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과호흡, 거칠어지는 지구의 호흡

정수종
[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과호흡, 거칠어지는 지구의 호흡

연말이 다가오면 연례행사로 건강검진을 한다. 작년 12월에도 병원을 찾아 혹시나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긴장되는 마음으로 몸의 안팎을 샅샅이 검사하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지를 열어보고 건강하다는 판정을 받은 뒤에야 조금은 개운한 마음으로 맥주를 들이켰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런 연례행사는 나처럼 마흔이 넘은 분들은 아마 모두 하고 계실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찾아내서 빨리 고치고 오래오래 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건강이 아닌 우리가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할 지구의 건강상태는 어떨까? 이 질문에 쉽게 답을 할 수 있는 분은 없을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지구를 한번 진찰해보도록 하겠다.

[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과호흡, 거칠어지는 지구의 호흡

지구의 건강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사람처럼 혈액을 뽑거나 X레이를 찍어 볼 수는 없다. 지구라는 행성을 구성하는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물, 나무, 흙, 그리고 사람 등등 너무 다양한 것들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지구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의 상호작용(Earth system interaction)에 의한 결과물을 보면 된다. 그것이 바로 대표적인 온실가스 이산화탄소이다. 모순되게도 이산화탄소는 지구 생태계의 위협을 초래하는 기후변화 유발물질인데 지구의 건강을 파악할 수 있는 지시자 역할을 한다. 그것은 바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계절성’이라는 특별한 특징 때문이다. 계절성은 말 그대로 계절에 따른 변화를 말한다. 예를 들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이 오고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서늘한 가을이 찾아오고 다시 겨울을 맞이하는 이러한 기온의 변화가 온도의 계절성이다. 온실가스 증가로 인해 매해 연평균 기온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러한 기온의 뚜렷한 계절 차이는 유지한 채로 상승하고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도 마찬가지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막대한 화석연료 연소를 통해 매해 연평균 농도가 증가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겨울을 지나 봄에 연중 최댓값을 보이고 여름이 되면 오히려 농도가 줄어 연중 최젓값을 찍고 가을이 되면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는 계절성을 가지고 있다. 지렁이가 꾸불꾸불 기어가듯이 증가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계절성이 어떻게 지구의 건강을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반구 육지면적의 약 80%는 지구 생물권(biosphere)의 대표주자인 식생(vegetation)으로 덮여 있다. 기온이 올라가고 일조량이 풍부한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잎이 나기 시작한다. 우리 동네 뒷산 풍경이 어두운 갈색에서 푸른 초록으로 변하는 것이다. 봄이 찾아오는 신호이다. 북반구 지역별로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대부분 저위도에서 고위도로 봄이 시작된다. 만약 우리가 우주선을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 지구를 바라본다면 동남아에서 한국을 거쳐 시베리아까지 시간에 따라 남쪽에서 북쪽으로 지상의 초록색이 진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바다 위에 파도가 치듯이 육지에도 지구를 휘어감은 거대한 초록색 파도가 북진해간다. 봄이 되면 지구 생물권의 광합성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구는 북반구 식생의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인다. 바로 이것이 지구의 들숨이다. 이렇게 지구가 숨을 들이마시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서서히 떨어진다. 그래서 식생이 왕성한 생장 활동을 하는 여름이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연중 최젓값을 보인다.

현재 지구는 원래 본인의 호흡보다 70% 이상 더 숨이 가빠진 과호흡 상태다
체온은 올라갔고 온난화로 호흡은 거칠어졌다
기후변화로 인한 급격한 생태계 변화로 인해 건강이 나빠진 것이다
한편으론 지구가 공포감을 표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많은 사람이 기후위기에 관심을 두는 것은 좋다. 개인의 건강을 생각하듯
지구의 건강을 생각해 탄소중립을 준비해야 한다

