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로 경계 허무는 친구들

이동미 여행작가

거의 1년 반 만에 ‘사푸카유 노 삼바’(이하 사푸) 팀의 멤버들을 만났다. 이 ‘사푸’ 팀은 남자친구가 베를린에서 10년 넘게 참여하고 있는 삼바 드럼 밴드의 이름이다. 매주 목요일 드럼 연습을 가는 그를 보고 처음엔 그냥 몇 명이 취미로 하는 동네 밴드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독일 삼바 카니발에 참여하는 80여개 드럼 밴드 중에서 매년 1·2위를 다투는 유명 팀이었다. 팀이 만들어진 지는 올해로 27년째나 되었다.

이동미 여행작가

이동미 여행작가

사푸 팀의 인기를 실감한 건 지난해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에 갔던 브레멘 삼바 카니발에서였다. 사흘을 밴드 멤버들과 함께 먹고 자고 하며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페스티벌에서 사푸 팀은 이미 유명 인사였다. 팀을 응원하는 많은 팬과 자원봉사자들이 있었고, 퍼레이드 연주를 할 때 맨 앞에서 춤추는 최고의 파시스타(카니발 삼바 댄서)들과 사푸 팀을 위한 전문 댄서 팀 ‘사푸카야’도 있다.

이들이 코로나19가 터진 이후 처음으로 다시 함께 모였다. 사푸카유 노 삼바 팀은 베를린에서 매년 5월 열리는 ‘카니발 데어 쿨투어렌’에서도 항상 선두에 서는데, 올해는 8월로 미뤄 샤를로텐부르크 지역에서 작게 퍼레이드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행사는 코로나 상황을 우려해 막판에 취소되었다. 모처럼 한데 어우러져 에너지를 발산할 기대에 차 있던 멤버들은 폐공항을 공원으로 바꾼 템펠호프에서 짧은 게릴라 공연을 펼쳤다. 리더 디디의 칼 같은 지휘에 맞춰 삼바 드럼이 울려 퍼졌고, 사푸카야 댄서들의 현란한 춤사위가 이어졌다. 쉴 새 없이 흔드는 엉덩이와 발놀림에 댄서들이 입은 반짝이 의상이 더욱 세차게 반짝였다. 이들이 내뿜는 미소와 에너지에 감전당하듯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푸카야 댄서들을 볼 때마다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여성들의 조합에 눈길이 간다. 팀에는 젊고 날씬한 댄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아이의 엄마, 뚱뚱한 중년 여성, 나이가 많은 60대의 댄서도 있다. 사푸의 드럼 멤버들이 그렇듯, 댄서들 역시 각자의 본업이 있고, 그저 삼바 음악이 좋고 춤이 좋아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팀을 이루고 서서히 전문가가 되었다. 이 보통 여자들 중엔 누구 하나 자신의 체형이나 나이에 부끄러워하거나 소극적인 사람이 없다. 음악이 나오는 곳에서 모두가 무대의 주인공처럼 춤을 추고 몸을 흔든다. 그 넘치는 자신감 앞에서 뚱뚱함과 나이는 촌스러운 편견에 불과하다는 걸 목도한다. 마침 빈에서 넘어온 삼바 댄서의 여왕, 필리페 모리스도 힘을 보탠다. 상파울루 출신의 그는 첫사랑을 따라 열여덟 살에 오스트리아로 건너온 퀴어 댄서로 지금은 유럽에서 하이힐을 신고 삼바 춤을 추는 예술가가 되었다.

삼바 춤을 출 줄도 모르고 모임에선 그저 한 멤버의 지인일 뿐인 내가 사푸 팀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 건, 그들이 각자의 일상에서 조금씩 경계를 부수고 사회가 정한 기준과 선입견에 맞서는 많은 축제와 이벤트에 열심히 긍정의 에너지를 실어 나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거창한 이유나 자랑 없이 각자가 즐겁자고 시작한 일이 적게는 몇 년씩 많게는 십몇 년씩 음악적 연대로 이어지고, 서로에게 역사가 되어가는 과정은 무척 부럽고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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