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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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지금 탄소의 시간은 2023년이 아니다 지금 당신은 몇 년에 살고 계시는가요? 이제 새해가 밝았으니 모두가 2023년이라고 답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달력, 즉 고대 선조들이 하늘의 별을 보고 만들기 시작한 시간의 정의에 따르면 2023년이 맞다. 그런데 지금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간의 개념을 조금만 바꾸어 기후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지금 2023년이 아닌 다른 시간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달력의 정의에 따르면 지구상 모든 곳은 같은 2023년이지만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공기 중 탄소의 시간은 여러분과 제가 있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기후변화의 시간, 바로 탄소의 시간에 관해 얘기하려 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두려워하는 기후위기는 여러분과 제가 사는 지역 탄소의 시간이 다르므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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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과학은 우리에게 탄소를 규제하라고 명령한다 며칠 전 중동의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COP27이 막을 내렸다. 카타르 월드컵의 폭발적인 열기만큼은 아니지만, 매년 지구 곳곳에서 반복되는 기후변화 피해 때문인지 과거에 비하면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던 것 같다. 특히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과연 COP27에서 어떤 결과가 도출될 것인가에 있다. 매년 반복되는 COP회의는 결국 인류가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퇴보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로서 보기에 여전히 아쉬움이 많이 남는 회의였지만, 그래도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바로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에 대한 협의를 끌어낸 것이다.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누적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기여는 작았으나 큰 피해를 겪는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산업화 이후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의 92%를 만들어낸 선진국들이 아주 작은 탄소배출을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잠기고, 사상자 수천 명이 발생한 파키스탄 같은 나라를 지원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재원조달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더 이루어지겠지만, 일단 시작이 된 것은 분명하다. 기후변화를 유발한 온실가스에 대한 책임감 있는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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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수면 부족에 빠진 나무, 긴~ 잠이 필요하다 올해 초 동해안에서 발생한 산불은 한반도를 삼킬 것처럼 기세를 떨쳤다. 그리고 여름이 오자 서울 시내 한복판에 사람의 목숨을 위협할 만큼의 폭우가 내렸다. 봄을 지나 여름까지 기후위기를 몸소 체험한 한 해가 어느덧 중반을 지나 가을이 찾아왔다. 며칠간 이어졌던 반짝 추위도 지나가고 따뜻한 햇살과 적당히 시원한 바람에 오랜만에 날씨가 주는 행복감을 맛보는 것 같다. 이런 좋은 날씨에 많은 사람들이 울긋불긋 오색단풍을 감상하기 위해 등산을 간다는 뉴스가 TV를 장식하고, 붉고 노랗게 변한 나뭇잎 아래에서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으며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3년간 코로나로 보낸 힘든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듯 모두가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사진의 배경이 되어주는 나무는 행복한 것일까. 말하지 못하는 나무도 따사로운 날씨를 즐기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나무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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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탄소중립 시작은 우리의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다 지금 유럽의 한 작은 마을에서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각국에서 모인 과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서울에서 13시간 비행기를 타고 다시 2시간 기차를 타고 들어온 네덜란드 와흐닝엔 외곽의 작은 호텔에서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와 메탄에 대한 모델링과 모니터링에 대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몇 년간 온라인으로 회의가 진행되기는 했지만, 3년 만에 열리는 대면 학회에는 생각보다 많은 과학자가 모였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과거에 비해 참석자 숫자가 너무 많아졌다는 점이다. 전 지구적인 이상기후,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선언, 산업 분야의 RE100 등 이제 이산화탄소, 메탄 같은 온실가스가 세상의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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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영화 같은 재난, 더 이상 기후변화를 의심하지 말라 2022년 8월8일,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쏟아졌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여기저기 하늘에서 하염없이 물폭탄이 떨어졌다. 서울은 시간당 강수량 136.5㎜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였던 1942년 8월5일 118.6㎜의 기록을 80년 만에 갈아치웠다. 요즘 초등학교 1학년 남학생 평균키가 122㎝ 정도라고 하니 136.5㎜의 비가 대략 9시간 내리면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남학생의 키 높이 정도의 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물론 9시간 동안 비가 온 것은 아니지만 아주 많은 양이 내린 것은 확실하다. 결국 도시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물은 하염없이 차올라 도로의 모든 차들을 집어 삼켰다. 재난영화의 한 장면이 현실화한 것이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강력한 폭우! 이것 자체가 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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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폭우와 폭염, 엎친 데 덮친 격 지난주 장마에 이은 폭염으로 완전히 썩어버린 농작물에 대한 TV 뉴스를 보니 마음이 좋지 않다.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이 오고 풍작을 기원하며 열심히 농사를 지었을 농부들의 마음은 나보다 더 힘들겠지만, 괜히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내가 제대로 연구를 안 해서 그런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바로 이 폭염이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과학자들은 해가 갈수록 온실가스 증가에 따라 강력해지는 폭염의 심각성에 대해 다양한 얘기를 해왔다. 그런데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된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기후변화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여전히 과학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기후변화는 이념이 아니라 현실이다. 