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문규
경향신문 기자
경향신문 문화부에서 출판과 학술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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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드래곤, 국내 첫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홍보대사 된다 가수 지드래곤(본명 권지용)이 이달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홍보대사가 된다. 국가유산청은 오는 19일 개막하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 홍보대사로 지드래곤을 위촉했다고 3일 밝혔다. 국가유산청은 “지드래곤은 K-팝을 넘어 문화 예술 전반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해 온 아티스트로, 예술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과 공익문화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고 위촉 배경을 설명했다. -
책과 삶 가해자의 내면…모자이크 걷어내기 김만식 일등상사는 우리가 알던 가해자가 아니다. 전쟁 영웅이자 반공주의자인 동시에 증언자다. 그는 이북에서 아버지가 처형되는 장면을 목격한 후 월남해 한국전쟁에서 인민군을 상대로 혁혁한 전과를 거둔다. 그는 보도연맹원을 총살하는 현장 책임을 맡아 확인 사살과 ‘처형’을 지휘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그는 2007년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들 앞에서 자신이 가해자임을 밝히고 용서를 구했다. 그의 고백에는 과거를 성찰하던 당시 사회 분위기와 가톨릭 신자였던 개인의 종교적 정서가 맞물렸다. 전쟁 영웅으로서의 자기 인식과 학살 가해자로서의 기억 사이에 벌어진 심리적 균열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다. -
흔치 않은 ‘입체’ 제석천·조선 태종 관직 임명장…문화유산 4건 ‘보물’ 된다 조선 전기 불교 조각의 양식을 보여주는 불상과 태종이 관리에게 내린 임명장 등이 보물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평창 상원사 목조제석천의좌상 및 복장유물’을 포함해 총 4건의 문화유산을 보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2일 예고했다. 강원 평창 상원사의 문수전에 있는 제석천상(사진)은 주로 불화로 표현해온 제석천을 조각으로 조성한 흔치 않은 사례다. 제석천은 불교에서 도리천에 있는 제석천궁에 살면서 사천왕을 거느리고 불법(佛法)과 불제자를 보호하는 수호신을 뜻한다. -
조선 말 의병 조직도 ‘안동의소파록’ 국가유산 된다 조선 말기 경북 안동 일대에서 봉기한 의병의 조직과 운영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국가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을 계기로 유생들이 일으킨 을미의병 당시 안동의병의 조직과 직책을 기록한 ‘안동의소파록(安東義所爬錄·사진)’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한다고 2일 밝혔다. 의소는 의병을 논의하고 조직하기 위해 결성된 집단 또는 그 장소를, 파록은 특정 사안을 수행하기 위해 담당자를 각 직임에 임명한 기록을 의미한다. 해당 문서는 의병 조직에 참여한 인물과 직책, 부대 편성 현황, 지휘 체계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당시 의병 조직의 실제 운영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
600년 전 태종의 임명장·희귀한 제석천 불상, 새 보물 된다 조선 전기 불교 조각의 양식을 보여주는 불상과 태종이 관리에게 내린 임명장 등이 보물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평창 상원사 목조제석천의좌상 및 복장유물’을 포함해 총 4건의 문화유산을 보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2일 예고했다. 강원 평창 상원사의 문수전에 있는 제석천상은 주로 불화로 표현해온 제석천을 조각으로 조성한 흔치 않은 사례다. 제석천은 불교에서 도리천에 있는 제석천궁에 살면서 사천왕을 거느리고 불법(佛法)과 불제자를 보호하는 수호신을 뜻한다. -
조선 말기 의병 활동 보여주는 ‘안동의소파록’ 등록문화유산 된다 조선 말기 경북 안동 일대에서 봉기한 의병의 조직과 운영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국가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을 계기로 유생들이 일으킨 을미의병 당시 안동의병의 조직과 직책을 기록한 ‘안동의소파록(安東義所爬錄)’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한다고 2일 밝혔다. 의소는 의병을 논의하고 조직하기 위해 결성된 집단 또는 그 장소를, 파록은 특정 사안을 수행하기 위해 담당자를 각 직임에 임명한 기록을 의미한다. -
