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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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노회찬 평전’이 재점화한 ‘좋은 정치’로의 열망 좋은 삶과 정치가 무엇인지몸소 보여준 양질의 정치인노회찬의 생전과 사후필적하는 정치인 보지 못해 그의 사후 유독 도드라진사익 추구와 반지성주의 등디스토피아적 현실에 대비사람들의 시선과 마음 끌어 그의 정치적 생애를 읽으며인류애적 삶의 정신 계승한다른 차원의 진보정치 꿈꿔 ‘병’을 앓고 있다. 노회찬, 그가 떠난 후 발병했고 지난 5년간 계속 악화되어왔다. 현실의 정치가 시시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병이다. 정치 현실에 대한 판단을 중지한 채 마주한 빈 벽에 눈길을 두고 아무 말 없이, 어떤 몸짓도 없이 거실 소파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다. 짐작하건대, 나 말고도 그가 떠난 후 이런 증상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염원과 열정과 의지를 가졌던 사람들이라면. 이들에게 노회찬의 삶과 죽음은 본인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함께했던 자신들의 것이기도 했으니. -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심층적응의 정치’가 필요하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구조적 친화성을 감안해도국가와 정치는사회 붕괴를 막아내기 위해역할을 더 강화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붕괴의 불가피성을오히려 출발점으로 삼아기후 활동 범위를 확장하는심층적응 전략이 필요 가령 붕괴는종말을 막아낼 새 선택의시작일 수 있음을 알리고생각이 다른 이들과의타협을 이끌어 내야 한다이것을 수행할 주체 생성이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진정한 보수에서 새 진보의 실마리 찾기(2) 현 집권세력과 민주당에 ‘하나의 국민’ 같은 디즈레일리의 정치적 상상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결국 우리는 오지 않은 고도를 또다시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공리주의의 건조한 핵심을 고매한 훈계의 불꽃으로 태워버릴 디즈레일리 같은 정치가를 고대한다 ‘김남국 코인 사태’는 정치인도 물질주의와 사익추구의 강화 경향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전수 조사하자는 주장에 정치권이 머뭇거리는 것을 보면 그 확신은 타당한 것일 수 있다. -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진정한 보수에서 새 진보의 실마리 찾기(1) 미래 새 정치의 길을러셀 커크 ‘보수의 정신’서추리려는 이유는 두 가지다 보수의 진짜 속내서거짓 보수를 제압할근거를 찾는 게효과적일 것이란 생각과새로운 정치는보수와 진보의공통성서 온다는 자각 때문균형과 조화는적대를 양산하고증폭시키는 차이가 아닌서로 다른 것들이 갖는같음의 발견에서 온다 “빈곤이 아니라 확신과 소속감이 대중을 이끌어 전체주의 정당을 지지하게 만든다. (중략) 하루 세 끼의 식사가 존재하든 안 하든 간에 심지어 단순히 직업이 있든 없든 간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지는 않는다. 결정적인 이유는 준거의 틀이다. (중략) 개인이 직접 속한 사회가 소원하거나 목적이 없거나 적대적이 되면, 사람들이 모두 차별과 배제의 희생자라고 느낀다면, 세상의 모든 음식과 직업이 있다 해도 그들을 막지 못한다.”(러셀 커크, 이재학 역, <보수의 정신>, 2018, 지식노마드, 769쪽 중에서) -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적과 동지의 분별과 현명함 여야 할 것 없이 작금의 정치판을 온통 휩쓸고 있는 적과 동지의 구분은 저질이며,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아둔하고 반정치적이기까지 하다. 견고한 성을 쌓는 것 같지만, 그것이 고립의 성임을 모르고 있다적과 동지의 구분에도 현명함이 필요하다는 걸 상기해야 한다. 기대난망이려나? 현명함. 어질고 슬기로워 사리에 밝음을 뜻한다. 여기서 핵심은 분별이다. 그럼 무엇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일까? 옳음과 그름? 좋음과 나쁨? 맞음과 틀림? 그렇다. 그런 것들을 헤아려 내고 옳음과 좋음과 맞음을 행해야 한다. 그게 분별이다. 그런데 정치, 그중에서도 용산과 여의도를 축으로 해 전개되는 작금의 현실 정치를 보자. 그 판에서 옳고 그름, 맞고 틀림, 그리고 좋음과 나쁨을 잘 가늠할 수 있겠는가? 유일하게 작동하는 혹은 강제되고 있는 분별은 누가 적이고 동지냐는 것이지, 옳고 그름 등이 결코 아니지 않은가? 다시 묻자. 그럼 적과 동지에 대한 분별은 과연 현명함일 수 없다는 말인가? 누군가의 말처럼 정치의 근원이 적과 동지를 구분하고 결정하는 것인데 말이다. 이런 항변은 속류적 관점의 차원에서 너무나 일반적인 것인 데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대내외적 정치의 압도적 현실이기에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다시 또 물어야 한다. 적과 동지를 맞게 구분했냐고, 또 그것이 옳고 좋은 행동, 즉 바람직한 결과를 낳느냐고. -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법 앞의 평등보다 중한 평등 법 앞의 평등은중대한 가치다과거에도 그렇고지금도 또한 그렇다루소는 평등의 실현 위해경제적 평등을 강조했다 정치를 쓸모 있게 하려면적어도 이런 정도 평등을지향하고 천명하는 데서시작해야 하는 것 아닐까부와 권력 보유한 자들 간법 앞의 평등이 아니라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이 반대하더라도 반드시 김건희 특검 관철을 통해서 성역 없이 수사하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입증하겠다.” 지난 4일 있었던 더불어민주당 장외집회 때 박홍근 원내대표가 한 말이다. 이날 집회의 제목은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 검사독재 규탄대회’였다. 박 원내대표의 발언에서 법 앞의 평등은 검사독재에 대항해 보존하고 구현해야 할 정치·사회적 가치로 제시된 것이다. 검사독재는 제1야당 대표는 부당한 검찰 수사를 앞세워 탄압하면서도, 대통령 부인에 대해서는 범법 혐의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제대로 된 수사를 하고 있지 않다는 주장의 개념적 표현이다. 