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용
청년연구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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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대선, 성의 없는 말들의 잔치 어릴 적 내게 큰 영향을 준 한 록밴드는 ‘지금 시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질문하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곡을 쓴다고 했다. 이 지면에 글을 쓰는 나도 그런 고민을 한다. 지면이라는 공적인 발언권의 무게를 알기 때문이다. 지난 4개월간 광장에서 자유발언을 한 시민들도 그러했다. 주어진 시간은 3분, 그 짧은 시간 안에 청중을 사로잡는 이야기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발언자 다수는 공적인 자리에서 익명의 청중을 향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경험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인 발언자가 많았다. 그들의 사연에 사회가 귀를 기울여주는 일 자체가 드물다. 그렇기에 자유발언은 더더욱 소중한 기회였을 것이고, 그만큼 시민들은 문장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이며 발언을 준비했다. 평범한 시민들의 발언이 감동적이고 무엇보다 재밌었던 것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였다. 청중도 떨리는 목소리에 담긴 절실함을 즉각 알아차리고 진지하게 들었다. 그렇게 시민들은 타인의 말을 통해 배우며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했다. 광장은 민주주의의 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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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계엄 폐지와 시민불복종 최근 광장에 국민의례와 애국가가 등장했다. 지난해 12월을 거치며 국민 대신 시민이라는 말이 자리를 잡았는데, 이를 뒤집듯 국민이라는 말이 되살아나고 있다. 고작 글자 하나 다를 뿐이지만, 그 언어를 사용하는 감각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12·3 쿠데타의 경험으로부터 얼마나 근본적인 성찰로 나아갔느냐에 달린 것이다. 그날 밤 국가는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누었고,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상식은 배신당했다. 배신의 경험은 국가를 질문에 부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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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경찰은 ‘헌재 폭동’ 막을 수 있을까 극우세력의 준동이 한창이다. 윤석열 체포·구속을 방해하고자 한남동에 모이더니 서부지법을 침탈했고, 이후 점입가경의 행보를 보인다. 세이브코리아는 지난달 15일 광주 금남로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열고, 저주와 증오의 언어를 퍼부어 광주를 모욕하려 했다. 부정선거부패방지대는 지난달 17일부터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자택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며 주민들까지 위협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극우 유튜버와 시위대는 이화여대로 난입해 학생의 멱살을 잡거나 상처를 입혔다. 실패한 내란을 이어가 재기하려는 극우세력들은 사회 곳곳에 출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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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내가 만난 세계 2024년 12월3일 이후 두 달이 지났다. ‘내란성’ 스트레스, 불면증, 우울증 등 온갖 질환을 겪다가 다들 어느 정도 일상으로 돌아온 듯하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윤석열은 구속기소됐을 뿐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윤석열이 의회 무력화에 실패한 이후, 현재 내란 세력의 칼끝은 사법부로 이동했다. 윤석열 지지자들은 법원을 침탈했다. 여당 의원들은 연일 헌법재판소와 사법부를 향해 색깔론을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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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총구 앞에서의 항명 12월3일 밤, 전화소리에 잠을 깬 뒤 계엄이라는 비현실적 현실을 마주했다. 시민들은 국회로 달려가 장갑차를 막고, 창문을 깨고 난입하는 군인들에 맞서는 등 국회 안에서는 그야말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날 이후 줄곧,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총을 맞고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군사재판에 회부되는 계엄령의 역사가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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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기억이 지역을 만든다 내 고향 울산은 이주민 도시다. 산업화 시기 울산에 자리 잡은 내 부모세대는 산업도시 울산을 형성한 노동이주 1세대다. 