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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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학교폭력 소송남발 대책 마련해야 학교폭력은 엄벌이 답이라며 급하게 만든 교육부의 학교폭력 종합대책이 얼마 전 발표되었다. 이 대책 중 피해학생과 관련된 내용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해학생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의 결정에 불복했다는 사실을 통지받을 수 있도록 개선되었고, 피해학생이 가해학생을 분리해달라고 학교에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대책의 나머지 대부분은 가해학생에 관련된 내용인데, 가해학생 학폭위 조치사항을 학생부에 4년까지 보존하고 대입 입시에도 직접 반영하겠다는 것이 전면에 강조되었다. 문제는 이 대책 속 결정과 조치들은 모두 소송으로 연결되어 법정 싸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폭력에 관한 소송이라면 피해학생이 가해자를 고소하면서 열리는 형사소송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상은 다르다. 가해학생이 제기하는 소송이 훨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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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다양한 가족 인정해야 저출생 극복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 온 종이에 ‘학부모 동의서’라는 글씨가 제목으로 큼지막이 써 있었다. 사건을 통해 만난 아이들 중 ‘학부모’라는 단어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을 만한 아이를 떠올려봤지만 별로 없었다. 한부모가정이거나 조손가정, 나이만 어리지 사실상 가장인 아이, 시설에 살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들의 다양한 삶을 담기에 ‘학부모’라는 단어는 참 좁은 것 같았다. 그래서 아동복지법의 용어인 ‘보호자’라는 말로 바꾸자고 학교에 정식으로 건의했다. 아무리 자기 표현이 자유로운 시대라 하더라도 표정이나 평가, 분위기에 알게 모르게 마음이 움츠러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와 다른 수많은 타인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인간으로서의 생존본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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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피해자 ‘글로리’ 되찾기 어려운 나라 학교폭력 피해자 ‘문동은’의 치열한 복수에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현실에 미치는 여파도 대단하다. 국가수사본부장이 임명 하루 만에 아들의 학교폭력 전력으로 낙마하기도 하고, 학창시절 내내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며 직접 가해자들을 찾아가 왜 그랬는지 따져 묻는 여정이 한 방송에 담겨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작가는 피해자가 잃은 존엄이나 명예, 영광과 같은 것들을 되찾는 원점으로 가해자들의 사과를 생각하며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가해자는 자발적으로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쳐야 사과할지 고민한다. 형사사법체계는 그 고민의 중요한 계기로 작동한다. 고소당하고 수사받고 재판에 넘겨져 판결 선고를 기다리며 가해자는 그제야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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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비동의간음, 이대로 잊히나 여성가족부는 얼마 전,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을 발표하며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가, 그로부터 9시간 후 개정 추진을 철회했다. 갑작스러운 입장 번복에 대하여 온갖 추측이 난무하다. 법무부 장관의 전화 한 통에 엎어진 일이라는 주장도 있던데, 지금이 무슨 왕정국가인가. 법무부가 새로운 형사 구성요건 도입에 적극적으로 찬성을 드러내는 경우는 애석하게도 거의 없었다. 추측이 아닌 확인된 어떤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가족부의 기본계획 발표 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 법이 도입되면 합의한 관계였음에도 이후 상대방 의사에 따라 무고당할 가능성이 있다”며 “성관계 시 ‘예’ ‘아니오’라는 의사표시도 제대로 못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성인남녀를 평가 절하한다”는 글을 썼다. 비동의간음죄를 바라보는 전형적인 반대 이유들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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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새해, 국회개혁이 절실하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겪는 차별과 인권침해를 소송이나 민원으로 싸우다 보면 제도의 허점들이 보인다. 유사한 피해를 막기 위해 법률 제정안이나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의원실을 통해 의원입법 발의를 하거나, 소관 정부 부처와 논의해 정부 입법안 연구에 참여해왔다. 의원이나 정부가 법안을 발의한 이후 그 법안의 국회 처리 상황을 수시로 확인해 보면, 그간 법안을 만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심히 허탈해질 때가 있다. 국회는 법안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오히려 법안의 무덤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하는 국회’에 대한 시민의 큰 열망과 다르게 돌아가는 모습에 실망해 이제는 아예 정치에 관심 끄겠다는 사람, 먹고살기 힘들어져 국회에 관심 가질 시간이 없다는 사람도 심심찮게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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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교권과 학생 인권은 반대말이 아니다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조항을 신설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 통과를 위해 교원단체는 “교단에 드러눕는 학생에게 교사가 손가락도 대지 못할 정도로 교권이 추락했다”며 백방으로 국회에 로비를 했다. 언론도 ‘날개 잃은 교권’ ‘교실 붕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반복하며 비슷한 기사를 열심히 찍어냈다. 그리고 이 법은 전광석화처럼 빠른 속도로 처리되었다. 학생 인권을 보호하면 교권이 침해되는가? 이 물음은 교권과 학생 인권이 서로 대립관계에 있음을 전제로 하며, 이 둘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하는 것이 합리적인 해결책인 양 호도한다. 그러나 교권과 학생 인권은 대립관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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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자립 이해 없는 자립지원 소용없다 ‘보호종료아동’이라는 용어가 ‘자립준비청년’으로 바뀐 지 1년이 넘었다. 