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정치인들의 진짜 문제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586정치인들의 진짜 문제

586정치인의 진짜 문제는 대표성이 취약함에도 대표자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정치경쟁 구도에의 ‘기생’에 있다
그들의 존재와 유력함이 정치를 후진적으로 만든다는 뚜렷한 증거 없고, 그들을 척결하면 정치가 나아질 것이란 보장도 없다
586정치인 척결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들이 기생하는 경쟁구도 혁신에 충실해야 하고, 그 도정서 자신의 대표성 강화해 대체세력이 돼야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586정치인 척결을 출사표로 내걸었다. 가진 신념이 그렇기도 하겠으나, 586정치인 퇴진론에 동조하는 이들에 기대어 총선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이리라. 한 위원장은 과연 586정치인 척결을 이루고 그에 기대어 총선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586정치인 척결을 주창하는 이들이 스스로 던지고 답해야 할 물음이 있다. 586정치인 퇴진론이 나온 지 꽤 오래되었고 다수 여론임에도 불구하고 586정치인들이 유력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또 586정치인 퇴진론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주도하는 자신들의 지지도가 오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586정치인들을 문제 삼는 이유는 그간 대체로 세 가지였다. 첫째, 장기 지속이다. 그만 좀 하고 물려줘야 하는데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이념성향의 위험성 혹은 낙후성이다. 국익에 반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친북·반미 성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배타성과 무지함이다. 주류 운동권 출신 여부를 따지며 타 정치세력에 배타적이고 부동산과 노동 같은 사회경제 문제와 정책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동훈 위원장이 주도하고 이낙연 전 총리 같은 이가 가세하는 모양새를 띤 ‘범죄집단론’이 더해졌다. 조국 전 법무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비위 사건,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돈봉투 사건, 여기에 이재명 현 민주당 대표의 대장동 의혹 등을 염두에 두고 제기한 것이다.

이런 시각과 담론에는 허점과 시사점이 동시에 담겨 있다. 586정치인들이 아직도 유력할 수 있는 이유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586정치인 퇴진론 확산이 그것을 주도하는 국민의힘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알려준다. 그래서 586정치인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다시 파악하고, 자신들은 그런 문제가 없는 대체세력임을 입증할 때 지지율이 오를 수 있음을 알려준다.

386으로 불린 20여년 전부터 정치를 시작했으니 짧지 않은 세월이다. 그런데 4·19세대, 6·3세대, 유신세대, 3김세대 등과 견주어보면 특별히 장기 지속이라는 딱지를 붙일 정도는 아니다. 그리 딱지를 붙여 척결대상으로 삼았다고 일거에 사라진 세력도 없다. 시대가 변하고 대체세력이 등장해야 사라졌다. 민주화 이행기를 거쳐 2000년대 초 노무현 정권과 함께 등장한 586정치인들이 바로 그 대체세력이었다. 퇴진론이 다수인 것을 보면 586정치인들의 수명도 다해가고 있다. 그런데도 임혁백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은 586이라는 이유로 공천을 배제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자발적 퇴진을 기대한다고는 했다. 당 안팎으로 586정치인들을 비판·비난하는 세력은 있지만, 대체세력은 아직 존재하지 않기에 ‘나올 수 있는’ 발언이다. 양대 정당에 대해 비판적인 무당파와 중도층에서 신당 지지 의향이 높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체세력 아직은 존재하지 않아

586정치인들의 이념적 위험성과 낙후성에 대한 비판은 그들 중 주류가 1980년대 말 본격 등장한 민족해방파 계열의 학생운동권 출신이라는 데에 착안한 것이다. 극우 반공주의 세력과 그들에 기반했던 현 집권세력 선배들과 지지자들이 빨갱이로 몰았던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에서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양극화가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이념·정책적 영역인 대외정책에서 친북·친중·반미·반일 성향을 띠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기도 하다. 대외정책의 이념 성향이 학생운동 시절 경험에서 영향받은 바 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그런데 북한, 미국, 중국, 일본과의 관계는 분단 현실의 지속과 최근의 국제정세 변화 등을 볼 때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무엇이 더 국익에 부합하고 효과적이냐를 따져야 하는데, 정세의 유동성을 감안할 때 절대적 정답도, 오답도 없다. 정치인, 특히 통치자에게는 해법이 뭐냐를 두고 벌어지는 이념갈등을 국익 증진의 전략적 지렛대로 삼는 지혜가 필요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런 지혜를 발휘하는 정치세력은 현 정권을 포함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경험상 586정치인들이 배타적이며 정책적으로 노동 문제 등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편이다. 10년 전쯤인가, 지금은 친명계 핵심인 한 국회의원이 자신이 학생운동 시절 주류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당시 결성 준비 중이던 586정치인들의 모임에 초대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들은 적 있다. 그들 중에서도 갈라치기하며 ‘핵심 대오’를 따로 꾸리는 걸 보면 배타성을 부정할 수 없을 터다. 586정치인의 대표주자격인 국회의원과 노동 문제를 주제로 삼은 토론회에도 참석했던 적 있다. 청중에게 질문받는 시간에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 국회의원이 질문을 받고선 “발표문을 제가 쓴 게 아니라 보좌관이 쓴 거라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답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에는 유력일간지 정치부 기자에게 “호남 출신도, 전대협 주류도, 민족해방파도 아닌 사람은 벼슬 못한다”는 말을 들었던 적도 있다. 지금까지도 그들이 포용성을 키우고 정책적으로 유능해졌다는 세간의 평가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586정치인들만 그런 게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다.

