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러 가자

최성용 청년연구자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느닷없이 닥쳐온 비극 앞에서 사람들은 황망한 기분으로 자책과 후회를 토로한다. 지하차도에서, 거리에서, 교실에서, 최근 몇달간 일어난 여러 사회적 죽음들 앞에서 나는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들 안다. 되돌아갈 수 없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을 품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안다. 그 마음이 간절할수록 과거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차갑고 단단하다.

그래도 상상해 본다. 만약 4월15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배가 출항하는 걸 막기 위해 무슨 수든 쓸 작정이다. 단원고에 전화를 걸어 사고가 날 거라고 경고할 거다. 인천으로 달려가 사고가 날 거라며 어떻게든 세월호의 출항을 방해할 것이다. 배에 불을 지를지도 모른다, 인질을 잡고 협박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화물을 과적하고 평형수를 뺀 채 승객을 실은 세월호가 무심히 항해를 나선다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아마 나는 거기에 탑승할 것이다. 배가 쓰러지는 순간을 함께하며 304명 모두를 구출할 것이다. 가라앉는 배만 멍하니 쳐다보며 무력감을 곱씹던 과거를 다시 되풀이할 수는 없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에서 사람들이 죽어갈 때 나는 그곳에 없었다. 뒤늦게 소식을 알고서 후회했다. 내가 그곳에 있었어야 했는데. 민간잠수부들처럼 진도 앞바다로 달려가지 못했고, 이태원에서 사람들을 구하려 밤새 심폐소생술을 하던 시민들과도 함께하지 못했다. 나는 왜 참사를 ‘현재’가 아니라 ‘과거’로만 접하는가.

이태원 참사를 목격한 구조자들은 자신이 그날 밤 이태원에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려 한다. 사람들을 살리지 못했다고, 자신 때문에 죽은 것일 수도 있다며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안고 있지만 정작 거기 왜 갔느냐는 비난이 두려워 말하지 못한다. 참사 이후에 죽은 159번째 희생자도 그러했다. 부끄러움과 죄책감은 경찰도 구조대도 없는 순간에 한 명이라도 살리고자 애썼던 그들의 몫이 아니라, 그날 거기에 없었던 나 같은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 몰랐다고 해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알지 못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럴 줄 몰랐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모른 척 외면해야 한다.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막연하게는 알기 때문에, 더 알게 되면 곤란하거나 피곤해질 것임을 알기에 사람들은 모른 척한다. 그래서 참사 이후에 누군가는 말한다,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고.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규칙들을 무시하던 관행이나 문제가 생겨도 적당히 넘어가는 무책임의 구조가 참사를 불러일으켰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를 평상시에 지적하고 경고해 온 사람들의 말이 참사 이후에야 들리는 것은, 알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평소의 경고를 가벼이 흘려넘긴 책임에서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누구나 명백히 알고 있는 미래의 재난이 있다. 이미 올여름, 수해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참사의 원인이 기후위기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재난은 지금도 천천히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그 누구도 비껴가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을수록 재난은 더욱 잔인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막을 수 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 온도의 1.5도 상승을 막기 위해 2030년까지를 기후위기의 ‘골든타임’으로 제시한 바 있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는 4월15일을 살고 있는 중이다. 아직 우리에게 배를 멈출 기회가 있다. 평화로운 일상에서 저기 배에 오르는 사람들, 저기 축제를 즐기러 가는 사람들을 다 같이 구하러 가자. 오는 23일 ‘기후정의행진’에 함께하자.

최성용 청년연구자

최성용 청년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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