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제일주의에 길 잃은 이상주의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한다. 두 나라의 가입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고수해온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는 대한민국도 중립을 선언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중국과 일본,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작은 나라로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중립국으로 남으면 전쟁도 피해 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소국으로 열강 어디에도 끼어들지 않고 누구 편도 들지 않는 중립은 실리적이고 편리한 개념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 국가의 중립은 선언만으로 이루어지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중립의 지위가 보이지 않는 갑옷처럼 전쟁을 막아주지도 않는다. 인간관계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얽히고설킨 국가 간 역학과 경제적 의존도를 떠나 중립을 선언하는 것이 어찌 쉬울까?

중립은 쉽게 말해 스스로 ‘왕따’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무리에서 힘이 세고 싸움 잘하는 아이가 ‘나 건들지 마’라고 하는 것과 약한 아이가 하는 말은 무게가 다르다. ‘나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겠다’라는 말을 강자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약자가 그렇게 말하면 당장 주변에서 “너 누구 편이냐?”며 추궁할 것이다. 국제 관계에서 중립이라는 것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동시에 내 편도 없다는 뜻이니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힘이 세든지, 주변 모두가 중립을 허락하든지 둘 중 하나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각각의 예다. 스웨덴은 19세기 나폴레옹 전쟁에서 영토의 일부를 잃은 이후 중립을 이어왔다. 스웨덴은 북유럽 안에서는 강국이지만 유럽 전체로 확대해 보면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데다 척박한 땅과 기후 때문에 주변 강대국의 관심에 비켜 있었다. 그 덕에 중립을 지키기가 비교적 수월했다. 각종 분쟁에는 군사 개입 대신 인도적 지원만 해왔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에도 의료지원단만 보냈다.

1960년대 올로프 팔메가 스웨덴 정치의 중심에 등장하면서부터 중립의 개념이 달라졌다. 스웨덴은 위기 상황에 침묵을 지키는 것이 아닌 상황에 적극 개입해 약자와 연대하는 적극적 중립 외교를 펼치기 시작했다. ‘힘없이는 중립 없다’는 신념으로 군사력 증대에도 힘썼다. 스웨덴식 중립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지만 인류애의 관점으로 할 말은 하며 열강에 대응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도 원칙적 중립을 견지하는 스위스식 기계적 중립과는 다르다. 지금도 스웨덴은 국제 외교 무대에서 각종 분쟁 중재에 앞장서고 있으며 이는 스웨덴의 자랑이기도 하다. 환경, 인권 등의 분야에 있어 스웨덴은 국가의 크기보다 훨씬 큰 발언권을 갖는다. 한때 스웨덴을 두고 ‘도덕 강대국’이라고까지 칭할 정도였다.

핀란드는 1939년 소비에트 연방과의 전쟁으로 영토를 잃고 난 후 중립을 견지했다. 여기에는 핀란드의 의지라기보다 소련의 의지가 더 크게 반영됐다. 미국이 나토를 통해 유럽 안에 동맹을 늘리며 숨통을 죄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은 핀란드를 일종의 완충지로 두고 싶어 했다. 핀란드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른 이후라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지 않는 조건으로 중립의 지위를 유지했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이래 해법의 하나로 ‘핀란드화’가 등장했다. 국제정치학에서 핀란드화란 약소국이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서 종속적 자세로 주권을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1948년 소련과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을 맺은 핀란드는 자국의 이익을 양보하며 러시아의 영향 아래 머물렀다. 꼭 비판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 것이 핀란드화는 초강대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작은 국가의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

적극적 중립을 펼쳐온 사민당 정권이 오랜 전통을 폐기하고 나토 가입을 선언한 것은, 핀란드가 러시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나토에 가입하는 것은 그만큼 러시아에 대한 불안이 크다는 방증이다. 핀란드는 과거 소련과 두 차례 전쟁을 겪으며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생존자들이 지금도 살아 있으니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이 나토 가입으로 이어진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스웨덴의 결정은 다른 의미에서 시사점이 있다. ‘중립’으로 상징되는 사민당의 노선 즉 당의 정체성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켜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다. 스웨덴은 과거 자유시장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두 가치를 절충한 사민주의를 펼쳤다. 수정주의니 개량주의니 하는 외부의 비판에 휘둘리지 않고 이상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했다. 민주주의는 시대에 따라 진화한다. 야만의 시대에 안보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고, 이상주의는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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