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놀로지, 시간을 넘어서는 특별한 의미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페놀로지, 시간을 넘어서는 특별한 의미

아직도 추운 겨울인 것 같은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받기 위해 캠퍼스를 방문한 학생들을 보니 이제 곧 봄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못 봤던 풍경이긴 하지만 가슴에 명찰을 단 신입생은 나에게 봄을 연상시킨다. 적어도 나에게 신입생은 봄이 왔음을 알게 해주는 지표(indicator)다. 이러한 봄의 지표처럼, 기후변화 또한 우리가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게 해주는 지표(climate change indicator)가 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뉴스에서 많이 볼 것이다. “올해 평년보다 ××일 개화시기가 빨라졌다.” 매해 봄이 찾아오면 볼 수 있는 꽃, 바로 개화시기가 기후변화의 지표다. 조금 관심 있는 분들은 이미 눈치를 챘을 것이다. 매년 뉴스에서 같은 얘기를 반복적으로 한다는 것을. 개화시기가 빨라졌다고. 정말 사실이다. 그리고 개화시기가 빨라진다는 것은 기후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개화(flowering), 개엽(leaf unfolding), 단풍(leaf coloring), 낙엽(leaf falling)처럼 식물의 계절변화를 나타내는 현상을 식물 페놀로지(phenology)라고 한다. 학문적으로 정의하는 페놀로지는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가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생물학적 이벤트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나무는 봄이 되면 잎을 틔우고 여름이면 잎이 무성해지고 가을이면 단풍이 들고 겨울이면 잎이 사라진다. 그래서 개엽시기, 성숙기, 단풍시기, 휴지기 등 나무가 살아가는 일 년 동안 여러 번의 생물학적 이벤트가 있고, 각각의 이벤트들은 매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작년 봄에도 잎이 났고, 올해도 잎이 나고, 내년에도 잎이 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매해 봄 식생이 잎을 틔우거나 꽃이 피는 시기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진달래 같은 경우도 지난 12년간 개화시기가 16일 정도 빨라졌고, 생강나무 꽃은 같은 기간 동안 19일이나 빨라졌다. 약 10년간 2주 이상 개화가 빨라졌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전 지구적으로 온난화가 뚜렷해지면서 식물 페놀로지는 기후변화 연구의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빙하가 녹고, 하천이 마르고, 해수면이 상승하며, 땅이 갈라지고, 사막이 확장하는 것은 아주 분명한 기후변화의 지표이지만, 뉴스나 신문을 통하지 않는다면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눈으로 확인하기 힘든 내용들이다. 그러나 식물의 페놀로지 변화는 다르다. 여기저기 지천에 깔린 꽃들이나 나뭇잎은 애써 찾아 보려하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인지할 수 있다. 게다가 빙하가 녹거나 하천이 마르는 것은 지구상의 특정지역에서 벌어지는 현상이지만 개화, 개엽, 단풍 같은 식물 페놀로지의 변화는 지구 육지 모든 곳에서 나타난다. 서울, 베이징, 도쿄, 뉴욕, 런던 등 어디에서든 나타난다. 심지어 지금 우리 집 앞마당에서도.

10년간 2주 이상이나
개화가 빨라진 것은
꽃 피는 데 필요한 열을
빨리 얻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후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식물이 우리에게 보내는
구조신호일지도 모른다