어릴 적 1997년 울산의 광역시 승격 뉴스를 보고 신났던 기억이 선연한데, 오늘날 울산도 지역소멸 위기를 겪는다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1962년 박정희 정권이 울산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해 개발이 시작된 지 약 반세기 만에, 한 도시의 압축적 성장과 쇠퇴를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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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문란한’ 애도의 북소리를 작년 이태원 핼러윈의 밤은 다소 한산했다. 놀러 나온 사람보다 경찰과 공무원이 더 많은 듯했다. 위압적으로 좁은 거리를 좌우로 가른 폴리스라인은 놀러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추방령처럼 보였다. 나는 사람들과 분장을 하고 그 거리를 돌며 사람들에게 보라색 리본을 나눠 주었다. 핼러윈을 즐기러 온 한산한 행렬은 리본을 건네받았다. 리본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눈빛 외에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1년 전을 기억하면서, 축제 지속으로 애도를 표하려는 마음들이 침묵으로 공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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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마법의 주문을 외우면 지난달, 대만에 인접한 일본의 작은 섬 미야코에 다녀왔다. 미야코섬은 ‘미야코 블루’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에서도 아름다운 휴양지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 진에어 항공이 직항 노선을 개설했다. 목적지는 2008년 9월 세워진 ‘아리랑의 비’. 낯선 미야코섬으로 간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을 추모하기 위해 미야코 주민들과 한·일의 연구자들이 함께 이 비를 세웠다. 미야코에서는 매년 9월마다 추모비 건립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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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평범한 이웃의 몫 대학에서 강의하게 되면서 서 있는 자리의 변화를 실감한다. 박봉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강사 월급 때문은 아니다. 한 학기 동안 강의를 꾸려나가고 학생들의 지적 성장을 도와야 할 강사로서의 책임 때문이다. 어른이 되는 시기가 늦어지는 시대에 나는 여전히 청년세대에 속하지만, 어느덧 사회에 그저 도전하고 요구하는 것보다 사회에 대한 ‘책임’을 고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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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태도로서의 마음 일전에 한 선생님이 물었다. “글로 읽은 저와 실제 보는 제가 많이 달라 실망하지 않았나요?” 그 순간에 명쾌한 답변을 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아쉽다. 내가 그의 글을 좋아하고 그의 팬이 된 것은 단순히 그가 훌륭한 사람일 거라 믿기 때문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일상에서 어떤 모습을 하는지 알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다. 그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변을 얻게 된 것은 한 뮤지션을 ‘덕질’하면서였다. 지금은 내 ‘최애’가 된 그를 처음 목격한 공연에서 내가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태도’였다. 당시 그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노래를 만들면서 사랑을 마치 지켜나가야 할 태도라고 정의했다. 갚기 어려운 깊은 애정을 알려준 팬들을 향해, 자신의 사랑의 태도를 계속 점검하면서 단어 하나하나 신중히 골라 말하고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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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사람 잡아먹는 배터리 영어 단어 ‘배터리’는 포병부대나 요새화된 포대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배터리의 의미는 전지(電池)다. 이 용법은 18세기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이 전기를 모으기 위해 고안된 라이덴 병을 연결한 것을 대포들이 모여 있는 모습(배터리)에 비유하면서 시작됐다. 오늘날 일상 곳곳에 쓰이는 배터리는 그 어원처럼 군대나 전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례로, 과거 한국 전기산업을 석권한 굴지의 기업 로케트전지(구 호남전기공업)는 해방 이후 미군이 버린 군용전지를 재활용해 건전지를 만들었고, 이후 미군 및 국군에 군용전지를 납품하며 크게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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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군대, 예외에서 상식으로 횡문근융해증. 육군 12사단 훈련병의 사인으로, 타격 및 압력이나 무리한 운동 등으로 근육이 괴사해 장기를 손상시키는 증상을 뜻한다. 낯선 의학 용어지만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단어다. 2014년 5월 윤 일병 사망의 수사단장이던 6군단 헌병대장은 음식물에 의한 기도폐쇄를 사인으로 발표했다. 이후 유가족이 공개한 의과대학 법의학 전문가의 감정서는 횡문근융해증을 윤 일병의 사인으로 지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