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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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헌법대로 합시다 총선이 여당의 역대급 참패로 끝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당대표 교체를 주도하면서 당정일치를 관철하여왔기에 이번 총선은 집권여당과 정치적 운명공동체인 대통령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기도 하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제왕적 행태로 초래된 민주주의의 퇴행을 정부형태 탓으로 돌리는 주장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민주화 이전 권위주의시대의 유산 때문에 여전히 남아 있는 헌법 무시의 관성에 터잡은 것으로 교정되어야 한다. 6월항쟁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현행 헌법은 유신·5공헌법이 채택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버리고 민주공화적 대통령제를 새로이 수립한 것임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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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이제 ‘제 발등 찍기 정치’를 끝내자 다시 선거철이 돌아왔다. 국민의 대표랍시고 지난 4년간 목소리를 높이던 분들이 바로 그 국민들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이는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황송하게도 폴더 인사를 받으면서 주권자 대접을 받는 듯 살짝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데 문득 뒤따르는 의문. 주권자 국민과 봉사자 국민대표가 선거철만 지나고 나면 왜 명령하는 국민대표와 복종하는 국민의 관계로 전도되어 버릴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대원칙은 일상정치에서 왜 법전 속의 장식으로 전락하고 마는가? 이번 총선부터라도 국민과 국민대표의 주객이 전도되는 반민주적 현실, ‘제 발등 찍기 정치’가 왜 매번 반복되는지 제대로 성찰하는 계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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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선거국면에서 새겨야 할 경구들 선거 때마다 소환되는 경구들이 있다. 먼저 루소는 영국의 대의제가 가진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영국민은 선거 때에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상태로 전락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회제에 경도되어 선거 외의 일상 정치과정에서 정작 국민이 소외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국민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대표를 뽑고 스스로 공무를 담당하는 참정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것 외에 다양한 정치과정에서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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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헌법이 명령하는 선거제 4월 총선이 코앞이다. 예비후보자 등록은 이미 시작되었다. 정당공천절차도 시작되었다. 그런데 정작 선거제는 아직도 확정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선거제는 선거법에 확정되어 있지만 선거구 획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거구 획정에 따른 유불리나 현행 선거제에 대한 거대정당들의 이해관계가 정리되지 않았을 뿐이다. 후보자나 정당이 경기장이나 경기 규칙도 없이 선거운동을 하는 꼴이다. 이게 민주공화국의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가? 총선은 민주공화국의 근간에 해당한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선거는 주권자가 권력을 행사할 일꾼을 뽑는 것이다. 이만큼 중요한 나랏일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처럼 중차대한 일에 정작 일꾼들이 잇속을 재느라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적으로 주권자의 정치적 기본권이자 주권 행사의 핵심적 수단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있다. 가뜩이나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상황에서 창피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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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한동훈 위원장님, 헌법부터 읽으시지요 국민의힘이 다시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당헌으로 뽑은 대표를 벌써 두 명이나 중도에 하차시킨 결과다. 전권을 행사할 비대위원장으로 한동훈 법무장관을 불러들였다. 장관 시절부터 국정보다는 기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헌법 원칙마저 거스르는 정파적 언술로 보수진영의 ‘스타장관’이 된,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후배다. 가뜩이나 정치보다는 통치에만 의존하는 대통령의 국회출장소처럼 전락한 탓에 총선용 비상체제를 출범시키면서도 벼락처럼 정권을 잡은 검사 출신 대통령의 분신을 또 내세운 집권당의 처지가 처연하기만 하다. 나라 곳곳에 검사 출신을 중용하는 것도 모자라 입법부의 핵심축인 여당의 대표로 내려보낸 것을 수용하는 모양새다. 한 위원장을 추인하는 당내 절차는 왕정시대의 세자책봉식을 연상시킨다. 민주주의는 아랑곳없이 아예 대를 이어 검사정권을 창출하겠다는 꼴이다. 시대착오적인 권력놀음을 위해 대표들을 내치고 비상체제를 출범시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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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헌법으로 심판하는 그날 대통령과 거대야당의 대치정국이 끝날 줄 모른다. 급기야 여당 의원들이 의장실 앞 연좌농성에까지 나섰다. 소통의 정치는 없고 일방통행식 정쟁만 있는 극단대치의 최대 피해자는 주권자 국민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울 뿐이다. 그나마 총선에서 국민이 심판할 날이 머지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자위해야 할까? 그러나 방향성도 없이 의욕만 앞서다간 오히려 낭패만 보기 십상이다. 자칫하다간 국민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은 안중에도 없이 이념놀음과 권력놀음에 날 새는 줄 모르는 권력자들에게 면죄부만 주는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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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왜 근로조건 기준은 인간 존엄성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 이후 ‘차분한 변화’를 당정에 주문하였다. 아직 보선 후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라 섣부른 진단이긴 하지만 내용은 그대로 두고 ‘변화’는 스타일에 그치는 것이 그 실체인 듯해 보인다. 스타일의 변화는 국회 시정연설에서 야당을 배려하는 듯한 화법이나 제스처에서 읽힌다. 미국식 ‘타운 홀 미팅’을 변형한 ‘카페 미팅’을 ‘비상경제민생회의’의 이름으로 열고 있는 것도 ‘출근길문답’이 사라진 후 굳어진 불통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그러나 정작 모두가 기대하는 국정기조의 변화는 실감하기 힘든 것이 ‘차분함’의 실체처럼 보인다. 