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우리에게 탄소를 규제하라고 명령한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과학은 우리에게 탄소를 규제하라고 명령한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국가들이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를 보상해준다고는 하지만, 이것 또한 궁여지책일 뿐이다
왜냐하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점점 더 진해지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한 피해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의 복지와 안녕을 위해 이제 우리도 온실가스를 심각한 오염물질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떨까

며칠 전 중동의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COP27이 막을 내렸다. 카타르 월드컵의 폭발적인 열기만큼은 아니지만, 매년 지구 곳곳에서 반복되는 기후변화 피해 때문인지 과거에 비하면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던 것 같다. 특히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과연 COP27에서 어떤 결과가 도출될 것인가에 있다. 매년 반복되는 COP회의는 결국 인류가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퇴보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로서 보기에 여전히 아쉬움이 많이 남는 회의였지만, 그래도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바로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에 대한 협의를 끌어낸 것이다.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누적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기여는 작았으나 큰 피해를 겪는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산업화 이후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의 92%를 만들어낸 선진국들이 아주 작은 탄소배출을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잠기고, 사상자 수천 명이 발생한 파키스탄 같은 나라를 지원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재원조달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더 이루어지겠지만, 일단 시작이 된 것은 분명하다. 기후변화를 유발한 온실가스에 대한 책임감 있는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왜 그럼 지금까지 인류는 그냥 기후변화를 방치한 것일까. 어쩌면 문제를 일으키는 쪽과 피해를 보는 쪽이 많이 다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많은 사람에게 당장 탄소를 안 줄여도 내가 직접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강하게 자리 잡은 것 같기도 하다. 기후변화를 실존적인 위험요소가 아닌 잠재적 위험요인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2년 인류가 겪은 기후변화 피해를 보면 더 잠재적 요인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는 우리가 온실가스를 특히 CO2(이산화탄소)라는 이 물질을 강력하고 실존적인 오염물질로 인식해야 한다. 오염물질이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많은 요인을 의미한다. 지구는 점점 뜨거워져 모든 곳을 데우고 있으며, 빙하는 녹아 해수면은 높아지고, 꺼지지 않는 거대한 산불은 생태계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대기질까지 악화시키고 있으며, 늘어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해양을 산성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고전적인 개념의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과 달리 그 영향이 방대하며 지역이 아닌 전 지구로 스며든다고 해서 오염물질이 아닌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영향이 없고 내년에 피해가 발생한다고 해서 오염원이 아닌 것이 아니다. 이제 대기 중에 쌓인 이산화탄소는 분명히 강력한 오염물질로 새롭게 등장한 것이 맞다.

이산화탄소, 강력한 오염물질 부상

여기서 우리는 미국의 역사적 환경정책 하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돌아온 지구수비대를 자처하며 나름 강력한 기후변화 대응 및 탄소중립 정책을 펼치고 있는 미국이 이산화탄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바로 미국 최초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환경법 중 하나인 청정대기법(Clean Air Act) 제202a절에 온실가스를 오염물질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미국 환경보호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이 처음부터 온실가스를 다른 대기오염물질과 같은 피해유발 물질로 인식한 것은 아니다. 그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미국의 역사를 좀 살펴보자. 먼저 우리는 청정대기법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미국 36대 대통령 린든 존슨(재임 1963~1969)은 오염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대기오염 문제를 조사할 수 있도록 오염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이유로 대기오염을 통제하기 위한 입법을 의회에 요청하였다. 여기서 잠깐! 존슨이라는 이름이 익숙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바로 부대찌개로 유명한 존슨탕 때문이다. 100% 정설은 아니지만 1960년대 존슨 대통령이 한국에 방문한 것을 계기로 저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고작 45시간 한국에 있었을 뿐이라고 하는데 아직 음식 이름으로 남아있으니 대단한 영향력이 아닐 수 없다. 존슨 대통령의 요청 이후 1970년 닉슨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청정대기법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7년과 1990년 개정을 통해 현대 청정대기법은 “합리적으로 공중보건이나 복지를 위태롭게 할 것으로 예상하는 대기오염”을 규제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광범위하고 미래지향적인 언어를 포함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많은 과학자에 의하여 대기 중 온실가스의 농도가 증가함에 따른 위험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계속 쌓여가고 있었다.

