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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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이념의 무서움을 목도할 순간이 도래하는가 이념은 무섭다. 이는 그저 좋은 것으로만, 그래서 지켜야만 하는 이념으로 여겨지는 민주주의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폭력을 동반한 혁명과 전쟁을 통해 만들어져왔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민주주의 이념 자체가 엄청 무서운 것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가질 자격도 없는 피지배층으로서 온갖 고된 노동을 담당하는 하찮은 ‘민(民)’이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과 체제가 바로 민주주의(민주정)가 뜻하는 바이기에 무섭지 않을 수가 없다. 즉 민주주의는 ‘전복’의 이념이다. 특히 기존의 지배층이 무서워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가진 권력과 부의 독점적 소유권과 행사권을 부정당하는 이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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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노회찬 평전’이 재점화한 ‘좋은 정치’로의 열망 ‘병’을 앓고 있다. 노회찬, 그가 떠난 후 발병했고 지난 5년간 계속 악화되어왔다. 현실의 정치가 시시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병이다. 정치 현실에 대한 판단을 중지한 채 마주한 빈 벽에 눈길을 두고 아무 말 없이, 어떤 몸짓도 없이 거실 소파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다. 짐작하건대, 나 말고도 그가 떠난 후 이런 증상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염원과 열정과 의지를 가졌던 사람들이라면. 이들에게 노회찬의 삶과 죽음은 본인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함께했던 자신들의 것이기도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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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심층적응의 정치’가 필요하다 사회의 붕괴와 문명의 종말을 예견하는 이들이 있다. 종전에는 강한 부정과 냉소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부분 혹은 변형적 수용의 대상이다. 주로 기후변화의 치명적 위협을 추적하고 경고하는 연구자·활동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2020년 말 60명이 넘는 기후학자를 포함해 30개국 450명 이상의 과학자가 붕괴 위험을 경고하는 서한에 서명을 하기도 했다(http://www.scholarswarning.net). 이들을 부정과 냉소, 부분 혹은 변형적 수용의 대상으로 간주한 주(도)체는 일군의 정부, 기업, 주류 언론 등이었다. 이들에 동조하는 개인과 집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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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진정한 보수에서 새 진보의 실마리 찾기(2) ‘김남국 코인 사태’는 정치인도 물질주의와 사익추구의 강화 경향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전수 조사하자는 주장에 정치권이 머뭇거리는 것을 보면 그 확신은 타당한 것일 수 있다. 정치인도 물질주의와 사익추구의 강화 경향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문장은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가정을 담고 있다. 즉, 정치인은 물질주의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이해갈등 조정의 힘인 권위를 얻을 수 있고, 그 기반인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어느 원시 부족의 늙은 족장에게 젊고 힘센 전사들도 복종하는 이유가 바로 신뢰에 기반한 권위, 즉 ‘진정한 리더십’ 때문이라고 하고, 그것이 ‘무소유’에서 나온다고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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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진정한 보수에서 새 진보의 실마리 찾기(1) “빈곤이 아니라 확신과 소속감이 대중을 이끌어 전체주의 정당을 지지하게 만든다. (중략) 하루 세 끼의 식사가 존재하든 안 하든 간에 심지어 단순히 직업이 있든 없든 간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지는 않는다. 결정적인 이유는 준거의 틀이다. (중략) 개인이 직접 속한 사회가 소원하거나 목적이 없거나 적대적이 되면, 사람들이 모두 차별과 배제의 희생자라고 느낀다면, 세상의 모든 음식과 직업이 있다 해도 그들을 막지 못한다.”(러셀 커크, 이재학 역, <보수의 정신>, 2018, 지식노마드, 769쪽 중에서)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인류문명과 그것을 이루는 인간의 공동체적 삶의 총체적 실천인 정치에서도 꺾이지 않는 마음은 중요하다. 부서지면 다시 세우고, 세우고 나서는 끊임없이 매만지며 다듬어야 한다. 그래야 안팎에서의 붕괴와 파괴의 위협에 맞설 수 있다. 