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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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마음껏 이동하며 살아갈 권리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역에서 명절 인사 중인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앞에서 한 여성이 손팻말을 들고 전동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장애인 권리 법안들을 올해 꼭 통과시켜달라는 요청이었다. 기차역이라는 공간에서 고향을 향해 재촉하는 발걸음들은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의 취약한 이동권과 사뭇 대조되는 듯 보였다. 사실 권 원내대표와 장애인단체의 서울역 만남은 처음이 아니었다. 2022년 추석 전, 장애인단체는 명절 인사 나온 권 원내대표에게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당시 잘 살펴보고 합리적인 대책을 만들겠다고 대답했다. 그 뒤로 3개월이 지난 2022년 말, 그는 장애인단체의 출근길 지하철 탑승 행동에 대해 ‘떼법의 일상화, 불법의 습관화’라 평했다. 명절 때마다 서울역에서 반복되는 정치인과 장애인단체의 만남은 고작 그 정도의 의미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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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그래도 어딘가는 나아지는 중이다 실로 참담한 연말이었다. 12월이 시작되자마자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로 정국은 탄핵과 수사의 소용돌이에 마비되었다. 그런 와중에, 한 해 마지막 날을 사흘 앞둔 12월29일에는 무안공항에서 최악의 여객기 참사까지 발생했다. 절망의 도가니 속에서 정치뿐 아니라 경제도 직격탄을 맞으며, 슬프다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연말이 고통스럽게 흘러갔다. 많은 사람이 차마 뉴스를 켜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견디며 지나던 12월이었지만, 놀랍게도 그 안에 작은 기적들이 있었다. 오랫동안 소외된 어떤 사람들의 인권이 법 앞에서 인정받았고, 늦었지만 국가가 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판결로 준엄하게 선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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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그래도 국회는 ‘민생’을 저버리지 말라 계엄이라는 블랙홀에 온 정국이 빨려들어가고 있다. 연일 새로 밝혀지는 구체적인 12월3일 밤의 상황을 보면, 천만다행으로 유혈사태는 없었으나, 도저히 2024년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시도되고 실행되었다. 어찌 이러한 참담한 일이 일어났는지 그 배경을 샅샅이 밝히는 것은 물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헌법과 법률에 따른 조치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 할 수만 있다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왜 이런 일을 하필 12월 초에 벌였는가 따져 묻고 싶다. 물론 1년 중 그 어느 때라도 발생해서는 안 되는 반헌법적인 일임은 분명하나, 특히 12월이 서민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시절인지 대통령은 정녕 몰랐을까.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더 춥고 힘들어지는 시기이자, 국회와 정부가 올해 묵은 일들을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앞두고 많은 일을 처리하는 달이다. 그럼에도 난데없는 비상계엄으로 정부와 국회가 마비 상태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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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소수자 위한 정치’가 절실한 급변기 다짜고짜 신경질적인 상담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계속 통화를 이어가야 하나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왜 그리 화가 났는지 물어보고 싶은 궁금함이 그 망설임보다 더 크기 때문에 숨을 고르고 들어본다. 그중에는 발달장애인인 자식을 살해하고 바로 이어 자신도 자살하기로 결심한 후 실행하기 직전 걸어온 전화도 있었다. 굽이굽이 굴곡진 그의 인생사를 들으면서 영문도 모른 채 보호자로부터 살해당할 뻔한 중증 발달장애인 자식 생각에 눈물이 났다. 긴 통화로 그의 잘못된 결심을 간곡히 달랜 후, 얼른 긴급 복지지원 체계를 연결해 비극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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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1층이 있는 삶은 과연 올 것이다 오랜만에 친구와 보기로 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수다를 떨 생각에 신이 났다. 휠체어를 타는 그 친구에게 식당 예약을 위해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보았더니 심드렁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메뉴 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들어갈 수만 있으면 다행이지.” 저주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만나기로 한 동네 건물마다 들어서 있는 수많은 식당과 찻집은 대부분 1층 가게였음에도 간발의 차이로 휠체어가 갈 수 없었다. 고작 한 뼘의 턱 때문에, 한 칸 올라가는 입구 때문에, 흉내만 낸 경사로 때문에 가게 코앞에서 돌아서야 했다. 어느 식당에 겨우 입성한 후에야 그 식당의 메뉴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마주한 밥상은 따뜻했지만, 목구멍을 넘어가는 밥알은 뻣뻣했다. 나도 괜히 설움에 목이 메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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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딥페이크에 촉법소년’은 동문서답 ‘지인 능욕’이라는 말이 등장한 지 10년 가까이 되었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사람의 이미지를 또 다른 이미지나 영상으로 합성하는 딥페이크 기술은 등장한 후 지금까지 나날이 발전했다. AI 기술이 정교해지고 관련 앱 출시가 줄을 이으면서 딥페이크 성착취물 또한 빠르게 늘어갔다. 얼마 전, 한 외국 사이버 보안 업체는 세계적으로 딥페이크 음란물 피해자의 99%가 여성이고, 가장 취약한 국가는 한국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딥페이크 음란물 웹사이트와 유튜브 채널 등을 조사해 보니 등장인물 중 53%가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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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피의자 신문 영상, 증거 채택을 티몬·위메프 사태의 주요 피의자들이 다음주부터 수사기관의 소환조사를 받는다. 