기존 용어가 다소 수동적인 표현이라는 지적과 보호종료청년, 보호종료청소년 등 비슷한 용어로 혼용되어온 점을 감안하여 새 용어로 바꾼 것이다. 정부는 지난 6월22일부터 보호대상아동이 본인 의사에 따라 25세에 달할 때(만 24세)까지로 보호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시설에 거주하는 보호대상아동 대부분이 18세가 되면 살던 곳을 나와야 하는 것이 자립에 어려움을 준다는 판단에서 나온 조치이다. 또한 정부는 보호대상아동의 가정위탁 보호 종료 또는 아동복지시설 퇴소 이후의 자립을 지원하는 ‘자립지원전담기관’을 시·도별로 설치·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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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미성년 공공후견은 아동 관점에서 동화 <소공녀>의 세라는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아버지를 갑자기 여의고 큰 고난을 겪지만,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의 동업자를 만나 행복한 삶을 되찾는다. 동업자는 어린 세라의 후견인이 되어 함께 새 삶을 위해 떠나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과 함께 살며 직접 돌보는 사람을 ‘후견인’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실상 후견인 제도는 그 기대와는 다소 다르다. 민법상 후견 제도는 미성년자, 정신적 장애인, 치매 노인과 같이 판단·결정 능력이 없거나 제한되어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보호하기 어려운 사람(피후견인)을 보호·감독하고 그 재산을 관리하며 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즉 후견인은 피후견인을 돌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피후견인에 대한 각종 ‘결정’을 하는 사람에 가깝다. 이에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이익에 반하여 재산을 매각하거나, 후견 상황과 무관한 권한까지 대리해 정작 당사자의 법적 권리가 배제되는 등의 문제가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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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입법공백과 피해자의 생존 작년 12월23일 헌법재판소는 19세 미만의 성폭력 피해자의 영상녹화 진술물을 증거로 인정하는 성폭력처벌법 제30조 제6항을 위헌이라 결정했다. 위헌 결정의 주된 이유는 피해자의 진술이 담긴 영상녹화물로 재판을 하는 것이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지난 9개월 동안 1심과 항소심에서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가 법정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증언하는 일이 이어졌다. 심지어 영상녹화물로 유죄 인정을 받고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어 고등법원에 되돌아온 사례도 속출했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이나 아동학대 사건의 피해자 진술 영상녹화물은 위헌 결정의 범위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법원은 이미 위헌의 취지를 넓게 고려하여 장애인과 학대 피해 아동을 법정에 증인으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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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검수완박은 살아 있다 법무부는 지난주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국회 입법권이 사실상 무력화되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법무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검수완박법은 그대로 살아 있으며, 그 시행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법무부 발표의 골자는 두 가지이다. 기존에 장황하고 복잡했던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를 간명하고 이해하기 쉽게 고침으로써 국민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한다는 것과, 경찰에서 송치한 사건에 대하여 검찰이 직접 관련성이 있는 범위에서 적극 수사하여 범죄자를 잘 기소하라는 것이다. 입법권 무력화가 아니라 잘못된 입법 정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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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우영우라는 사람 며칠 전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어느 신문사의 기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며 대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시청하는지 물어왔다. 드라마에 대한 의견을 말해달라는 요청이었으나, 스스로 드라마를 평론할 깜냥이 못 되는 것을 잘 알기에 왜 그런 요청을 하는 건지 되물었다. “아무래도 장애인이시니까 좀 다르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요.” 안타깝게도 질문자는 그 드라마를 잘못 보고 있었다. 사람은 그 존재 안에 수많은 다양성을 안고 살아간다. 드라마 속의 우영우도 나도 그러하다. 그런데 장애인은 종종 그 사람 안의 다양한 특성이 ‘장애’라는 한 단어로 납작해지는 경험을 한다. 장애는 질병과 다르기에 앓는 것도 아니며 단지 한 사람을 구성하는 여러 정체성 중 하나일 뿐이지만, 이렇게 장애라는 개념만으로 존재가 납작해지면 세상은 그 사람의 노력이나 성취 역시 장애라는 관점을 통해서만 이해하기 일쑤이다. 그러다 보니 거의 필연적으로 지겨운 장애 ‘극복’ 서사가 뒤따라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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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고발인의 이의신청권 되살려야 몇 년 전, 60대 지적장애인 동생을 한 쓰레기장에 살게 하며 10여년간 급여와 장애수당 등 8000만원 상당 금액을 가로챈 친형이 세상에 드러난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는 쓰레기가 가득 찬 컨테이너 박스에서 한겨울에도 전기장판 하나로 추위를 견뎌야 했다. 피해자는 분명히 가해자 처벌의사를 밝혔고 별도로 고소장까지 제출했지만, 수사기관은 피해자가 지적장애인이라서 ‘고소 의사표시가 진정한 의사표시로 보기 어렵다’ 판단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검경 수사권 조정이 있었고, 2021년부터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지면서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사라졌다. 경찰이 무혐의라고 본 사건은 검찰에 송치되지 않고 경찰의 ‘불송치결정’만으로 종결된다. 이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하여 경찰이 고소·고발 사건을 무혐의 종결할 경우 처리 결과와 이유를 당사자와 피해자 등에게 통지하도록 했고, 통지를 받은 사람은 경찰에 이의를 신청할 수 있게 했다. 이의신청이 들어오면, 경찰은 지체 없이 검찰에 그 사건을 송치해야 하므로, 경찰의 무혐의 사건 종결을 다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바로 이의신청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