범죄자 집단 규정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우선 민주화운동을 펼치다 얻은 전과를 범죄로 모는 것은 비열하다. 민주화가 그들 운동의 목적이 아니었다는 주장은 부정을 위한 사후편향적 억지 해석이다. 민족해방이었든, 노동자 해방이었든 그들의 운동은 주관적 관념에 상관없이 분단과 반공주의 체제라는 대한민국의 역사적·구조적 현실에서 군부독재를 타도하기 위한 민주화운동 차원에서만 벌일 수 있었다. 또 수배와 구속 등 자기희생을 동반한 그들의 선도투쟁이 민주화에 기여한 바를 부정할 수 없다. 그 경험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정치적 자원으로 삼는 점을 비난하는 것은 옹졸하다. 정치인은 자신의 공적 삶의 경험을 내세워 검증받고 인정받아야 하는데, 민주화운동의 경험은 공적 삶의 가장 대표적 사례다. 이미 확정된 혹은 현재의 범법 의혹에 대해서도 조심해야 한다. 집단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이상 ‘586정치인들=범죄자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나치의 반유대주의류의 혐오를 키울 수 있다. 그 결과는 누구도 쉽게 빠져 나올 수 없는 혐오정치의 심화다. 이를 조장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무서움과 거부감이 느껴진다.

제3지대 세력들 대표성 강화 필요

586정치인의 진짜 문제는 대표성이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대표자의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정치경쟁 구도에의 ‘기생’에 있다. 586정치인들은 대표하는 사회의 인구집단이 딱히 없다. 586세대가 기반이라고 했지만 한정적이다. 일단 50대 연령층에서 대학을 다닌 이는 소수다. 이들 중에서도 586정치인들에 대한 고정지지층은 많지 않다. 대학을 다녔든, 안 다녔든 생애주기적으로 주거환경과 자녀교육과 노후대비 등 사회경제적 문제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 대한 586정치인들의 소구력이 높지 않다. 586정치인 퇴진론에 대한 공감은 50대 연령층에서도 높게 나온다.

그런데도 어떻게 유력할 수 있을까? 사회와 괴리되어 있는 한국정치의 구조적 특성에 적응하고 편승한 탓이다. 양대 정당의 경쟁구도에 기대어 당파성향이 강한 정치 고관여층 중 일부(민주당 열성지지층 및 반국민의힘 성향의 유권자)를 기반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이의 참여보다 지지자의 더 강한 활동성에 의존해왔다. 그러면 경쟁세력에 대한 적대감을 키울 사안을 선거 이슈로 만드는 일만 하면 된다. 이념적 낙후성과 배타성과 정책적 무지 등이 다 여기서 비롯한다. 586정치인 척결을 주창하는 세력 역시 마찬가지다. 이념적 쇄신을 하고 포용성과 정책 역량을 키울 필요가 없다. 그건 비용 대비 저효율이다.

586정치인들의 존재와 유력함이 한국정치를 후진적으로 만든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다. 그들을 비판하고 척결하는 세력 역시 공통의 문제를 갖고 있음을 확인시켜줄 따름이다. 586정치인을 척결하면 정치가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우리 사는 세계가 그렇고, 그 속에서의 삶이 그렇듯, 세계 속 삶의 자화상인 정치 역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이 얽히고설켜 있다. 586정치인이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고 해도 그들 역시 현실 정치의 한 부분일 뿐이다. 한 부분을 고친다고 전체가 좋아지리라는 법은 없다. 정치는 고장난 부분만 교체해 다시 좋게 만들 수 있는 기계가 아니다. 현역의원 교체율이 유독 높고, 5년 혹은 10년마다 정권이 바뀌어도 나아지는 게 없는 이유다. 586정치인 척결이 의미를 가지려면 정치가 나아지는 결과를 낳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그들이 기생하는 경쟁구도를 바꿔내기 위한 혁신에 충실해야 한다. 그 도정에서 자신의 대표성을 강화해 대체세력이 되어야 한다. 586정치인 척결을 딱히 주창하지는 않지만, 속출하는 제3지대 정치세력들 역시 마찬가지다.

■김윤철

[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586정치인들의 진짜 문제

경희대 교수 및 실천교육센터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세계와 시민’ ‘정치의 인문학적 탐색’ 등의 과목을 가르친다.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 ‘시민과 세계’ 편집위원,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노회찬정치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정당> <헬조선 3년상> 등의 저서와 ‘노동존중 정치와 노회찬의 6411정신’ ‘한국 불평등 민주주의의 정치사적 기원’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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