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대로 합시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총선이 여당의 역대급 참패로 끝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당대표 교체를 주도하면서 당정일치를 관철하여왔기에 이번 총선은 집권여당과 정치적 운명공동체인 대통령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기도 하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제왕적 행태로 초래된 민주주의의 퇴행을 정부형태 탓으로 돌리는 주장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민주화 이전 권위주의시대의 유산 때문에 여전히 남아 있는 헌법 무시의 관성에 터잡은 것으로 교정되어야 한다. 6월항쟁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현행 헌법은 유신·5공헌법이 채택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버리고 민주공화적 대통령제를 새로이 수립한 것임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헌법상의 정부형태는 그냥 대통령제가 아니다. 국회와의 협치를 전제로 한 대통령제다. 의회와의 엄격한 권력분립을 전제하는 미국식 대통령제와도 다르고 더더구나 제왕적 대통령제와는 거리가 멀다. 유신·5공의 제왕적 대통령제의 요소는 헌법상 근본적으로 제거되었다.

미국식 대통령제와는 달리 행정권은 대통령 1인에게 수권되지 않고, 보좌기관인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국정최고심의기관인 국무회의, 중앙행정기관인 행정각부까지 포함한 ‘정부’라는 통합적 조직체에 부여된다. 대통령의 정부조직권은 근본적으로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서만 행사되며(대선공약이었지만 유지되고 있는 여성가족부를 보라), 이마저도 국무총리의 장관이 될 국무위원에 대한 제청권에 의해 절차적 통제를 받는다.

이 정부형태의 핵심은 국무총리에게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고 대통령의 국법행위에 부서하는 권한을 부여하면서 그 임명에 국회 동의를 받게 하는 것이다. 정부구성 자체가 국회 협력이 없으면 불가능하고, 그마저도 대통령의 신임뿐만 아니라 국회의 동의까지 확보한 국무총리와 협력하여야 하므로 국무총리를 매개로 국회와 대통령이 공화적 관계를 구축하는 정부형태다. 이로써 총리를 2인자로 한 정부 내의 협치(소협치), 정부와 국회의 여·야당과의 협치(중협치) 및 주권자인 국민과의 협치(대협치)가 병행적이고 중첩적으로 이루어질 것이 기대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채택한 유신이나 5공의 체제에도 국무총리제가 있었지만, 국회 구성마저도 대통령이 관여하고, 정보기관·경찰·검찰과 같은 권력기관을 통해 사정통치를 일상화하며, 긴급조치권이나 비상조치권, 국회해산권 등을 통해 삼권 모두를 사실상 통할할 수 있는 독재적 구조에선 ‘방탄총리’ ‘대독총리’의 위상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부정적 총리의 위상은 현행 민주공화적 대통령제에선 탈피되어야 했지만 권위주의 체제의 관행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탓에 대통령의 제왕적 행태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국회의 위상이 갈수록 정상화되고 총선과 직선을 통해 주권자 국민의 위상이 현실화되며 급기야 제왕처럼 군림하는 대통령을 국민의 직접행동-국회의 소추-헌재의 심판이라는 헌법적 절차를 거쳐 탄핵시킨 경험을 통해 국회와의 협치를 전제로 하는 대통령제라는 한국형 민주공화제가 본격화될 시점에 다다랐다. 사실 이 체제를 발판으로 민주화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금자탑을 성취해내었기에, 한국형 대통령제는 선도국가의 반열에 오른 우리가 더욱 발전시킬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총리를 매개로 한 민주공화적 대통령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공동정부나 책임총리 형태로 가동된 바 있다. 탄핵될 정도로 제왕적 행태를 보인 박근혜 대통령마저도 여론 탓에 국회 동의가 어려워져 총리임면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경질한 총리를 두 번씩이나 재기용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량급 정치인 출신을 국무총리로 임명하고 여·야·정협의체를 주장하는 등 아쉬운 대로 국회와의 협치를 위해 노력하는 태도를 보여줬다. 윤 대통령은 관료 출신 총리를 통해 소극적으로 헌법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형식을 빌렸지만 실질적으론 혼자 군림하는, 국회의 다수당과 그 대표를 무시하는 일방통행식 통치행태로 일관하면서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발전에 역행하였기에 국민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총선 민심에 따를 윤 대통령의 큰 선택은 이미 헌법에 정해졌다. 구체적인 인사권 행사 등은 대통령 재량이지만 그 절차와 방향성에 대한 기본원칙은 헌법이 이미 제시하고 있다. 헌법이 제도화한 소협치·중협치·대협치를 아우르는 다단계 협치 원칙과 국회 동의를 기반으로 이러한 협치를 더불어 실천할 국무총리의 임명이라는 헌법정신을 지키는 것, 즉 헌법대로 하는 것이 대통령의 헌법상 책무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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