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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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국무총리의 존재이유 국무총리는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관건이 되는 헌법기관이다. 총리는 대통령의 보좌기관이면서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고 국정 최고심의기관인 국무회의의 부의장을 맡는 정부의 2인자이다. 장관으로 불리는 행정각부의 장을 맡기 위한 자격요건이 되는 국무위원의 임명을 제청하거나 그 해임을 건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행정권 2인자의 지위를 확인할 수 있다. 군사사항을 포함하여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도 총리의 부서가 있어야 한다. 이렇듯 막중한 지위의 총리는 대통령이 혼자서 임명할 수 없다. 반드시 국민대표기관인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 2인자의 임명에 국회 동의라는 족쇄를 채운 것은 대통령제의 구조적 문제점인 행정독재의 위험과 의회와 정부 사이의 교착상태를 해소하려는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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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법관의 ‘헌법적 역할’ 정치가 없다는 세간의 한탄 속에 정치적 파급효과가 적지 않은 사법 결정들이 아쉬운 대로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 지난번 칼럼에서 재구성해보았던 ‘방통위 사태’는 행정법원에서 방문진 이사 임명처분에 대한 효력정지 결정이 내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자의적 인사권 행사로 초래된 방통위 2인 체제에서의 처분이 위법의 합리적 의심을 받은 결과다. ‘비정상적’ 공권력 행사가 확인됨으로써 ‘정상화’라는 명분으로 ‘방송장악’을 도모하려는 대통령의 무도한 구상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하급법원이 ‘일개’ 단체의 임원 선임에 대해 내린 잠정적 결정이지만 방송을 둘러싼 정치권력의 충돌 상황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헌법적 의미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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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방통위 사태의 재구성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사실상 무법천지로 전락하였다. 방통위원장 국무회의 배제를 시작으로 장기간의 표적 감사와 수사가 이어지는 한편 위원장과 위원의 해임과 임명이 오로지 대통령의 자의적 인사권 행사로 점철되면서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정상적 조직 구성을 갖춘 적이 없다. 방통위원 정원이 자의적으로 채워지지 않은 채, 위원장 대행체제나 2인 체제라는 위법적 조건에서 YTN의 민영화나 KBS·MBC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처분이 적법절차는 아랑곳하지 않고 속도전 치르듯 이루어져 왔다. 현재는 세 번째 임명된 이진숙 위원장이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아 권한행사가 중지된 2인체제이며, 이 사태를 제도적으로 개선할 방통위법 개정안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표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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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민주공화적 대통령제 다시 보기 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을 또다시 거부했다. 총선 패배에도 대통령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 듯하다. 그러나 이는 대통령과 맹목적 지지자들의 정신승리에 불과하다. 민의에 따른 국회의 결정을 거부만 할 뿐 그 어떤 국정과제도 주도하지 못하는 대통령에게 무슨 미래가 있는가? 윤 대통령이 당과 한 몸임을 강변하는 여당의 당대표 선거는 자중지란 그 자체다. 국정 비전은 아랑곳없이 저급한 편가르기만 한창이다. 이런 형국에선 누가 대표가 되건 대통령의 시간은 고장난 시계처럼 헛돌 뿐이다. 그렇다고 연임이 확실시되는 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대통령의 시간을 되돌려줄 수 있을까? 설령 그런 공작이 성공하더라도 상처투성이인 대통령에게 여건 야건 미래권력의 후보자들이 틈새를 내어줄 리 없다. 야당은 채 상병 특검법이 거부된 바로 그날 대통령 탄핵 국민청원 청문회 개최를 공식화했다. 더불어서 본인의 의중은 아랑곳없이 벌써부터 포스트 윤석열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난무한다. 제2의 6·29선언이나 정치개혁을 전제로 한 대통령 임기단축 개헌론에서부터 불기소특권론까지 상상력이 한껏 동원된 정치술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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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헌법이 명령하는 노사상생 급기야 ‘산유국의 꿈’이 졸속적인 청와대 이전이나 참담했던 부산엑스포 유치운동, 혹은 근래의 ‘중국산 직구금지’ 파동을 연상시키며 국정브리핑에 등장했다. 산유국 시나리오가 등장한 만큼 채 상병 특검이나 김건희 여사 특검 등 ‘살아 있는 권력’의 실정과 부패에 대한 전 국민적 우려에 가려진 경제정책 기조에 대해서도 비판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은 법인세·상속세 완화, 종부세·금투세 폐지, 건전재정에의 집착 등으로 상징되는데 이미 퇴조한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것이다. 특히 ‘경제선진화’를 내세우고 노동개혁을 국정과제로 설정하면서 노조를 악마화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민주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우리 헌법의 기본정신에 부합하지 않아 안타깝다. 윤 대통령의 ‘인생책’으로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가 언급된 것처럼 그 특유의 자유시장경제론의 기조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압도적이라 더욱 답답하다. 더구나 대통령의 전시성 행보에 재계의 유력자들이 동행하는 일이 잦은 것으로 미루어 경제계 또한 윤석열 정부와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 우려된다. 길어야 3년인 정권과 기업이 공동운명체로 비친다면 기업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국민경제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암담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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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3년은 너무 짧다 “3년은 너무 길다.” 지난 총선 판도를 바꾼 조국혁신당의 선거구호다. 너무 길어 보이는 3년은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임기다. 이 구호 덕분에 조국혁신당은 창당 두 달도 못 되어 12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고, 대통령 탄핵과 개헌저지선에 겨우 8석이 모자란 압도적 여소야대 국회가 출범하게 되었다.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대통령 심판 선거로 치러진 탓이다. 이제 국회와의 협치를 전제로 하는 한국형 대통령제의 본질상 ‘분점정부’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주권자 국민의 심판을 받았음이 분명한 윤 대통령은 심판의 내용에 있어 남다른 해석을 내놓은 듯하다. 