즉 법 앞의 평등을 훼손하는 통치 행태를 검사독재라고 정의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날 집회와 박 원내대표의 발언을 통해 앞으로(언제까지일지는 알 수 없지만) 검사독재에 맞서 법 앞의 평등을 중시하고 구현하는 데 힘을 쏟겠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명분으로 대정부-대여투쟁을 할 것임을 표방한 셈이다. 그런데 그 투쟁이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즉 국민 다수의 관심과 참여와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다시 정치개혁, 그런데 어떻게? 최우선 추진해야 할 과제로 정치개혁이 꼽혔다. 노동·교육·연금 등의 3대 개혁도 정치가 달라지지 않으면 ‘공염불’임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그 정치개혁은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범개혁 세력’을 만들어야만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간의 양보가 있어야 한다또 진심으로 정치개혁을 하겠다면 개혁의 조건과 환경의 조성을 비롯해 명분과 전략을 갖춘 ‘큰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정치에서 이념이 중요한 이유 작금의 정치권 대치는무이념의 축제라반지성적이고 반민중적국민 생명과 인권 지켜낼사회적 책임과권한 공유체계 설계 위해부정성과 부작용 불구정치도 이념을 가져야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극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공통적 대의를 만들어새 정치사회적 질서를 연국제적 사례들이 있다작금의 한국 정치사회가주목할 지점이 그것이다 광장과 거리에서 또다시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한 측은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고, 다른 한 측은 정권 사수를 내세우고 있다. 오늘 글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금의 그와 같은 대치는 반지성적이며 반민중적이다. 왜냐고? ‘무이념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열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묶어낼 가치 규범과 비전과 전략, 그리고 그것을 담고 있는 언어와 실천 프로그램 모두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의 궁극적 목적, 다수 약자인 민중의 고통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정치권이 ‘역사 전쟁’을 하는 이유 친일파 vs 종북주의 시비로 대외군사전략 논란을 역사 전쟁으로 비화하고 상호 적대감만 키워 정국을 냉각시키고 있다결국 소모적 역사 논란을 지양하고 한·미·일 연합훈련을 새 국가전략과 대외군사전략 차원서 논의하려면 정치경제 체제 개편을 염두에 둬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논란은 역사 전쟁의 무한 반복을 통해 상호 간 적개심을 동원하며 기성 체제 공생자로 남겠다는 의지를 표방함과 다름 아니다 -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개인이 정치적 주체라는 착각 새 정치 주체 찾기 논의가최근에 한창이다새 정치 주체 논의는세대교체론이 주를 이룬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하려는 순간 자신이 자유롭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수업 때 학생들에게 종종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자유롭다고 느꼈냐”는 것이다. 답은 대체로 “느끼지 못했다”이다. “그럼 어떤 느낌이었냐”고 다시 물으면, 거의 예외 없이 “피로감을 느꼈다”고 답한다. 그리 답하는 학생들의 표정을 다시 살펴보면 피로감이 여전히 가시지 않았음을 금방 알 수 있다. 피로감은 강의실의 학생들에게서만이 아니라 출근길에 보는 사람들에게서도 감지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그렇다. 피로감은 단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 표정에만 묻어 있지 않다. 그게 지하철이든 버스든 간에 잠시나마 머물러 있는 공간의 대기에 배어 있기도 하다. -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정치의 죽음과 부활 지식인의 앎과 민중의 느낌이 만날 때 ‘대안적 상식’의 지평을 연다. 이를 포착하는 게 정치 부활의 시작이다정치의 부활은 작금의 세계에 대한 인식의 문제, 그리고 그 세계에서 좋은 삶을 위한 도덕에 대한 고찰이 꼭 동반되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정치의 부활은 그저 ‘거짓 웃음’만 짓는 행위로 끝나고, ‘부활 없는 몰가치한 죽음’을 가져온다 -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0.73%보다 14.2%가 더 중요한 이유 반노동국가 한국에서노조 조직률 지속 상승은실로 놀라운 일 노동해방과 인간해방한때 큰 울림 줬으나지금은 실현 단초도 흐릿그래서 다시 시작할 때다 부조리한 세상 혁파하는가장 망치다운 망치는낡은 망치일 가능성지금은 노동에 대한의지적 낙관주의가다시 필요한 때다 한국 정치와 사회를 이해하고 재설계를 위한 구상을 함에 있어 0.73%보다 더 중요한 수치가 있다. 14.2%가 그것이다. 0.73%는 주지하다시피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 간의 득표율 격차다. 그럼 14.2%는 무슨 수치일까? 2020년 기준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다. 2018년 이후 지속 상승 중이다. 그럼 왜 0.73%보다 14.2%가 더 중요한 걸까? 대선 득표율 격차의 감소는 양극화와 혼전 상태의 유지를 뜻하고 실제 그리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반면에 노조 조직률의 증가는 정치를 에워싸고 있는 사회적 변동과 힘의 관계 구조와 관련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가령 정치를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도 있는 조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