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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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최대한의 기적을 어린이에게 반짝거리는 불빛을 보면 두근거린다. 작은 일에 눈시울이 촉촉해지기도 하는데 찬바람 때문만은 아니다. 실수에 조금 더 너그러워진다. 한 해의 끝인 12월은, 크리스마스는 그런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이즈음이면 다들 불행보다 다행을 기억하면서 연말을 맞이한다. 크리스마스를 다행으로 만들고자 누구보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어린이다. 어린이는 꿈이 많지만 그 꿈은 대개 “다음에 해줄게”라는 아쉬운 말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는 다르다. 진짜가 아닐 거라고 생각한 일이 진짜가 되는 것, 이것이 크리스마스가 어린이에게 주는 기대감이다. 1년은 365일인데 하루쯤 기적을 바라는 날이 있어도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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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수수께끼의 능력자들 수수께끼를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등하굣길이 길었던 초등학교 때 친구와 함께 태양이 낮아지는 골목을 걷다가 말도 안 되는 문제를 내곤 즐거워했다. 출제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오답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수수께끼가 지루해지면 우리는 함께 무슨 복잡한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은 대개 현실에서 실행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골목의 회합에는 검토할 줄 모르는 제안자들만 있었기 때문에 사업의 추진을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후회는 어른이 된 뒤에나 하는 것이었고 우리들은 순간의 발견에 몰두하면 그만이었다. 그래서인지 무심코 한 뼘씩 커지는 자기 자신을 겁내지 않고 다음 학년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자라나는 사람들에게 후회를 먼저 가르치는 세계는 그다지 바람직한 세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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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혀 위에서 만나요 책을 읽다보면 이 작고 가벼운 물체가 뭐길래 사람 마음을 이렇게 뒤흔드는지 경이로울 때가 있다. 책은 고정된 사물이어서 분초 단위로 업데이트되는 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책은 흐르는 강물이기도 하다. 떠다니는 섬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속도로 헤엄쳐 책의 섬으로 다가오고 이 섬에 모여 작가라는 사공이 젓는 배에 오른다. 그 뒤로 얼마나 유장한 풍경이 펼쳐지는지는 실제 책을 읽은, 독자가 되어본 사람만이 안다. 얼마 전 19회 와우북페스티벌에서 책이 이끄는 절경을 보았다. 100여명의 동승자들만 누리기엔 아까운 순간이었기에 고정된 활자로 남겨보려고 한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2020년 가을쯤 나는 정용준의 신간 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흥미롭게 읽으면서 캐나다의 시인 조던 스콧이 쓴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라는 그림책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있었다. 한 권은 소설, 한 권은 그림책이지만 독자인 내 마음에서는 하나의 결로 합류하며 읽혔다. 공통적으로 이른바 유창성 장애라고 부르는, 말 더듬는 어린이가 느끼는 경험을 다뤘는데 이것이 작가 자신의 일이기도 했던 것까지 서로 닮아 있었다. 당시 두 사람은 상대의 작품을 알고 있을까 궁금했고 아직 모른다면 이후 만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와우북페스티벌에서 대담이 실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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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낙관주의의 천재들 요즘 내게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그것은 낙관주의자의 명단을 수집하는 취미이다. 개인적으로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당신에게는 이미 너무 많은 취미가 있다고, 이제 더 이상 뭘 좀 늘리지 말라고 붙들어 말릴 것이다. 백 번 맞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호기심과 일을 잘 구분하지 못해 뒤죽박죽별장처럼 살고 있는 나로서는 새로 뭘 하는 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사치다. 하지만 이번 취미는 너무 마음에 들어서 포기할 수가 없다. 회원권을 끊지 않아도 되며 지하철로 이동하는 틈이나 잠자리에 들기 전 몇 분간 누워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너무너무 뿌듯하다. 