어쩌다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피의자에게 자세히 물어보는 절차다. 경찰이나 검찰의 조사실에 앉아 컴퓨터를 앞에 두고 수사관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피의자 신문조서가 만들어질 것이다. 카메라와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는 영상조사실에서 수사관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피의자 신문 영상녹화물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짧으면 몇 시간, 길면 며칠을 공들여 만드는 이 신문조서나 영상녹화물은 놀랍게도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 세계적으로 드물게 희한한 현행 형사소송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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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탈시설=불행, 단정 짓지 말라 1932년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는 철저하게 계획된 세상에서 약물을 통해 인위적인 행복을 유지하며 사는 미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존은 그런 식으로 통제된 세상은 잘못이라며 자유를 달라고 요구하지만, 통치자는 그 요구가 ‘불행할 권리를 달라는 주장’일 뿐이라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자 존은 힘 있게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한다. 나이 먹고 추해지고 무기력할 권리, 질병에 걸릴 권리, 더러워질 권리, 두려움에 시달릴 권리를 달라던 그의 요구는 인간의 삶에 내재한 고통과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진정한 자유를 원하는 저항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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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어쩌다 여가부는 동네북이 되었나 어떤 부처와 자주 일을 하느냐는 물음에 답을 찾느라 한참 동안 생각한 적이 있다. 18개의 중앙행정기관 모두 장애인이나 아동, 여성에 관한 정책을 다루고 있기에, 같이 일을 안 해 본 부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장애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경우, 법무부는 진술 조력인과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여성가족부는 장애 여성 성폭력 상담소나 쉼터를, 보건복지부는 피해 장애 여성에게 필요한 돌봄이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성폭력 피해자인 장애 여성이 오직 범죄 피해자로만 존재하지는 않기에, 여러 부처가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장애 여성은 억압적인 가정 아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청년일 수도 있고, 어린아이를 홀로 돌봐야 하는 엄마일 수도 있으며, 피해 수습을 위한 휴가를 갑자기 내기 어려운 노동자일 수도 있다. 각기 다른 복잡한 상황 속에 다면적인 특성이 있는 사람을 여러 부처가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지원하기에, 단지 효율성을 이유로 정책 담당 부처의 통폐합을 결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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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검찰개혁은 정치구호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지난 8일 ‘제22대 국회 검찰개혁 입법전략’ 토론회에서 차기 국회 개원 후 6개월 이내에 검수완박을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했다. 앞으로 검사는 보완수사를 포함한 모든 수사에서 아예 손을 떼도록 하고 기소 여부만 결정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헌법을 개정해서 경찰이 단독으로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큰 권력은 통제되어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이라 선의로 해석하려 해도 도무지 무책임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정부에서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검경수사권조정과 검수완박을 거치면서 수습 불가 상황으로 망가진 수사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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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장애 인권 퇴보를 마주한 장애인의날 매년 4월20일 장애인의날이면 전국에서 온갖 행사가 열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러했다. 서울시장도 기념행사에서 장애 아동과 가족에 대한 지원부터 고령 장애인의 돌봄까지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몇년간 계속되는 장애 인권의 퇴보는 그야말로 참담한 수준이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을 없앴다. 2020년 시작한 이 사업은 최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되 탈시설 장애인에게 우선권을 주고 최저시급을 지급하면서 전국적으로 각광받았다. 일자리에 사람을 욱여넣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일자리를 맞추는 원리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올해 갑자기 ‘장애 유형 맞춤형 특화일자리’ 사업으로 대체됐고, 그 후 신체기능과 직무수행 가능성을 따지는 단순노동 연계 사업으로 축소되면서 400명에 달하는 최중증장애인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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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권력자의 개혁은 왜 이리 투박한가 사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2019년 정부와 국회가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힘껏 내달린 결과가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주는 것이 될 줄 말이다. 검찰개혁 법안 초안에는 검찰의 수사지휘를 없애는 내용도, 경찰이 수사를 종결한다는 내용도 없었다. 이미 판은 벌였으니 뭔가는 해야겠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우려를 덮으려다 보니 개혁의 동기와 초안의 뼈대는 이리저리 휘었다. 그렇게 누더기가 된 검경수사권 조정안은 패스트트랙의 급물살을 타고 기어이 2020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경찰에 수사종결권이 생겼고 ‘불송치’라는 새로운 단어가 법에 들어왔는데, 정작 사건 처리에 바쁜 수사 현장의 경찰은 어리둥절했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