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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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거리두기 AI 시대 러다이트 운동은 가능한가 AI에 의한 실업의 대재앙이란 공포를 확산시켜자신들의 이익을 보존하려는 태도로는 AI 시대의 토네이도를막지 못한다. AI 자동화는 천천히, 분야별로, 미세하게, 그리고지속적으로 침투한다. 그래서 러다이트 운동은 사실 불가능하다.AI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기보다 무조건 반대하는그곳이 토네이도의 취약지임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
이진우의 거리두기 ‘힘의 정치’와 민주주의의 역설 적도 포용할 수 있는 정치적 매력은 언제나 ‘힘’보다는 ‘책임’에 무게를 둔다.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공격서 교훈을 얻는다면, 그건 한국 정치의 현실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힘의 정치’는 책임보다는 힘을 선호함으로써 민주적 가치와 제도를 파괴한다. “깨어나 보니 다른 세계였다.” 2022년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의미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이 말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우리의 정치 현실을 잘 말해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의 지정학적 질서를 바꿔놓았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비교적 오랫동안 지속된 ‘평화의 시기’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떤 갈등도 법과 협약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과거의 죄가 현재를 덮칠 때 과거의 죄가 아무 탈 없이 편안하게 살아온 어떤 사람의 현재를 덮칠 때, 우리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과거의 죄를 용서하고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부여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시는 그런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가? 지난 몇년 동안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직자·유명인·지도자들이 청소년 시절의 폭력·범죄 전력으로 비난을 받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건이 잇따랐다. 법적 처벌을 이미 마쳤고 이후 수십년 동안 사회적으로 기여한 인물들까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과거의 잘못과 허물을 어디까지 현재의 책임으로 돌릴 것인가? 이 오래된 질문이 다시 우리에게 던져졌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혐오 표현’과 민주적 관용 자신에게 불쾌하고 불편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입법 만능주의는 오히려 법을 통해 복원하려 하던 민주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논란이 된 반중 집회를 계기로 특정 집단에 대한 모욕과 명예훼손을 법적으로 제재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특정 국가, 특정 국가의 국민, 특정 인종의 명예를 모욕하고 훼손한 자”는 형벌에 처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이 개정안은 혐오 표현, 집회 구호 등에 대한 사회적 갈등을 배경으로 제안된 것으로 현행 형법상 피해자를 특정인으로 한정한 것을 “특정 국가와 국민 그리고 인종” 등 집단으로 확대하려고 한다. 그러나 혐오 표현을 법적으로 강하게 금지할 경우 오히려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공공 문제를 자유롭게 논의하는 시민의 능력 자체가 약화할 위험이 있어 이 법안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합법 독재’의 어두운 그림자 “왕의 목은 단두대에서 잘렸지만, 왕의 통치 방식은 살아 있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여겨지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만천하에 공표한 프랑스 대혁명은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처형하고 공화국을 선포함으로써 절대왕정이 지배하던 ‘앙시앵레짐’, 즉 구체제를 전복했다. ‘왕의 목’은 어떤 견제도 없이 정치권력을 집중화한 권력 체제를 상징한다. 절대군주인 왕이 사라지면 인민의 삶이 좋아질 것이라는 혁명의 약속과 기대는 빗나갔다. 프랑스 혁명이 구체제를 무너뜨린 후 공화정, 제정, 군주정으로 국가 체제가 바뀌며 불안한 정치 상황이 지속됐다. 사실상 독재자로서 프랑스를 지배했고 숙청을 통한 공포정치로 많은 반대파를 단두대로 보낸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단두대의 희생양이 되었다. 왕이 사라지고, 왕의 자리에 수많은 다른 정치 지도자들이 어떤 이름으로 등장하건 ‘통치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위협하는 ‘구체제’는 여전히 지속된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민생쿠폰은 정말 민생을 살리는가 돈이 없어도 소비를 하면 할수록 돈이 생긴다는 경제 이론이 있다. 터무니없는 소망처럼 들리지만 사실 한때는 효과가 있었던 케인스 경제학의 기본 전제이다. 수요와 공급을 통해 움직이는 시장은 자율적으로 균형을 이루지 못하므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총수요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가 위축되어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면 시장은 더욱 나빠진다. 경제 침체기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경기순환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 개입에 정당성을 제공한 것이 바로 케인스 경제학이었다. 정부가 재정 지출을 확대하거나 중앙은행이 ‘양적 완화’라는 전례 없는 정책을 통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실 이 이론은 20세기 중반 이후 대공황 탈출, 전후 재건, 1970년대 전까지의 자본주의 황금기에는 유효했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도대체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왜 필요한가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은 폐지되어야 한다.