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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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형사사건이 쪼개지면 벌어지는 일 지적장애가 심한 여성이 있었다. 집과 특수학교만 쳇바퀴처럼 돌다가 성인이 되면서 집에만 머물게 된 이 여성의 유일한 낙은 스마트폰이었다. 인터넷 광고를 타고 들어간 채팅 앱에서 수많은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그중 한 남성 A는 선물을 준비했으니 만나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모르는 사람이 왜 선물을 주겠다는 것인지 지적장애로 인해 그 맥락을 이해할 겨를이 없었지만, A는 계속 만나자고 졸랐다. 그렇게 처음 대면한 날, 여성은 모텔로 유인되어 성적 침해행위를 당한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혼란스러워하는 피해자를 사과하는 척 달랜 A는 ‘갈 때 가더라도 근처 자기 집에서 밥이라도 한 끼 먹고 가라’고 다시 여성을 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들어가게 된 A의 집에는 그의 친구 남성 B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A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자리를 피해주었다. 여성은 B에게 두 번째 성적 침해행위를 당했다. 모두 같은 날 불과 몇 시간 안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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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중재안이 아니라 야합안이다 검찰개혁이라는 열망을 등에 업고 민주당이 급조했던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은 그 자체가 가진 위헌성 및 허술함을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이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의 전운이 고조되고 민주당이 소속 의원 탈당이라는 탈법까지 감행하는 사태가 일어난 후, 지난 22일 국회는 중재안에 합의했다는 발표를 한다. 갑자기 국민에게 통보된 이 중재안은 민주당 개정안에 대한 반대 논리와 우려를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국회의원 당사자들의 이익보호에 직결되는 사항을 거래한 ‘야합안’이었다. 검찰의 직접수사권 범위에서 ‘공직자범죄’와 ‘선거범죄’가 사라지면서, 여야는 갑자기 한마음이 되어 손을 부여잡았다. 1%도 안 되는 권력형 범죄의 수사권을 ‘협상’의 도구로 활용하여 그 수사에 직접 영향을 받는 이해관계자끼리 국가의 중대한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이 되는 법을 순식간에 고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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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검찰 직접 보완수사, 늦출 이유 없다 “또 바뀌었어요?” 검찰 사건번호가 벌써 3번째 바뀌었다. 10년 넘게 형사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피해자가 경찰에 피해를 처음 신고한 것이 봄이었지만, 그해 겨울이 다 돼서야 사건은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되었다. 하지만 다시 몇 개월이 지나도록 사건은 검찰에서 경찰로, 다시 경찰에서 검찰로 핑퐁을 거듭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전에도 물론 지연되는 사건들이 있었다. 공모관계가 복잡한 사건이나 여러 명의 참고인이 잠적한 사건, 물증이 전혀 없는 사건 등은 수사도 재판도 오래 걸렸다. 그렇지만 수사권 조정으로 대부분의 수사 권한을 경찰이 가지게 된 지금처럼 수사 지연이 심각한 적은 없는 듯하다. 원래 형사 사건은 접수된 지 2개월 안에 처리되어야 하고, 6개월 이상 넘어가도록 처리가 되지 않으면 장기 사건으로 분류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최소한의 통제조차 벗어난 모습이다. 어렵사리 고소 사건이 접수되어도 첫 조사까지 하세월인 사건도 적지 않으며, ‘미종결 장기사건’이 통계상 폭증하고 있음에도 마땅한 브레이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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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형사사건은 왜 이렇게 느려지나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신고 안 할 걸 그랬어요.” 3년 전 납치 강간현장에서 탈출한 후 신고한 아동이 올해 초 성인이 되어 한 말이다. 이 사건은 아직도 수사 중이다.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계속 이사를 다니는지 이송만 4번 있었고, 그 과정에서 바뀐 수사관도 열 명은 되는 것 같다. 이제는 사건이 처리되기를 기대하기는커녕 어느 기관에 사건이 가 있는지 묻는 것도 지칠 지경이다. 문제는 신고 후 1년이 훨씬 넘도록 수사기관만 뱅뱅 맴도는 이런 사건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부패 등 6대 중대 범죄로 한정하고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주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지연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이달 초 대검찰청이 발표한 ‘개정 형사제도 시행 1년 검찰업무 분석’을 보면, 경찰은 2021년 한 해 69만2606건의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이 중 12.3%에 달하는 8만5325건의 사건에 대해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수사권 조정 전인 2020년 경찰이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을 검사가 송치 후 재지휘한 경우가 전체 37만7796건 중 1만3365건(3.5%)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경찰의 수사에 검사가 보완을 요구한 비율은 3배 이상 늘었다. 