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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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윤희에게 ○○고등학교 3학년 윤희 학생, 안녕하세요. 의대/간호대와 같은 보건의료계열 대학에서는 병원으로 실습을 나온 학생에게도 ‘선생님’이라는 명칭을 붙여주는 일들이 많아요. 그래서 정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학생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하지요. 배우는 학생이면서도 의료기관 안에서는 예비 전문가로서의 태도와 윤리를 견지해야 하는 보건의료학생들에게 적합한 이름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윤희 학생은 아직은 고등학생이니까, 그냥 윤희 학생이라고 부를게요. 더 친근하기도 하고요. 윤희 학생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우리 의원으로 진로적성탐구차 왔던 게 2023년 5월이니까, 벌써 꽤 시간이 지났네요. 1년이면 수차례씩 나오는 여러 실습 학생 중 한명이라, 얼굴은커녕 이름조차도 기억할까 말까 했을 윤희 학생을 제가 기억하는 건, 윤희 학생이 저에게 보낸 편지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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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가정 임종의 행운을 더 많이 누리자면 사람의 출생과 사망은 반드시 신고해야만 하는 사건이다. 특히나 사망은 ‘어떤 이유로 사망했는지에 대한 의학적인 판단’이 함께 있어야만 완성되는 ‘의료적/법률적 사건’이다. 무슨 이유로 돌아가셨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의심스러운 정황은 없었는지’에 대한 의료적 판단은 반드시 있어야 하니, 우리는 적어도 죽을 때는 의사를 만나야만 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전공의 시절 병원에서 일할 때, 이미 돌아가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응급실로 들어오시는 이들이 있었다.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미 돌아가신 지가 한참은 지났다는 거다. 어떤 경우는 병원에 남겨져 있었던 평소 의무기록을 참고하여 시체검안서를 받아 가시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아무런 기록이 없어 이미 사망한 상태에서 흉부촬영이나 두부CT 검사를 받기도 했다. 모두 병원에서 사망하지 못하여, 즉 의사의 사망선언을 받지 못해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기 쉽지 않아 무작정 응급실로 오는 경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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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방문진료와 스마트폰 얼마 전 내가 일하는 곳에 의대를 지망한다는 고등학생들이 견학을 왔다. 사전 학습으로 과학기술의 발전과 미래 의료의 모습에 대한 얘기들을 나눴다고 한다. 역시 이과생들. 우리가 방문진료도 하는 의료기관이라고 했더니, 현재 방문의료를 위해 가장 필요한 기계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기술과 기기의 발전이 방문진료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질문, 혹은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방문진료를 위해 어떤 기기가 더 필요할 것인가 하는 질문. 방문진료에 우리가 들고 가는 기기들을 떠올려 봤다. 혈압계, 혈당계, 손가락 2개 크기의 산소포화도 체크기, 욕창의 진물을 빨아내는 작은 모터가 달린 거즈, 심지어 손바닥 크기의 초음파기기까지, 참 많은 것들을 들고 다니지만, 사용 횟수나 의존도 면에 역시 압도적이라고 느껴지는 건 스마트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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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여러분, 국가검진 잘 받읍시다 올해도 가을 바람이 선선해지기 시작했으니 건강검진센터가 더 바빠지는 시기가 돌아오고 있다. 20~30대 젊은 세대들의 국가검진 수검률이 낮은 것이 걱정이라는 1~2년 전 기사를 읽은 뒤부터 나는 우리 의료기관에 내원하는 20~30대들이 국가검진을 잘 받고 있는지 열심히 챙기기 시작했다. 우리 의료기관을 찾아오는 20~30대 환자들 중에서는 트랜스젠더들이 많다. 자연스레 젊은 트랜스젠더들의 국가검진을 챙기고 있다. 그런데 자신이 올해 국가검진 대상자라는 사실은 둘째치고, 국가검진이라는 게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분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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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일어나 앉으면 달라지는 것들 뇌경색으로 3년 동안 누워만 지내시던 환자분을 일으켜 앉도록 하기 위해 수동 관절운동을 진행하던 우리에게 보호자가 물었다. 