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정
북유럽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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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화성 꼰대, 금성 MZ ‘언어 소통법’ 2020년 1월부터 2022년 6월까지 4주에 한 번씩 썼다. 마지막 칼럼을 무슨 주제로 쓸지 고민했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나의 가족이 주문하길, 비판은 여기저기 넘쳐나니 희망을 주는 칼럼을 쓰라고 했다. 그리하여 마지막은 여태껏 썼던 모든 칼럼보다 생산적이고 담대한 제안을 담기로 결심했다. 우리 사회의 묵은 과제 중 하나인 세대통합을 이루고 요즘 여러 군데서 지적하는 젊은 세대의 신조어 사용과 문해력 약화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 방안이다. 요즘 아이들끼리 하는 말을 들으면 번역기가 필요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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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안보 제일주의에 길 잃은 이상주의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한다. 두 나라의 가입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고수해온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는 대한민국도 중립을 선언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중국과 일본,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작은 나라로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중립국으로 남으면 전쟁도 피해 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소국으로 열강 어디에도 끼어들지 않고 누구 편도 들지 않는 중립은 실리적이고 편리한 개념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 국가의 중립은 선언만으로 이루어지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중립의 지위가 보이지 않는 갑옷처럼 전쟁을 막아주지도 않는다. 인간관계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얽히고설킨 국가 간 역학과 경제적 의존도를 떠나 중립을 선언하는 것이 어찌 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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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노동이사제, 스웨덴과 한국의 길 “글쎄요. 저는 구 경영진과는 단 한 번도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해본 적도, 인사조차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매일 회사 앞에서 수년을 출근 투쟁했지만 눈 한번 마주친 적 없는 분들이라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내놓고 ‘나는 네가 이래서 싫다. 너의 문제점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해주시면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설명이라도 했을 텐데 37년을 그런 자리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런 점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어느 날 퇴근길 라디오를 듣는데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1981년 ‘한국 1호 여성 용접공’으로 HJ중공업(구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했던 그는 1986년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부당한 부서 이동을 당했고 이에 반발해 무단결근을 했다가 해고됐다. 이후 37년간 그의 인생은 소송과 투쟁으로 점철되었다. 굽이굽이 힘들었을 그의 삶을 논하거나 잘잘못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인터뷰를 들으며 한 장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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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다양성과 포용성이 중요한 이유 스웨덴의 웁살라대학교를 다닐 때 일이다. 국제경제 수업시간이었다. 유엔에 근무하며 인도에 파견을 다녀온 졸업생이 안드라프라데시 지역의 농민 자살 추이에 대한 발표를 했다. 과거 해당 지역에 국제자본이 들어가 쌀농사를 면화로 바꾸는 가운데 농민 다수가 대규모 대출을 받게 되었다. 흉작이 이어지면서 대출을 갚지 못해 이자가 붇자 채무 압박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농민의 수가 매해 늘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총리가 방문해 부채를 부분 탕감해 주고 가장이 자살한 가정에는 추가로 위로금을 지급했다. 이후 자살하는 농부의 수는 더 늘었다. 자신이 떠나면 남은 가족이 위로금이나마 더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더 많은 이가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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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우크라의 젤렌스키 선택은 옳았다 2018년 10월, 노르웨이 북쪽 해역이 각종 무기와 병력으로 뒤덮였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합동군사훈련이었다. 5만여 병력, 항공모함을 포함한 함정 65척, 전투기 250대, 장갑차 등 전투차량 1만대가 투입됐다. 냉전 종식 이래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29개 나토 회원국에 중립국인 스웨덴·핀란드도 참여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북극해에 미군의 항공모함이 등장한 것은 30년 만이었다. ‘나토 회원국인 노르웨이 해안에 적군이 상륙했다’는 가정하에 이뤄진 훈련으로 가상의 적국은 러시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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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품격 있는 정치인’이 그립다 지난주 대선 후보 토론회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보수의 무기는 유능이고 진보의 무기는 도덕성이라는데 양쪽 모두 무기가 없다. 어렵사리 열린 토론에서 보고 싶었던 철학과 비전은 찾아볼 수 없었고 지식 대결, 말꼬리 잡기, 무례한 태도가 시시때때로 등장해 불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바른 정치인이 되려면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주요 후보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자니 서생의 현실감각에 상인의 문제의식을 지닌 듯했다.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없고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겸손도 없었다. 얄팍한 지식으로 거침없이 만기친람 하려는 모양새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그뿐인가? 후보 본인과 가족에 대한 갖가지 의혹은 믿기 힘들 지경이다. 프랑스 철학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국민은 그 수준에 걸맞은 정부를 갖는다’고 했다. 