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용
청년연구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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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총구 앞에서의 항명 12월3일 밤, 전화소리에 잠을 깬 뒤 계엄이라는 비현실적 현실을 마주했다. 시민들은 국회로 달려가 장갑차를 막고, 창문을 깨고 난입하는 군인들에 맞서는 등 국회 안에서는 그야말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날 이후 줄곧,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총을 맞고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군사재판에 회부되는 계엄령의 역사가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것은 모욕감이었다. 국가가 내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는 감각, 총구 앞에서 우리가 누리던 일상이 가볍게 증발해 버릴 수 있다는 실감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계엄이 선포됐던 여순사건에서 악명 높던 ‘손가락총’이 떠올랐다. 1948년 10월22일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이 선포되고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반란군’ 협력자 색출이 시작됐다. 군은 시민들을 학교운동장 등에 모은 뒤, 지역 우익인사나 경찰관이 협력자라며 손가락으로 지목한 시민을 끌고 가 즉결처분했다. 근거도 없이 무차별 난사한 손가락총이었다. 손가락이란 생살여탈권 앞에 고개 숙인 채 두려워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인간을 향한 모욕의 극단을 보여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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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기억이 지역을 만든다 내 고향 울산은 이주민 도시다. 산업화 시기 울산에 자리 잡은 내 부모세대는 산업도시 울산을 형성한 노동이주 1세대다. 어릴 적 1997년 울산의 광역시 승격 뉴스를 보고 신났던 기억이 선연한데, 오늘날 울산도 지역소멸 위기를 겪는다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1962년 박정희 정권이 울산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해 개발이 시작된 지 약 반세기 만에, 한 도시의 압축적 성장과 쇠퇴를 목도하고 있다. 울산의 위기는 청년층의 이주만이 그 원인이 아니다. 내 부모세대는 은퇴 후 울산을 떠나 고향으로 이주하고 있다. 중장년층도 은퇴하면 울산을 떠나려는 이가 적지 않다. 이런 현상은 울산이라는 도시가 고향을 떠나온 이주민에게 귀속감을 주어 ‘울산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실패했음을 뜻한다. 역시 이주 2세대인 나 같은 청년들도 별로 귀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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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문란한’ 애도의 북소리를 작년 이태원 핼러윈의 밤은 다소 한산했다. 놀러 나온 사람보다 경찰과 공무원이 더 많은 듯했다. 위압적으로 좁은 거리를 좌우로 가른 폴리스라인은 놀러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추방령처럼 보였다. 나는 사람들과 분장을 하고 그 거리를 돌며 사람들에게 보라색 리본을 나눠 주었다. 핼러윈을 즐기러 온 한산한 행렬은 리본을 건네받았다. 리본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눈빛 외에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1년 전을 기억하면서, 축제 지속으로 애도를 표하려는 마음들이 침묵으로 공명했다. 작년 1주기에 들렸던 술집의 사장님은 내가 오늘 첫 손님이라며 평소보다 핼러윈 때 더 장사가 안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올해 2주기에도 찾아갔지만 가게가 사라지고 없었다. 참사의 상흔은 여전히 이태원 곳곳에 남아 있다. 그래도 다행히 올해 이태원 핼러윈의 밤거리는 다소 붐볐다. 1주기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돌아왔다. 나는 참사를 애도하는 버스킹 공연과 행진에 참여했다. 북소리를 앞장세워 북적이는 거리 사이를 춤추며 나아갔다. 거리를 압도하는 타악기 소리에 행진대열도 관객도 신이 나 어깨를 들썩였다. 사람들 사이에 애도와 슬픔이 흥겨움과 공존했다. 참사가 일어난 골목을 지나치면서, 인파들 사이 어디선가 희생자들이 함께 춤추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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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마법의 주문을 외우면 지난달, 대만에 인접한 일본의 작은 섬 미야코에 다녀왔다. 미야코섬은 ‘미야코 블루’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에서도 아름다운 휴양지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 진에어 항공이 직항 노선을 개설했다. 목적지는 2008년 9월 세워진 ‘아리랑의 비’. 낯선 미야코섬으로 간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을 추모하기 위해 미야코 주민들과 한·일의 연구자들이 함께 이 비를 세웠다. 미야코에서는 매년 9월마다 추모비 건립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물이 귀한 섬이라 위안소에서 우물까지는 먼 길을 걸어야 했다. ‘위안부’ 여성들은 미야코 주민들과 함께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며 교류했다고 한다. 당시 어린아이였던 요나하 히로토시는 그 기억을 간직한 채 우물을 오가던 그녀들이 잠시 쉬어가던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왔다. 