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민용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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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행주대첩 전부터 행주치마는 있었다 우리말과 관련해 많은 민간 유래담이 전한다. 이들 유래담은 현대어와의 유사성이나 어떤 지명 또는 사물의 이름과 흡사한 점을 근거로 들고 있어 꽤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살피고 언어의 변천을 따지면 그냥 우스갯소리로 흘려들어야 할 것들이 많다. ‘행주치마’의 유래담도 그중 하나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산성 싸움은 군과 민이 하나가 돼 외적의 침략을 막아낸 위대한 승리였다. 특히 부녀자들이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고 돌을 나르며 적과 맞서 싸운 일은 역사서에도 기록돼 있다. 이를 근거로 “부엌일을 할 때 옷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덧입는 작은 치마”를 가리키는 ‘행주치마’가 ‘행주대첩’에서 유래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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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안개비나 이슬비보다 굵은 가랑비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그것이 거듭되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크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표현이다. 어린아이를 제외하고 누구나 그 의미를 알 법한 말이다. 그러나 국어사전의 의미만 놓고 보면 이 표현은 조금 이상하다. 가랑비는 가늘게 내리기는 하지만 빗줄기가 제법 굵기 때문이다. 비를 맞는 순간 대번에 ‘옷이 젖겠다’는 걱정이 들 정도다. <표준국어대사전>도 가랑비가 이슬비보다 굵다고 뜻풀이를 해놓았다. 이슬비는 빗줄기가 가늘어서 안개처럼 부옇게 보이는 비다. 이런 이슬비보다 더 가는 것이 안개비이고, 안개비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는개’도 있다. 또 보슬비는 빗줄기가 가늘면서 성기게 내린다. 줄줄 내리지 않고 뚝뚝 끊기듯이 오는 비다. 따라서 아주 적은 양의 비라서 언제 옷이 젖는 줄 모른다는 의미를 제대로 나타내려면 가랑비보다는 이슬비, 는개, 안개비, 보슬비 등을 쓰는 게 더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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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고양이는 ‘나비’, 원숭이는 ‘잔나비’! 왜? 고양이를 흔히 ‘야옹이’나 ‘나비’라고도 부른다. 고양이가 “야옹야옹” 소리를 내므로 ‘야옹이’는 얼른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나비’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하늘을 나는 나비와 땅을 걷는 고양이가 쉽게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나비로 부르게 된 데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우선 고양이 얼굴이 나비와 닮았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귀를 세운 고양이의 얼굴 상은 나비를 닮은 듯하다. 나풀거리는 나비를 쫓아다니는 고양이의 습성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됐다는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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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참나물에 이름을 빼앗긴 ‘파드득나물’ 식물 중에는 독성을 지닌 것들이 많다. 식물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독소를 만들거나 가시를 발달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자기를 보호한다는 것이 과학계의 일반적인 이론이다. 이러한 독성은 약성이 되기도 한다. 이를 잘 아는 인류는 독초를 약초로 이용해 왔다. 특히 우리 민족은 독성 있는 식물을 약용뿐 아니라 식용으로도 활용했다. 채취 후 삶아 말리거나, 독성이 축적되기 전 어린잎만 채취하는 등 각종 방법으로 독성을 제거해 밥상에 올린다. ‘나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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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낙동강 오리알’이 이룩한 ‘한강의 기적’ 한국의 발전상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이렇듯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강인 ‘한강(漢江)’의 본래 이름은 ‘한가람’이었다. ‘한’은 “크다”는 뜻의 순우리말이고, ‘가람’은 강을 가리키는 옛말이다. 이를 한자로 적은 것이 漢江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강인 ‘압록강’은 물빛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조선 중종 때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물빛이 오리의 머리 빛깔과 같아 압록(鴨綠)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기록이 있다. 鴨이 ‘오리 압’ 자이고, 綠은 초록빛을 나타낸다. 실제로 청둥오리 수컷의 머리와 목은 짙은 녹색이다. ‘비단 금(錦)’ 자를 써 유난히 예쁘게 들리는 ‘금강’은 충남 공주의 옛 지명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 일대를 예전에 ‘곰’이라 불렀고, 곰이 ‘금’으로 소리가 바뀌면서 한자 ‘錦’을 빌려다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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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고양이 손도 빌려 쓰는 모내기 철 며칠 전 망종(芒種)이 지났다. 