환자분은 의식은 있었지만, 3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지낸 탓에 모든 관절이 굳어져 있어 일어나 앉기가 쉽지 않았다. “아파하시는데, 꼭 해야 해요? 어차피 못 움직이시는데 앉는 게 그렇게 중요해요?” “네, 중요해요. 누워 계시는 것보다 앉으시는 게 훨씬 건강해요. 돌보시기도 편하고요. 그러니까 저희가 알려드리는 걸 매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일어나 앉으면 생활하는 데 여러 이점이 있다. 누워만 있으면 꼬리뼈 뒤쪽에 욕창이 생기기 쉽다. 꼬리뼈는 피부가 얇고 지방이 없는 부위이기 때문에 조금만 눌려져도 욕창이 잘 생긴다. 게다가 한번 욕창이 생기면 대변과 소변이 흘러내려 고이는 위치라 잘 낫지 않는다. 일어나 앉으면 대개는 좌골에 압력이 가해진다. 좌골만 해도 근육과 지방층이 도톰하게 자리 잡고 있어 꼬리뼈보다 훨씬 낫다. 자세 변화(체위 변경)도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어, 욕창 예방에 도움이 된다. 흡인성 폐렴 예방 효과도 있다. 누워서 지내다 보면 위의 음식물이 식도로 역류하기가 쉽고, 결국 기도로 들어가 폐렴을 일으키게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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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해석의 힘 아이들의 아빠는 내게 자신의 양손 손바닥을 펼쳐 보여주었다. 여기저기 붉은 수포가 어지럽게 돋아 있는 손바닥. 엊그제 진료실에서 얘기한 대로 아이들에게 수족구를 옮았나보다. 연달아 수족구에 걸려서 힘들어했던 아이들이 겨우 좋아진 후, 그 아이들의 아빠가 인후통이 심하다고 진료실에 왔었다. 나는 감기일 수도 있지만, 수족구일 수도 있겠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이틀 후 손바닥에 돋은 붉은 수포로 수족구가 확진되었다. 수족구의 원인 바이러스가 콕사키바이러스에서 엔테로바이러스로 바뀐 후 간혹 수족구에 걸리는 성인들이 있다. 수족구에 걸렸던 성인들이 많지도 않지만, 그 대다수는 아이들의 엄마이거나 어린이집 교사였다. 내 진료실에서 수족구에 걸린 성인 남성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남성은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면역력이 낮아 아이들이 걸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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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안심’을 처방하기 진료실에서 환자분들이 “아, 이런 설명을 들으니 안심이에요”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다. 설명하기 힘든 증상으로 인해 막연한 불안감이 스칠 때, 잘 설명하여 안심하시도록 하는 것은 주치의의 역할이다. 어찌 보면 1차 의료 주치의의 핵심적인 역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안심’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말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는다. 우선은 위중한 질환의 잘 알려지지 않은 증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의학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환자뿐만 아니라 주치의인 나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을 만한 훌륭한 설명 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 명확한 처치나 약이 없기 때문에 더 어렵다. 그래서 우리 1차 의료 주치의들끼리는 이것을 두고 ‘안심을 처방한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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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생활동반자법 진료실에서 어떤 분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 물어보셨다. 나는 등록하시려는 줄 알고, “네, 저희 의료기관에서도 등록은 가능하신데요, 건강보험공단과 보건소처럼 공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원하는 때 언제든 등록하실 수 있는 것은 아니고요, 자원활동가들이 시간을 내주시는 때에 맞춰서 등록하실 수 있습니다. 도와드릴까요?”라고 여쭤봤다. 그분은 이미 보건소에서 몇 년 전에 등록을 하셨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꺼내신 건 최근에 돌아가신 지인의 임종 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문득 저렇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다가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제대로 작동할지 궁금하여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내가 매일 지갑에 넣고 다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카드’를 보여드렸다. 