또 ‘오래된 미래’를 찬찬히 살펴 영감을 얻고 새로운 방도를 찾아내 존중받는 인간의 삶을 영위하며 저마다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공동체적 질서를 벼리거나 존속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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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적과 동지의 분별과 현명함 현명함. 어질고 슬기로워 사리에 밝음을 뜻한다. 여기서 핵심은 분별이다. 그럼 무엇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일까? 옳음과 그름? 좋음과 나쁨? 맞음과 틀림? 그렇다. 그런 것들을 헤아려 내고 옳음과 좋음과 맞음을 행해야 한다. 그게 분별이다. 그런데 정치, 그중에서도 용산과 여의도를 축으로 해 전개되는 작금의 현실 정치를 보자. 그 판에서 옳고 그름, 맞고 틀림, 그리고 좋음과 나쁨을 잘 가늠할 수 있겠는가? 유일하게 작동하는 혹은 강제되고 있는 분별은 누가 적이고 동지냐는 것이지, 옳고 그름 등이 결코 아니지 않은가? 다시 묻자. 그럼 적과 동지에 대한 분별은 과연 현명함일 수 없다는 말인가? 누군가의 말처럼 정치의 근원이 적과 동지를 구분하고 결정하는 것인데 말이다. 이런 항변은 속류적 관점의 차원에서 너무나 일반적인 것인 데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대내외적 정치의 압도적 현실이기에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다시 또 물어야 한다. 적과 동지를 맞게 구분했냐고, 또 그것이 옳고 좋은 행동, 즉 바람직한 결과를 낳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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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법 앞의 평등보다 중한 평등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이 반대하더라도 반드시 김건희 특검 관철을 통해서 성역 없이 수사하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입증하겠다.” 지난 4일 있었던 더불어민주당 장외집회 때 박홍근 원내대표가 한 말이다. 이날 집회의 제목은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 검사독재 규탄대회’였다. 박 원내대표의 발언에서 법 앞의 평등은 검사독재에 대항해 보존하고 구현해야 할 정치·사회적 가치로 제시된 것이다. 검사독재는 제1야당 대표는 부당한 검찰 수사를 앞세워 탄압하면서도, 대통령 부인에 대해서는 범법 혐의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제대로 된 수사를 하고 있지 않다는 주장의 개념적 표현이다. 즉 법 앞의 평등을 훼손하는 통치 행태를 검사독재라고 정의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날 집회와 박 원내대표의 발언을 통해 앞으로(언제까지일지는 알 수 없지만) 검사독재에 맞서 법 앞의 평등을 중시하고 구현하는 데 힘을 쏟겠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명분으로 대정부-대여투쟁을 할 것임을 표방한 셈이다. 그런데 그 투쟁이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즉 국민 다수의 관심과 참여와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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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다시 정치개혁, 그런데 어떻게? 다시 정치 개혁이다. 지난 19∼20일 디지털타임스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주요 현안 인식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 정치 개혁이 꼽혔다. 현 집권세력은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 그중에서도 노동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정치 개혁(39.2%)이 노동 개혁(18.9%), 교육 개혁(11.2%), 연금 개혁(10.8%), 기업규제 개혁(6.9%), 건강보험 개혁(6.2%) 등을 단연 압도한다. 노동·교육·연금 등의 3대 개혁도 정치가 달라지지 않으면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 연령대에 걸쳐 최우선 과제로 정치 개혁을 선택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대별로 선호와 이해관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정치 개혁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20대는 취업전선에 뛰어든 세대이기에 노동 개혁(23.9%)에 대해, 60대는 노후에 대한 관심이 높아 연금 개혁(13.6%)에 대한 선호가 높게 나왔지만, 그 모두 정치 개혁보다 아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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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정치에서 이념이 중요한 이유 광장과 거리에서 또다시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한 측은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고, 다른 한 측은 정권 사수를 내세우고 있다. 오늘 글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금의 그와 같은 대치는 반지성적이며 반민중적이다. 