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의 개혁은 왜 이리 투박한가

김예원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사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2019년 정부와 국회가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힘껏 내달린 결과가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주는 것이 될 줄 말이다. 검찰개혁 법안 초안에는 검찰의 수사지휘를 없애는 내용도, 경찰이 수사를 종결한다는 내용도 없었다. 이미 판은 벌였으니 뭔가는 해야겠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우려를 덮으려다 보니 개혁의 동기와 초안의 뼈대는 이리저리 휘었다. 그렇게 누더기가 된 검경수사권 조정안은 패스트트랙의 급물살을 타고 기어이 2020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경찰에 수사종결권이 생겼고 ‘불송치’라는 새로운 단어가 법에 들어왔는데, 정작 사건 처리에 바쁜 수사 현장의 경찰은 어리둥절했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2022년 봄,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을 겨우 한 달 앞두고 휘몰아친 검수완박 입법도 비슷하다.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극심해진 수사 지연을 해소할 방책 마련은 뒷전이고, 정부와 여당은 유행가 가사처럼 또 검찰개혁을 부르짖기 시작했다. 위장탈당과 회기 쪼개기의 꼼수가 난무한 채 국무회의 일정까지 조정해가면서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처리된 이 법안으로 애먼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이 없어졌다. 애초 초안에는 있지도 않던 것이었다. 경찰의 불송치결정에 이의신청을 해서 사건을 검찰에 보낼 수 있던 그 한 줌의 희망마저 고발인으로부터 빼앗으면서, 피해자가 직접 고소할 수 없어 고발인만 있는 공익 사건들은 경찰의 불송치결정만으로 허무하게 끝나게 되었다.

불과 몇년 사이 일어난 두 번의 밀어붙이기식 검찰 ‘개혁’은 70년 넘게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어오던 형사사법체계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수사 경찰은 과로를 견디다 못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사 현장을 벗어나려 하고 있고, 검찰은 파고 싶은 사건만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수사의 책임자가 불분명해지고 경찰과 검찰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게 되면서 피해자의 피눈물은 고스란히 쌓이고 있다. 그 개혁의 책임자 누구도 결과에 책임지지 않았다.

권력자 주도의 ‘개혁’은 그래서 더 섬세해야 한다. 개혁을 빙자해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직역 이기주의로 폄하하고 묵묵히 일해온 특정 직역을 악마화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버티며 발전시킨 시스템이 붕괴하기 시작한다. 무너지는 속도는 예상보다 빠르지만 이를 다시 예전만큼 회복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시스템은 결국 그 안의 사람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가는 것인데 그 가치를 이어 온 사람들이 떠났기 때문이다.

벌써 한 달 넘게 연일 의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전공의들이 떠난 현장을 지키고 있던 의대 교수들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줄사직을 예고하고 있다. 필수 의료의 위기는 비현실적인 의료수가, 실손보험에 따른 도덕적 해이, 과도하게 전공의에 의지해 온 의료기관의 기형적 운영 등 여러 원인이 겹쳐 나타났다. 그럼에도 2000이라는 숫자만큼 의대 정원을 늘리면 된다는 정부의 동문서답은 의료 현장의 혼란을 심화시키고 있다.

국가의료체계는 질병과 죽음을 앞둔 누구라도 사회적 경제적 배경과 관계없이 적절한 의료서비스에 접근하도록 해 준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국가의료체계가 질병관리와 공중보건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우리는 경험으로 배웠다. 나아가 좋은 의료체계는 질병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을 줄여 국가 경제에도 적잖은 보탬이 된다. 초고령화 사회로 가속 페달을 밟으며 국가소멸의 위기에 있는 우리나라가 무겁게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선거를 앞두고 사회 유지에 중요한 바탕이 되는 시스템을 휘젓는 것은 무책임이다. 시스템이 멈추면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부터 직격탄을 맞는다. 더 늦기 전에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합리적인 해결점을 찾아가야 한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그 과정을 거치며 투박함이 정교해져야 정책에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서민들의 애환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예원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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