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수돗물이 해롭다고?

이동미 여행작가

“수돗물에 석회질 많은데 그냥 마셔도 돼?” 남자친구와 살기 시작했을 무렵, 항상 수돗물을 마시는 그를 보고 물었다. 그 흔한 바리타 정수기도 잘 쓰지 않았다. 사실 남자친구뿐만 아니라 베를린에 사는 많은 독일 친구들이 그냥 수돗물을 마셨다. 남자친구는 “괜찮지. 근데 왜?”하고 되물었다. 나는 유럽 여행을 올 때마다 들었던 “석회질이 몸에 쌓여서 안 좋다던데”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냐고 웃으며 말했다.

이동미 여행작가

이동미 여행작가

“석회수의 성분 대부분은 칼슘과 마그네슘이야. 칼슘과 마그네슘은 우리 몸에 필요한 필수 미네랄 성분이고. 석회가 몸에 쌓인다는 과학적 근거는 이미 없는 걸로 밝혀졌어.”

그런데 왜 한글로 검색할 때는 ‘석회수는 많이 마시면 체내에 쌓이고, 뼈가 굵어져 코끼리 다리가 된다’는 글만 수두룩한 걸까? 이렇게 시작된 논쟁 덕분에 우리는 각종 사이트를 뒤지고, 베를린과 서울의 수도사업소, 독일의 비영리 소비자 안전 및 시험 기관인 ‘슈티프퉁 바렌테스트’ 사이트까지 들어가서 ‘사실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물은 땅속 토양을 통과하면서 많은 천연 물질과 미네랄을 흡수한다. 이 중 칼슘과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 함량이 높을수록 물은 단단해진다. 이 두 성분의 함량에 따라 물이 연수와 중수, 경수 등으로 나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물이 강한 정도의 ‘경도’를 ‘°dH’ 단위로 쓴다(미국은 PPM, ㎎/L). 최신 독일 경도 지표에 따르면 8.4~14°dH가 중수, 14°dH를 넘으면 경수, 8.4°dH 미만이면 연수로 본다. 독일 내에서도 베를린의 수돗물은 17°dH의 ‘센 물’에 속한다. 3~4°dH의 초연수에 해당하는 서울의 수돗물에 비하면 10배나 강한 셈이다. 하지만 석회수는 경도가 높아도 인체에 무해하다. 석회수에 포함된 미네랄의 일부만이 실제로 신체에서 대사되고 나머지는 몸 밖으로 배설되기 때문이다. 문제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양의 석회를 흡수해야 하는데, 식수를 통해 이러한 양을 흡수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독일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석회수 자체보다는 오래된 하수도관이 더 나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베를린 시는 하수도관 교체와 유지 보수, 점검 등에 더 철저하다. 가정에서 수돗물을 셀프 점검할 수 있는 키트도 시중에서 손쉽게 살 수 있다.

건강의 관점에서 보자면 석회수는 몸에 전혀 해롭지 않다. 해롭다면 기계에 해롭다. 경수는 60도 이상의 온도에서 석회질이 침전되는데, 이 침전물이 세탁기나 커피 머신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 또 욕실 주변이나 싱크대에 하얗게 침전물이 생겨 보기에 안 좋다. 독일에 석회를 없애는 특수 세제가 발달한 이유다. 눈에 거슬리는 이런 침전물 때문에 우리는 건강에도 안 좋을 거라고 잘못 믿게 되었다. 그 믿음이 너무 만연해 있어서 진짜 ‘사실’을 찾을수록 나 역시 놀라웠다. 수돗물에는 석회수가 있어서 생수를 사먹었는데, 알고 보니 유명 생수 브랜드 중에는 수돗물보다 석회수가 훨씬 더 많이 들어 있는 것도 있었다. 또 사람들은 잘못된 인식 때문에 집에서는 칼슘과 마그네슘을 없앤 정수된 물을 먹고, 마그네슘 영양제를 따로 사먹고 있다. 이게 무슨 ‘웃픈’ 일인가? 나는 베를린에서 그냥 수돗물을 먹기 시작했다. 물만 마셔도 보충되는 칼슘과 마그네슘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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