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알 권리

이동미 여행작가

엄마가 아프다. 병원에 입원한 날부터 각종 검사가 시작됐다. 검사가 늘어날 때마다 엄마의 병명도 늘어났다. 가족은 무방비 상태로 암의 전이 소식을 들었다. 암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찾는 검사가 새벽마다 응급으로 진행됐고, 금식과 연이은 검사로 엄마도 지쳐갔다. 암 치료는 시작도 안 했는데, 수술은 할 수 있는 건지, 암은 몇 기인지, 얼마나 살 수 있는 건지, 끝을 알 수 없는 하루하루가 그저 지옥이었다.

이동미 여행작가

이동미 여행작가

베를린에서 소식만 전해듣던 나는 ‘미친○’처럼 울다가 밥을 먹고 거리를 걷다가 다시 울었다. 보호자로 곁에 있던 동생은 엄마에게 전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뇌에도 암이 있다는 말을 하면 엄마가 무너질까봐 도저히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 환자는 모르고 가족이 의사 앞에서 듣고 우는? 그런 상황이 우리 가족에게도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너무 불안했다.

“엄마도 똑같이 알아야 돼. 자기 병에 대해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사람이잖아. 엄마가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하루라도 빨리 주고, 엄마가 원하는 걸 도와주고 존중해야 돼.”

“아직 결과도 다 안 나왔는데, 그런 소리나 지껄일 거면 전화 끊어.” 동생은 전화를 끊기 일쑤였고, “너가 와서 말해, 엄마 얼굴 보고 너가 말해!” 하고 악을 쓰며 울었다.

결국 엄마 뇌에도 암이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전했다. 엄마는 왜 그걸 여태 안 말해줬냐고 하면서도 생각보다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엄마는 살 만큼 살았고, 너희도 모두 가족을 꾸렸으니 별 미련도 없다고 하셨다.

남자친구는 가족은 다 알고, 정작 엄마는 제대로 모르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독일에서는 보호자가 같이 병원에서 잘 수도 없지만, 정확한 병명은 당연히 본인이 먼저 듣는다고 했다. 어느 쪽이 낫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나 또한 환자 본인이 가장 먼저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심각한 병에 걸린다면 나 역시 제일 먼저 사실을 알고 싶다. 살 준비도, 정리할 준비도, 죽음을 알 권리도 모두 나에게 있으므로.

베를린의 한 친구 아빠는 지난해 췌장에 있는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면서 열 페이지가 넘는 유언장을 남겼다고 했다. 그곳에는 수술 후 만약의 상황까지 자세히 써 두었는데, 만약 수술 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생명 장치에 의지하게 된다면 5일 후에는 더 이상 유지하지 말라는 내용까지 적혀 있었다고 했다. 물론 그런 상황은 상상도 하기 싫지만, 죽음을 앞둔 내 가족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고,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큼 다행인 일도 없으리라 생각됐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우리가 마지막 순간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 정신이 온전할 때, 하고 싶은 말을 다 남기고 내 죽음의 마무리까지도 정리할 수 있다면 죽음이 두렵지만은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이틀 뒤면 해외입국자로서의 격리가 풀리고 2주 만에 엄마를 보러 간다. 다행히 엄마는 항암 치료가 가능한 상태이고, 치료에 맞는 검사 결과를 찾는 중이다. 나는 이제라도 엄마가 원하는 걸 알고 싶다. 한 번도 묻지 못한, 하지만 알아야 하는 엄마의 남은 삶, 그리고 엄마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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