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귀신의 표정으로

최성용 청년연구자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고 성숙해지는 건 아니라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되는 게 있다. ‘상실’은 아프고 괴로운 것이지만 삶의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는 것이다.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우리는 반드시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된다. 동물이나 식물, 물건, 장소, 기억까지도 소중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우리 곁을 떠나간다.

한국 사회가 상실을 겪는 사람들에게 잔인한 면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떠나간 이가 남긴 자국을 어루만지며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람인 이상 온전히 슬퍼하고 애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언제 어떤 계기로 슬픔이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상실은 어쩌면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악우 같은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종 사람들은 상실을 마치 삼일장 치르는 걸로 후딱 해치울 수 있는 양 취급하고는 한다.

그럴 수 있을 리 없다. 이태원 참사는 1년이 되어가지만 유가족들은 여전히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이태원을 찾는 발길은 예전만 못하고, 부채감이나 슬픔을 꾹꾹 눌러 담은 채 일상을 보내는 상인과 주민, 생존자들이 있다. 상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먼 훗날 슬픔은 옅어지더라도 가끔 잊지 않고 찾아올 것이다.

혹자는 대체 언제까지 슬퍼하고 애도해야 하냐고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이상한 질문이다.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이고, 슬픔도 일상의 풍경에 속한다. 슬퍼하면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고, 활짝 웃는 순간에도 마음은 무거울 수 있다. 우리의 일상은 단 하나의 마음이 아니라 무지갯빛처럼 다양한 마음들로 채워진다. 슬픔과 애도의 방식도 그래서 다양하기 마련이다. 조용히 지난해를 떠올리는 사람도, 분장을 하고 이태원을 찾아 축제를 즐기는 사람도, 유가족과 함께 슬퍼하고자 분향소를 찾는 사람도 모두 저마다의 애도를 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 사회는 일상과 죽음을 과도할 정도로 분리해 왔다. 묘지나 납골당, 죽음을 기리는 기념공원 모두 도심 바깥으로 밀어낸 채 일상의 공간에서 죽음의 흔적을 지워왔다. 죽음이나 슬픔을 대하는 엄숙주의적 태도도 문제인데, 이 또한 평소에는 하지 않을 엄숙한 태도를 취하면서 죽음을 일상 바깥으로 밀어내는 방식이다. 그리고 지금, 참사 1주기를 축제 없이 엄숙하고 조용하게 보내자는 여론 역시 그러하다. 애도하고 기억하는 일이 꼭 엄숙할 필요도 없고, 평소와 달라야 할 이유도 없다. 모두 조용히 침묵하며 1주기를 보내자는 건 그저 조용히 넘어간 다음 다 잊어버리려는 것은 아닌가?

애도가 꼭 한 가지 모양일 필요는 없다. 대학 강의에서 이태원 참사를 다뤘을 때, 한 학생은 참사 당시 어렴풋이 슬펐지만 어떻게 슬퍼해야 할지 몰랐다고, 그래서 어느 순간 슬프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의 ‘국가 애도’가 참사와 슬픔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차단한 채 모두가 다 묻어두고 침묵하도록 종용했던 탓이다. 다른 학생은 올해도 애도해야 하니 핼러윈 축제에 갈 수 없어 화가 난다고 했다. 참사의 경험은 저마다 다르고, 그 학생이 상실한 ‘축제의 기쁨’도 애도의 대상일 것이다. 중요한 건 저마다의 애도를 해나가며 참사를 자신의 맥락에서 고민해 가는 일이다.

일전에 뵀던 광주의 어르신들은 5월만 되면 이상하게도 시름시름 앓는다고 했다. 10월29일이 다가오면 또 누군가에겐 손님처럼 슬픔이 찾아올 것이다. 그렇지만 그 슬픔에 지고 싶지는 않다. “저는 올해도 이태원에 갈 겁니다.” 참사 생존자인 김초롱님의 말이다. 나 역시 다가오는 주말 이태원에 가려한다. 그곳에서 삶과 죽음이 뒤섞이는 카니발의 시간을 함께하려고 한다. 가면을 쓰고, 이태원에서 만납시다. 기쁘고도 슬픈 마음으로, 무겁고도 산뜻한 기분으로, 웃는지 우는지 모를 호박귀신의 얼굴을 한 채.

최성용 청년연구자

최성용 청년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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