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을 처방하기

진료실에서 환자분들이 “아, 이런 설명을 들으니 안심이에요”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다. 설명하기 힘든 증상으로 인해 막연한 불안감이 스칠 때, 잘 설명하여 안심하시도록 하는 것은 주치의의 역할이다. 어찌 보면 1차 의료 주치의의 핵심적인 역할이기도 하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가정의학과 전문의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가정의학과 전문의

그런데 이 ‘안심’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말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는다. 우선은 위중한 질환의 잘 알려지지 않은 증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의학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환자뿐만 아니라 주치의인 나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을 만한 훌륭한 설명 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 명확한 처치나 약이 없기 때문에 더 어렵다. 그래서 우리 1차 의료 주치의들끼리는 이것을 두고 ‘안심을 처방한다’고도 한다.

안심을 처방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비유가 필요할 때가 많다. 총콜레스테롤이 너무 높은 것에 대해 걱정하시는 분의 건강검진 결과지를 상담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HDL 콜레스테롤(고밀도지단백)이 높아서 총콜레스테롤까지 높아진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드렸다. HDL 콜레스테롤은 높을수록 좋은 것이라고. 그분은 어떻게 콜레스테롤인데 높을수록 좋을 수가 있냐며, 총콜레스테롤이 높은 것이 영 불안하다 하셨다. 내 진료실 책상 위에 놓인 혈관의 모형을 가리키며, 이렇게 혈관에 기름때가 끼는 것이 무섭다고 하셨다.

기름때를 제거하려면 비누를 써야 하죠? 비누를 만들 때 기름이 많이 들어간답니다. 폐식용유를 모아 빨랫비누를 만든다는 것을 들어보신 적 있지요? 기름때를 제거하는 비누를 만드는 데도 기름이 꼭 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HDL 콜레스테롤도 비누에 들어가는 기름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설명을 들으신 후에야 그분의 걱정은 잠재워졌다.

한번은 소변에 거품이 많이 나와서 걱정이 된다는 분이 오셨다. 우선 가장 간단한 소변검사인 스틱검사를 해보았지만 깨끗했다. 미세한 단백뇨는 일반적인 스틱검사에서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어서 단백뇨에 대한 좀 더 정밀한 검사까지 해보았지만 모두 정상이었다. 게다가 이분은 당뇨나 고혈압, 신장질환이 따로 없으신 상태였기에 소변검사 결과를 잘 설명해드리고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이분의 불안이 잠재워지지 않았다.

맥주 따르는 것 보신 적 있으시지요? 똑같은 맥주라도 따르는 속도에 따라서 거품이 많이 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죠. 소변도 같은 성분이라도 누는 속도나 떨어지는 높이, 기온에 따라서 거품이 많이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있을 수 있어요. 물론 성분의 차이도 있겠지만, 문제가 될 만한 성분이 없어도 거품은 생길 수 있어요.

그분은 소변을 눈 후 변기에 거품이 보이길래 지레 걱정이 되어, 염증을 씻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소변을 일부러 힘줘서 세게 배출했다고 한다. 그러니 거품이 점점 더 많이 생겼던 것이다. 나는 소변을 너무 힘주어 누지 않으시도록 말씀드렸다. 방광을 빠르고 세게 수축시키다간 자칫 신장으로 소변이 역류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안심을 제대로 처방하는 건 이런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환자분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들이 많다. 왜 하필 오늘 이 걱정이 시작된 것인지. 지인에게 갑자기 뇌졸중이 생겼다거나 콜레스테롤과 관상동맥질환에 대한 TV 프로그램 같은 것을 보셨을 수도 있다. 지인의 신장기능 저하에 대한 소식을 들었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신장 투석을 받기 시작하셨을 수도 있다.

환자분들의 불안이 시작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안심을 처방하는 첫번째 단계이다. 불필요한 검사나 처방을 줄여 의료비의 낭비를 막는 데도 필요하지만, 매일의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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