아침 출근길부터 피부를 다 태워버릴 것만 같은 뜨거운 폭염, 이것이 기후변화의 증거이며 기후위기의 현재라고 믿으면 된다. 모든 것이 타버리기 전에 믿어야 한다. 이미 폭염은 우리에게 충분히 기후위기의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눈치 없는 사람이 모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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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지금 인도를 보라, 어쩌면 우리의 미래일지도 지금 인도는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뜨거운 폭염을 겪고 있다. 심지어 인도 남부 지방의 한 마을은 50도라는 믿기 힘든 기온이 측정되었다. 인도를 강타한 폭염은 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았고 재해를 넘어 재앙이 되었다. 폭염으로 달아오른 쓰레기 매립지에서는 화재가 발생하고 말라버린 산에서는 산불이 발생했다. 산불로 발생한 연무와 미세먼지는 인도의 하늘을 덮어 14억 인도인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지금도 모든 문제의 시작인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후위기다. 아직 우리는 느껴보지 못했지만, 지금 인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이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일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린 인도를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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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도시, 기후위기의 가해자이자 피해자 도시라는 단어는 어쩌면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각종 미디어에서 다양한 도시 얘기가 흘러나온다. 도시의 아파트 가격, 부동산 정책, 신도시 개발계획, 교통 체증 등과 같은 사회·경제적 이슈부터 미세먼지, 온실가스, 하천오염, 생태계 파괴 등의 환경문제까지 정말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에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우리는 더 발전한다. 그리고 때로는 한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다른 도시나 국가 전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곤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도시에 주목해야 한다. 바로 도시가 다양한 인간 활동을 통해 기후위기를 초래한 확실한 주범일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내가 사는 도시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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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동해안 산불,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20년 전 기후변화를 처음 공부하던 대학원생 때를 돌아보면 많은 미디어들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빙하가 녹는 장면, 해수면 상승, 아프리카의 난민, 그리고 앙상하게 말라가는 북극곰의 사진 등을 보여주곤 했다. 물론 이러한 사건들은 지금도 분명한 사실이고 그때보다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사실 극지역이나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현상들이 우리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또 다른 사건들이 지구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바로 산불이다. 2019년 가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호주 산불을 시작으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산불, 유럽 지중해 산불까지 많은 지역에서 불이 났다. 그리고 이러한 산불은 더 이상 기후변화가 아프리카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후진국형 재난이 아닌 미국, 호주, 유럽 지역 사람들의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선진국형 재난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2022년 3월 우리 한국에서도 역사에 남을 만한 산불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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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페놀로지, 시간을 넘어서는 특별한 의미 아직도 추운 겨울인 것 같은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받기 위해 캠퍼스를 방문한 학생들을 보니 이제 곧 봄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못 봤던 풍경이긴 하지만 가슴에 명찰을 단 신입생은 나에게 봄을 연상시킨다. 적어도 나에게 신입생은 봄이 왔음을 알게 해주는 지표(indicator)다. 이러한 봄의 지표처럼, 기후변화 또한 우리가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게 해주는 지표(climate change indicator)가 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뉴스에서 많이 볼 것이다. “올해 평년보다 ××일 개화시기가 빨라졌다.” 매해 봄이 찾아오면 볼 수 있는 꽃, 바로 개화시기가 기후변화의 지표다. 조금 관심 있는 분들은 이미 눈치를 챘을 것이다. 매년 뉴스에서 같은 얘기를 반복적으로 한다는 것을. 개화시기가 빨라졌다고. 정말 사실이다. 그리고 개화시기가 빨라진다는 것은 기후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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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과호흡, 거칠어지는 지구의 호흡 연말이 다가오면 연례행사로 건강검진을 한다. 작년 12월에도 병원을 찾아 혹시나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긴장되는 마음으로 몸의 안팎을 샅샅이 검사하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지를 열어보고 건강하다는 판정을 받은 뒤에야 조금은 개운한 마음으로 맥주를 들이켰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런 연례행사는 나처럼 마흔이 넘은 분들은 아마 모두 하고 계실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찾아내서 빨리 고치고 오래오래 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건강이 아닌 우리가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할 지구의 건강상태는 어떨까? 이 질문에 쉽게 답을 할 수 있는 분은 없을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지구를 한번 진찰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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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메탄, 또 다른 불편한 진실 소가 방귀를 뀌면 지구가 뜨거워진다? 이제는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식상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소가 음식물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음식물을 발효시키고 이때 발생한 메탄가스를 방귀를 통해 배출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메탄은 흔히 알려진 이산화탄소와 같이 공기를 데우는 온실가스이기에 소가 방귀를 뀌면 지구가 뜨거워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의 방귀는 빙산의 일각이다. 고작 소가 방귀를 뀌는 정도로 지구의 기온을 지금처럼 끌어올릴 만큼 지구 대기 중에 메탄의 농도는 증가하지 않는다. 사실 메탄은 지금 우리 주위 어디에서나 배출되고 존재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집에도, 회사로 향하는 아침 출근길에도, 주말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산책하러 나간 강변에도 있다. 그래서 불편하다. 알고 나면 불편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할 메탄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