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수
경향신문 기자
영화를 보고 글을 씁니다.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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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한다 지난달 28일 서울에 기반을 둔 종합일간지들은 오랜만에 ‘대동단결’했다. 종이신문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1면에 같은 주제로 기사를 썼는데, 비판하는 대목까지 똑같았다. 바로 전날인 10월27일 정부가 발표한 ‘국민연금 개혁안’이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신문사들까지 한목소리를 내도록 만들었다. 1면 기사의 제목만 봐도 신문들이 의도와 상관없이 ‘의기투합’했음을 알 수 있다. 경향신문은 “‘숫자’ 빼고 방향만 제시/국민연금 ‘맹탕 개혁안’”으로 제목을 뽑았다. 동아일보는 “‘내는 돈-받는 돈’ 숫자 다 빠져/정부, 국민연금 개혁안 ‘맹탕’”, 세계일보는 “내는 돈·받는 돈 수치 다 빠진 ‘맹탕 개혁안’”, 중앙일보는 “총선 의식 몸 사리나/국민연금 개혁 ‘맹탕’”, 한국일보는 “국민연금 개혁 ‘빈 답안지’ 제출한 정부”라고 제목을 달았다. 토요일 자에 표지 기사가 따로 있는 한겨레는 5면 머리기사로 “숫자는 모두 빈칸 … 정부 국민연금 개혁 ‘책임 회피’”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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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늦었다고 생각하면 더 부지런히 움직여라 지난 2월 이 지면에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글을 썼다. 올해 초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시험계산)’ 결과가 공개된 이후 ‘마침내’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이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여기에 이번에도 개혁을 하지 못하면 더는 기회가 없을 것이란 조바심도 있었다. 그로부터 8개월 가까이 지났다. 그때와 비교하면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응원하는 마음보다 조바심이 더 커졌다. 지난 2월에 칼럼을 쓸 때보다 남은 ‘오늘’은 줄어들고 ‘내일’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란 말로 자위하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많이 늦었을 때’가 훨씬 많다. 국민연금 개혁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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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지겨워도 또 해야 하는 이야기 이번 칼럼에는 아주 식상한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또 ‘기후위기’다. 누군가는 ‘지겹다’는 생각부터 할지 모르겠다. 쓰는 나부터 그렇다. 그래도 또 써야겠다. 얼마 전 환경담당 기자가 쓴 기후위기 관련 기사를 보면서 ‘공포’를 느꼈다. 무력감도 따라왔다. 담당기자에게 물었다. “○○씨, 어떻게 쓰는 기사마다 다 호러물(공포물)이야. 아주 무서워 죽겠어.” 담당 기자가 대답했다. “그러게요. 저도 무서워요. 그런데 다음 기사는 더 무서워요.” 소셜미디어(SNS)에서 본 어떤 ‘예언’도 떠오른다.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여름은, 앞으로 당신에게 남은 여름 중 가장 시원한 여름일 것이다.” 어떤가. 이 정도면 아무리 지겹더라도 기후위기에 관해, 그 대책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이유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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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매듭은 풀어야 한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고대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는 정복 전쟁 중 소아시아의 신전 기둥에 단단히 묶여 있는 마차를 만났다.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전해 내려왔는데, 매듭이 어찌나 단단한지 아무도 못 풀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칼을 뽑아 매듭을 잘라버렸다. 예언대로 알렉산드로스는 아시아를 정복했다. 이후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영원히 풀지 못할 난제란 의미로 쓰인다. 알렉산드로스가 매듭을 풀지 않고 칼로 잘라버린 것은 ‘발상의 전환’이나 ‘과감한 결단’으로 통한다. 평범한 사람은 감히 하지 못할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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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학교에 안 가니 행복해졌다 1998년에 <여고괴담>이란 영화가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다. 학교를 떠나지 않은 ‘여고생 귀신’을 소재로 교사의 폭력, 학생 차별, 학교의 부조리 등을 다뤘다.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였는데도 청소년 관객이 꽤 많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원단체총연합회가 ‘영화가 교사의 폭력을 과장하고 교육 현장의 어두운 면만 부각해 교사들의 명예훼손은 물론 교육 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준다’고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 영화를 본 관객들은 교총의 주장에 그다지 공감하지 않았다. 실제 학교가 영화 속 공포를 부르는 공간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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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머릿속에 있는 노동자상을 바꿔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3월6일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근로자에게는 주 4일제, 안식월, 시차 출퇴근제 등 다양한 근로시간제도를 향유하는 편익을 안겨주고 기업에는 인력 운용의 숨통을 틔워줄 것이다.” 이런 설명도 덧붙였다. “이번 개편안이 현장에서 악용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개편안이 당초 의도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권리 의식, 사용자의 준법 의식, 정부의 감독행정 등 세 가지가 함께 맞물려 가야 한다.” 저 발언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이정식 장관은 그날 기자들에게 정책 설명을 하면서 머릿속에 ‘이상적인 노동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권리의식을 갖고 다양한 근로시간제도를 향유하는 MZ세대 노동자’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일이 주어지면 퇴근하는 것도 잊고, 온몸을 불사르듯이 열정적으로 일하고, 바쁜 일을 다 마치면 멋지게 휴가를 떠나는 노동자. 휴대전화 속 스케줄표에는 야근표와 휴가 일정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빡빡하게 붙어 있고, 밤샘을 하고 나서도 아침이면 일에 대한 열정으로 가볍게 일어나는 젊은 노동자. 