‘춘향전’ 배경 된 호남 제일 누각 ‘남원 광한루’ 국보 승격 조선시대 판소리와 소설 <춘향전>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전북 남원 광한루가 국보가 됐다. 국가유산청은 ‘남원 광한루’를 국보로 지정했다고 1일 밝혔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지 약 63년 만의 국보 승격이다. 광한루는 조선 후기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누각 건물로,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으로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로 불렸다. 본루와 익루(요선각), 월랑으로 구성돼 있다. 본 건물에 해당하는 본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 형태이며, 실내 공간을 넓게 쓰기 위해 3개의 보를 중첩한 점이 특징이다. 공포에는 용과 거북이 등이 화려하게 조각돼 조선 후기 목조건축의 장식성을 잘 보여준다. 온돌방을 둔 익루와 계단 역할을 하는 월랑 등 실용적 요소가 결합된 점도 특징이다. -
철거 앞둔 국내 첫 연구용 원자로 건물, ‘임시 국가유산’ 등록 국내 첫 연구용 원자로를 둘러싼 건물이 최근 철거를 앞둔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가유산청이 긴급 조치에 나섰다. 국가유산청은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연구용 원자로 1호기 원자로실 및 부속건물’을 임시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한다고 1일 밝혔다. 이날부터 6개월간 건물 철거 공사를 비롯한 현상 변경 행위는 제한된다. 국가유산청은 건물 소유자인 한국전력공사, 철거 시행자인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관계 기관에도 등록 사실을 통보했다. 국가유산청은 “국내 첫 연구용 원자로를 에워싼 원자로실과 부속 건물이 철거될 위기에 처함에 따라 멸실을 막기 위한 긴급 보호 조치”라고 설명했다. -
“밥 먹었어?” 안부 묻는 나라…한국인 ‘밥심’은 어디서 왔나 메주의 원형 화석·박수근 그림 등684점 모은 첫 식문화 종합 전시국립중앙박물관서 10월까지 열려 “오늘 나의 밥상에는/ 냉이국 한 그릇/ 풋나물 무침에 신태/ 미나리 김치/ 투박한 보시기에는 끓는 장찌개”(박목월, ‘소찬’) 전시장 입구에서 박목월의 시 옆으로, 소반에 우리네 밥상을 그려낸 민중미술 작가 이종구의 ‘밥상’이 침을 고이게 한다. 한국에서 “식사하셨어요?”가 흔한 안부 인사일 정도로, 밥은 생존을 넘어 공동체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밥상은 어디에서 시작해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을까. -
‘옹기장’ 방춘웅·이학수, ‘화각장’ 한기덕…국가유산청, 국가무형유산 보유자 인정 흙을 빚고 쇠뿔을 펴 전통 공예의 맥을 이어온 장인들이 국가무형유산 보유자가 됐다. 국가유산청은 국가무형유산 ‘옹기장’ 보유자로 방춘웅씨(83)와 이학수씨(71)를, ‘화각장’ 보유자에는 한기덕씨(52)를 각각 인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옹기장은 다양한 용도의 질그릇과 오지그릇(유약을 입혀 구운 그릇)을 만드는 기능이나 그런 기능을 지닌 장인을 뜻한다. 방씨는 증조부 때부터 옹기를 만들어오던 집안에서 태어나 전통 옹기 제작 기법을 익혔으며, 2008년부터는 충청남도 옹기장 보유자로 활동해왔다. 이씨는 고 이옥동 보유자의 아들로 1994년 이수자, 1995년 전승교육사 등을 거쳐 2013년 전라남도 옹기장 보유자로서 전통 기법을 이어왔다. -
신윤복 ‘미인도’ 언제나 만난다…대구간송미술관 상설 전시실 공개 조선 후기 여성 인물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가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상설 공개된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신윤복의 ‘미인도’ 상설 전시 공간인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 방, 미인도실’을 오는 7월7일 미술관 전시실3에서 처음 공개한다고 30일 밝혔다. 단아한 자태의 여성이 홀로 서 있다. 세련된 붓질과 은은한 채색으로 맵시 있게 묘사된 여성은 수줍은 듯 비스듬히 고개를 돌리고 있다. 짧은 저고리에 풍성한 치마를 입은 조선 후기 여성의 옷차림,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 살짝 들린 버선코와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은 그림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한 손에 마노 노리개를 쥐고 옷고름을 풀어 노리개를 매는 듯한 자연스러운 동작은 주인공의 신분과 화가와의 관계를 상상하게 한다. -
3000년 전 볍씨부터 박수근 ‘도마 위의 굴비’까지…박물관에 차린 ‘우리들의 밥상’ “오늘 나의 밥상에는/ 냉이국 한 그릇/ 풋나물 무침에 신태/ 미나리 김치/ 투박한 보시기에는 끓는 장찌개”(박목월, ‘소찬’) 전시장 입구에서 박목월의 시 옆으로, 소반에 우리네 밥상을 그려낸 민중미술 작가 이종구의 ‘밥상’이 침을 고이게 한다. 한국에서 “식사하셨어요?”가 흔한 안부 인사일 정도로, 밥은 생존을 넘어 공동체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밥상은 어디에서 시작해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