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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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다이어리 마스크 속 눈웃음의 ‘마법’ 언젠가 불친절한 베를린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여행자로 다닐 때는 거의 느끼지 못하다가 살면서 깨달은 점이었다. 베를린에 사는 친구들도 특히 독일 관공서에서 겪는 불친절함과 무시에 힘들어했고, 일상 공간인 슈퍼마켓이나 꽃집에서도 종종 겪곤 했다. 영수증을 집어 던지듯이 준다거나 시종 독일어로만 일관하는 고집 센 사람들. 처음엔 아시아인이라고 저러는 건가 하고 욱했다가, 다른 독일인에게도 똑같이 영수증을 획 집어 던지는 걸 보고 왠지 안심했던 기억. 베를린은 남들이 뭘 하든 전혀 신경을 안 쓰는 쿨한 도시인데, 뭐랄까 사람들이 너무 신경을 안 쓰니까 가끔은 이 도시에서 유령이 된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아무튼 베를리너 특유의 무뚝뚝함과 무관심을 불친절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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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다이어리 아직은 마음이 설레었으므로 서울에 올 때마다 머물렀던 전셋집을 뺐다. 40년 이상 산 서울에, 내가 하던 일과 청춘이 가득한 서울에 더는 집이 없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베를린으로 간 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서운한 마음이 컸다. 서울에서의 삶이 진짜로 막을 내리고 다시는 커튼을 젖힐 날 없는 무대에 먹먹한 마침표를 찍는 날 같았다. 있던 짐은 천안의 부모님 댁으로 보냈다. 부모님 댁의 오래된 에어컨과 세탁기는 내가 쓰던 걸로 바꿨고, 남은 짐(침대와 소파, 책장 등)은 2층에 들여놨다. 이제 한국에 오면 이곳에서 지내다 가리라. 아픈 엄마, 한 해가 다르게 수척해가는 아빠와 하루라도 더 얼굴 보며 지내다 갈 수 있으니 이 또한 내게는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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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다이어리 유럽의 국경을 넘으며 폴란드에 다녀왔다. 폴란드 남자 ‘킬루’와 독일 여자 ‘칼라’의 결혼식이 신랑의 고향인 라돔에서 있었다. 바르샤바에서 남쪽으로 100㎞ 정도 떨어진 라돔은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는, 작고 이름 없는 도시였다. 9인승 밴을 타고 친구들이 함께 베를린에서 폴란드로 국경을 넘었다. 외국인인 나는 여권을 챙겨갔고, 독일 친구들은 신분증 하나만 들고 가면 되었다. 국경을 넘을 때 검문소가 있겠지 했는데, 오데르강이 흐르는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너니 바로 폴란드였다. 검문소도, 신분증 검사도 없었다. 폴란드어를 모르니 “여기서부터 강원도입니다”라고 쓰인 국내 표지판을 볼 때보다도 감흥이 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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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다이어리 삼바로 경계 허무는 친구들 거의 1년 반 만에 ‘사푸카유 노 삼바’(이하 사푸) 팀의 멤버들을 만났다. 이 ‘사푸’ 팀은 남자친구가 베를린에서 10년 넘게 참여하고 있는 삼바 드럼 밴드의 이름이다. 매주 목요일 드럼 연습을 가는 그를 보고 처음엔 그냥 몇 명이 취미로 하는 동네 밴드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독일 삼바 카니발에 참여하는 80여개 드럼 밴드 중에서 매년 1·2위를 다투는 유명 팀이었다. 팀이 만들어진 지는 올해로 27년째나 되었다. 사푸 팀의 인기를 실감한 건 지난해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에 갔던 브레멘 삼바 카니발에서였다. 사흘을 밴드 멤버들과 함께 먹고 자고 하며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페스티벌에서 사푸 팀은 이미 유명 인사였다. 팀을 응원하는 많은 팬과 자원봉사자들이 있었고, 퍼레이드 연주를 할 때 맨 앞에서 춤추는 최고의 파시스타(카니발 삼바 댄서)들과 사푸 팀을 위한 전문 댄서 팀 ‘사푸카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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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다이어리 100년 된 공동체 정원들 걷고 싶을 땐 집 근처의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으로 간다. 작은 정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큰 단지로, 각각의 정원에는 크고 작은 텃밭과 꽃밭 그리고 창고로 쓰이는 작은 집들이 있다. 정원의 주인들은 보통 주말에 나와 작물과 꽃을 심고 가꾼다. 