자신의 책임을 다했는데도 부당한 일을 당하면 직속 상사는 물론 회사 대표에게도 할 말은 하는 노동자. 그리고 이런 ‘건전한 근로자’의 문제 제기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준법 의식 가득한 상사와 사용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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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던 잔소리다. 부모님에게 듣기도 하고, 언젠가부터는 스스로에게 하기도 한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내일로 미루지 않고 할 일을 다 했을 때는 뿌듯함마저 느낀다. “미래의 나에게 짐을 넘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셀프 칭찬’도 한다. 지난달 27일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시험계산) 결과가 공개된 이후 한국 사회에서 국민연금 개혁에 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오늘 할 일을 오늘 할’ 기회가 5년 만에 다시 왔다. “2041년에는 ‘적자로 전환’하고 2055년에는 기금이 소진될 것”이란 구체적인, 또 충격적인 결과를 접하고 나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2041년까지 앞으로 18년, 2055년까지는 32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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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왔습니다 <블라인드 심사서 지원업체 특정가능 정보 삭제, ‘징계’ 사유 될까> 관련 본 신문은 지난 2022년 11월16일자 사회면에 <블라인드 심사서 지원업체 특정가능 정보 삭제, ‘징계’ 사유 될까>라는 제목으로 블라인드 심사에서 지원업체 특정 가능 업체 정보를 삭제한 행위가 징계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내용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결과 이 사건 용업사업 제안서의 블라인드 처리 여부에 대한 전적인 재량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A씨가 계약담당자 내지 직상급자와 협의 없이 임의로 이 사건 용역계약사업 제안서의 인저정보를 블라인드 처리한 것은 업무상 과실로서 징계사유에 해당하였으나 다만, 징계양정이 과다하다는 이유로 사측이 진행한 A씨의 징계처분이 기각되었음을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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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누칼협’보다는 ‘중꺾마’가 회자되는 새해이기를 과문한 탓일 수도 있지만 내 기준으로 지난해 가장 강렬한 인터넷 유행어(인터넷 밈)는 ‘누칼협’이었다. 누칼협이란 단어를 처음 접하자마 이것은 논쟁에서 ‘무적의 무기’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그랬다. 누칼협은 ‘누가 칼 들고 협박함?’의 줄임말이다. 누군가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 이렇게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다. “그렇게 하라고 누칼협?” 비슷하면서 점잖은 말로는 “너한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사람 없으니 징징대지 말라” 정도가 되겠다. 누칼협이란 말은 게임 로스트아크의 커뮤니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로스트아크에서 어떤 아이템이 출시되고 인기를 모았는데, 얼마 있다가 그보다 좋은 아이템이 또 출시되자 먼저 돈을 쓴 사람들이 불만을 터뜨린 모양이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누가 칼 들고 아이템 사라고 협박함?”이라고 놀렸고, 유행어가 돼 온라인 세계 전체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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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최소한, 지금은 아닙니다 6~7년 전쯤 온라인 관련 부서에서 일할 때 사무실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1980년대에 이름이 꽤 알려졌던 사람인데 자신이 관련된 ‘사건 기사’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사건 이후 20여년이 흘러 자식들이 결혼할 때가 됐는데 그런 기사가 남아있어서 부끄럽다는 것이 이유였다. 해당 기사를 찾아봤더니 전화한 당사자뿐만 아니라 관련된 사람들의 실명이 모두 공개되어 있었다. 이름과 나이는 물론 살고 있는 집의 주소까지 나온 관련자도 있었다. 내부 회의를 거쳐 기사를 삭제하지는 않고, ‘현재 기준’에 맞게 이름과 주소를 모두 보이지 않게 처리했다. 당사자도 만족했는지 그 이후에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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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소행성 앞에 기후위기 지난달 26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지구에서 1100만㎞ 떨어진 우주로 우주선을 보내 소행성 ‘디모르포스’에 충돌시키는 데 성공했다. 충돌 상황은 NASA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NASA가 ‘이중 소행성 경로 변경실험(DART)’이란 이름을 붙인 이번 계획의 목적은 언젠가 지구로 날아들 소행성을 방어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1998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 <아마겟돈>처럼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기 전에 소행성의 이동 경로, 즉 궤도를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실제로 소행성의 궤도는 바뀔 것으로 보인다. 빌 넬슨 NASA 국장은 충돌 성공 뒤 “이번 실험은 지구 방어를 위한 전례 없는 성공”이라며 “전 인류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24년 전 개봉한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자 많은 사람이 환호했다. 이제 인류는 소행성의 위협으로부터 지구를 지킬 기술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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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다시 죽음을 기록합니다 교육, 노동, 복지, 환경 등을 담당하는 정책사회부의 부장을 맡은 지 이제 두 달이 되어간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굵직한 일들만 나열하자면 코로나19는 ‘6차’ 대유행 중이고 전국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은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 없이 ‘일단’ 마무리됐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을 갑자기 꺼냈다가 결국 사퇴했다. 매일 일을 마치고 회사를 나서면서도 항상 마음이 무겁다. 퇴근하지 못한 다른 노동자의 소식이 하루하루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로 다 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노동 담당 기자들은 고용노동부가 내는 ‘중대재해 사고 소식’을 빼먹지 않고 회사에 보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