대표적으로 반노동 정책이 그러하다. 윤 대통령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첫 번째 카페 미팅에서 민생 현안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인건비 문제와 소규모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방안을 부각시켰다.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민원을 제기한 자영업자나 소규모 사업자의 처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정부 수반으로 헌법수호의무를 가지는 대통령이라면 이런 민원이 가지는 헌법적 의미를 고려하여 신중히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나 중대재해를 당한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의 근로조건이 과연 우리 헌법의 정신에 부합하는지 따져 볼 여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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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나야 할 이유 근대 민주공화제의 선도국은 영국이다. 이미 13세기 초부터 흔히 ‘대헌장’으로 번역되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를 여러 차례 제정해 무소불위처럼 인식되던 국왕의 권한이 제한될 수 있고, 또 제한돼야 함을 확인해 법치주의 또는 적법절차 원리의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1215년 제정된 최초의 마그나 카르타에서 국왕이 이 헌장을 잘 준수할 수 있도록 25명의 귀족으로 구성되는 평의회를 두도록 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평의회를 통해 국왕을 통제한다는 발상은 1265년 시몽 드 몽포르가 반란을 일으킨 뒤 소집한 의회를 통해 계승된다. 특히 시몽 드 몽포르의 의회는 귀족뿐만 아니라 주요 도시의 평민 대표들도 참여하게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영국 하원인 평민원의 기원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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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 말아야 지난 6월 말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노조법 제2조 및 제3조 개정법률안이 9월 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이 법률안의 필요성에 대해 야당들이 적극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념을 동원한 시대착오적인 국민 분열 정책의 주요 대상으로 노동계를 지목해온 윤석열 정부는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어 또 다른 정치적 대치가 예상된다. 이번 노조법 개정 법률안은 노조법상 ‘사용자’와 ‘노동쟁의’의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노조활동으로 인한 손해배상에서 개별 책임원칙을 명시하고, 노조활동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신원 보증인에게는 면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동안 노동 시민사회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근로자 정의 조항의 확대가 누락되고, 개별 조합원이나 단순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면책 등 쟁의로 인한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데 필요한 주요 내용들이 사용자의 재산권 침해 등의 주장에 밀려 반영되지 않아 당초 요구안보다 상당히 후퇴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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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탄핵 기각이 면죄부일까? 헌법재판소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기각 결정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탄핵소추 과정만큼 치열하게 대치되고 있다. 집권여당은 탄핵소추권을 남용했다며 야당들을 몰아세운다. 지난번 검찰개혁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의 결과를 놓고 헌재를 폄훼하던 태도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야당들은 헌재 결정에 유감을 토로하면서 책임정치가 상실된 상황에 대한 무기력을 드러내고 있다. 시민사회 일각에선 헌재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헌재의 결정이 있을 때마다 일희일비하며 찬양론과 무용론을 번갈아 제기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현대 민주공화제의 관건인 기본적 인권이나 민주적 자치를 보장하는 데 헌법재판이 기여해 온 바를 소홀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헌법재판의 긍정적 효과를 유지하면서도 정치의 과도한 사법화로 발생하는 부작용을 제어하는 데 필요한 균형 잡힌 이해를 모색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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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헌법을 욕보이는 대통령 인사권 윤석열 대통령이 또 하나의 어록을 만든 듯하다. 보좌하던 비서관들을 대거 주요 부처의 차관으로 보내면서 대통령이 아니라 헌법의 정신과 시스템에 충성하라고 당부하였단다. 헌법국가를 추구하는 민주공화국 대통령으로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왜 화제가 될까? 말과 행동이 딴판인 ‘유체이탈 화법’이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무엇보다 일찍이 ‘차관 통치’를 선보였던 MB 정부를 모방한 것부터 헌법정신이나 시스템에 부합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오랜 수험생활 동안 유신헌법과 독재 대통령제를 채택한 5공헌법을 너무 열심히 공부한 탓에 6월 민주항쟁으로 탄생한 현행 헌법을 오독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에게 국가원수 지위를 부여한 현행 헌법 제66조는 유신헌법이나 5공헌법의 해당 조항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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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6월항쟁, 87년헌법, 대법관 인사권 현행 ‘87년헌법’을 탄생시킨 6월항쟁이 36주년을 맞는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하려던 경찰 등 권력기관의 음모를 국민이 막아내고 반독재민주화운동으로 승화시킨 게 6월항쟁이다. 그 와중에 경찰의 최루탄에 청년 이한열이 희생됐다. 청년들의 귀한 목숨이 국가폭력에 스러지고서야 민주주의가 꽃핀 것이다. 그 소중한 결실이 87년헌법이다. 87년헌법 아래 대한민국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선도국가가 됐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이룩한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발전모델에 대한 관심이 한류 열풍 못지않게 높다. 그러나 다시 경찰의 곤봉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민주주의 위기론의 먹구름이 한반도 남단에 드리우고 있다. 권력기관의 폭력으로 얼룩진 ‘법치 없는 권력만능 시대’의 악몽이 법치를 권력의 도구로 전락시킨 ‘민주 없는 법치만능의 시대’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