이러한 ‘핑퐁’ 사건 폭증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달라진 수사실무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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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보호 대안 경악했다. 지난해 12월23일 헌법재판소가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진술이 담긴 영상은 진술 당시 피해자와 동석했던 신뢰관계인의 증언이 있으면 증거로 쓴다”라는 법률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는 소식을 믿을 수 없었다. 설마 헌법재판소가 십수 년째 정착한 이 중요한 제도를 공개 변론도 열지 않고 ‘단순위헌’ 결정으로 단칼에 날려버렸다니. 법정에 연이어 불려나갈 어린 성폭력 피해자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헌법재판소는 ‘영상으로만 피해자의 진술을 들으면,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이 침해된다’고 했다. 갸우뚱했다.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 영상과 녹취록이 이미 증거로 제출되었더라도, 더 물어볼 것이 있다며 기어이 피해자를 법정에 부르는 경우가 여태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 지원했던 한 중학생 특수강간 피해자는 사건의 충격으로 가족 모두 이민을 갔다가, 증언 때문에 임시 귀국을 한 적도 있다. 기존에도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은 잘 보장되고 있었다. 참고로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헌법’에 직접 적어 놓았지만, 일정한 요건하에 미성년 성범죄 피해자의 진술이 담긴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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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5일 후면 도래할 ‘무죄공화국’ “내년부터 피고인이 법정에서 ‘아니요’ 한마디만 하면, 수사받은 내용이 전부 사라진다면서?” 유언비어가 아니다. 2022년부터 대한민국에서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내용 인정 안 합니다’라고 조서(서류)를 부인하면, 그 피고인이 수사기관에서 진술했던 모든 내용이 담긴 피의자 신문조서는 휴지조각이 된다. 판사가 그 조서를 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의를 받고 촬영한 피의자 신문 영상녹화물(동영상)이나 그 녹취록은 판사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역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과 대법원 판례는 피의자를 신문하는 영상녹화물에 증거능력을 인정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리해보면, 5일이 지나 새해가 오면, 피고인이 법정에서 ‘수사받으면서 했던 진술을 부인한다’는 말 한마디로 그 피고인의 수사기관 조서와 수사과정 녹화 영상, 그리고 그 영상의 녹취록 모두 사실상 폐기처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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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빅데이터로 아동학대 막을 수 있나 영·유아 아동학대 살해 사건이 또 터졌다. 아이는 태어나서 겨우 세 번째 생일을 지나오는 동안 참 많은 일을 겪어야 했다. 엄마 아빠가 이혼하였고, 아빠는 새엄마와 재혼하였으며, 그 새엄마는 동생을 낳았다. 상시적인 학대와 가혹한 폭력 앞에서 우는 것 말고 별달리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던 아이는 네 번째 생일을 맞이하지도 못하고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 의사 표현이 어려워 사실상 발견하기 어려운 영·유아기 학대 피해 아동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하여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상시적 아동 위기 발굴시스템을 표방하며 화려한 보도자료와 함께 2018년 3월 개통되었다. 아동의 진료 정보나 어린이집·학교 출결 현황, 가내 부채 정보 등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학대 위험 가구를 예측하고 각 읍·면·동으로 해당 사례를 자동 통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렇게 통지를 받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복지센터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가정방문을 통해 아동학대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복지 서비스를 연계하거나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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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자립준비청년들의 각자도생 여기 ‘열여덟 어른’이 된 두 사람이 있다. 부모 이혼과 가정 빈곤으로 초등학생 때 아동양육시설에 입소한 A는 사춘기를 겪으면서 시설 생활이 몹시 답답해졌다.