이리저리 떠올려봐도 주변에 비슷한 부류가 없는데 우리 수준이 정말 이 정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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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족스럽죠 나이 탓인가? 새해를 맞았는데 감흥이 없다. 어렸을 적에는 새해 첫날이면 올해 어떤 일이 생길지 기대가 가득해 설레기까지 했다. 나이를 먹어가며 설렘은 사라졌지만 나름의 계획과 희망으로 새해를 맞았었다.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무덤덤하다. 지난해만 해도 코로나19 상황이 좀 나아지려나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팬데믹 3년차가 되고 보니 마스크 없이 살던 때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고 그저 ‘새해가 별 건가 그냥 또 다른 한 해지’ 싶다. 코로나19로 미뤘던 계획도 이젠 코로나19를 상수로 두고 세우지 않으면 평생 계획으로만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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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진정한 성평등의 길 반했다.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성가 덕임에게 홀딱 반했다. 성덕임은 조선시대 궁녀다. 밝고 영리한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주도적이다. 위태한 처지에서도 자신이 섬기는 세손 이산을 지키고자 나서고 권력자 앞에서도 당당하게 의견을 말한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도 덕임에게는 해당이 없다. 경쟁자도 품을 줄 아는 덕임은 상대를 배려하고 의리를 지킨다. 성별을 떼고 보아도 매력적인데 사극 속 여성으로는 흔치 않은 인물이라 더욱 눈이 갔다. 중전이 되면 칭찬이 자자할 테고 왕이 되어도 성군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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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한국과 북유럽, 공정의 길이 달랐다 매년 11월 초 핀란드 국세청은 납세 정보를 공개한다.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 스타 같은 유명 인사는 물론 평소 궁금했던 동료의 연봉이나 얼마 전 차를 바꾼 이웃의 소득까지 알 수 있다. 물론 남이 나의 소득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노동소득인지, 자본소득인지도 나온다. 국세청이 공개한 고소득자 명단을 보며 느끼는 감정 탓일까, 핀란드 사람들은 이날을 ‘질투의 날’이라고 부른다. 이웃 나라 노르웨이, 스웨덴에도 같은 제도가 있다. 북유럽에서 부자는 세금뿐 아니라 벌금도 많이 낸다.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의 국가는 교통법규를 위반할 경우 운전자의 소득을 기준으로 벌금을 매긴다. 일수벌금제라고 하는데 위반자의 일수, 즉 하루 평균 소득 절반을 기준으로 위반 내용에 따라 매겨진 범칙금을 곱해서 계산한다. 스파이더맨의 대사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가 북유럽식 일수벌금제를 잘 설명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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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청년사장들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 BC(Before Corona) 2년경 그러니까 2018년 즈음, 서울 을지로 세운상가에 맛있는 커피집이 있다고 해서 들렀다. 호랑이 카페. 가게 앞은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무리와 커피잔을 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유명하다는 호랑이 라테를 시켰다. 라테가 별다를 게 있을까 싶지만 에스프레소 샷은 고소하면서 진하고 우유는 달큼하고 부드러워 한 모금에도 유명한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어느 날 한산한 틈을 타 사장님에게 말을 붙였다. “여기는 원두도 좋고 우유도 보통 우유가 아닌 것 같은데 한 잔에 3500원, 정말 좋네요.” 그러자 무덤덤한 답변이 돌아왔다. “저희는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서 입주했기 때문에 좋은 재료를 쓰고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어요.” 바로 옆 구움양과집에 물었을 때도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신선했다. 보통 이런 질문을 하면 자신이 얼마나 좋은 재료를 쓰는지, 남다른 맛의 비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말한다. 그런데 세운상가의 젊은 사장들은 꾸민 듯 겸손하지도 반기듯 친절하지도 않았다. ‘드셔 보시면 압니다’가 다인 양 자신을 특별히 부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공공지원의 덕이라며 공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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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기업도 착해야 살아남는다 “일본의 중추 대부분을 코리안계가 차지하고 있어 위험하다”, “(한국인은) 숨을 내쉬듯 거짓말하는 성격”.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는 일본기업 DHC의 요시다 요시아키 회장의 말이다. DHC가 만드는 간행물과 인터넷 방송에서도 혐오 발언과 역사 왜곡이 여과 없이 쏟아졌다. 지난달 아사히 신문에 흥미로운 기사가 났다. 핀란드의 인기 캐릭터인 ‘무민’ 쪽에서 일방적으로 DHC와의 계약 중단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무민은 북유럽 숲속에 사는 트롤이다. 하얗고 포동포동한 하마처럼 생겼다. 작가인 토베 얀손은 2차대전 당시 전쟁의 공포를 잊기 위해 아름다운 숲속에서 낙천적이고 평화롭게 사는 무민 가족을 그렸다. 이후 무민은 동화책과 만화, 영화로 제작돼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 각지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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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잘 가요, 야콥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가 3년의 임기를 마치고 돌아간다. 할그렌 대사는 분쟁조정 전문가로, 부임 전 스웨덴의 외교정책 싱크탱크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부소장으로 일했다. SIPRI는 북·미 정상회담의 사전 조율을 주관한 기구다. 임기 중 한국·스웨덴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양국 정상의 국빈 방문이 있었고, 남·북·미 정상회담 준비에도 관여했으니 첫 부임지에서 알찬 임기를 보낸 셈이다.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면 그사이 주름이 부쩍 늘었는데 일 때문이 아니라 “한국이 너무 아름다워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다녀서”란다. 임기를 연장해 좀 더 머물고 싶었지만 가족회의를 통해 스웨덴에 돌아가기로 결정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그간의 노고에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이제 한동안 못 보게 된다니 섭섭함이 앞선다. 할그렌 대사도 범죄소설 애호가라 책 이야기만으로 한두 시간 훌쩍 보내는 친구이기도 했고, 서로의 문화에 대해 의견을 솔직하게 주고받는 동료이자 스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