보리 수확을 마치고, 이제는 쌀을 얻기 위해 ‘모내기’를 서두르는 때다. ‘모’는 “옮겨 심기 위해 기른 벼의 싹”을 뜻하면서 “옮겨 심으려고 가꾼, 벼 이외의 온갖 어린 식물 또는 그것을 옮겨 심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내기’나 ‘모심기’는 벼를 대상으로 할 때만 쓰고, 벼 이외의 식물은 ‘모를 심다’ 또는 ‘모종을 옮기다’ 따위처럼 풀어서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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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양고깃국이 변한 다디단 ‘양갱’ ‘밤양갱’이란 노래가 인기를 끌고 있다.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들로 지은 가사와 자극적이지 않아 흥얼거리기에 좋은 가락이 인기 비결인 듯하다. 중독성이 꽤 강한 노래다. 이 노래의 소재가 된 양갱은 ‘양 양(羊)’과 ‘국 갱(羹)’으로 이뤄진 한자말이다. 글자만 놓고 보면 ‘양의 고기와 피 등을 재료로 해서 끓여낸 국’이다. 지금 우리가 즐겨 먹는 달콤한 맛의 양갱과는 느낌이 아주 다르다. 이 때문에 양갱의 어원을 두고 다양한 설이 나돈다. “일본의 옛 문헌에 돼지 모양의 저갱(猪羹), 자라를 닮은 별갱(鼈羹), 대나무 형태의 죽갱(竹羹) 등도 나온다”면서 “양갱 역시 일본의 전통 먹거리 가운데 하나로, 화과자를 굳히는 틀의 모양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다가 그중 가장 대표적인 양갱이 전체를 아우르는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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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밀복’은 맛없고 ‘검복’이 맛있다 ‘복어’는 얘깃거리가 많은 물고기다. 우선 복어는 자기 몸을 크게 부풀리고 소리를 내 상대를 겁박하는 재주가 있다. 조선 후기에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에도 “복어는 놀라거나 화가 나면 배를 부풀리고 이빨을 가는 듯한 소리를 낸다”고 기록돼 있다. ‘복어’라는 이름도 이 물고기의 가장 큰 특징인 ‘배를 부풀리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다만 국어사전에 복어의 복이 배를 의미하는 한자 ‘腹(복)’으로 올라 있지는 않다. 또 옛 문헌에 복어는 대부분 “물에 사는 돼지”라는 의미의 ‘하돈(河豚)’으로 적혀 있다. 이는 중국에서 유래한 말로, 그 맛이 돼지고기처럼 좋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복어는 대개 ‘하돈’으로 기록돼 있다. <자산어보> 역시 복어의 종류를 ‘검돈’ ‘작돈’ ‘소돈’ 따위로 나누는 등 ‘복’자를 쓰지 않았다. 이 때문에 본래 복어는 봄철 생선으로, 복사꽃이 필 때 가장 맛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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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평생의 지팡이가 된 사이 ‘부부’ 우리는 예부터 부부의 정을 중요시했다. 우리 속담에도 그러한 삶의 모습이 잘 녹아 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했고, ‘효자도 악처만 못하다’고 했다. 부부는 아무리 싸워도 곧 화해하는 사이이고, 자식이 아무리 잘해도 남편(아내)을 위하는 마음은 아내(남편)만 못하다는 소리다. ‘남편은 두레박, 아내는 항아리’라고도 했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다 항아리를 채우듯이 남편이 밖에서 돈을 벌어오면 아내가 집안을 꾸려 간다는 의미다. 물론 아내가 두레박이 될 수도 있다. 즉 부부는 두레박과 항아리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하여 ‘한 말에 두 안장이 없다’고 했고, ‘한 밥그릇에 두 술이 없다’고도 했다. 그렇게 부부는 서로에게 ‘평생의 지팡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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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같으면서 다른 ‘싯다르타’와 ‘부처’ 불교의 세계관은 차별과 차등이 없는 무차무등(無差無等)의 세상으로 압축된다. 불교에서는 누구든 인간의 욕망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달은 자’, 곧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불교가 하나의 종교로 정립되기 전부터 부처들이 있었고, 지금도 누구든 부처가 될 수 있다. 진리를 깨달은 자를 뜻하는 ‘부처’는 산스크리트어 ‘붓다(Buddha)’에서 온 말이다. 붓다를 음차한 한자가 ‘불타(佛陀)’이고, 중국식 발음은 ‘푸퉈’에 가깝다. 그것이 우리나라로 건너오면서 ‘부텨’가 됐다. 조선시대 한자학습서 <훈몽자회>에도 ‘부텨’라는 표기가 보인다. 이 ‘부텨’가 세월 속에서 구개음화 현상 등을 겪으며 변한 말이 ‘부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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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어느 시대에도 ‘고려장’은 없었다 ‘고려장(高麗葬)’이란 말이 있다. 중장년층이면 누구나 알 법한 단어다. 이 말에 대해 “고려시대에 나이 든 부모를 다른 곳에 버려두고 오던 풍습이 있었다는 설화” 따위로 설명한 글을 자주 접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그 이전과 이후 어떤 때에도 그런 풍습이 있었다는 역사 기록은 없다. 그와 반대로 조선 조정에서 부모나 조부모를 학대한 자에게 강상죄를 물어 극형에 처했다는 기록은 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한 지방의 관리들을 엄히 징계하고, 지역의 행정 등급을 강등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강상죄란 우리가 흔히 아는 삼강오륜 등의 도덕을 심하게 위반한 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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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산책 버찌가 익어 가면 굴을 먹지 마라 벚꽃이 지고 있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열매가 맺힐 터이다. ‘버찌’다. 벚나무는 말 그대로 버찌가 열리는 나무다. 버찌는 앵두를 닮았다. ‘앵두 앵(櫻)’ 자가 ‘벚나무 앵’ 자로도 쓰이고, 버찌를 ‘앵실(櫻實)’로도 부른다. 하지만 붉은빛의 앵두와 달리 버찌의 색은 검다. 그래서 달리 이르는 말이 ‘흑앵(黑櫻)’이다. 그러나 앵실과 흑앵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버찌라는 말도 어린아이나 청년층은 낯설어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버찌는 익숙한 과일이다. 그 이름을 달리 알고 있을 뿐이다. 바로 ‘체리(cherry)’다.