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후 고등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결국 우여곡절 끝에 학교를 자퇴하고 시설에서 나왔다. B는 첫돌도 되기 전에 어머니가 가출한 이후 아버지와 살아왔다. 중학생이 되면서 아버지와 대립이 심해졌고 이웃의 아동학대 신고로 쉼터를 거쳐 공동생활가정에 살게 되었다. 낯선 그룹홈 생활은 녹록지 않았고 학교 친구들도 그리웠기에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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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장애인권리법, 새 술은 새 부대에 장애인복지법이 만들어진 지 벌써 40년이 넘었다. 그동안 60번도 넘게 개정이 있었던 이 법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19년 장애등급제가 형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장애인의 온전한 권리보장과 사회참여 실현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2018년 발표된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이 이루어지는 포용사회’라는 목적 아래 5대 분야 22개 중점과제 및 69개 세부 정책목표를 담고 있다. 종합계획의 핵심은 장애인의 탈시설 자립지원과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이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 복지체계를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을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조를 이어 지난 8월, 제23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는 ‘탈시설 지원 로드맵’과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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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가장 취약한 목소리도 담아내길 대한민국은 참 빠르다. 웬만한 음식점 요리를 배달 앱 하나로 집에서 받을 수 있고, 오후에 모바일로 주문하면 새벽에 물건들이 현관 앞에 배달된다. 행정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행정 서류를 정부24 사이트에서 발급받을 수 있고, 여권 재발급은 물론 출생신고처럼 중요한 신고도 온라인으로 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발표된 ‘디지털 뉴딜’정책은 우리나라 정보통신(ICT) 산업을 기반으로 데이터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런 흐름에 따라 대한민국의 빠른 업무 처리속도는 공공 빅데이터의 축적과 맞물려 더 진화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존재하지만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는 사람들의 삶은 그 빨라지는 속도와 비례하여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쉽게 소외되는 듯하다. 디지털 위주의 사회는 옆에서 대신해줄 사람 없이 고립된 사람, 스스로의 빈곤과 어려움을 입증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제도의 테두리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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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열악한 아동보호전담요원제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로 전환될 때, 전환 전후의 에너지 총합은 항상 일정하게 보존된다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 이 법칙의 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덥더라도 냉장고를 열어 두지는 않는다. 냉장고 문 앞은 잠깐 시원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그만큼의 열에너지가 냉장고 뒤쪽에서 더 발생해서 공간은 더 더워지기 때문이다. 에너지 보존법칙은 어떤 ‘사건’에 투여되는 에너지에도 비슷하게 적용되는 듯하다. 가령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누군가는 현장 조사를 하고, 누군가는 그 아동에게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찾아 연결한다. 피해 아동의 변호인인 나는 수사기관을 비롯한 여러 유관기관들과 협력해 아동에게 필요한 법률 지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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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피해자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대검찰청 회의를 마치고, 당시 검찰총장과 다 같이 오찬을 하게 되었다. “검찰을 위한 쓴소리는 얼마든지 환영한다”고 강조하여 말씀하시기에, 초면이지만 사뭇 진지하게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총장님, 검찰 콜센터인 1301에 직접 전화를 걸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세부적인 사항까지 모두 보고를 받을 수 있기에 굳이 콜센터에 직접 전화를 할 이유는 없었으리라. 왜 묻는지 다들 궁금해하기에 밝은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혹시 짧은 시간을 들여 갑자기 기분을 망치고 싶을 때가 있으시면, 한번 이용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참석자들의 웃음소리가 잦아들 무렵, 검찰 콜센터가 범죄 피해를 당한 피해자를 대리하는 변호사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