겨룬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갈수록 견디기 힘든 한여름에 펼쳐지는 축제는 온갖 고통과 시름을 잊게 해준다. 올해도 선수단 1만5000명의 경기를 연인원 1500만명의 관광객과 전 세계 30억명 이상의 TV 시청자가 지켜볼 예정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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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앞으로 앞으로 가지 않는 사회 마침 6·25여서 그런지 이런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라떼는’ 이야기가 멋쩍지만 1970년대 여자아이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고무줄놀이를 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1950년 9·28 서울수복 직후 명동에서 마주친 작사가 유호와 작곡가 박시준이 서로 무사함을 확인하고 반가운 나머지 밤새 술을 마신 뒤 만든 노래라고 한다. 참혹한 전쟁 와중에서도 승기를 잡았다는 희망이 느껴지는 이 노래를 어렸을 때 우리는 고무줄놀이의 승자가 되겠다는 심정으로 불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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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전환마을을 넘어 전환도시로 영국 여행 중 남서부 데번주에 있는 유명한 전환마을 토트네스와 인접한 다팅턴의 대안대학 슈마허 칼리지를 찾아갔다. 런던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세 시간 걸리는 거리인데 인구 800만명인 런던을 벗어나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완만한 구릉 지대에 끝없이 펼쳐지는 숲과 목초지 그리고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와 양들뿐이다. 인구나 국토 면적이 비슷한 한국의 교외 지역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삶을 지탱하는 도로, 논밭, 창고, 공장, 유원지, 송전탑 등으로 난잡하게 구성된 것과는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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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기후정치가 남긴 숙제 4·10 총선을 앞둔 지난 칼럼에서 녹색정의당의 안타까운 현실을 이야기했는데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 정당 득표율 2.14%로 비례대표 의석 배분 최소기준(3%)을 채우지 못해 한 석도 못 얻었고 심상정 의원을 비롯한 지역구 도전자 17명도 모두 낙선했다. 이 결과는 2004년 민주노동당으로 처음 원내 진출했던 정의당의 역사적 후퇴로 평가되며 진보정치의 모호한 정체성 등 다양한 원인 분석을 낳았다. 그러나 녹색정의당은 노동, 기후, 성평등 정치를 내건 녹색당과 정의당의 선거연합정당으로 좌절의 원인을 정의당의 누적된 문제로만 돌릴 수 없다. 녹색정의당이 전면에 내건 기후정치 측면에서의 복기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