지금 그 자리에 아리랑의 비가 세워졌다. 그 옆에 과거 일본군 비행장이, 현재 자위대 공군기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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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평범한 이웃의 몫 대학에서 강의하게 되면서 서 있는 자리의 변화를 실감한다. 박봉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강사 월급 때문은 아니다. 한 학기 동안 강의를 꾸려나가고 학생들의 지적 성장을 도와야 할 강사로서의 책임 때문이다. 어른이 되는 시기가 늦어지는 시대에 나는 여전히 청년세대에 속하지만, 어느덧 사회에 그저 도전하고 요구하는 것보다 사회에 대한 ‘책임’을 고려하게 된다. 그래서다.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 대한 책임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 다수가 10~20대라고 한다. 그들을 피해자와 가해자로 만든 것이 사회라면, 나는 이런 사회를 만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만약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이 내 강의를 듣는 학생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피해자와 가해자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얼굴을 하고 있다. 그것이 이 사태의 끔찍한 측면이기도 하다. 같은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는 친구가 알고 보니 가해자라면 피해자는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가족을 대상으로도 성범죄가 벌어진다니 딸이 피해자, 아들이 가해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물을 수밖에 없다. 학교는, 집은, 직장은 과연 안전한 공간일까? 친구, 가족, 동료가 피해자이고 가해자라면, 이 사태로부터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성폭력은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린다. 딥페이크 성범죄만이 아니라 성폭력은 많은 경우 가족, 친구처럼 피해자와 익숙한 관계에서 발생한다. 일상 곳곳이 위험으로 가득 차고 주변의 누군가가 나에게 은밀하게 악의를 품고 있다면, 대체 누구를 믿고 어디에서 안심하고 쉴 수 있을까? 마치 땅 전체가 흔들려 안전한 곳을 찾을 수 없는 지진처럼 익숙한 일상의 지반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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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태도로서의 마음 일전에 한 선생님이 물었다. “글로 읽은 저와 실제 보는 제가 많이 달라 실망하지 않았나요?” 그 순간에 명쾌한 답변을 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아쉽다. 내가 그의 글을 좋아하고 그의 팬이 된 것은 단순히 그가 훌륭한 사람일 거라 믿기 때문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일상에서 어떤 모습을 하는지 알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다. 그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변을 얻게 된 것은 한 뮤지션을 ‘덕질’하면서였다. 지금은 내 ‘최애’가 된 그를 처음 목격한 공연에서 내가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태도’였다. 당시 그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노래를 만들면서 사랑을 마치 지켜나가야 할 태도라고 정의했다. 갚기 어려운 깊은 애정을 알려준 팬들을 향해, 자신의 사랑의 태도를 계속 점검하면서 단어 하나하나 신중히 골라 말하고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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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사람 잡아먹는 배터리 영어 단어 ‘배터리’는 포병부대나 요새화된 포대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배터리의 의미는 전지(電池)다. 이 용법은 18세기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이 전기를 모으기 위해 고안된 라이덴 병을 연결한 것을 대포들이 모여 있는 모습(배터리)에 비유하면서 시작됐다. 오늘날 일상 곳곳에 쓰이는 배터리는 그 어원처럼 군대나 전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례로, 과거 한국 전기산업을 석권한 굴지의 기업 로케트전지(구 호남전기공업)는 해방 이후 미군이 버린 군용전지를 재활용해 건전지를 만들었고, 이후 미군 및 국군에 군용전지를 납품하며 크게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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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군대, 예외에서 상식으로 횡문근융해증. 육군 12사단 훈련병의 사인으로, 타격 및 압력이나 무리한 운동 등으로 근육이 괴사해 장기를 손상시키는 증상을 뜻한다. 낯선 의학 용어지만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단어다. 2014년 5월 윤 일병 사망의 수사단장이던 6군단 헌병대장은 음식물에 의한 기도폐쇄를 사인으로 발표했다. 이후 유가족이 공개한 의과대학 법의학 전문가의 감정서는 횡문근융해증을 윤 일병의 사인으로 지목했다. 정확히 10년의 시차를 두고 등장한 횡문근융해증. 누군가에게 그 시간은 짧았다. 분노와 슬픔을 몸에 간직한 채 인권운동가로 살아온 유가족이 보기에 이번 사건은 되풀이되는 구조적 문제다. 하지만 12사단 훈련병을 죽음으로 몰고 간 중대장의 성별을 사건의 원인처럼 여기는 이들이 있다. 사망의 원인을 고인의 체력 탓으로 돌리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10년 전을 기억하지 못한다. 