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부부와 윤미향·최강욱 전 의원,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등 2188명에 대한 광복절 특별사면과 복권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사면이 이루어졌다”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은 국민통합이라는 시대 요구에 부응하고, 민생경제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한 법무부의 사면안에 공감했다”고 맞받았다.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우리 사회의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특별사면이 어떻게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 민생회복 사면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과연 국민통합을 가져올 것인지도 적이 의심된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서울대 10개’의 함정 “현실을 무시한 이념은 스스로 웃음거리가 된다.” 기억을 바탕으로 쉽게 재구성한 마르크스의 이 말이 떠오른 것은 이재명 정부가 핵심적 교육 정책으로 추진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때문이었다. 이념은 현실 속의 문제와 모순을 해결하고 도달해야 할 목적과 방향을 제시한다. 바람직한 미래 사회에 관한 이상 없이 어떻게 현실을 개혁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념은 현실을 해석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현실 속에서 실천으로 나갈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 이론이나 이념이 현실과 단절되어 있으면 무력하며 오히려 현실의 물질적 조건 속에서 이념이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어려운 시기에 출범한 이재명 정권은 이념을 버리고 경제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이제까지의 행보를 보면 민생과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과 노력이 실용주의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깔딱고개를 넘어가는 것 같다”고 표현한 것처럼 우리의 경제 상황은 실제로 어렵고 심각하다. 경제의 위기가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구조조정을 제때 하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대미 무역 흑자를 보고 있는 모든 나라에 선포한 트럼프의 관세전쟁 탓인지 아니면 시장경제의 논리를 왜곡한 정치의 지나친 간섭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국민의 경제적 삶이 팍팍한 것은 사실이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감정적 투표’는 정권을 부패시킨다 우리나라가 진짜 민주공화국인지 그리고 민주공화국으로 남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투표일이 다가왔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에 명시된 이 문장은 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치인들의 입에 자주 오른다. 이 말을 빈번히 사용하면 할수록 입에 발린 상투어가 되는 역설은 모호한 상징성 때문이다. 이 말이 구체적인 현실에서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오직 ‘투표’뿐이다.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혁명과 쿠데타가 원천적으로 배제된 민주 사회에서 정권을 갈아치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투표이다. 현대적 혁명은 오직 투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탄핵 이후, 정치 혁명을 바란다 탄핵이 끝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위기에 빠뜨렸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었지만, 계엄 사태를 유발한 정치 구조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거의 예외 없이 느끼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갈등은 봉합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국민이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 꼽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대립은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고 있으며, 정치인들은 선거철마다 염불처럼 외우는 사회통합은커녕 갈등을 오히려 부추긴다. 대립하면 할수록 유리하다는 기괴한 공식에 감염된 도착적 정치 문화가 지속되는 한 헌정 위기는 끝나지 않는다. -
이진우의 거리두기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 정치가 실종되고 온통 법률만 따지는 사회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사회다. 사람들은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법치주의로 이해하고, 모든 것을 법에 따라 해결하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생각한다. 오해이고 착각이다.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에서 양날의 칼이다. 법 규범의 내용이 이성적이고 입법 과정이 정당하고 법 운용이 합리적이라면, 민주주의는 실제로 ‘법의 지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역사적 사례와 현재 신권위주의 정권에서 볼 수 있듯이 법은 국민보다 독재자의 이익에 맞게 설계될 수도 있다. 법률 시스템은 엄격한 절차를 따르지만, 그 법률이 비이성적이거나 억압적이거나 선택적으로 시행된다면 여전히 부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법치주의가 그 자체로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