그런데 2003년 미국에서는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미국 EPA가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에 대한 청원을 거부했고, 이 가스들은 청정대기법에 따른 오염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자 주, 지방자치단체, 환경단체 등은 일제히 EPA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2007년 획기적인 대법원 판결을 통해 승소했다. 본 판결에서 대법원은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를 청정대기법에 따른 규제대상 대기오염물질로 간주하였으며, 본 청정대기법에서 “복지”는 광범위하게 날씨와 기후에 미치는 영향도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한다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2009년에 EPA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기후변화의 과학적 증거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시행했고 수천 개의 공개 의견을 고려한 끝에 대기 중 온실가스의 축적이 공중보건 및 복지를 위협한다는 “위험요소 발견(Endangerment finding)”을 발표하였다.

미국 청정대기법이 우리가 갈 길

EPA는 모든 판단의 근거는 수십 년에 걸친 타인에 의한 전문심사를 거친(peer-reviewed) 연구를 통하여 결론지은 압도적인 과학적 사실에 기반을 뒀다고 설명했다. EPA가 제시한 과학적 기반은 모두가 깜짝 놀랄 만한 대발견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너무도 당연히 경험하고 있는 것들이다. 대기 중 온실가스의 증가에 따른 기후변화가 유발하는 공중보건효과는 직접적인 기온의 상승, 대기질 영향, 극단적 이상기후, 질병 및 알레르기 영향 등에 관한 것이며 환경 및 복지의 효과는 식량생산, 임업, 수산업, 에너지 취약성, 야생동물 피해 등이다.

또한 EPA는 2003년 문제의 첫 시작이었던 자동차의 온실가스 배출이 대기 중 기후위험을 축적하는 것에 이바지한다는 “원인 또는 기여 발견(Cause or Contribute)”을 발표하였다. EPA는 6년 만에 모든 것을 뒤집고 온실가스를 청정대기법에 근거한 오염물질로 명시하고, 강력한 규제의 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최고의 정부 기관에서 자신들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은 것이다. 바로 과학의 힘으로. 이후 EPA는 2010년 바로 청정대기법 202절에 근거하여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기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EPA는 2009년 “위험요소 발견” 및 “원인 또는 기여 발견”을 인용하여 신규 및 기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화력발전소의 탄소배출을 제한하는 표준을 발표하였다. 2016년에는 새로운 석유와 가스공급원의 메탄 배출을 규제하기 위한 기준을 발표하고, 항공기 엔진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이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오염원이라고 제시하였다. 결국 EPA에서는 2009년 노선변경 이후로 온실가스 규제관리에 대한 제도 개선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연구가 쌓이고 쌓이면 대기 중 온실가스의 증가를 유발하는 더 많은 요인에 대한 규제관리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는데 미국 청정대기법의 사례를 보면 이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국가들이 기후변화로 인한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를 보상해준다고는 하지만, 이것 또한 궁여지책일 뿐이다. 지금 당장은 지원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피해를 줄여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전혀 지속 가능한 방법이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 것이다. 왜냐하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점점 더 진해지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한 피해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온실가스는 우리에게 실존적 위협을 가하는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것이 맞다. 모두의 복지와 안녕을 위해 이제 우리도 온실가스를 심각한 오염물질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떨까 한다.

■정수종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근무 중이다. 연구팀을 꾸려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을 밝히기 위한 관측 및 모델링 연구를 진행 중이며, Global Carbon Project, 유럽 항공우주국 기후 모니터링, NASA 온실가스 및 생태계 모니터링 등 국제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다. 2018년부터 서울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도시의 이산화탄소를 측정한 정보를 매일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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