온난화에 반응과 영향의 상호작용

식물은 왜 해마다 더 빠른 날짜에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인가? 지구 북반구에서 인간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활동하는 지역 중 온대 및 한대 기후 지역의 식물은 기본적으로 겨울에서 봄으로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잎을 틔운다. 물론 강수량, 일사량, 토양 등 많은 다른 인자들이 잎을 틔우는 과정에 역할을 하지만 온도 하나만으로도 식물의 개엽시기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식물은 종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잎을 틔우기 위해서 필요한 각자의 열량이 정해져 있다. 필요한 열량이란 식물이 생장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누적온도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개나리는 5도 이상의 기온을 인지하여 총 누적온도 100도 정도가 되면 잎을 틔운다고 했을 때, 5도가 넘어가는 날의 온도만을 계속 더해서 총합이 100도가 되는 날에 잎을 틔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난화가 되고 기온이 높아지면 5도가 넘는 날이 많아지고 결국 100에 도달하는 시간이 빨라진다. 즉 온난화로 인해 필요한 열을 빨리 얻을 수 있기에 식물의 개엽일이 빨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온도가 올라간다고 식물의 개엽일이 무작정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식물은 봄에 잎이 자란 후 나타날 수 있는 서리 같은 냉해를 막기 위해 미리 겨울에 추운 날을 경험하면서 내한성을 기른다. 그래서 아무리 겨울이 따뜻해진다 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추운 날 또한 충족되지 않으면 잎을 틔우지 않는다. 온난화와 추위 사이에서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려 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일조량 또한 중요한 인자이기에 아무리 온난화로 충분한 열을 확보하더라도 해가 짧은 겨울에 잎을 틔우지 않는다. 식물은 급격한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나름의 방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리하고 기민한 생명체일지 모른다. 그래서 만약 식물 스스로 유지하려 하는 균형이 깨질 정도의 페놀로지 변화가 나타난다면, 그 식물은 기후변화에 취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엄동설한에 꽃이 피고 겨울 등산길에 뜬금없이 잎을 틔우는 나무를 보고 반가워할 것이 아니라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급격한 페놀로지의 변화는 식물이 우리에게 보내는 구조신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식물은 다른 한편으로
온난화를 약화시켜
기후변화를 완화시킨다
정말 동화책 제목처럼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온난화로 식물 개엽시기가 빨라지는 것에 숨겨진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다. 식물은 온난화에 반응만 하는 것이 아니다. 식물 또한 온난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식물의 출현시기가 빨라진다는 것은 과거에 비해 지금 그들의 생장활동이 더 활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과거 4월에 잎을 틔우던 나무들이 3월에 잎을 틔우면 과거 잎을 막 틔우던 4월이 되었을 때 훨씬 더 무성한 나무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성하게 자란다는 것은 나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기능이 더 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봄철 나무가 잎을 틔우면 기공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이와 동시에 증산작용을 통해 토양의 물을 대기 중으로 내 보낸다. 개엽시기가 빨라져 봄철 나무의 잎이 무성해지면 상대적으로 식물의 증산량이 증가하여 더 많은 물을 대기로 내 보낸다. 이렇게 많은 물이 대기로 이동하는 과정이 온난화를 약화시키는 과정이다.

생명과 상생이 기후변화의 ‘묘약’

무더운 여름철 골목을 지나다 보면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물을 뿌리는 사람들을 간간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물을 뿌리면 지면에서 공기를 데울 수 있는 열(에너지)이 물의 증발과 함께 사라져 지면이 시원해진다. 이것이 잠열이다. 결국 식물의 증산작용이 활발해지면 뜨거운 아스팔트에 물을 뿌리듯이 지면의 에너지가 증발을 통해 빠져나가 지면의 온도가 낮아져 그 지역의 온난화를 약화시킬 수 있다. 마치 식물이 지구의 뜨거운 공기를 식혀주는 에어컨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식물의 증산을 통한 온도 저감효과(cooling effect)는 봄철뿐만 아니라 여름철에도 잘 나타난다. 무더운 여름 도시숲이 시원한 것은 비단 그늘이 있어가 아니라 식물의 증산에 의한 온도 저감효과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뜨거워지는 지구를 식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많은 고민을 한다 하더라도 온난화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탄소중립을 이루어도 당분간은 온도가 올라간다. 그래서 지금 우리 주위의 식물이 중요한 것이다. 식물은 증산작용에 기반한 온도 저감효과를 통해 지금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온난화를 저감하여 우리가 당면한 기후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이산화탄소 흡수를 통해 대기 중 온실가스 증가를 약화시켜 기후변화를 “완화”시키기 위해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좋은 기후변화 대응 기술이 있을까?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의 제목처럼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표현이 정확한 것 같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도시, 한국, 지구에서 식물을 지키고 가꿔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늘 우리 곁에 있다고 가벼이 보지 말고 나무, 풀, 꽃들을 지키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기후변화 대응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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