이산화탄소 농도 계절성 강해져

무더운 여름이 지나 기온이 떨어지고 일조량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동네 뒷산은 울긋불긋 아름다운 붉은색으로 변해간다. 식생의 광합성이 끝나는 가을이 찾아온 것이다. 지구 전체적으로 보면 봄과는 반대로 북반구 고위도부터 저위도를 향해 초록이 빠져나간 자리에 붉은 융단이 깔린다. 이렇게 식생의 광합성이 멈추고 이산화탄소 흡수가 끝나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연중 최젓값을 지나 다시 상승하기 시작한다. 가을이 시작되고 식생의 역할이 끝나면 식생 아래 숨어 보이지 않던 토양(soil)이 대기 중 농도를 다시 상승시키는 게임체인저가 된다. 물론 식생의 생장 기간에도 토양은 제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식생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식생의 생장이 멈추면 이제 얘기가 달라진다. 토양 속의 유기물이 미생물을 통해 분해되면서 지구 생태계는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하는 역할을 한다. 바로 이것이 지구의 날숨이다. 지구가 숨을 내쉬게 되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다시 서서히 올라가게 된다. 물론 식생과 토양 이외에 다른 요인들도 지구의 들숨과 날숨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무리 보수적으로 생각해도 지구 북반구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 계절성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인자는 생물권의 주요 구성요소인 식생과 토양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진찰 전에 각론이 길어지긴 했지만 중요한 부분이라 자세히 언급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지구의 건강상태를 확인해 보겠다. 지구에서 30년 이상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해온 지구대기관측소 45개 지점의 이산화탄소 농도 측정값의 계절성을 장기 분석해보니 아주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났다. 45개 지점 한 곳도 빠짐없이 모든 관측소에서 이산화탄소 농도 계절성이 강해지고 있다. 여기서 계절성이 강해진다는 것은 연중 최댓값과 최젓값의 차이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즉 최댓값은 더 커지고 최젓값은 더 낮아지는 것이다.

지구의 건강 위해 우리도 변해야

가장 크게 변한 북반구 한 관측지는 지난 30년간 최대 70% 이상 강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의 호흡 상태가 바뀔 만큼 지구의 건강에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어쩌면 이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기후변화로 봄이 빨리 찾아와 식생의 생장 기간이 길어져 식생을 통한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증가하고 있다. 즉 지구의 들숨이 점점 강해져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연간 최젓값이 내려가는 것이다. 반대로 생장이 끝난 가을에는 온난화의 강도가 강해져 토양에서 대기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보도됐던 알래스카의 이례적인 기온상승 또한 이러한 토양의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 결국, 온난화로 인해 지구의 날숨 또한 강해지고 있다.

이제 지구의 진찰 결과를 알려드리겠다. 현재 지구는 원래의 호흡보다 70% 이상 더 숨이 가빠진 ‘과호흡’(hyperventilation) 상태이다. 지구의 체온은 올라갔고 (온난화) 호흡은 거칠어졌다. 의학적으로 과호흡은 공포나 흥분의 상태 또는 건강상태 때문에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진단해보면 지금 지구는 기후변화로 인한 급격한 생태계 변화로 인해 건강상태가 나빠진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지구가 현재의 기후변화에 대한 공포감을 우리에게 표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든다. 그럼 진찰을 했으니 처방전을 작성해 볼까 한다. 물론 의사는 아니지만, 지구를 진단하는 기후과학자로서의 내 처방은 바로 탄소중립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탄소중립을 외치고 있는 이유이다. 만약 여러분 중 누군가 연말에 받았던 건강검진에서 폐암 선고를 받았는데 계속 담배를 피울 것인가. 아니면 간암 판정을 받았는데 저녁 식사와 함께 와인을 곁들일 것인가. 아마 많은 사람이 그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건강이 더욱 악화할 것이 자명한데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건강을 위해 우리도 변화해야 한다.

2022년 1월1일 많은 언론이 다양한 형태의 기후위기 기사를 쏟아내었다. 과거보다 훨씬 더 많고 다양한 내용이 다루어졌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국가기관, 민간기업, 학교 등 다양한 곳의 신년사를 다룬 기사에 지구, 환경, 기후 등의 단어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겠다는 뚜렷한 변화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쉬움이 남지만, 많은 사람이 기후위기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단순히 세계적인 유행에 편승하는 자세가 아닌 우리 개인의 건강을 생각하듯 지구의 건강을 생각해서 탄소중립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친구가, 동료가, 가족이 열이 나고 호흡이 가빠진다면 가만히 있을 것인가. 그냥 지켜만 볼 것인가. 누구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 모두 거칠어진 지구의 호흡을 돌려놓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다 같이 고민해보자.

■정수종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근무 중이다. 연구팀을 꾸려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을 밝히기 위한 관측 및 모델링 연구를 진행 중이며, Global Carbon Project, 유럽 항공우주국 기후 모니터링, NASA 온실가스 및 생태계 모니터링 등 국제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다. 2018년부터 서울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도시의 이산화탄소를 측정한 정보를 매일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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