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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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0.73%보다 14.2%가 더 중요한 이유 한국 정치와 사회를 이해하고 재설계를 위한 구상을 함에 있어 0.73%보다 더 중요한 수치가 있다. 14.2%가 그것이다. 0.73%는 주지하다시피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 간의 득표율 격차다. 그럼 14.2%는 무슨 수치일까? 2020년 기준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다. 2018년 이후 지속 상승 중이다. 그럼 왜 0.73%보다 14.2%가 더 중요한 걸까? 대선 득표율 격차의 감소는 양극화와 혼전 상태의 유지를 뜻하고 실제 그리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반면에 노조 조직률의 증가는 정치를 에워싸고 있는 사회적 변동과 힘의 관계 구조와 관련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가령 정치를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도 있는 조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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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자유에 대한 ‘정확한’ 인식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팬데믹 위기, 교역질서와 기후변화, 식량과 에너지 위기, 분쟁과 평화적 해결의 후퇴 등 국내외적인 위기와 난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해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하며, 재발견해야 한다고 강조한 가치가 있다. 자유가 바로 그것이다. 필자는 취임사의 이 대목을 보며 한편으로는 흥미롭고, 다른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흥미로움은 국민을 상대로 한 대통령 취임사에서 뭔가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며 ‘훈계조’의 표현과 어투를 썼다는 생경함이 선사해주었다. 취임사에서 훈계조의 어투는 적어도 세 가지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구사 가능하다. 첫째, 나는 (자유라는 가치에 대해 국민들이 모르는 바를) 잘 알고 있다. 둘째, 자신과 달리 국민들은 자유에 대해 잘 모른다(혹은 오해하고 있다). 셋째, 대통령은 그런 국민들을 깨우쳐줘야 한다(계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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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영웅’을 기다리며 쪼잔함, 쩨쩨함, 시시함, 지루함. 작금의 정치를 보고 당장 연상되는 단어들이다. 한마디로 말해 ‘볼품없다’는 것이다. 위대함, 장엄함, 숭고함, 거룩함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가 없다. 정치미학이 사라진 현실에 놓여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 특징 중 하나는 ‘소확행’ 공약의 성행이었다. 잠깐이나마 흥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기발함 때문에 경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가령 탈모 건강보험 공약 같은 게 그 한 가지 예다. 그러나 소확행 공약의 유행은 대통령 선거마저 특정 이해집단의 사적 욕망 충족을 중시하는 민원 해결 정치의 기제가 되었음을 보여준 증거이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마저도 사사로워진 것이다. 이런 식의 정치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적 이익과 욕망을 억압하는 정치는 독재와 전체주의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다원성과 다양성은 사적 욕망의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표출 과정에서 발견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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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윤석열 정권은 ‘좋은 보수’가 될 수 있을까 보수가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 필자는 열혈 진보주의자도 아니지만, 보수주의자는 더욱 아니다. 하지만 그리 생각한다. 진보도 당연히 바로 서야 한다. 그렇지만 보수가 바로 서는 게 우선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이 이제 클 만큼 커서 지켜야 할 게 더 많아진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선도국가’임을 표방한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와 세계화 등 근현대 국가의 보편적인 대변동을 모두 겪고 경제 및 국방비 규모에 있어 10대 국가의 반열에 올라 선 나라이다. 그래서 진보적 가치의 소중함과 그 구현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해도 파괴보다는 보존의 틀 안에서 그리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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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청년은 어떻게 정치적 주체가 되는가 최근 청년정치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왕성해졌다. 그것을 주제로 한 인터뷰 요청도 간간이 받고 있는데,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청년이 정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또 “당신(세대)은 청년 시절에 어떤 식으로 정치에 관여했느냐”이다. 그런 물음들에 직면해 문득 보고 싶은 사람과 기억들이 떠올랐다. 미지의 물음에 대한 답은 역사에서 찾을 수 있고, 역사를 여는 열쇠는 과거의 경험이 쥐고 있기 때문인 건가. 보고 싶은 사람은 대학시절 1991년 5월투쟁 관련 불법집회 및 시위 주도 등을 이유로 두 번째 들어간 구치소에서 만났던 윤대경(가명)이라는 청년노동자이다. 스무 살이 채 안 되어 준수하지만 앳된 용모였던 것으로 기억하는 그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의 조직원으로 활동하며 노태우 정권 타도와 노동자 의식화를 위한 선전물을 배포하다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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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문명과 시민’ 관점의 필요성 정치를 ‘문명과 시민’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사그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지는 좀스럽고 치졸한 정치, 즉 진영으로 갈려 편견과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의 동 원에 의존하는 정치, 새해를 맞이해 그런 정치를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다 도달한 생각이다. 안타깝게도 좀스럽고 치졸한 정치는 임인년 새해에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정책 쟁점보다는 가족 친지 주변 등의 스캔들이 주요 이슈가 된다. 지지율 교차가 일어나면서 경합이 치열해져 가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서로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가득한 양대 세력 주도의 정치 지형을 볼 때, 또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유력 후보들의 ‘강성 퍼스낼리티(strongman)’와 리더십 -그리 이름 붙이기 어려운 후보도 있지만 - 특성 등을 볼 때, 대선이 끝나도 한국정치는 계속 소모적 갈등으로 점철될 공산이 크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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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착한 정치’를 넘어서야 할 이유 ‘착한 정치’는 소용없다. 이는 사람들이 애써 알고 싶어 하지 않는 혹은 부정하고 싶어 하는 정치의 대표적 속성이다. 이 속성은 사람들이 정치를 나쁘고 부정적인 것으로 보게 만들 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한 의도적 무지를 낳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래의 정치, 특히 이를 주도해야만 하는 청년을 비롯한 새로운 정치주체들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정치의 불편한 진실이다. 착한 정치가 소용없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권력정치 옹호론’을 떠올릴지 모른다. 권력을 차지하고 유지하기 위해 정복과 전쟁과 독재와 공작마저 불사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추악한 정치를 정당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게 꼭 아니라고 해도 문제투성이인 정치를 고치지 않고 그냥 용인하자는 순응적 혹은 패배적 언사로 간주할 수 있다. 맞다. 착한 정치가 소용없다는 말은 분명 그런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의혹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착한 정치의 소용없음에 대한 인식과 인정은 ‘다른’ 정치를 향한 도정의 끝과 포기가 아니라 시작과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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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똥만도 못한 정치? 그래도 알고 싶다 30년도 넘은 일이다. 대학교 1학년 정치학 전공 첫 수업 때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물었다. “정치란 무엇인가?” 누군가 답했다. “정치는 똥입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1학년이지만 대학 강의실에서 그것도 정치학도가 되겠다는 학생의 입에서 저리 ‘생생한’ 정의가 내려질 것이라고 생각지 못해 나온 반응이었으리라. 민주화 이후라는 지금은 어떨까? 똥을 욕보이지 말라고 하지 않을까, “똥만도 못한 게 정치입니다”라는 답이 나오지 않겠냐는 것이다. 항간에서 정치를 ‘혐오산업’이라고 부르는 실정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