이제부터 최근 내 취미 활동의 결과를 자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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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상상력은 선택할 수 없다 한때 이런 직업을 가져볼까 생각한 적이 있다. ‘기억 발견사’라고 부를 수 있는 업무로 어린 시절 읽었던 책의 제목을 찾아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가끔 내게 “이 이야기가 어떤 동화인지 알아요?”라고 잊어버린 추억의 책 제목을 물어보는 분들이 있다. “어떤 아이가 천둥치는 날 가게에서 케이크를 훔치는데” 하며 기억 속 한 장면을 풀어놓는 식이다. “그 케이크 초록색이죠?”라고 대꾸하면 “맞아요! 제가 그 책 정말 좋아했어요”라며 얼굴이 환해진다. 내가 제목까지 맞히면 상대방은 그리움 가득한 눈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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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5300년 만의 조문객 이탈리아 볼차노에는 사우스티롤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이 도시에 들렀다가 박물관을 찾았더니 어린 학생을 비롯한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들 모두는 외치(Otzi)라는 이름이 붙은 단 한 사람을 보기 위해 여기 왔다. 박물관 전체가 외치씨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1991년 독일인 헬무트 지몬과 에리카 지몬 부부는 이 부근의 해발 3200m 지점을 등반하다가 외치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외치씨가 산악인 희생자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그는 피라미드보다도 나이가 많은 5300년 전의 청동기인임이 밝혀졌다. 얼음 덕분에 피부의 탄력은 물론 피부에 새겨진 문신, 옷과 도끼, 장신구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고 현대의 법의학은 그 자료를 바탕으로 외치씨가 누군가에게 살해되었다는 사연도 규명했다. 그 긴 세월 얼마나 외로웠을까. 2016년에는 외치씨의 음성까지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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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읽는 미래가 있는 미래다 서울 혜화동은 나에게 각별한 장소다. 오래전 나는 이 계단을 올라가 붉은 벽돌 건물 2층의 밀다원이라는 카페를 찾아갔다. 공간의 외부와 내부가 흐르듯 연결된 이 건물은 1979년에 고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곳으로 당시 정채봉 선생님이 주간으로 있던 ‘샘터’ 사옥이었다. 나는 동화 쓰는 일에 흥분과 걱정을 동시에 품고 있던 신인작가였다. 당시 밀다원은 나와 비슷한 설렘을 지닌 사람들 몇몇이 모여 책과 동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곳이었다. 건물 아래층엔 샘터파랑새극장이 있어서 어린이극이 공연되곤 했다. 줄지어 계단을 내려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계단을 타고 오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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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기억, 무대에 서다 얼마 전 점심시간, 동료들과 차를 타고 안산시청 근처에 짜장면을 먹으러 가는데 문득 거기서 A를 만나 4월16일의 상황을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한동안 드나들던 온마음센터도 근처다. 그걸 생각하다가 엉뚱한 곳에서 우회전을 해버렸다. 동료들은 와동 방향이니 메뉴를 바꿔 닭갈비집에 가자고 했다. 도착해보니 2015년에 연화의 어머니를 만나러 왔던 병원 앞 식당이었다. 그날 연화 엄마는 연화가 만들어준 팔찌를 차고 있었다. 연화는 가족들에게 생일케이크를 구워주는 솜씨 대장이었다. 네일 아티스트가 꿈이었는데 가장 좋아했던 네일 에나멜은 96번, ‘슈가젤리’ 색깔이다. 병원 근방 편의점에서는 연화의 절친 J를 만난 적이 있다. J는 내게 연화와 친구들이 시화공단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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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어린이의 집필실 어린이의 시간은 현재형이다. “어렸을 때는 나도 그랬지”라거나 “어린이는 장차 크게 될 거야”라는 말은 소용없다. 지금 안 놀면 놀 수 없다. 현재의 어린이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사회의 속도가 너무 빠르면 어린이는 위험해진다. 지난달 23일 헌법재판소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13에 대해 합헌으로 결정했다. 이 법은 2019년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김민식 어린이의 죽음 이후 마련된 법이다. 이제 어린이는 학교와 어린이집 앞에서만이라도 자신의 속도를 존중받게 되었다. 