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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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려서야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11일,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고 ‘공소청’으로 대체하는 검찰청법 폐지안과 함께 중대범죄수사청과 국가수사위원회 신설 법안을 발의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부터 경찰-검찰-법원으로 이어온 형사사법 체계를 갈아엎겠다는 것이다. 형사사법 제도가 어떤 구조여야 하는지는 국제 기준상 명확하다. 복잡하지 않아야 하고, 효율적인 수사를 위해 수사 책임자가 명확하면서, 비용이 적게 들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검찰 해체 법안을 둘러싼 우려는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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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법치 위에 정치가 서지 않도록 며칠 뒤 선출될 21대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원수이다. 삼권분립에 따라 대통령은 입법부인 국회와 상호 견제와 균형의 관계를 잘 유지할 책임이 있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균형과 견제를 통해 건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만약 법치주의 국가에서 입법권이 제대로 통제받지 않으면, 권력분립은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안타깝게도 최근 정국은 이러한 우려를 현실화하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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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왜 장애인들은 성당 종탑에 올랐나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콰지모도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높은 종탑에 갇혀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간다. 장애인으로서 그에게 허락된 삶은 어둡고 좁은 종탑뿐이었다. 성금요일이었던 지난 18일,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 인권 활동가들이 서울 혜화동성당의 종탑에 올라 무기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사흘째인 4월20일은 부활절이자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었다. 십자가 위 예수의 고난을 기억하는 날에, 왜 장애인들은 난간·지붕·화장실도 없는 종탑 위에서 하루 종일 내리던 비를 맞아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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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서로 돌봐야 살아진다 “너 싸가지 여물고 살아!” 최근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한 장면에 나오는 대사이다. 애순과 관식, 이 어린 연인이 현실의 벽 앞에 생이별을 하는 모습을 온 마을 사람들이 마음 아프게 지켜보는 중이었다. 관식을 태워 섬을 저만치 떠나가는 배를 향해 절망 속에 울고 있는 애순을 흘기며 관식의 모친은 욕을 내뱉는다. 그때 관식의 모친을 향해 옆 사람이 냅다 소리친 말이다. 아직 극중 상황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지만, 이 대사 하나에 괜히 속이 시원했다. 몇년 전 만난 한 용감한 여성이 생각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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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장애 학생도 통합되는 새 학기로 긴 겨울방학을 지나 3월을 맞이하며 학교는 다시 시끌벅적해진다. 입학과 개학으로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기 때문이다. 물씬 다가온 봄내음만큼이나 학교도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으로 한껏 차오른다. 장애 아동도 특수교사도 그 설렘을 누려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과연 어떠할까. 우리나라 장애 학생 중 특수교육법상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된 아동은 거의 12만명에 이른다. 극심한 저출생 여파로 전체 아동 수는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지만, 특수교육대상자는 반대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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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마음껏 이동하며 살아갈 권리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역에서 명절 인사 중인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앞에서 한 여성이 손팻말을 들고 전동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장애인 권리 법안들을 올해 꼭 통과시켜달라는 요청이었다. 기차역이라는 공간에서 고향을 향해 재촉하는 발걸음들은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의 취약한 이동권과 사뭇 대조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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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그래도 어딘가는 나아지는 중이다 실로 참담한 연말이었다. 12월이 시작되자마자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로 정국은 탄핵과 수사의 소용돌이에 마비되었다. 그런 와중에, 한 해 마지막 날을 사흘 앞둔 12월29일에는 무안공항에서 최악의 여객기 참사까지 발생했다. 절망의 도가니 속에서 정치뿐 아니라 경제도 직격탄을 맞으며, 슬프다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연말이 고통스럽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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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그래도 국회는 ‘민생’을 저버리지 말라 계엄이라는 블랙홀에 온 정국이 빨려들어가고 있다. 연일 새로 밝혀지는 구체적인 12월3일 밤의 상황을 보면, 천만다행으로 유혈사태는 없었으나, 도저히 2024년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시도되고 실행되었다. 어찌 이러한 참담한 일이 일어났는지 그 배경을 샅샅이 밝히는 것은 물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헌법과 법률에 따른 조치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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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소수자 위한 정치’가 절실한 급변기 다짜고짜 신경질적인 상담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계속 통화를 이어가야 하나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왜 그리 화가 났는지 물어보고 싶은 궁금함이 그 망설임보다 더 크기 때문에 숨을 고르고 들어본다. 그중에는 발달장애인인 자식을 살해하고 바로 이어 자신도 자살하기로 결심한 후 실행하기 직전 걸어온 전화도 있었다. 굽이굽이 굴곡진 그의 인생사를 들으면서 영문도 모른 채 보호자로부터 살해당할 뻔한 중증 발달장애인 자식 생각에 눈물이 났다. 긴 통화로 그의 잘못된 결심을 간곡히 달랜 후, 얼른 긴급 복지지원 체계를 연결해 비극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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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1층이 있는 삶은 과연 올 것이다 오랜만에 친구와 보기로 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수다를 떨 생각에 신이 났다. 휠체어를 타는 그 친구에게 식당 예약을 위해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보았더니 심드렁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메뉴 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들어갈 수만 있으면 다행이지.” 저주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만나기로 한 동네 건물마다 들어서 있는 수많은 식당과 찻집은 대부분 1층 가게였음에도 간발의 차이로 휠체어가 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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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딥페이크에 촉법소년’은 동문서답 ‘지인 능욕’이라는 말이 등장한 지 10년 가까이 되었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사람의 이미지를 또 다른 이미지나 영상으로 합성하는 딥페이크 기술은 등장한 후 지금까지 나날이 발전했다. AI 기술이 정교해지고 관련 앱 출시가 줄을 이으면서 딥페이크 성착취물 또한 빠르게 늘어갔다. 얼마 전, 한 외국 사이버 보안 업체는 세계적으로 딥페이크 음란물 피해자의 99%가 여성이고, 가장 취약한 국가는 한국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딥페이크 음란물 웹사이트와 유튜브 채널 등을 조사해 보니 등장인물 중 53%가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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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피의자 신문 영상, 증거 채택을 티몬·위메프 사태의 주요 피의자들이 다음주부터 수사기관의 소환조사를 받는다. 어쩌다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피의자에게 자세히 물어보는 절차다. 경찰이나 검찰의 조사실에 앉아 컴퓨터를 앞에 두고 수사관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피의자 신문조서가 만들어질 것이다. 카메라와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는 영상조사실에서 수사관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피의자 신문 영상녹화물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짧으면 몇 시간, 길면 며칠을 공들여 만드는 이 신문조서나 영상녹화물은 놀랍게도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 세계적으로 드물게 희한한 현행 형사소송법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