너무 불안하면 이거라도 지갑에 넣고 다니세요, 저처럼. 그리고 미리 가족들, 자녀들에게도 다 말씀해 놓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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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알약 한 알을 먹는다는 아주 쉬운 일 내 친구는 서른다섯 살이 넘도록 알약을 못 삼켰다. 어렸을 때 알약을 먹다가 심하게 사레가 걸린 이후 알약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올라와 알약을 다시는 복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친구가 감기나 소화불량으로 간간이 약을 처방받으러 올 때까지는 사실 큰 문제는 없었다. 먹는 약을 처방하지 않기도 했고, 쪼개서 복용해도 되는 알약이나 캡슐약을 처방하면 됐다. 그도 싫다면 약국에서 파는 아이들용 해열제 시럽을 사서 먹도록 용량을 써 주면 되었다. 문제는 이 친구가 피부에 곰팡이가 생겨 매일 항진균제를 복용해야 하면서부터 생겼다. 몇주 동안 쓴 가루약을 먹느라 친구가 너무 고생한 끝에 아예 약 먹는 것을 거부하게 됐기 때문이다. 평생 약 먹을 일이 없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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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방문진료와 트랜스젠더 얼마 전 의과대학에 가서 본과 4학년 후배들 앞에서 ‘장애인과 거동불편 환자에 대한 지역사회 방문의료’에 대한 강의를 했다. 후배들 앞에 강의를 하기 위해 서자, 이들 중 몇명을 2년 전에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그들이 본과 2학년이었을 무렵 성소수자 의료와 관련한 의과대학 수업이 처음 생길 때 그 수업의 기획과 강의에 나도 참여했던 터였고, 학생들은 성소수자 친화적인 의료기관의 실제 운영 모습을 보러 실습을 나왔다. 그때 내 강의 주제는 ‘성소수자를 위한 지역사회 1차 의료’였다. 같은 학생들 앞에 전혀 다른 듯 보이는 주제의 강의를 하기 위해 섰지만, 나는 그것이 서로 다른 주제인 듯 느껴지지 않았다. 당장에 그 수업에 나를 초청했던 친구부터가 그랬다. 대학병원의 공공진료센터에서 근무하며 방문진료를 맡고 있는 교수로, 우리는 성소수자의료연구회 활동도 같이하고 있으니까. 성소수자 의료에 관심 있는 많은 의료인들이 장애인과 거동불편 환자에 대한 방문진료에도 관심이 있고, 그 역으로도 그렇다. 기존의 의료가 상상하지 못했던 환자들, 현재의 의료체계 내에서 의료접근권이 제한되어 있었던 환자들과의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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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안심하고 진료받고, 안심하고 진료하기 원장님, OO 직원이 환자분 주사 놓고 나서 바늘에 찔렸어요. 그 환자분 감염성 질환에 대한 이전 검사 기록은 아무것도 없어요. 환자분께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니 혈액검사에 동의해 주신다고 해요. 어떤 검사를 하면 될까요? B형 간염, C형 간염, HIV, 매독까지 감염 여부를 검사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주삿바늘 찔림을 통해 옮겨질 수 있는 질환들이다. 물론 검사비는 모두 환자분이 아닌 우리가 부담하는 것이고, 모두 비보험이다. 그 질환이 의심될 만한 증상이 있어서 검사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다행히 환자분께 모든 결과가 음성이라는 검사 결과와 함께 ‘도와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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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약을 줄이자고 하는 주치의 시작은 갱년기 증상이었다. 50대 여성은 월경이 멎으면서 점차 식은땀이 나고 두근거리는 증상이 나타났는데, 특히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의료기관에 가서 호소를 하고, 두근거림을 멈추게 하는 베타차단제(BB)를 처방받았다. 두근거리는 증상은 좋아졌지만 베타차단제를 복용하면서 기관지가 좁아져 쌕쌕거리기 시작했고, 또 다른 의료기관을 찾아가 천식을 진단받았다. 시작은 혈압이었다. 70대 여성은 혈압이 높아 의료기관에서 혈압약 칼슘채널차단제(CCB)를 처방받았다. 혈압은 잘 조절되기 시작했지만, 어느 날부터 양쪽 다리가 점점 붓기 시작했고, 이에 이뇨제가 처방되었다. 이뇨제를 드시니 다리의 부기는 빠졌지만 화장실 가는 횟수가 너무 늘었고, 밤에 자주 깨서 화장실을 가게 되니 다른 의료기관에서 요실금에 쓰는 항콜린성 약제를 처방받았다. 항콜린성 약제 복용 이후 낮에도 졸리고 인지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이제는 치매 검사를 받아야 하나 걱정하는 상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