헌재는 8 대 1 의견으로 겁에 질린 작은 얼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 하나를 지켜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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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돌봄의 자전거 바퀴 가족 안에 어린아이가 있다는 말은 생활에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아이의 감정과 몸의 상태는 수시로 달라지기 때문에 어른들끼리 어떤 일을 도모할 때처럼 예측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아이는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종종 담벼락처럼 버티거나 운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엉뚱한 곳으로 굴러가버리는 공을 잡을 때처럼 달리고 멈추고 앉고 일어서는 순간의 반복이다. 미카엘라 치리프와 호아킨 캄프의 그림책 <아이 달래기 대작전>은 한밤중 공동주택에서 그치지 않고 우는 아기 엘리사와 이웃들의 이야기다. 처음에 고양이처럼 칭얼대던 아기는 결국 소방차처럼 울고 가족들은 어떻게든 달래려고 안간힘을 쓴다. 가만히 참기 힘들었던 이웃들이 이 집으로 모여든다. 8층 아저씨는 이야기책, 2층 아주머니는 꽃다발을 들고 왔지만 아기는 점점 더 운다. 다들 출근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날이 밝아버렸다. 엘리사를 잠재운 것은 동네에서 귀가 가장 어두우며, 아침이 되어서야 대소동을 알게 된 고령자인 엘리사의 할머니다. 할머니는 아기의 두 발을 부드럽게 붙잡더니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살살 움직인다. 아기는 호루라기 주전자 마흔두 개에서 물이 끓는 소리만큼 커다란 방귀를 뀌고 잠든다. 엘리사는 배가 아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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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코로 책을 읽는 아이 우리에게 두 눈이 있고 세상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것이 더 우월한 삶이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삶의 가치는 훨씬 더 넓은 영역 안에 있다. 그것을 말하는 작가가 진 리틀(Jean Little)이다. 그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문학상에 네 번이나 후보로 올랐고 50권이 넘는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남겼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는데 얼른 가서 코를 씻으라는 잔소리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항상 코를 종이에 바짝 붙이고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코에 글자가 인쇄되겠다”는 핀잔을 들으면 “다행히 저는 코가 작아서 책을 눈에 가까이 가져갈 수 있네요!”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그는 날 때부터 각막에 흉터가 있어 매우 희미하게만 앞을 볼 수 있었고 평생 안내견과 함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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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안 보여요? 2022년과 2023년을 반으로 접어 책을 만들면 2022년 12월은 그 책의 중간 제본선쯤에 있을 것이다. 1922년에 어린이날 선언이 선포되었고 1923년에 전국적인 어린이날 행사가 열렸기에 올해와 내년에 걸쳐 어린이날 백주년을 기념한다. 역사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축하 잔치가 넘쳐나야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여전히 슬픈 소식들을 마주한다. 무고하게 세상을 떠난 어린이들의 명복을 빌며 어린이와 관련된 올해의 글을 찾아 읽어본다. “뒤에서 자리만 채우던/ 0이 용기 내어 앞으로 나왔어// 잘 보이지 않던/ .이 0 옆으로 다가서자// 너도나도 힘내라고 달려 나왔어/ 0.518416029…”는 ‘어린이와 문학’ 181호에 실린 강기화의 동시 ‘소수의 힘’의 한 대목이다. 어린이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다. 2022년 3분기 출산율은 0.79명이며 서울은 0.59명으로 가장 낮다. 그리고 어린이의 몸은 작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얼마 전에는 만취 운전자가 뺑소니 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던 어린이가 가슴 아프게도 세상을 떠났다. 사고 현장 인근 건물의 외벽에는 친구를 잃은 또래 어린이가 또박또박 눌러쓴 ‘나쁜 범인’이라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사고 이전에 통학로를 안전하게 정비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지역민 다수가 통행 효율성을 이유로 반대하자 무산되고 말았다고 한다. 경찰은 탄원서가 쌓이고 통곡이 쏟아진 뒤에야 뺑소니 혐의를 추가했고 구청은 뒤늦게 도로를 재정비하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