주중은 오는 이들이 별로 없어 조용하지만, 주말과 날씨가 화창한 날엔 정원마다 분주해진다. 물놀이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흘러나온다. 4월엔 벚꽃과 라일락, 5월엔 수국과 유채꽃, 6월엔 장미와 양귀비와 접시꽃 등이 만발한다. 달마다 다른 꽃이 피는 정원을 구경하는 일은 평화로우면서도 신비롭다. 길고 긴 록다운으로 갈 곳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이곳은 탁 트인 위로의 공간이자 힐링의 정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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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다이어리 독일의 나체주의 문화 여기서 살아보니 알겠다. 베를린 사람들이 왜 이렇게 해를 찾아다니는지, 왜 해만 나면 공원이고 호수고 나와서 벌러덩 누워 있는지. 화창해야 할 5월까지 히트텍을 입고 사니 따뜻한 햇살이 더 간절하다. 내가 그동안 서울에서 얼마나 날씨 복을 누리고 살았나 감사할 정도다. 기온이 30도가 넘는 요즘은 너도나도 호수로 간다. 큰 쇼핑몰과 호텔을 제외하면 (믿지 못하겠지만) 에어컨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카페와 음식점은 물론 지하철에도, 집에도 에어컨이 없다. 바싹 달궈진 거리를 피하는 방법은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뿐이다. 베를린 호숫가에 가면 해수욕장을 방불케 하는 ‘호수욕’이 펼쳐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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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다이어리 무엇이든 ‘만들어’ 보세요! 보일러가 고장났다. 남자친구는 공구통에서 펜치를 꺼내 익숙하게 보일러 관의 한 밸브를 열고 물을 빼냈다. 흘러나오는 물을 통에 담아 버리기를 여러 번, 닳고 닳은 밸브 나사를 조여 다시 연결시키니 온수가 나왔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사람을 불러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고치는 사람이 하루 만에 오지도 않을뿐더러 독일에선 사람을 부르는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또 마음대로 부를 수도 없다. 집에 문제가 생기면 집주인에게 상황을 먼저 알리고 정해진 하우스 마이스터가 체크를 하러 오거나 고친다. 하우스 마이스터는 일정 때문에 2주 후에나 올 수 있다고 했다. “2주라고?” 서울 같으면 2시간 후를 잘못 들었나 하겠지만, 베를린에서는 누구나 그러려니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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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다이어리 독일 수돗물이 해롭다고? “수돗물에 석회질 많은데 그냥 마셔도 돼?” 남자친구와 살기 시작했을 무렵, 항상 수돗물을 마시는 그를 보고 물었다. 그 흔한 바리타 정수기도 잘 쓰지 않았다. 사실 남자친구뿐만 아니라 베를린에 사는 많은 독일 친구들이 그냥 수돗물을 마셨다. 남자친구는 “괜찮지. 근데 왜?”하고 되물었다. 나는 유럽 여행을 올 때마다 들었던 “석회질이 몸에 쌓여서 안 좋다던데”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냐고 웃으며 말했다. “석회수의 성분 대부분은 칼슘과 마그네슘이야. 칼슘과 마그네슘은 우리 몸에 필요한 필수 미네랄 성분이고. 석회가 몸에 쌓인다는 과학적 근거는 이미 없는 걸로 밝혀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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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다이어리 죽음을 알 권리 엄마가 아프다. 병원에 입원한 날부터 각종 검사가 시작됐다. 검사가 늘어날 때마다 엄마의 병명도 늘어났다. 가족은 무방비 상태로 암의 전이 소식을 들었다. 암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찾는 검사가 새벽마다 응급으로 진행됐고, 금식과 연이은 검사로 엄마도 지쳐갔다. 암 치료는 시작도 안 했는데, 수술은 할 수 있는 건지, 암은 몇 기인지, 얼마나 살 수 있는 건지, 끝을 알 수 없는 하루하루가 그저 지옥이었다. 베를린에서 소식만 전해듣던 나는 ‘미친○’처럼 울다가 밥을 먹고 거리를 걷다가 다시 울었다. 보호자로 곁에 있던 동생은 엄마에게 전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뇌에도 암이 있다는 말을 하면 엄마가 무너질까봐 도저히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 환자는 모르고 가족이 의사 앞에서 듣고 우는? 그런 상황이 우리 가족에게도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너무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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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다이어리 독일 첫 트랜스젠더 대대장 매일 아침 남자친구와 라디오를 듣는다. 