국정기조는 옳은데 국민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무지한 국민을 깨우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단다. 대통령의 참모들을 총선에서 떨어진 심복들로 다시 채운 것도 모자라 민심을 청취하겠다며 민정수석직을 부활해서 검찰의 인사기획통을 모셨다. 이후 전격 단행한 검찰의 인사는 ‘친윤’ 친위대를 전면에 내세우고 수사에도 성역이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묻지마지지’를 보내던 이른바 보수언론마저도 비판하는 안하무인의 불통 기조가 계속되고 있다. 2년이나 걸린 야당대표와의 회담이나 기자회견, 선거개입 논란을 빚다 중단된 민생토론회의 속개도 ‘무늬만 소통’인 ‘마이 웨이’의 복사판이다. 그 결과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는 비슷한 시기 역대 최저치에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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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헌법대로 합시다 총선이 여당의 역대급 참패로 끝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당대표 교체를 주도하면서 당정일치를 관철하여왔기에 이번 총선은 집권여당과 정치적 운명공동체인 대통령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기도 하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제왕적 행태로 초래된 민주주의의 퇴행을 정부형태 탓으로 돌리는 주장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민주화 이전 권위주의시대의 유산 때문에 여전히 남아 있는 헌법 무시의 관성에 터잡은 것으로 교정되어야 한다. 6월항쟁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현행 헌법은 유신·5공헌법이 채택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버리고 민주공화적 대통령제를 새로이 수립한 것임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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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이제 ‘제 발등 찍기 정치’를 끝내자 다시 선거철이 돌아왔다. 국민의 대표랍시고 지난 4년간 목소리를 높이던 분들이 바로 그 국민들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이는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황송하게도 폴더 인사를 받으면서 주권자 대접을 받는 듯 살짝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데 문득 뒤따르는 의문. 주권자 국민과 봉사자 국민대표가 선거철만 지나고 나면 왜 명령하는 국민대표와 복종하는 국민의 관계로 전도되어 버릴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대원칙은 일상정치에서 왜 법전 속의 장식으로 전락하고 마는가? 이번 총선부터라도 국민과 국민대표의 주객이 전도되는 반민주적 현실, ‘제 발등 찍기 정치’가 왜 매번 반복되는지 제대로 성찰하는 계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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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선거국면에서 새겨야 할 경구들 선거 때마다 소환되는 경구들이 있다. 먼저 루소는 영국의 대의제가 가진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영국민은 선거 때에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상태로 전락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회제에 경도되어 선거 외의 일상 정치과정에서 정작 국민이 소외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국민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대표를 뽑고 스스로 공무를 담당하는 참정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것 외에 다양한 정치과정에서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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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헌법이 명령하는 선거제 4월 총선이 코앞이다. 예비후보자 등록은 이미 시작되었다. 정당공천절차도 시작되었다. 그런데 정작 선거제는 아직도 확정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선거제는 선거법에 확정되어 있지만 선거구 획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거구 획정에 따른 유불리나 현행 선거제에 대한 거대정당들의 이해관계가 정리되지 않았을 뿐이다. 후보자나 정당이 경기장이나 경기 규칙도 없이 선거운동을 하는 꼴이다. 이게 민주공화국의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가? 총선은 민주공화국의 근간에 해당한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선거는 주권자가 권력을 행사할 일꾼을 뽑는 것이다. 이만큼 중요한 나랏일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처럼 중차대한 일에 정작 일꾼들이 잇속을 재느라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적으로 주권자의 정치적 기본권이자 주권 행사의 핵심적 수단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있다. 가뜩이나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상황에서 창피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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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한동훈 위원장님, 헌법부터 읽으시지요 국민의힘이 다시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당헌으로 뽑은 대표를 벌써 두 명이나 중도에 하차시킨 결과다. 전권을 행사할 비대위원장으로 한동훈 법무장관을 불러들였다. 장관 시절부터 국정보다는 기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헌법 원칙마저 거스르는 정파적 언술로 보수진영의 ‘스타장관’이 된,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후배다. 가뜩이나 정치보다는 통치에만 의존하는 대통령의 국회출장소처럼 전락한 탓에 총선용 비상체제를 출범시키면서도 벼락처럼 정권을 잡은 검사 출신 대통령의 분신을 또 내세운 집권당의 처지가 처연하기만 하다. 나라 곳곳에 검사 출신을 중용하는 것도 모자라 입법부의 핵심축인 여당의 대표로 내려보낸 것을 수용하는 모양새다. 한 위원장을 추인하는 당내 절차는 왕정시대의 세자책봉식을 연상시킨다. 민주주의는 아랑곳없이 아예 대를 이어 검사정권을 창출하겠다는 꼴이다. 시대착오적인 권력놀음을 위해 대표들을 내치고 비상체제를 출범시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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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헌법으로 심판하는 그날 대통령과 거대야당의 대치정국이 끝날 줄 모른다. 급기야 여당 의원들이 의장실 앞 연좌농성에까지 나섰다. 소통의 정치는 없고 일방통행식 정쟁만 있는 극단대치의 최대 피해자는 주권자 국민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울 뿐이다. 그나마 총선에서 국민이 심판할 날이 머지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자위해야 할까? 그러나 방향성도 없이 의욕만 앞서다간 오히려 낭패만 보기 십상이다. 자칫하다간 국민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은 안중에도 없이 이념놀음과 권력놀음에 날 새는 줄 모르는 권력자들에게 면죄부만 주는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