왜냐고? ‘무이념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열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묶어낼 가치 규범과 비전과 전략, 그리고 그것을 담고 있는 언어와 실천 프로그램 모두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의 궁극적 목적, 다수 약자인 민중의 고통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측이 윤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유는 이태원 참사가 결정적이다. 윤 정권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무능했을 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으며, 심지어 책임을 회피하고 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앗아가는 또 다른 비극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 측이 윤 정권 사수를 주창하는 이유는 퇴진을 요구하는 측의 의도가 기본적으로 불순하다는 데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각종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고 야당이 정국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한 정략적 행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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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정치권이 ‘역사 전쟁’을 하는 이유 왜 한국의 정치권은 한·미·일 연합군사훈련 같은 문제를 두고 여야 간에 ‘친일파 vs 종북주의자’ 논란을 벌일까? 우선 논란의 당사자인 정치인들의 시선과 말과 행동에 기대서 보자면, 서로를 진짜 친일파 혹은 종북주의자로 보기 때문인 것 같다. 상대가 친일파이고 종북주의자임을 입증하기 위해 집안의 내력과 과거의 전력을 뒤지면서까지 다툼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그렇다. 친일파가 아니어도 한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서 일본을 중시하는 시각과 입장을 가질 수 있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종북주의자가 아니어도 그럴 수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지정학적 특성상 국가전략을 구상하고 실행함에 있어 일본과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따져야 할 것은 일본 혹은 북한을 중시해야 하는 정세 상황의 특성과 그 기대 효과이다. 그런데 그와 관련한 논의가 본류를 이루지 못하고 서로를 친일파로 혹은 종북주의자로 낙인찍으며 역사 전쟁으로 비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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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개인이 정치적 주체라는 착각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하려는 순간 자신이 자유롭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수업 때 학생들에게 종종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자유롭다고 느꼈냐”는 것이다. 답은 대체로 “느끼지 못했다”이다. “그럼 어떤 느낌이었냐”고 다시 물으면, 거의 예외 없이 “피로감을 느꼈다”고 답한다. 그리 답하는 학생들의 표정을 다시 살펴보면 피로감이 여전히 가시지 않았음을 금방 알 수 있다. 피로감은 강의실의 학생들에게서만이 아니라 출근길에 보는 사람들에게서도 감지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그렇다. 피로감은 단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 표정에만 묻어 있지 않다. 그게 지하철이든 버스든 간에 잠시나마 머물러 있는 공간의 대기에 배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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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 정치의 죽음과 부활 최근 들어 특히 많은 사람들이 정치의 죽음에 대해 말한다. 정치의 실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특히’라는 표현은 직접적으로는 윤석열 정권의 출범 이후를 가리킨다. 사람들은 요즘 정치에 대해 말하기를 성가셔 한다. 정치학자들마저 그리한다. 최근 학회에서 배제와 혐오의 정치 혹은 양극화된 정치를 주제로 삼고 그 해법을 논할 때조차 지금의 정치가 실제 나아질 것이라는 열망과 기대를 갖고 있는지 자기들 스스로 회의한다. 정치부 기자들은 쓸 만한 기사거리조차 없다고 한탄한다. 정치의 죽음 혹은 실종의 연원은 시간적으로 그리 가까운 곳에만 있지 않다. 윤석열 정권의 출범 이후로 시기를 한정하는 것은 현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대략 어이없는’ 통치행태에 주로 초점을 맞춘 것이다. 부실 및 편향 인사와 물가 및 금리 인상 등 민생 문제 해결에 있어서의 전반적인 무능, 그리고 불공정 채용 시비 등 쟁점이 된 사안에 대한 상식과 괴리된 인식과 오만한 태도가 그것이다. 출범 석 달 만에 20% 초반대로 떨어진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도를 문제 삼고 그 이유를 찾는 접근이 대체로 그렇다. 하지만 그걸 갖고 정치의 죽음을 논하는 것은 제한적이다.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과 대통령답지도 집권세력답지도 못한 행태는 정치의 죽음을 논할 아주 작은 소재는 될 수 있을지언정 본체일 수 없다. 정치의 죽음에 대한 언사의 횡행은 대통령제만의 현상도 아니고, 어제오늘만의 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