독일어를 못하는 나는 음악을 듣고, 남자친구는 그날그날 나오는 주제나 인터뷰로 세상 이야기를 듣는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면 곧잘 설명도 해준다. “흠, 지금 나오는 얘기 재미있다. 군에서 처음으로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밝힌 독일 공군 중령이 인터뷰를 하고 있어. 커밍아웃한 후에도 계속 군에서 일할 수 있었던 과정을 인터뷰하고 있는데, 다큐멘터리(<I’m Anastasia(2019)>로도 제작됐대.” 아나스타샤 비에팡(Anastasia Biefang). 독일군 최초의 트랜스젠더 대대장. 20년 동안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숨겨야 했던 아나스타샤는 마흔 살이 되던 2015년에 상관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후 이름을 바꾸고, 성 확정 수술을 받는 동안에도 그녀는 계속 군인 생활을 하였으며, 작년까지 700명의 정보 기술 대대를 이끄는 지휘관이었다. 그녀가 트랜스젠더임을 처음 알렸던 당시를 회상한 내용도 재미있다. 아나스타샤의 말을 들은 상관은 이 사실을 빠른 시일 내에 공개하자고 제안하고 언제가 좋겠냐고 묻는다. 그녀가 아무 때든 좋다고 하자, 상관은 “아, 그럼 조금 후에 열리는 정기회의에서 바로 얘기합시다”라고 해서 별 준비도 없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녀는 커밍아웃이 자신의 군 경력에 아무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점에 가장 놀랐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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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다이어리 뒷담화와 프라이버시 페이스북에 공유된 한 유튜버의 영상을 보게 됐다. 유튜버는 부산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라이브로 방송을 하다가 잠시 화장실을 가는데, 그사이 음식점 주인과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그에 대해 뒷담화를 하고 그 대화가 고스란히 녹화된다. 아주머니들은 유튜버의 짧은 치마 길이와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큰 가슴, 팬티나 입은 거냐는 험담과 욕을 한다. 실시간으로 달린 댓글로 그 사실을 알게 된 유튜버는 식당 주인을 불러 왜 자신의 짧은 치마와 복장에 대해 뒷담화를 했는지, 맛있어서 찾아온 손님을 왜 욕하는지 물었다. 식당 주인 아주머니는 어쩔 줄을 모른 채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유튜버는 카드로 음식값을 계산하고 나온다. 영상을 본 나도 ‘남이야 짧은 치마를 입든, 팬티를 입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저렇게 욕을 할까’ 생각하며 그의 편을 들었다. 게다가 유튜버는 거의 먹지도 않은 음식값(10만원 정도)도 계산하고 나온다. 댓글을 단 사람들은 그런 집에 무슨 계산까지 하고 나오냐, 천사가 따로 없다며 그를 응원하고, 뒷담화의 장본인인 아주머니들을 비난했다. 그런데 영상 설명을 듣던 독일인 친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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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다이어리 가족의 의미 지난 크리스마스는 남자친구의 부모님 댁에 가지 못하고 베를린에서 보냈다. 독일 남부에 있는 부모님 댁에서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냈던 이전 해와 달리, 이번엔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가족들이 아예 모이지 않기로 한 것. 우리는 베를린에 남아 남자친구의 아이들, 그리고 전부인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전부인까지 같이 만난다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곳에선 그리 유별난 일은 아니다. 이들이라고 헤어지면서 왜 힘든 시간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가장 중요한 아이들을 위해서는 이들은 항상 도와주고 협심한다. 전부인도 몇 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가 있어 우리는 아이들 생일이 되면 곧잘 모두 모인다. 그러면 아빠 쪽 커플, 엄마 쪽 커플, 그리고 두 아들이 모여 6명의 가족이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다. 결혼을 한 적도 없고, 아이를 가진 적도 없는 내가 이런 가족의 형태를 갖게 되리라곤 상상해본 적 없지만, 생각보다 나는 빨리 이 가족을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구성원이 되었다. 물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모든 것을 솔직하게 공유해주고, 가족에게도 나를 파트너로서 진실하게 소개해준 남자친구의 노력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