윤 일병 이후에도 군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죽는 일이 반복되었지만, 그들은 이 ‘구조적 죽음’을 잊은 채 누군가를 손쉽게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린다. 마치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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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또 다른 5월과 팔레스타인 “옛날에 사격장은 유일하게 구타가 허용되는 곳이었다.” 갓 입소한 훈련병이라면 지금도 접하게 되는 풍문이다. 첫 사격훈련을 위해 총을 쥐고 제 차례를 기다리는 훈련병들에게 그 풍문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혹시 무언가 일이 잘못돼 누군가가 다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훈련병들을 휘감아 잔뜩 긴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사격의 경험은 허탈할 만큼 별것 없었다. 한번 쏴보면 마치 신기루처럼 긴장이 사라지고, 이내 사격은 일상적인 군 생활의 일부가 된다. 습하고 무더운 여름날의 훈련소에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사람을 향해 쏘는 것도 처음이 힘들 뿐 익숙해지지 않을까. 남자고등학교를 나온 나는 인간이 폭력에 길들여지는 걸 보았다. 등교 첫날부터 휘둘러진 ‘빠따’ 소리. 공기를 가르며 몸에 착 달라붙는 소리에 다들 질겁했지만, 한 달이 지나자 엉덩이의 피멍은 보통의 일상이 됐고, 인간이 폭력과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나는 학교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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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시혜와 비난을 넘어 제22대 총선이 마무리되었다. 성적표를 보면 정권심판론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여소야대 국면이 이어지게 됐다. 혜성처럼 등장한 조국혁신당과 당을 박차고 나가 생존한 개혁신당도 주목할 만하다. 정작 그 와중에 녹색정의당은 국회에서 퇴장하게 됐다. 3%의 벽을 넘지 못해 의석을 잃었고, 심상정 의원은 은퇴를 선언하며 눈물을 보였다. 나는 그 광경 앞에서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울산 출신인 나는 “권영길이 뽑으소, 영 아이다 싶으면 노무현이도 괜찮고”라는 말로 2002년 대선을 기억한다. 동네 사람들에게 권영길을 뽑아달라 당부하는 노조 아저씨들이 있었고, 노무현의 이름도 가끔 호의적으로 언급됐다. 당시 나는 권영길을 뽑으라면서 왜 그를 “영 아이다 싶은” 사람으로 여길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건지, 그리고 당이 다른데 왜 노무현도 “괜찮다”고 말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후 조금 더 자랐을 무렵,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차이를 ‘한강과 실개천’으로 비유하는 걸 보고 아리송하기도 했다. 그런 기억을 품고 스무 살이 된 2008년의 나는 당시 진보신당의 당원이 되었고, 그해 총선에서 진보신당은 3%의 벽 앞에 가로막혔다.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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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고귀함을 알아볼 의무 어느덧 세월호 참사 10주기다. 당시의 “미안하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그리 곱게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새 나도 ‘어른’이 되어버렸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의 모순들이 응축되어 벌어진 일이었고, “미안하다”는 고백은 분명 그런 사회를 만들어낸 것에 대한 간절한 반성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십 년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 공동체는 과연 더 나은 곳에 도착했을까. 단언컨대 한국 사회는 그 마음에 값하지 못했다. 사회가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찾아온 건 적나라한 각자도생과 혐오의 세상이다. 그러나 무에서 유가 나오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는 이 사회가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라는 걸 모두에게 재차 확인해 주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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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왜 왕이나 독재자는 자그마한 불평도 크게 처벌했는지 아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우물쭈물하며 답하지 못하는 사이에 “두려워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당시의 나는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대체 뭐가 무서워서 그랬던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후 대학에서 강의를 맡게 되면서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강의실에 서면 나는 아닌 척하면서 늘 학생들의 눈치를 본다. 졸거나 딴짓을 하지 않는지 그 일거수일투족에 눈길이 간다. 그 모습을 보며 내 강의가 지루하거나 재미가 없는 건가 가늠해보고, 딴짓을 하는 모습에 나를 무시하거나 얕잡아 보는 건 아닐지 걱정을 한다. 보통은 약자인 학생이 강사의 눈치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짐짓 아닌 체할 뿐 나 역시 학생들의 눈치를 보며 불안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